|

전체 주제 교육 만화 생활 특별

[53희생] 1창18;20-26 소돔의 구원을 간청하는 한 사람



Loading the player...


 

1창18;20-26 소돔의 구원을 간청하는 한 사람_1

 

 2013.9.15.주.주일오전

 

*개요:  상담설교-희생, {1오경역사서} <2관점> [6결심]-[5은혜]    

 

20    여호와께서 또 가라사대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부르짖음이 크고 그 죄악이 심히 중하니

21    내가 이제 내려가서 그 모든 행한 것이 과연 내게 들린 부르짖음과 같은지 그렇지 않은지 내가 보고 알려하노라

22    그 사람들이 거기서 떠나 소돔으로 향하여 가고 아브라함은 여호와 앞에 그대로 섰더니

23    가까이 나아가 가로되 주께서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하시려나이까

24    그 성중에 의인 오십이 있을찌라도 주께서 그 곳을 멸하시고 그 오십 의인을 위하여 용서치 아니하시리이까

25    주께서 이같이 하사 의인을 악인과 함께 죽이심은 불가하오며 의인과 악인을 균등히 하심도 불가하니이다 세상을 심판하시는 이가 공의를 행하실 것이 아니니이까

26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만일 소돔 성중에서 의인 오십을 찾으면 그들을 위하여 온 지경을 용서하리라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심판하신다는 사실에 대해서 거부감을 갖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세상을 심판하신다기 보다는 세상을 관찰하시는 분으로 생각하기를 원합니다. 또한 심판을 하지 않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심판을 하신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한없이 분노하시는 분이기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조금이라도 악을 행하면 사정없이 번개를 내려보내시는 분으로 오해합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만이 문제는 아닙니다. 하나님을 그런 분으로 소개하는 사람들도 문제입니다. 그들은 마치 하나님을 불타는 화산과 같다고 말합니다. 그앞에서 죽을까봐 무서워 벌벌 떨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극단적으로 하나님을 왜곡시켜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극단적으로 하나님을 왜곡시켜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만약 여러분께서 부모로서 자녀들이 자신을 오해하여 생각한다면 어떠시겠습니까? 극단적으로 엄하다고 생각한다면 기분이 어떠시겠습니까? 어떤 부모도 자녀들이 그렇게 생각하기를 원하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부모 자신의 진짜 모습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건 오해된 것이고, 스스로 만든 것이며, 잘못 전달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올바로 이해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도 자신의 모습이 그분의 자녀들에게 잘못 전달되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그렇다면 주님이 심판하시는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요? 오늘 본문 말씀 20절을 보십시오. 

“20    여호와께서 또 가라사대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부르짖음이 크고 그 죄악이 심히 중하니”

 

소돔과 고모라의 죄로 인해서 부르짖음이 크다고 하였습니다. 소돔과 고모라에서 일어나고 있던 죄악은 매우 크다고 하셨는데 그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하는 것에 대해서 우리는 창세기 19:5을 볼 수 있습니다.

“창세기 19:5 롯을 부르고 그에게 이르되 이 저녁에 네게 온 사람이 어디 있느냐 이끌어내라 우리가 그들을 상관하리라”

 

소돔에 살던 롯이 손님으로 맞이하였던 나그네들을 소돔의 악인들은 이끌어 내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겁탈하려고 하였습니다. 남자가 남자를 겁탈하는 것이었습니다. 남자가 남자에게 몹쓸 짓을 하려고 했으니 남자와 여자 간에는 얼마나 더 흉악한 일이 있었겠습니까? 실제로 롯은 그 나그네를 구하기 위해서 자기 딸들을 대신 성적 대상으로 내주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소돔성의 악인들은 여성에 대한 악행보다 더 남성에 대한 악행을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롯의 딸들을 거부하고 나그네들을 내놓으라고 더욱 강경하게 나왔던 것입니다. 이러한 성적 타락은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한 이후 롯의 딸들이 그 아버지와 성관계를 갖는 장면에서도 다시 등장합니다. 이런 면을 볼 때 소돔과 고모라는 이성애의 극도의 타락과 동성애의 극도의 타락, 그리고 부모애와 자녀애의 타락을 보여줍니다. 한 마디로 모든 성적 타락이 다 소돔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또한 에스겔서에는 소돔의 죄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에스겔 16:49-50 네 아우 소돔의 죄악은 이러하니 그와 그 딸들에게 교만함과 식물의 풍족함과 태평함이 있음이며 또 그가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도와주지 아니하며 거만하여 가증한 일을 내 앞에서 행하였음이라 그러므로 내가 보고 곧 그들을 없이 하였느니라"

