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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사역] 43요 4;11-16 어디서 생수를 얻을 수 있습니까



43요 4;11-16 어디서 생수를 얻을 수 있습니까


2010. 3.7. 주일오전, 8사역

우리가 교회의 일군이 되어 전도하고 예배를 드리며 성경공부와 봉사를 하려고 할 때에 교회의 일군이니만큼 교회에서의 방법대로 일을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전도와 예배와 성경공부와 봉사가 있지만 이것을 세상의 방법대로 한다면 자연히 세상의 일이 되어버릴 것입니다. 이 세상 이치도 그와 마찬가지 아닙니까? 법정에서 판사가 법전대로 판결을 내리지 않고 자기 인생경험대로 판결을 내린다면 어떻겠습니까? 경찰관이 법규대로 범죄자를 구속하지 않고 자기 감정대로 무고한 시민을 구속한다면 어떻겠습니까? 교사가 강단에서 배워야 할 내용을 가르치지 않고 자기가 가르치고 싶은 내용을 가르친다면 어떻겠습니까? 운동선수가 경기규칙대로 경기를 하지 않고 자기가 익숙한 대로 경기한다면 어떻겠습니까? 야유를 받고 질책을 받고 경고를 받고 부끄러움을 받고 퇴직처분을 받겠지요.

교회에서의 일도 하나님의 방법대로 해야 합니다. 사람의 방법대로 하면 하나님의 일이 무너집니다. 사람의 경영기술이나 사람의 관리능력은 하나님의 일을 세우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지혜와 하나님의 원리와 하나님의 열심이 하나님의 일을 세웁니다. 하나님의 도구로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았을 때 일어난 일들은 우리가 흔히 듣는 교회에서의 방종과 방탕함입니다. 교회가 참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는 일들입니다. 교회가 오히려 세상의 손가락질이 되고 하나님의 부끄러움이 되는 사건들입니다.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사람의 방법으로 하나님의 일을 했기 때문에 사람의 죄악과 그 결실이 나타납니다.

우리가 살펴본 전도, 예배, 성경공부, 봉사 중에서 어느 하나라도 하나님의 방법대로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방법대로 하는 하나님의 일이 무엇인지 살펴보려고 합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은 어떤 방식으로 전도하셨을까요? 예수님은 어떻게 사람들을 전도하셨을까요? 예수님이 사람을 전도하시는 방법은 대중전도보다도 개별전도 속에서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수가성 여인을 전도하시는 대목입니다. 이 말씀 속에서 우리들은 예수님께서 어떻게 한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시며 그 마음을 어떻게 변화시키셔서 그를 하나님의 성도로 만드시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네 가지 단계로 나타납니다. 이 네 가지 단계를 통한 전도가 하나님의 전도방법이며 우리가 따라야 할 하나님의 일을 행하는 원리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우리가 발견하는 첫 번째 전도단계는 ‘상황을 인식하는 것’입니다. 모든 전도에 있어서 상황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성경적인 전도는 항상 상황을 인식합니다. 자신이 전도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자신이 전도하는 것이 무엇인지, 자신이 전도하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이해하지 않고서 행하는 전도는 전도라기 보다는 홍보에 가깝습니다. 이것이 바로 세상의 방법이 하나님의 일로 흘러 들어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홍보를 하라고 한 것이 아니라 전도를 하라고 했습니다. 믿음과 복음의 도를 전하라고 했지 코카콜라가 콜라를 파는 것처럼 외판원이 물건을 파는 것처럼 약장수가 물약파는 것처럼 하라고는 하지 않으셨습니다. 세상의 방법이 일시적인 효과는 있을 수 있으나 그리 오래 가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올바른 하나님의 방법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로 인해서 하나님의 능력을 얻지 못합니다.

예수님이 어떻게 수가성 여인의 상황을 인식하셨을까요? 그 절묘한 방법을 우리는 7절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요4:7 7사마리아 여자 하나가 물을 길러 왔으매 예수께서 물을 좀 달라 하시니”

