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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왕상] 11왕상19; 9-14 호렙산에서 하나님을 만난 엘리야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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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왕상19; 9-14 호렙산에서 하나님을 만난 엘리야2_4

  

 

  

2019. 7. 24. . 수요예배.

  

 

  

*개요: 열왕기상 연구  

  

[왕상]19:9           엘리야가 그 곳 굴에 들어가 거기서 머물더니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왕상]19:10        그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 열심이 유별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나이다

  

[왕상]19:11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가서 여호와 앞에서 산에 서라 하시더니 여호와께서 지나가시는데 여호와 앞에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나 바람 가운데에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바람 후에 지진이 있으나 지진 가운데에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왕상]19:12        또 지진 후에 불이 있으나 불 가운데에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더니 불 후에 세미한 소리가 있는지라

  

[왕상]19:13        엘리야가 듣고 겉옷으로 얼굴을 가리고 나가 굴 어귀에 서매 소리가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왕상]19:14        그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 열심이 유별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나이다

  

 

  

성도들은 생활 속에서 예수님과의 만남을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나를 만나주신다면 어떨까요? 혹은 내가 예수님을 만나게 된다면 어떨까요? 만약 예수님을 만나게 되면 그 만남은 어떻게 느껴지겠습니까? 주님을 만나는 것은 좋기는 하지만 정말 주님을 만나게 되면 뭔가 불편한 상황이 생기지 않겠습니까? 성경에는 정말 인간이 우리 주님을 만난 장면이 있을까요? 물론 당연히 있습니다그리고 그런 장면은 너무나 많습니다. 그 중에 한 부분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도 있습니다. 바로 엘리야 선지자가 만유의 주재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는 장면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하나님을 만나는 장면에서 그 만남은 그냥 얼굴만 보고 음성만 듣고 끝나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과의 만남은 하나님과 인간이 만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인간이 만나게 되면 자연스럽게 관계가 형성됩니다. 하나님도 인간과 관계를 맺고 인간도 하나님과 관계를 맺습니다. 이러한 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일은 각각의 원하는 바가 드러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가 인간에게 나타납니다. 또한 인간이 원하는 바가 하나님께 드러납니다. 사실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려고 하는 이유는 바로 이것 때문입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려드리고 싶은 것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엘리야도 그랬습니다.  그가 하나님께로 나아갔던 이유는, 하나님을 만나고자 했던 이유는 하나님께 자신의 사정을 말씀드리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신이 얼마나 힘든지 얼마나 괴로운지 얼마나 죽고 싶은지를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애초에 그는 그런 절망감으로 인해 로뎀나무 밑에서 죽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천사가 와서 물과 떡을 주고 힘을 불어 주고 호렙산으로 가서 하나님을 만나라고 해서 오늘 말씀이 펼쳐지는 호렙산으로 왔던 것입니다. 그 장면이 시작되는 9, 10절을 보십시오.

  

“[왕상]19:9         엘리야가 그 곳 굴에 들어가 거기서 머물더니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왕상]19:10        그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 열심이 유별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나이다

  

그는 자신의 어려운 형편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하나님께 대해서 열심이 많았다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자손은 주의 언약을 버렸다고 했습니다. 또한 주의 단을 헐며 칼로 선지자들을 죽였다고 했습니다. 자신만 피해서 살았는데 이제는 자기도 죽이려고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는 이 모든 형편이 얼마나 자신에게 힘들고 괴로운지를 말하고 싶은 것이었습니다. 비록 그런 형편으로 인해서 죽고자 하는데까지 오기는 했지만 그건 그가 진짜 원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정말로 원하는 것은 자신의 어려움을 하나님이 알아주시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을 위해서 그는 호렙산까지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 왔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하나님을 만나면서 자신의 원하는 것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기는 했지만 더 중요한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도 엘리야에게 대해서 원하시는 것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 둘은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사람이 원하는 것은 하나님의 원하시는 것과 대비됩니다. 그런 면에서 엘리야가 하나님을 만나는 모습은 각각의 원함이 대조적으로 비교가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엘리야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그가 원한 것은 자신의 사역에서의 어려움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그의 말을 다시 한번 곱씹어 보십시오.

  

“[왕상]19:10       그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 열심이 유별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나이다

  

주님은 동일한 질문을 다시 13,14절에서 반복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엘리야의 대답도 마찬가지로 동일하게 나타납니다.

