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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연합] 눅22;56-62 밖에 나가서 통곡함

눅22;56-62 밖에 나가서 통곡함

*  2008-03-16, 주일오후, 영접체험

베드로는 자신의 생각과 결심과는 다르게 예수님이 말씀하셨을 때에 당황했습니다. 왜 예수님은 내가 옥에도 죽는 데도 가기를 준비하였다고 하였을 때 내 말을 믿어주지 않았을까? 어쩌면 그렇게도 나의 진심을 믿어주지 않을까? 그는 아마 이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예수님이 오늘 밤 닭 울기 전에 네가 나를 세번 부인하리라고 하실 때에 그는 기겁했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 예수님의 수제자요 철저하게 주님을 따르는 내가 어떻게 주님을 모른다고 할 수 있겠는가? 뿐만 아니라 그것도 어떻게 세번씩이나 주님을 부인하겠는가? 도저히 있을 것 같지 않고 있어서도 안되는 일에 대해서 주님이 말씀하셨을 때 베드로는 놀라고 답답하고 절망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정말 그 일은 베드로에게 일어났고 정신없이 두려움에 사로잡혀 작고 연약한 비자앞에서 세 번씩이나 주님을 부인하고 나니 얼이 빠진 상태에서 멀리서 닭우는 소리를 들었을 때 그는 마치 망치로 세게 머리를 맞는듯한 충격에 빠졌습니다. 새벽에 주님이 하신 말씀이 생각났고 그대로 모든 일이 일어난 것에 대해서 커다란 충격을 받았던 것입니다. 아무 생각없이 세번씩이나 주님을 부인할 때는 몰랐지만 이 모든 일이 주님의 말씀하신 그대로 이루어진 것을 깨달았을 때 그는 어찌할 바를 모르게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대로 나아가 심히 통곡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는 왜 통곡했을까요? 그의 눈물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일까요? 자신의 신념을 지키지 못했다는 자책감때문에? 혹은 자신이 이정도도 안되는가를 깨달은 뒤의 절망감때문에? 아니면 예수님 앞에서 부끄러운 모습을 보였다는 수치심때문에? 도대체 그가 눈물을 흘린 이유는 무엇일까요?

 혹자는 왜 쓸데없는 것에 관심을 갖느냐고 말할지 모르겠습니다. 베드로가 무엇때문에 눈물을 흘리는지 그것이 뭐가 중요하냐고 말할지 모르겠습니다. 그것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어떻게 하면 베드로가 회복될 수 있느냐가 아니냐고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의 눈물의 이유를 아는 것이 더욱 중요합니다. 왜 통곡을 하는 지를 꼭 이해해야 합니다. 그 속에 정말 풀고자 하는 문제가 있고 그에 대한 답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때로 베드로와 같은 경험을 합니다. 그래서 눈물을 흘리기도 합니다. 통곡을 할 때도 있습니다. 주님을 세 번이나 배반하고 그것은 돌이켜보면 아무 것도 아닌 것에 너무나 쉽게 주님을 부인해 버렸습니다. 그리고 그런 일을 하고 나서야 비로소 예수님의 말씀이 기억납니다. 우리가 얼마나 죄인인것과 자신의 힘으로는 도저히 설수 없는 자임을 깨닫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나 필요하다는 것을 다시금 절감합니다. 하지만 그 뿐입니다. 그리고 나서 동일한 환경에서 동일한 상황에 부딪칠 때 또 주님을 세번 부인합니다. 그리고 통곡하는 악순환은 계속 반복되고 있습니다. 부인하고 통곡하고, 부인하고 통곡하고….후회하고 새로 결심하고, 후회하고 새로 결심하고…  도대체 우리의 죄의 반복은 왜 자꾸 일어나는 것일까요?