 

그 당시 대도시였던 소돔성은 식물의 풍족함과 태평함이 있었지만 교만했습니다. 또한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도와주지 않았습니다. 가증한 일은 성적인 타락에 대한 일입니다. 이로 인해서 많은 희생과 아픔과 고통이 일어났습니다. 몇 사람은 즐겁고 재미있었고 짜릿했겠지만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고통스럽고 괴로웠으며 죽음을 당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 이 모든 악에 대해서 부르짖음을 들으셨습니다. 주님은 그런 부르짖음을 들으시는 분입니다. 가인이 아벨을 죽였을 때에도 주님은 그 부르짖음을 들으셨습니다.

“창 4:10 가라사대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

 

그래서 주님은 심판자가 되십니다. 그 당시 인간들 중에는 아무도 그들의 죄악을 처단할 자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너무나 강했고 너무나 악했습니다. 인간 사이에서 그 죄를 막을 수 없을 때 주님께서 나서셨던 것입니다. 그 이유는 주님이 그들의 창조자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들을 만드실 수 있었기 때문에 그들을 소멸시키실 수도 있었습니다. 그 때 주님은 모든 피해자의 편에 서십니다. 주님은 모든 피해자들의 대변자요 모든 희생자들의 아픔을 아시는 분이십니다. 그로서 가해자요 죄인이자 악인을 심판하십니다. 주님이 항상 무서운 분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주님은 그 부르짖음을 들으십니다. 그래서 그들을 심판하십니다. 주님은 인자하시고 복주시기만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유약하고 변덕스러우신 분이 아닙니다. 주님은 인간을 악으로부터 지키시려고 하십니다. 가장 올바른 정의와 공의가 나타나도록 하십니다. 그래서 그들을 심판하십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올바로 알 때에 주님을 무서워하지도 않고 주님을 경홀히 여기지도 않을 수 있습니다. 주님을 너무 쉽게 생각하면서 죄악을 슬금슬금 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또한 주님을 너무 두려워하면서 선을 행하는데에도 자신감을 잃어버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그분을 올바로 알고 그분에 대해서 정직하게 나아오기를 원하십니다. 그렇게 한다면 주님은 모든 말씀을 들으십니다. 아브라함도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정확하게 알았기 때문에 그분께 담대하게 나아갔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단지 무서운 분이 아니라 단지 분노를 터트리는 분이 아니라 공의를 행하시는 분임을 올바르게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담대히 나아가 말씀을 드렸습니다. 22절입니다.

“22    그 사람들이 거기서 떠나 소돔으로 향하여 가고 아브라함은 여호와 앞에 그대로 섰더니

23    가까이 나아가 가로되 주께서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하시려나이까”

 

우리가 극단적으로 하나님을 생각해서는 안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과 관계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분노하시는 하나님이라고 생각해도 안됩니다. 하나님을 무한한 인내의 하나님이라고 생각해도 안됩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사랑하십니다. 가해자도 사랑하시지만 피해자도 사랑하십니다. 가해자의 편과 피해자의 편의 그 미묘한 위치 속에서 주님은 가장 올바른 정의와 공의를 이루십니다. 그러한 하나님을 알 때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담대해지며 그 관계속에서 진정한 공의를 이루면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님도 기뻐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하시는 것은 하나님도 원치 않으시는 것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악인을 멸하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속에 악인과 함께 멸망할 지도 모르는 의인을 생각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악인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생각하면서 아브라함은 의인에 대한 하나님의 긍휼히 여기심을 말씀드렸습니다.