주님께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접근하시는 방법은 물을 좀 달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랬을 때 이 여인은 어찌하여 유대인으로서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고 합니까라고 되묻는 반응을 나타냈습니다. 그리고 그 반응을 통해서 예수님께서는 유대인이 사마리아인과 상종하지 않는다는 것과 이 여인이 유대인에 대해서 상당한 거리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보이셨습니다. 예수님의 중요한 첫 번째 전도단계가 ‘물’을 달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중요한 방법은 전도를 받는 사람의 상황이 어떠한 것인지를 알고자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 대상에 대한 관심 속에서 그 상황을 인식하고 알아차리는 것이 중요하지 대상에게 무슨 말을 하고 무슨 행동을 하며 어떠한 접근을 했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일전에 어떤 종교단체에 속해있는 한 사람이 이런 식의 ‘물 좀 달라’는 방법으로 접근해 온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물 한잔 만 주십시오’해서 문을 열게 하더니 아무리 물을 줘도 돌아가지는 않고 계속 꼬치꼬치 여러가지를 캐물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아주 혼이 났는데 제가 아는 어떤 분은 그런 식으로 ‘물 좀 달라’고 온 어떤 다른 종교를 전파하는 사람에게 계속 물을 주다가 아예 밥까지 주고 배부르게 해서 돌아가게 했었습니다. 이런 식의 접근방법은 ‘물’달라고 하는 사람에게 대한 혐오감과 경계심만 들게 하는 것이지 진정으로 예수님의 전도방법을 따르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은 궁극적으로 전도대상자에 대한 관심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에 대해서 더 알고자 하는 마음이 중요합니다. 그러니까 사마리아 여인이 왜 나에게 물을 달라고 하느냐고 물을 줄 수 없다고 했을 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요 4:10 10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줄 알았더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에게 물을 구했지만 정작 말씀하신 것은 그 여인이 생명의 물을 얻게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처음부터 생명의 물을 받지 않겠느냐고 하신 것이 아니라 그 여인에게 질문을 하시면서 나아가신 것이고 그 다음에 그 여인이 생명의 물을 받으면 참 좋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또한 이를 통해서 이 여인에게 생수의 존재와 하나님의 선물, 그리고 생수이자 하나님의 선물을 줄 수 있는 한 사람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첫 번째 전도단계인 ‘상황을 인식하는 것’이고 이 단계에서 예수님은 이 여인이 어떠한 사람인가를 알게 되셨습니다. 만약 이 여인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생수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자 하나님의 선물을 받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그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었을 것입니다. 또한 이 여인이 생수를 필요로 하지 않고 하나님의 선물도 별로 관심이 없는 사람이었다면 거기서 예수님과의 대화는 그쳤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아는 대로 이 여인은 자신이 대화를 나누는 사람에 대해서 관심을 가졌습니다. 자신에게 새로운 가능성과 새로운 기대를 가지게 하는 이 사람이 누굴까에 대해서 더 알고 싶어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과 이 여인 사이의 대화는 그 다음 단계로 계속 이어진 것입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전도할 때 그 사람에게 우리가 어떻게 보여질지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 사람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필요합니다. 그럴 때 그 사람에게 우리는 신뢰와 소망으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이 생수를 얻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드러나서 신뢰와 확신을 줄 때 그 사람은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두 번째 전도단계는 ‘불신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생수를 얻고자 하는 여인에게 즉시로 생수를 주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선물을 받고자 하는 그에게 예수님은 기다렸다는 듯이 선물을 주시지 않았습니다. 달라기만 하면 주실 것 같고 구하기만 하면 받을 것 같은데 왜 예수님은 그렇게 하시지 않았을까요? 우리의 기대와는 다른 예수님의 대답을 한번 보십시오.

“요4:14-16 14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15여자가 가로되 `주여, 이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 16가라사대 `가서 네 남편을 불러오라'”

네 남편을 불러오라는 말은 이 여인의 깊숙한 부분을 찌르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샘물을 말씀해 주셨을 때 그 샘물을 달라고 말하는 여인의 요청에 그냥 표면적으로 그냥 겉으로의 모습대로 ‘바로 여기 있다’라고 해주셨으면 얼마나 간단하고 명료했을까요? 하지만 주님은 ‘네 남편을 불러오라’고 하셨습니다. 남편이 여기서 이 샘물과 무슨 상관이 있길래 남편을 불러오라는 것일까요? 뭔가 잘못 말씀하신 것은 아닐까요?

기본적으로 우리가 이해해야 할 것은 주님께서는 그 여인을 사랑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진심으로 긍휼하게 여기셨습니다. 또한 그녀가 진정으로 자신을 믿고 구원을 받게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확실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주님의 목표는 영혼구원에 있기 때문에 모든 것이 가장 안전하고 확실하게 진행되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왜 지금까지 믿지 못하고 있었는가를 이해하고자 하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왜 그렇게 목마르고 갈급해 했는지를 알고자 하셨습니다. 왜 다시는 여기 물 길러 오지도 않게 되기를 바랬는지 무엇을 부끄러워하고 무엇을 숨기고 싶었는지를 알고자 하셨던 것입니다. 제 육시에 물을 길러 오는 여인은 정상이 아니었습니다. 한낮에 정오 뙤약볕에 물을 길러 오는 여인은 다른 사람의 시선을 피하고 싶었던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여기에는 과연 어떤 사연이 있었을까요? 그 모든 사연이 바로 ‘남편’과 관련되어 있었습니다.