그 문제에 대한 답이 바로 베드로의 통곡 속에 있습니다. 그래서 그 이유를 잘 들여다 봐야 하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통곡하고 있는 이유는 그가 주님의 말씀을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 말씀이 기억나기 전에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예수님을 극구 부인하고 반대하며 저주하였으나 그 말씀이 기억났을 때에 그는 자신의 추함과 더러움과 배반함을 깨달았고 수치심에 모멸감에 스스로에 대한 절망감에 죄책감에 휩싸여 밖으로 나아가 통곡하였던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기 전에는 우리는 대담합니다. 두려워하는 것이 없습니다. 죄책감도 들지 않습니다. 무엇하나 꺼리끼는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당당하게 죄를 짓습니다. 그것이 옳은 것인지 그릇된 것인지에 대한 개념도 없고 알고 싶지도 않기 때문에 주님을 부인하고 그것이 세번이든 삼십번이든 개의치 않고 그일을 행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점차 타락해지고 점차 세속적이 되며 점차 비신앙적으로 물들어 갑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본성에 대한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하고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개의치 않을 때에 우리는 더욱 죄악속에 물들어 갑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에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게 되었을 때에 우리는 잠시 주춤합니다. 그때 눈물을 흘리기도 합니다. 통곡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것이 몰입해가는 죄악과 익숙해져가는 모든 악행에 대한 브레이크가 됩니다. 눈물과 통곡으로 자신의 행한 일을 돌이켜보며 스스로가 무슨 짓을 했는지 의식했을 때에 우리는 잠시 정적에 빠집니다. 그 순간이 어느 때이든지 그 사건의 크기과 악행의 수준이 어떠하든지에 상관없이 바로 그 때 만큼은 우리는 가만히 제자리에 서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그 다음부터입니다. 그렇게 통곡과 눈물을 흘리고 난 다음에 그 사람은 어디로 행할까요? 다시 이전에 가던 방향으로 계속 나아갈까요? 아니면 가던 방향을 돌이켜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갈까요? 바로 여기에 그 통곡과 눈물의 진실성이 있는 것입니다.
누군가 자신의 죄악을 깨닫고 통곡하며 눈물을 흘릴 때에 그 눈물은 정말 진실한 것인지 아니면 가식적인 것인지를 어떻게 구별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그 사람이 그렇게 눈물을 흘린 다음에 다시 또 이전에 했던 일을 반복할 지 아니면 정말 새로운 삶을 살아갈지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여기에서 베드로와 우리의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베드로의 통곡은 단순한 통곡이 아니었고 자기 자신에 대한 자괴심이나 수치심이나 절망감이 아니었고 하나님께 대한 부끄러움이었으며 하나님께 대한 죄책감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돌이켰고 나중에 주님의 말씀대로 형제들을 굳게 하였으며 여전히 아니 이전보다 더 굳건한 수제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우리들이 반복해서 죄를 짓고 반복해서 회개하며 반복해서 또 그 죄를 다시 행하고 있다면 여기에서 베드로의 눈물과 우리의 눈물은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통곡의 진실성은 여기에 있습니다. 정말 그렇게 눈물을 흘린 다음에 돌이키느냐 아니냐에 그 눈물의 진실함이 있는 것입니다. 돌이키지 않는다면 그 눈물은 가식이며 정말 돌이킨다면 그 눈물은 진실이 되는 것입니다.

이제 밖에 나가서 통곡하는 베드로를 보며 우리의 모습을 돌아봅니다. 우리의 통곡은 과연 진실한 것이었나? 정말 우리는 돌이키기 위해서 통곡하는 것인가, 아니면 스트레스 해소와 감정의 정화를 위해서 통곡하는 것인가? 만약 우리가 정말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해 통곡하는 것이면 반드시 돌이킬 수 있겠고 그럴 때에 우리의 눈물은 우리의 후회는 우리의 죄책감은 의미가 있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더 남은 의문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 하나님의 말씀은 진실한 회개로 나아가게 하는 반면 어떤 사람에게 하나님의 말씀은 그저 죄악에 대한 단순한 정지일 뿐인 이유는 무엇일까요? 왜 말씀은 동일하지만 어떤 사람은 돌이키고 어떤 사람은 잠시 머물러 섰다가 다시 계속해서 죄로 나아가게 되는 것일까요? 그 결정적인 차이가 베드로의 모습 속에서 나타납니다. 베드로가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하게 된 계기가 무엇이었는가가 그 열쇠입니다. 베드로는 어떻게 예수님의 말씀을 생각하게 되었을까요? 61절을 보십시오.
“주께서 돌이켜 베드로를 보시니”
오직 누가복음에만 나와있는 구절입니다. 또한 딱 한마디로만 간단하게 설명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의식하기 어렵고 찾기도 어렵습니다. 하지만 이 말씀은 너무너무나 중요한 대목입니다. 주님은 돌이켜서 베드로를 보셨고 그 순간 베드로와 예수님의 시선이 마주쳤던 것입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베드로는 주님을 만났습니다.

이렇게 주님을 만나는 사람들은 도저히 더이상 자신의 가던 길을 갈 수가 없게 됩니다. 그 신비한 능력이 그를 붙들어 돌이키게 하십니다. 주님을 만났느냐는 것이 우리의 삶을 돌이키게 하는 데 가장 결정적인 이유이고 그렇게 주님을 만났을 때에 우리의 눈물은 우리의 통곡은 의미를 갖게 되고 그로 인해 돌이키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주님을 만났습니까? 그 주님의 시선을 바라보고 있습니까? 베드로가 보았던 예수님의 눈길을 여러분은 마주해서 바라보고 있습니까? 사람들이 희롱하고  때리며 주먹으로 치고 가시 면류관을 씌울 때에도  여전히 자신의 사랑하는 제자를 바라보시는 그 시선을 여러분은 주목하여 바라보고 있습니까? 여러분을 너무 너무나 사랑하셔서 간절히 돌이키기를 바라시는 그 시선을 바라보고 있습니까?

오늘 우리의 통곡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하기를 원합니다. 고난주간에 우리의 고통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의식하시기를 원합니다. 단지 이전에 행하고 있는 악한 일들을 잠시 중단하는 주간인지 아니면 이 주간을 통해 새롭게 거듭나서 새로운 삶의 길을 가게 되는 것인지 결정하시기를 바랍니다. 부디 잠시 잠깐의 중단이 아니라 완전한 돌이킴이기를 바랍니다. 주님의 그 시선을 만나고 나서는 도저히 예전에 가던 길로는 예전에 행하던 삶으로는 살아갈 수 없음을 깨달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돌이켜 진실로 다른 형제들을 굳게하고 우리에게 주신 이 놀라운 사랑을 받아들이게 되는 자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세워 놓으신 그 놀라운 계획과 영광이 바로 주님의 고난을 생각하며 돌이킴을 통해서 우리의 계속되는 삶에 넘치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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