“24    그 성중에 의인 오십이 있을찌라도 주께서 그 곳을 멸하시고 그 오십 의인을 위하여 용서치 아니하시리이까”

 

아브라함이 막무가내로 소돔성에 대한 긍휼을 요청하였다면, 그는 하나님의 공의를 저버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는 그는 온전히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 들어가 있지 않은 자 였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덮어두고 소돔성에 대한 심판을 요청하였다면, 역시 하나님의 긍휼을 생각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런 이유로, 우리가 미워하는 어떤 사람에 대한 무조건적인 형벌과 심판을 요구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또한 우리가 좋아하는 어떤 사람에 대한 막무가내식의 용서와 사면을 요청하는 것도 역시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이러한 원리는 여러분의 자녀나 부모가 죄를 지었을 때에나 여러분의 원수나 경쟁자가 죄를 지었을 때에 동일하게 적용되어야만 합니다.

 

그러한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 있으면서 하나님의 공의와 은혜를 온전히 이해하면서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긍휼히 여기심을 간구하고 있습니다.

“25    주께서 이같이 하사 의인을 악인과 함께 죽이심은 불가하오며 의인과 악인을 균등히 하심도 불가하니이다 세상을 심판하시는 이가 공의를 행하실 것이 아니니이까”

 

이제 아브라함이 왜 의인 50명이 있으면 그 성을 사하여 달라고 했는지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만약 그 50명이 있고 하나님이 그들 때문에 성을 멸망시키지 않으신다면 그들은 악인 수천 수만명과 함께 죽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끝일까요? 만약 올해 의인 50명이 있으면 그들은 올해 멸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내년은요? 내년에 50명이 있다면 내년에도 멸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 의인들은 자기들이 의로울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도 의롭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그들 자신이 멸망하지 않게 되고 그로 인해서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받을 만한 자격이 생기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26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만일 소돔 성중에서 의인 오십을 찾으면 그들을 위하여 온 지경을 용서하리라”

 

그 의인 오십명이 그 성의 가능성이 되는 것입니다. 그 성의 의미가 됩니다. 그성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연기할 수 있는 근거가 됩니다. 그들이 열심히 의를 행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노력해서 의가 전파되게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들 자신도 의롭고 다른 사람도 의롭게 만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 오십명이 있다면 성을 멸망시키지 않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도 원하시는 일이었습니다. 그들이 행한 일이 악하고 추하며 가증스러운 일이었지만 그들이 돌이키게 되는 것이 심판받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 세계의 심판자이지만 동시에 이 세계의 창조자이시기도 합니다. 하나님을 제외한 모든 심판자는 단지 심판자의 역할을 할 뿐입니다. 그 모든 존재는 창조자는 아닙니다. 그래서 완악할 수도 있고 무자비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심판자이시면서 창조자이십니다. 또한 창조자이시면서 심판자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의인 50명만이라도 있다면 성을 용서하고자 하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이 의인 50명의 숫자를 깎기 시작했습니다. 무슨 물건값 깎는 것도 아니고,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사랑에 기초해서 그 진실하신 사랑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소돔성의 구원에 필요한 숫자를 깎고 있습니다. 그 다음에는 45명, 다음에는 40명, 그 다음부터 빨라집니다. 30명, 20명, 그리고 마지막 10명에 이르기까지 아브라함은 깎을 수 있는데까지 깎았습니다. 더이상 깎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수준까지 깎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진짜 전부였을까요? 예레미야 5장 1절을 보면 구원을 위해 하나님이 허락하실 수 있는 사람의 수는 한 사람입니다.