  

“[왕상]19:13       엘리야가 듣고 겉옷으로 얼굴을 가리고 나가 굴 어귀에 서매 소리가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왕상]19:14        그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 열심이 유별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나이다 

  

반복되는 두번의 대답 속에서 우리는 그가 얼마나 힘들고 괴로웠던 상황이었는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괴로움 속에서 그가 원한 것은 무엇인가요? 바로 그런 어려움들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주님께로 돌아오거나, 혹은 더이상 자신을 죽이려 하지 않거나 하는 것입니다. 그런 것이 되지 않았을 때 그는 절망했습니다. 특히나 더 열심이 특심했기 때문에 더욱 절망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죽고 싶어 했던 것입니다. 이상하게도 열심이 특심하면 할수록 죽고 싶게 됩니다. 그 이유는 그는 자신이 닥친 상황의 괴로움에 부딪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세게 달려오면 달려올 수록 더욱 그로 인한 고통으로 인해 죽어가게 됩니다.

  

마음의 욕구란 이런 것입니다. 내가 원하는 것은 전부 이런 성향을 갖습니다. 열심이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다만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가 중요합니다. 열심을 가지고 주님의 기뻐하심을 이루려고 한다면 괜찮지만 그 열심을 가지고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려고 하면 문제가 생깁니다. 어쩌면 그것은 하나님이 그런 문제를 만드시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그것은 당연한 일이기도 합니다주님은 인간의 욕구에는 한계가 있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도 우리의 욕구에 대해서 그렇게 말씀하십니다.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릴찌니라  우리는 우리의 욕구를 깨닫고 돌이켜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한계에 부딪치게 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욕구에서 돌이킬 수 있을까요? 그 방법이란 우리가 하나님의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내가 원하는 것은 그런 것이었지만, 엘리야가 원하는 것은 그런 것이었지만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사실 엘리야를 호렙산으로 가라고 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의 원하는 것을 말하는 것도 있지만,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야만 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로뎀나무 밑에서 죽게 해달라고 하는 엘리야의 소원을 들어주지 않으셨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도대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일까요? 우리가 그러한 질문을 가질때에 엘리야에게 보여주신 하나님의 응답이 무엇인지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처음에 엘리야가 자신의 어려움을 호소하였을 때에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왕상]19:11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가서 여호와 앞에서 산에 서라 하시더니 여호와께서 지나가시는데 여호와 앞에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나 바람 가운데에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바람 후에 지진이 있으나 지진 가운데에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왕상]19:12        또 지진 후에 불이 있으나 불 가운데에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더니 불 후에 세미한 소리가 있는지라

  

이것이 바로 여호와 하나님의 응답이었고, 또한 하나님의 원하시는 바였습니다. 하지만 이것을 보고 들으면서도 엘리야는 이것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강한 바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는 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그 가운데에 하나님께서 계시지 않았습니다. 또한 지진이 일어나는 것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그 가운데 계시지 않았습니다. 마지막으로 불이 일어났으나 그 가운데에서도 역시 하나님께서는 계시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원하시는 일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엘리야는 강한 바람을 원했습니다. 지진과 불도 원했습니다. 그래야 이스라엘 백성들이 정신을 차릴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더 큰 바람과 더 큰 지진과 더 큰 불을 원했습니다. 그래야 자신을 죽이려고 위협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그는 갈멜산에서 불을 달라고 기도하고 여호와 하나님의 불을 제단에 내리게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때 뿐이었고 그 후로는 불을 내릴 수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은 무엇일까요? 불 후에 세미한 소리가 있었습니다. 세미한 움직임이 있었습니다. 가시적이고 거대하며 대규모로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아주 작게 일어나는 세미한 소리가 있었던 것입니다. 바람으로, 지진으로, 그리고 불로 심판하는 것이 원하시는 일이 아니라 세미한 소리 가운데 역사하시는 하나님은 그들이 계속해서 돌아오기를 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얼마나 악하고 얼마나 패역되며 얼마나 거역하는지를 잘 알고 계십니다. 그것은 굳이 엘리야가 말하지 않아도 잘 알고 계십니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그들에 대해서 하나님은 용서하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엘리야는 그 악한 자들의 심판을 원하였지만 하나님은 그 악한 자들의 회개를 원하셨습니다. 그것을 알지 못할 때 엘리야는 죽고 싶었지만,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그가 죽고 싶어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과 회개케 하심과 용서하심을 나타내기를 원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엘리야에게 원하신 것입니다.