이 여인의 불신의 이유, 목마름의 원인, 수치심의 근원이 무엇이었는지를 알기 전에 우리는 예수님이 바로 그 불신의 이유와 목마름의 원인과 수치심의 근원이 무엇이었는지를 알고자 하셨음을 주목해야 하겠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전도방법입니다. 두 번째 ‘불신을 이해하는 것’의 중요성을 주님은 분명히 보여주십니다. 불신을 이해할 때에 그의 마음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목마름의 원인을 알 때에 깊은 관계가 형성됩니다. 수치심의 근원이 무엇인지를 알 때에 허물없는 관계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 사마리아 여인의 마음 속 깊은 곳에 들어가고자 하셨습니다. 그녀를 이미 너무나 잘 알고 계심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괴롭고 수치스러우며 부끄러운 부분인지를 이해해 주셨습니다.
그녀를 면박주고 죄책감을 느끼게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녀를 아프게 하고 더 힘들게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 여인이 진심으로 주님을 믿게 하려는 것이었고 참된 구원을 얻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이 여인에게 이렇게 말씀해 주십니다.

“요4:17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남편이 없다 하는 말이 옳도다 18네가 남편 다섯이 있었으나 지금 있는 자는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도다”

주님은 여인의 말을 인정해 주셨습니다. 그것은 속아주시는 것이 아니고 사실을 알되 부끄럽게 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 원인을 이해함을 보여주셨습니다. 바로 그 남편 때문에 그녀는 목말랐고 수치스러웠습니다. 그 남편은 유대인이었고 사마리아인이었으며 앗수르인이었습니다. 어떤 남편에게서도 정착할 수 없었던 열악한 형편때문에 그녀는 하나님을 섬기지 못했고 죄책감 속에 살았으며 그래서 생수가 샘물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녀는 숨었던 가면 속에서 나왔습니다. 자신이 그저 멀쩡하지만 생수를 원하는 자가 아니고 심한 문제속에서 생수가 아니면 살 수 없는 자임을 깨달았습니다. 바로 그에게 하나님의 선물이 필요했고 예수님이 주시는 생명의 샘물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전도할 때 이 두 번째 ‘불신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동안 왜 믿지 않았을까요? 그동안 왜 신앙생활을 잘 하지 못했을까요? 이제 왜 신앙생활을 하려는 것일까요? 왜 생명수를 얻고자 하는 것일까요? 단지 우물에 오기 싫어서일까요? 단지 목마르고 싶지 않아서 일까요? 그 이면에 있는 진실은 무엇인가요?

이것을 알 때에 온전한 구원이 이루어집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생명수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 아닙니다. 없으면 안되는 필수적인 것입니다. 구원은 받아도 그만 안받아도 그만이 아닙니다. 받지 않으면 안되는 유일한 기회입니다. 지금까지의 목마름과 부족함 속에서 헤어나올 수 있는 절대적이고 결코 놓칠 수 없는 너무나도 소중한 순간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불신을 이해해야’ 합니다.

두 번째 단계는 마치 낭떠러지에 다다른 강물의 속도가 갑자기 빨라지는 것과 같습니다. 순식간에 지나가버리는 이 과정은 그 다음 단계인 세 번째 단계에 이르게 합니다. 예수님이 사용하신 세 번째 전도의 단계는 ‘방법을 적용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이제 본격적으로 그 생명샘물을 얻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그 갈급함와 목마름의 원인을 이해하자 이 여인이 당장에 묻는 것은 그 원인을 해결하는 방법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요 4:19,20 19여자가 가로되 `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이다 20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 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

예배를 드리는 것과 생수를 얻는 것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의아해 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이것은 사실 이 여인이 왜 목말랐으며 왜 우물에 오려고 하지 않았으며 왜 수치심을 가지고 있었는가를 생각해 보면 쉽게 납득할 수 있습니다. 이 여인에게 진정한 생수는 수치심 없이 예배를 드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하게 예배의 자리에 나아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스스럼없이 경배하며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 영적인 부분이 채워지게 되기를 바랬습니다. 그럴 때 예수님은 그렇게 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설명해 주십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 진실한 예배를 드릴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말해주시는 것이었습니다.

“요 4:23,24 23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24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주님이 예배드리는 방법에 대해서 설명해 주었을 때 그것은 이 여인에게 하나님을 만나는 방법이었고 하나님의 선물을 받는 방법이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생명샘물을 얻는 방법이었고 다시는 목마르지 않는 방법이었습니다. 그리고 여인이 이 모든 것을 알려주시는 분이 그리스도시라고 들었다는 것을 말하였을 때 주님은 나지막히 그러면서도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요 4:26 네게 말하는 내가 그로라 !”