“렘5:1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왕래하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공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을 사하리라”

 

그렇기 때문에 아브라함은 사실 한 사람까지도 깎을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한 사람이라도 받아들이시는 이유는 심판 그 자체를 원하시는 것이 아니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진정으로 원하시는 것은 구원입니다. 심판을 받게 되는 것은 구원을 위한 아무런 희망이 없을 때입니다. 아브라함이 소돔성의 구원을 위해 열 명의 의인의 약속을 간청하면서 그는 할 수 있는 한 최선의 일을 다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소돔성은 멸망을 받았습니다. 도대체 소돔성에는 의인이 몇 사람이 있었을까요? 소돔성에는 의인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롯은 의인이 아니었냐구요? 롯은 의인이기는 하였지만 온전히 의롭지는 않았습니다. 자기 집에 들어온 나그네를 구하기 위해 롯은 자기 딸들을 내보내었습니다. 딸들에게 악을 행한 것입니다. 결국 한 사람의 의인도 없었기 때문에 소돔성은 멸망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베드로후서는 이렇게 롯을 설명합니다.

“벧후 2:7 무법한 자의 음란한 행실을 인하여 고통하는 의로운 롯을 건지셨으니

8(이 의인이 저희 중에 거하여 날마다 저 불법한 행실을 보고 들음으로 그 의로운 심령을 상하니라)”

 

결국, 아브라함은 그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고 그 성의 구원을 간청하였지만 그 구원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와는 달리, 진정한 한 사람의 의인이 되셔서 이 세계를 구원하신 분이 있습니다. 그 의인은 자기를 희생하여 세계를 구원하셨습니다. 그분은 다른 사람을 내세우지 않으셨습니다. 자기 대신 그 아무도 희생시키지 않았습니다. 오직 자기 자신이 희생하셨습니다. 그분의 진정한 희생을 통해 우리는 구원받았습니다. 그리고 그분을 믿고 따르며 그분의 희생을 기억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희생을 통해 의인이 되어가기를 원하고 의인이 더 많아지게 되기를 위해서 노력합니다. 그분은 바로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아브라함처럼 아니 아브라함보다 더 절실하게 예수님은 이렇게 하나님께 말씀드렸습니다.

“누가복음 23:34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예수님은 자기 자신에게 행하는 악을 감당하시면서 그들을 용서해 주고 계셨습니다. 그로 인해서 우리는 결코 의인이 아니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과 그분의 순종하심으로 우리가 의인처럼 되었습니다. 세계는 구원을 받았고 그 구원을 향해 우리는 나아가고 있습니다. 이 세계는 종말을 향해서 나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재림은 종말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진정한 구원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적어도 믿는 우리에게는, 그리스도를 통해 의인이 된 우리에게는 그렇습니다. 이렇게 구원을 받은 자로서 진정한 구원을 얻게 하시는 그 한 사람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로마서5:19절은 바로 이러한 한 사람으로 인해 얻는 구원의 의미를 보여줍니다.

“로마서 5:19 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것 같이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그분이 우리를 위해서 기도하셨고 우리의 죄사함을 위해서 죽으셨음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그 희생을 기억할 때 어느새 우리도 그분처럼 닮아갈 것입니다. 또한 그분을 닮았던 아브라함처럼 불쌍하게 죽어갈 수 있는 의인들을 불러내며 그들을 찾아내며 그들을 주님께로 인도할 수 있는 자들이 될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민족은 많은 기독교인들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비록 인구의 4분의 1밖에는 안된다는 안타까움이 있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인구의 4분의 1이나 될 수 있게 된 감사함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속에는 항상 자신의 가족들 속에서 가장 먼저 구원을 받고 혼자서 신앙생활하며 자신의 가족을 사랑함으로 의인의 모습을 나타낸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해마다의 명절때마다 자신의 가족들을 사랑하며 기도했습니다. 그들을 용서하며 인내했습니다. 그들은 진정으로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자들이 된 것입니다.