  

 

  

엘리야는 자신의 원함과 하나님의 원함 사이의 커다란 차이를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깨달았을 때 그는 그 스스로가 용서 받아야 하는 자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정당하게 불평하고 원망하며 비난할 수 있는 자가 아니라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했던 어리석음을 용서받아야 하는 자였던 것입니다. 그는 그 회개 속에서 더이상 죽고 싶어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왜 호렙산에 서 있게 되었는지를 깨달았습니다. 그가 호렙산에 왜 있느냐고 하나님이 질문하셨을 때 그가 그곳에 있게 된 이유는 패역한 이스라엘 백성들 때문이 아니고 자신 때문이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하나님은 하나님 때문에 살게 하십니다. 자신 때문에 살려고 한다면 죽을 수 밖에 없지만, 하나님 때문에 살려고 할 때 그는 살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하신 명령을 따르면서 살았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살고자 할 때 그는 새로워졌습니다. 19절입니다.

  

“[왕상]19:19       엘리야가 거기서 떠나 사밧의 아들 엘리사를 만나니 그가 열두 겨릿소를 앞세우고 밭을 가는데 자기는 열두째 겨릿소와 함께 있더라 엘리야가 그리로 건너가서 겉옷을 그의 위에 던졌더니

  

그는 로뎀나무로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말씀하신대로 엘리사에게로 나아갔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그 엘리사를 통해 하사엘과 예후가 세움을 받았습니다. 또한 엘리야 자신은 죽음을 보지 않고 불말과 불병거를 타고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성경에 죽지 않고 하나님 나라에 간 두 사람이 있는데 한 사람은 에녹이고 다른 한 사람은 엘리야였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원함을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원함을 잊어버려서는 안되겠습니다. 하나님의 뜻 가운데에서 우리의 원하는 것은 안전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벗어나는 원함이란 욕구요, 그것은 죄가 됩니다. 이제 하나님의 원하심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또한 용서에 대한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생각하며 그 뜻을 따르는 자가 됩시다. 이일을 위해 우리는 주님을 만납니다. 또한 만나야 합니다. 그 만남 속에서 용서받으며 용서 속에서 살아가는 자가 됩니다. 주님의 원하심을 기억하고 그 속에서 용서의 깊은 은혜 속에서 생활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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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행 1; 22-26 부활하심을 증언할 사람이 되게 함 1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3-09-23 2 15124
2777 성경기원
42눅 1; 1-4 성경계시의 기원과 목적에 대한 이해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3-09-16 0 3027
2776 71충성
44행 1; 12-17 마음을 같이 하여 직무를 행하는 성도 1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3-09-16 1 14196
2775 기독교역사
44행 17; 16-21 세상의 철학과 기독교의 진리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3-09-09 0 2964
2774 64인내
44행 1; 6-11 성도는 하나님 나라를 위해 무슨 일을 해야 하는가 1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3-09-09 0 13149
2773 기독교역사
44행 16; 6-10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기독교의 역사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3-09-02 1 2933
2772 64인내
44행 1; 1-5 약속을 기다리는 하나님의 성도들 1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3-09-02 2 12731
2771 기독교역사
47고후 8; 1-7 자원하는 마음으로 확장된 기독교의 역사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3-08-26 0 3128
2770 83성숙
43요 3; 12-16 하나님의 성전 된 성도가 하는 일 1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3-08-26 1 14929
2769 [1계시론]
44행 15; 36-41 피차 갈라서는 제자들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3-08-19 0 3381
2768 81훈련
43요 3; 1-5 하나님의 나라를 준비하는 성도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3-08-19 1 7265
2767 [1계시론]
44행 15; 1-3 기독교 역사의 발전원리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3-08-12 0 3547
2766 71충성
43요 2; 13-19 사흘 동안에 세워진 성전 1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3-08-12 1 14458
2765 [7교육]
44행 21; 30-34 성전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하나님의 일들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3-08-05 0 2921
2764 71충성
43요 2; 6-11 돌항아리의 물이 포도주가 됨 1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3-08-05 1 12754
2763 [7교육]
44행 16; 25-34 빌립보 감옥에서 바울이 얻게 된 것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3-07-29 1 2806
2762 56충만
42눅 4; 24-30 고향에서 환영을 받지 못하는 이유 1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3-07-29 0 12783
2761 [7교육]
44행 16; 11-15 빌립보에서 만난 루디아의 믿음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3-07-22 0 2913
2760 56충만
42눅 4; 14-21 말씀을 삶 속에 응하게 하심 1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3-07-22 1 13128
2759 [7교육]
44행 16; 6-11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함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3-07-15 0 3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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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눅 4; 9-12 성도는 왜 하나님을 시험하지 않는가 1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3-07-15 0 13544