이 여인이 주님을 믿고 더 많은 것을 알고자 예수님께 나아왔던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생명샘물을 얻게 해주실 분이 바로 자신의 눈앞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분과 이야기를 나누고 그분을 만나는 것이 바로 생수를 얻는 것이었습니다. 여인은 더 나아가 다른 사람들을 구주되시는 예수님께로 인도하기까지 하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세 번째 ‘은혜를 적용하는 것’입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우리는 예수님의 마지막 네 번째 단계에 들어섰습니다. 그것은 ‘신앙을 형성하는 것’이었습니다. 주님은 어떻게 신앙을 형성하게 하셨을까요? 예수님을 믿고 그분을 받아들인 여인이 어떻게 변화되게 하셨을까요?

“요4:39-41 39여자의 말이 그가 나의 행한 모든 것을 내게 말하였다 증거하므로 그 동리 중에 많은 사마리아인이 예수를 믿는지라 40사마리아인들이 예수께 와서 자기들과 함께 유하기를 청하니 거기서 이틀을 유하시매 41예수의 말씀을 인하여 믿는 자가 더욱 많아”

주님은 그들과 함께 유하셨습니다. 그곳은 처음에 잠시 들르는 곳에 불과했지만 그곳에서 이틀이나 유하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시고 가르치심으로 더욱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믿게 되었습니다. 신앙은 이제 그들의 삶이 되었습니다. 바로 그 사람들 가운데 사마리아 여인이 있었음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잠시 복음을 받아들이는 것이 신앙이 아니고 잠시 교회에 들르는 것이 신앙이 아니고 잠시 이야기를 나누다 돌아가는 것이 신앙이 아니고 함께 거하는 것이 신앙입니다. 계속 유하는 것이 신앙입니다. 하나님을 계속 믿고 계속 예배드리고 계속 교회생활을 하는 것이 신앙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이 네 번째 단계를 통해서 사마리아 여인과 더 많은 다른 사람들이 신앙을 온전히 형성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들에게 머물러 주심으로 주님은 그들의 신앙을 도우셨던 것입니다.

그 예수님은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주님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전도라는 교회의 일을 생각하면서 마지막 단계로 생각하는 것은 주님 안에 거하는 사람들을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와 함께 거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안에 우리가 거하는 것 처럼 그들도 하나님 안에 우리와 함께 거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이일에 동참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이일을 위한 교회의 일군이 되지 않으시겠습니까? 이 하나님의 사람들을 찾고 인도하며 함께 거하게 하는 일에 여러분이 사용되기를 원하지 않으십니까? 여러분이 사랑하는 그 누군가가 하나님 안에 여러분과 함께 거하게 되기를 바라지 않으십니까? 전도를 위한 교회의 일군이 되십시오. 여러분에 대한 주님의 경륜을 이루십시오. 여러분이 복음을 전하기로 계획된 사람들을 주께로 이끄십시오. 예수님의 방법에 따라 주님을 알려주십시오. 그래서 그들에게 필요한 생수를 얻게 하십시오. 그들은 바로 여러분을 통해 하나님의 놀라우신 생명샘물을 얻게 될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목차
1. 예수님은 우리에게 올바른 상담전도의 모범을 보여주신다.
2. 예수님은 수가성 여인의 상황을 인식하셨고 불신의 원인이 무엇인지 이해하셨다.
3. 수가성 여인은 자신의 불신을 깨닫고 자신에게 필요한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들였다.
4. 우리들은 예수님의 전도의 모범을 통해 주님을 진심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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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요 2; 1-10 삶의 필요를 공급해주시는 예수님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9-07-06 0 3740
1113 86봉사
43요13; 3-10 제자들의 발을 닦아 주시는 예수님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9-07-13 2 4114
1112 86봉사
43요19; 23-30 모든 섬김을 다 이루신 예수님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9-07-20 1 3653
1111 86봉사
43요 21;7-14 식사를 차려주시는 예수님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9-07-27 1 34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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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단5 그 해석을 알게 하는 자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2-05-05 16 4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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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 5, 주여 나를 떠나소서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05-12-05 17 5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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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단2 하나님께서 그 해석을 알려주심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2-05-05 21 44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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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13, 네 하는 일을 속히 하라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06-01-02 20 5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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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4,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06-01-02 22 5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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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22, 청함을 받은 자는 많다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06-01-02 23 6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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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 2, 허다한 천군의 찬송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06-01-02 17 5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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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11, 의인이 조심해야 할 것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07-04-21 15 5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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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요 1; 1-4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2-08-14 17 4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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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30,맥추절에 얻은 합환채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07-07-07 14 5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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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요 1; 4-8 빛을 깨닫게 하는 사람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2-08-18 17 4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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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행8; 29-31 영어의 시작은 문제를 인식함이다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2-12-23 17 4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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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행8; 35-40 영어의 실천은 가르치는 것이다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2-12-24 18 4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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