 

우리는 더욱 이러한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가족의 구원을 간청하는 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동료의 구원을 간청하는 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웃의 구원을 간청하는 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와 아브라함을 닮은 자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할 때 우리의 삶에 진정한 구원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구원받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진정한 기쁨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그 엄청나고 가증스러운 죄악에 대한 심판 속에서 가장 고귀하고 거룩하고 의로운 구원을 향해 나아가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번호 분류 이미지 제목 글쓴이 날짜 추천 조회
2637 1주일
24렘33; 1-3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의 음성 (우림교회)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5-03-24 0 388
2636 1주일
49엡 4; 11-16 그에게서 온 몸이 자라난다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5-03-16 2 899
2635 1주일
50빌 3; 10-14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감 1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5-03-09 0 2770
2634 2오후
19시 48; 9-14 영원토록 이어질 하나님의 인자하심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5-03-09 0 470
2633 83성숙
47고후 1; 8-11 왜 많은 환난을 당하였는가? 1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5-03-02 0 3121
2632 2오후
19시 48; 1-8 하나님은 위대하심으로 찬양받으신다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5-03-02 0 494
2631 82연합
1창 6; 18-22 생명을 보존하도록 도우시는 하나님 2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5-02-23 1 4939
2630 2오후
19시 47; 1-9 우리를 위하여 기업을 택하여 주심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5-02-23 0 471
2629 83성숙
1창 6; 13-17 노아의 발전 속에 있는 하나님의 뜻 1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5-02-16 1 3647
2628 2오후
19시 46; 8-11 하나님께서 높임을 받으시는 것을 준비함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5-02-16 0 482
2627 25관계
1창11; 7-9 막으시는 하나님, 도우시는 하나님 1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5-02-09 1 8548
2626 2오후
19시 46; 1-6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는 삶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5-02-09 0 502
2625 16사회
1창11; 1-6 문명의 발달과 하나님의 뜻 1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5-02-02 2 4170
2624 2오후
19시45; 8-17 왕의 사람들을 모두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은혜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5-02-02 1 513
2623 83성숙
66계22; 16-21 말씀하신 대로 나타나시는 예수님 1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5-01-26 1 3478
2622 2오후
19시45; 1-7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왕의 모습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5-01-26 0 607
2621 2오후
19시 44; 18-26 구원하심을 더욱 간절히 사모함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5-01-25 0 545
2620 82연합
66계21; 22-27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되는 자들 1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5-01-19 1 3167
2619 71충성
66계20; 11-15 처음과 끝의 일치를 이룸 1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5-01-12 1 6563
2618 51계획
19시 44; 9-17 어려움 속에서 하나님의 언약을 생각함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5-01-12 1 627
2617 64인내
66계21; 4-8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시는 하나님 1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5-01-05 1 4296
2616 51계획
19시 44; 1-8 하나님께서 과거에 도우신 것을 감사함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5-01-05 0 664
2615 절기
5신 1; 29-33 광야에서 우리를 인도하신 하나님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5-01-02 2 436
2614 82연합
43요21; 20-25 우리가 경험했던 성탄의 의미 1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4-12-29 1 5716
2613 유연함
61벧후 1; 3-7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4-12-29 0 1609
2612 절기
40마 2; 7-8 박사들이 기뻐하고 기뻐한 이유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4-12-25 2 449
2611 82연합
42눅22; 7-13 어떻게 성탄을 준비하기를 원하시는가 2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4-12-22 1 7680
2610 유연함
1창 13; 8-11 유연함 속에 있는 하나님의 축복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4-12-22 0 1861
2609 82연합
42눅 4; 16-22 예수님을 받아들이는 사람들 1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4-12-15 1 7782
2608 분별력