2757 [7교육]
52살전 1; 1-7 모든 믿는 자들의 본이 된 성도들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3-07-08 0 2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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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눅 4; 5-12 성도가 세상 권위와 영광을 대하는 법 1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3-07-08 2 12196
2755 [7교육]
19시18; 1-3 바위 안으로 피하는 성도들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3-07-01 1 3822
2754 56충만
42눅 4; 1-4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1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3-07-01 2 12543
2753 외부
51골 3; 12-15 주님으로부터 받은 용서를 따르는 삶(안산 반월교회 헌신예배)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3-06-24 1 954
2752 [7교육]
46고전 2; 10-16 사람의 일을 아시는 성령께서 보여주심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3-06-24 0 3278
2751 55동행
41막 2; 16-20 제자들이 예수님의 사람들인 것을 나타내는 때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3-06-24 1 7014
2750 [7교육]
46고전 10; 1-4 그리스도로부터 나오는 신령한 음료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3-06-17 1 3327
2749 55동행
41막 2; 12-15 예수님을 찾고 따라가는 사람들 1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3-06-17 2 13079
2748 [7교육]
46고전 1; 18-25 세상의 지혜와 십자가의 능력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3-06-10 0 2874
2747 64인내
41막 2; 6-11 죄 사함에 대한 권세와 구원의 의미 1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3-06-10 2 12458
2746 [7교육]
46고전1; 1-9 고린도 교회의 도전과 소명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3-06-03 0 2811
2745 64인내
41막 2; 1-5 중풍병자의 죄를 사해 주시는 이유 1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3-06-03 1 12186
2744 [7교육]
44행 17; 28-34 하나님의 설명을 중요하게 여기는 자들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3-05-27 0 2922
2743 55동행
40마 2; 1-6 다스리고 목자가 되시는 그리스도의 오심 1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3-05-27 2 11458
2742 [7교육]
44행 17; 16-25 아덴에서 복음을 전파한 사도 바울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3-05-20 0 2951
2741 51계획
40마 1; 18-23 아담과 다른 예수님의 출생의 은혜 1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3-05-20 0 12492
2740 [7교육]
44행 27; 14-19 광풍으로 인한 어려움 속에서 주님을 찾음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3-05-13 1 2950
2739 51계획
40마 1; 11-17 그리스도까지 이어지는 세대의 가치 1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3-05-13 0 12775
2738 외부
66계 3; 10-13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는 성도들 (서울평안교회 헌신예배)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3-05-10 1 1009
2737 [7교육]
66계 2; 8-11 환난을 아시고 생명의 관을 주시는 하나님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3-05-06 1 2851
2736 51계획
40마 1; 1-6 부모 자녀의 계보로부터 나오시는 그리스도 1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3-05-06 0 15444
2735 [7교육]
66계 2; 1-7 처음 사랑과 처음 행위를 지켜야 하는 교회(에베소)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3-04-29 0 2926
2734 51계획
39말 2; 4-6 사람을 돌이켜 죄악에서 떠나게 하는 성도들 1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3-04-29 0 14011
2733 [7교육]
66계 2; 12-17 흰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하심(버가모)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3-04-23 1 3183
2732 56충만
39말 1; 12-14 주의 이름을 더럽히는 자와 공경하는 자 1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3-04-22 0 11944
2731 [7교육]
66계 2; 18-29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받는 자들(두아디라)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3-04-15 1 2802
2730 44존경
39말 1; 6-11 어떻게 주의 이름을 공경하는가 1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3-04-15 1 11914
2729 [7교육]
66계 3; 1-6 흰 옷을 입고 주와 함께 다니는 자들(사데)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3-04-08 0 2712
2728 55동행
43요 20; 11-16 부활하셔서 가까이 계신 예수님 1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3-04-08 1 11162
2727 [7교육]
66계 3; 7-13 인내의 말씀을 지키고 기둥이 되는 교회 (빌라델비아)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3-04-01 1 2980
2726 61사랑
39말 1; 1-5 자신을 사랑하신 하나님을 신뢰하는 성도 1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3-04-01 3 16311
2725 [7교육]
51골 4; 12-16 히에라볼리에 있는 자들을 위하여(파묵칼레)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3-03-25 0 2973
2724 74경건
38슥 2; 10-13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성전 되는 삶의 즐거움 1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3-03-25 1 11299
2723 [7교육]
66계 3; 14-22 차든지 뜨겁든지 해야 하는 교회(라오디게아)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3-03-18 1 30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