45롬 12; 1-3 분별력을 통해 거룩함을 이룬다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4-12-15 0 1821
2607 51계획
42눅 2; 46-50 예수님을 새롭게 알게 된 사람들 1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4-12-08 1 7323
2606 순발력
1창 18; 3-8 순발력의 모습으로 이루는 일들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4-12-08 0 2342
2605 이해력
40마 13; 47-52 이해력을 통한 신앙의 성장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4-11-30 0 3438
2604 74경건
42눅 2; 36-40 예루살렘의 속량을 바라는 사람들 1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4-11-30 1 11681
2603 외부
42눅 9; 28-33 하나님의 일에 동참하는 사람들(우림교회) 1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4-11-24 2 1397
2602 신체건강
20잠 4; 20-27 신체건강을 위해서 지켜야 하는 것들_2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4-11-23 0 3391
2601 음식절제
40마 4; 1-4 돌들로 떡덩이가 되지 않게 하는 음식절제의 삶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4-11-16 0 3730
2600 62희락
54딤전 4; 3-6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다 1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4-11-16 0 10437
2599 기억력
5신 7; 17-21 기억력을 새롭게 하여 선을 행함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4-11-09 0 3943
2598 56충만
11왕상18; 41-46 작은 구름을 기다리는 소망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4-11-09 1 5379
2597 침착함
2출 14; 10-14 침착함을 가질 수 있는 이유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4-11-02 0 3450
2596 55동행
50빌 4; 6-9 선택의 문제를 놓고 하나님께 간구함 1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4-11-02 0 9891
2595 외부
66계 19; 5-8 세마포 옷과 그 옷을 입는 이유(우림교회)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4-10-27 1 832
2594 64인내
46고전10; 10-13 피할 길을 내셔서 감당하게 하시는 하나님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4-10-27 1 4697
2593 자유함
42눅 8; 31-36 자유함을 얻게 되는 원리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4-10-19 0 4916
2592 56충만
45롬 8; 25-28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심 1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4-10-19 2 11623
2591 자제력
1창 29; 16-20 자제력은 더 큰 것을 사모하는 마음이다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4-10-12 0 3468
2590 51계획
10삼하 2; 1-5 응답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되다 1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4-10-12 1 11848
2589 의지력
7삿 15; 18-20 여호와께 부르짖는 삼손의 의지력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4-10-05 0 3616
2588 34두렴
2출14; 22-25 나아가는 이스라엘과 쫓아오는 애굽인들 1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4-10-05 0 10295
2587 자기관리
55딤후 2; 20-22 자기관리의 목표와 의미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4-09-28 0 3416
2586 66양선
42눅22; 28-32 하늘의 일은 다스리는 일이다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4-09-28 1 5600
2585 백년해로
1창 23; 1-4 백년해로를 바라볼 수 있는 마음가짐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4-09-21 0 3335
2584 66양선
42눅19; 11-17 하나님의 일에서 하늘의 일로 나아간다 1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4-09-21 2 10509
2583 쾌활함
21전 8; 14-15 쾌활함은 하나님을 소망하는 삶이다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4-09-14 0 3954
2582 66양선
43요21;15-17 예수님을 사랑할 때 하는 일 1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4-09-14 2 10598
2581 생동력
23사 40; 27-31 생동력의 근원이신 하나님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4-09-07 0 4441
2580 66양선
42눅10; 38-42 하나님의 일과 내 일의 차이 1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4-09-07 1 11170
2579 성능력
22아 4; 12-16 성능력을 통한 사랑의 표현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4-08-31 0 3661
2578 66양선
43요 5; 17-21 일하시는 하나님과 예수님 1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4-08-31 3 13816
2577 용감성
9삼상 17; 43-47 용감성의 근원과 실천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4-08-24 0 4057
2576 63화평
42눅 6; 1-5 안식의 주인이신 예수님 1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4-08-24 2 10507
2575 부부화목
60벧전 3; 1-7 부부화목을 위해서 해야 할 일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4-08-17 0 3850
2574 63화평
1창18; 5-8 하나님의 안식에 참여하는 방법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4-08-17 1 5531
2573 협동심
10삼하 10; 7-12 하나님을 의지하며 연합하는 협동심_2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4-08-10 0 4565
2572 63화평
1창18; 1-5 휴식 중에 복을 받는 사람들 1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4-08-10 1 11043
2571 담대함
5신 31; 6-8 담대함을 갖게 하시는 하나님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4-08-03 0 4159
2570 63화평
1창 2; 1-3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안식의 의미 1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4-08-03 2 12089
2569 인내심
59약 1; 2-4 인내심을 통해서 부족함이 없게 된다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4-07-27 0 4184
2568 62희락
52살전 5; 14-18 범사에 감사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뜻 1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4-07-27 2 13052
2567 두뇌향상
19시19; 7-11 두뇌향상을 위한 성경적 방법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4-07-20 0 3717
2566 62희락
50빌 4; 4-8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는 삶 1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4-07-20 2 12295
2565 자녀발전
7삿 13; 8-12 자녀를 어떻게 발전시킬 것인가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4-07-13 0 3877
2564 62희락
44행27; 33-37 감사를 통해 구원을 얻게 되다 1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4-07-13 1 11759
2563 연애
1창 29; 16-20 성경적인 연애생활의 의미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4-07-06 0 4129
2562 62희락
44행16; 19-26 지금까지의 삶에 대해서 감사를 드림 1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4-07-06 2 13724
2561 신앙성숙
54딤전 4; 13-16 신앙성숙을 지속적으로 이루는 방법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4-06-29 0 4025
2560 74경건
66계21; 1-4 사람들과 함께 있는 하나님의 나라 1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4-06-29 2 12576
2559 성교육
1창 6; 1-3 성교육의 필요성과 신앙적 의미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4-06-22 0 3994
2558 74경건
45롬14; 17-22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곳 1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4-06-22 1 15037
2557 적응력
44행 27; 33-38 적응력은 하나님 안에서 따라가는 것이다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4-06-15 0 4315
2556 74경건
43요18; 33-37 예수님의 나라는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다 1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4-06-15 2 12955
2555 사고원활
20잠 24; 28-32 사고원활이 이루어지는 지혜로움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4-06-08 0 4140
2554 74경건
40마20; 20-23 나라를 위해서 일하는 방법 1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4-06-08 2 12344
2553 성정체성
1창 2; 20-25 성정체성의 근원과 신앙적 의미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4-06-01 0 4113
2552 74경건
54딤전 2; 1-4 나라를 위해서 기도하는 이유 1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4-06-01 2 15199
2551 사회성
1창 11; 3-8 사회성의 시작과 올바른 방향성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4-05-25 0 4627
2550 84교육
46고전 7; 1-5 가정의 화목 속에 존재해야 하는 이유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4-05-25 1 7327
2549 가정화목
45롬 12; 14-18 가정 화목을 이루기 위해서 필요한 것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4-05-18 0 5571
2548 84교육
51골 1; 26-29 가르치는 자들은 비밀을 알게 하는 자들이다 1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4-05-18 2 15323
2547 질병고통
59약 5; 13-16 질병고통 속에서 주님을 의지하는 법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4-05-11 0 2540
2546 84교육
46고전12; 19-26 부모가 알아야 하는 한 몸의 원리 1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4-05-11 1 14320
2545 시험실족
40마14; 28-33 시험실족을 이겨내는 방법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4-05-04 0 2377
2544 84교육
20잠22; 1-6 아이에게 가르쳐야 하는 것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4-05-04 1 8197
2543 예정선택
49엡 1; 7-12 예정과 선택을 통해서 은혜를 깨닫는다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4-04-27 0 2840
2542 76우애
45롬 8; 1-6 생명과 성령의 법을 이루는 우애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4-04-27 1 7841
2541 이단사이비
61벧후 2; 1-4 거짓선지자와 이단과 사이비를 멀리해야 하는 이유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4-04-20 0 2948
2540 76우애
51골 2; 16-19 우애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통해서 발전된다 1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4-04-20 3 15381
2539 변증론
44행 18; 24-28 변증과 그리스도의 복음전파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4-04-13 0 2822
2538 76우애
61벧후 1; 7-11 우애를 통해 구원의 확증을 이룬다 1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4-04-13 3 167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