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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은혜] 40마 17; 3-8 하나님이 그 아들을 사랑하시고 기뻐하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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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17; 3-8 하나님이 그 아들을 사랑하시고 기뻐하심_1

 

 2015.5.3..주일오전.

 

*개요:    행사설교, 은혜,

[]17:3   그 때에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와 더불어 말하는 것이 그들에게 보이거늘

[]17:4   베드로가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만일 주께서 원하시면 내가 여기서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님을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리이다

[]17:5   말할 때에 홀연히 빛난 구름이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시는지라

[]17:6   제자들이 듣고 엎드려 심히 두려워하니

[]17:7   예수께서 나아와 그들에게 손을 대시며 이르시되 일어나라 두려워하지 말라 하시니

[]17:8   제자들이 눈을 들고 보매 오직 예수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아니하더라

 

 

어린이날이 다가왔습니다. 어린이날을 통해 새삼 자녀의 소중함을 깨닫습니다. 자녀가 주었던 즐거움이 크기에 부모님은 자녀로 인해서 기뻐합니다. 자녀는 부모를 기쁘게 하고 부모는 자녀를 기뻐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기뻐함은 단지 어린이날이라서만이 아닙니다. 자녀들이 어린이일 때만 해당되는 것도 아닙니다. 이 기쁨은 근본적으로 부모와 자녀의 관계가 있기 때문에 생겨납니다. 이 세상에서 영원히 혼자일 뻔 하였던 한 개인이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서 부부가 됩니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자녀가 생깁니다. 그 자녀들로 인해서 부부는 부모가 됩니다. 이렇게 형성된 가족관계는 외롭고 적적하며 소외될 것 같은 모든 시간 속에서 기쁨을 알게 하고 즐거움을 알게 하고 만족감을 누리게 합니다. 자녀들이 기쁠 수 있는 것은 부모가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부모가 기뻐하는 이유는 자녀가 있기 때문입니다. 부모가 없는 자녀, 자녀가 없는 부모는 얼마나 슬프겠습니까? 때로는 자녀가 부담되고 힘들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결국에는 자녀의 존재로 인해서 기쁨과 즐거움을 누리게 됩니다.

어떤 경우에 일시적으로 각자의 일로 바쁘거나 이사나 유학이나 직장문제 등의 피치 못할 사정으로 그러한 경험을 오랫동안 하지 못하다가도 다시 만나게 될 때 그 기쁨이 얼마나 큰 가를 생각해 보면 가족이란 좋은 것임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아무리 외롭고 힘들어도 가족이 있으면 견딜 수 있습니다. 가족끼리 모여있다 보면 전혀 심심하거나 외롭지 않습니다. 부모와 자녀사이에서는 이루 설명할 수 없는 깊은 관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간이 이렇게 깊은 마음의 관계를 누릴 수 있다면 이 세상을 지으신 하나님은 어떠실까요? 그분도 홀로 계실 때에는 외롭거나 적적하지 않으실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도 가족이 있습니다. 하나님에게는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그분이 바로 예수님입니다. 그 예수님에 대해서 하나님은 분명히 자신의 사랑하시는 아들이라고 하셨습니다. 그 내용이 오늘 말씀에 나옵니다.

“[]17:5 말할 때에 홀연히 빛난 구름이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시는지라

하나님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나의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고 하셨습니다. 그만큼 하나님은 예수님을 사랑하시고 기뻐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사랑하시고 기뻐하신다는 것을 상상해 보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이 사랑하고 기뻐하는 대상을 생각해 보면 됩니다. 하나님이 그 아들을 사랑하시고 기뻐하시는 방식이 우리와 다르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그 아들을 사랑한다고 말하시면서 고통을 주고 기뻐한다고 하시면서 괴로움을 주시는 분이 아닙니다. 진심으로 하나님은 그 아들을 사랑하십니다. 그것은 우리가 우리 자녀를 사랑하는 것과 동일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닮았는가 생각한다면 그건 큰 착각입니다. 사실은 우리 속에 있는 그 자녀를 사랑하는 마음이 바로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사랑하시는 마음에서부터 왔습니다. 그래서 그러한 관계가 그분이 지으신 우리 인간에게서도 나타난 것입니다.

우리는 얼마나 자녀를 사랑하고 있습니까? 자녀가 아플 때 함께 아파하고 자녀가 기뻐할 때 함께 기뻐하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마음을 주셔서 자녀의 모습으로 인해서 즐거워하는 마음을 주셨고 자녀의 괴로움에 대해서 함께 안타까워하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진심으로 자녀를 사랑하면서 문제라도 생기면 온힘을 다해서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입니다.

 

로렌조 오일이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이는 실제 있었던 인물을 모델로 해서 만들어진 영화였습니다. 세계은행의 간부였던 오도네와 그 아내 미카엘라 사이에는 다섯 살난 아들 로렌조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부터 이 아들에게 이상한 증상이 나타납니다. 감정적으로 과민반응을 보이며 이상한 행동을 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여러 병원을 다니면서 정밀검사를 받은 결과 병명은 ALD라는 희귀유전병에 걸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병은 몸 안의 긴사슬 지방산이 분해되지 않고 뇌에 들어가 신경세포를 파괴하는 질환이었습니다. 처음 증세로 감정기복이나 위축, 과잉행동이 나타나고 6개월 후에는 시력과 청력을 잃게 되고 2년내에 식물인간이 되어서 죽게된다는 끔찍한 병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진단결과를 접하게 되었을 때 부모는 포기하거나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치료방법이 없다는 의사의 말에도 낙심하지 않고 직접 치료방법을 찾아 백방으로 나섰습니다. 그리고 부모가 병의 원인으로 포화지방산이 이러한 문제를 만들어낸다는 것을 알아낸 다음에 올리브유와 평지씨기름이 이를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하지만 그대로 사용하면 독성물질이 있어서 생명에 위협을 줄 수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영국의 생화학자 수데비 박사를 만나서 9개월간의 연구 끝에 올리브유와 평지씨 기름에서 추출한 혼합물을 만들게 되었고 마침내 이 혼합물을 아들에게 먹였을 때 아들의 포화지방산 수치가 0으로 떨어지고 병을 극복할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이 병에 걸리면 2년내에 죽는다고 했지만 이 아들은 부모의 헌신적인 노력끝에 치료법을 찾았고 오래 살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로렌조가 먹었던 그 혼합물이 바로 로렌조오일이었고 이는 다른 ALD에 걸린 환자들에게 제공되는 놀라운 치료제가 되었습니다.

로렌조의 부모님만큼은 아니더라도 우리도 어린 자녀들을 위해서 여러가지 수고를 아끼기 않습니다. 다치면 병원에 데리고 가서 치료를 받게 하는 것은 물론이고 더욱 건강한 삶을 살게 하기 위해서 더욱 지혜롭고 사랑받는 아이가 되게 하기 위해서 밤낮으로 수고하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자녀를 사랑하고 그 자녀를 기뻐하기 때문입니다. 그 사랑함과 기뻐함 속에서 사랑을 받는 자녀가 삶의 기쁨과 소망을 알게 되고 또한 그 사랑을 주는 부모가 삶의 기쁨과 소망을 알게 됩니다. 이러한 관계 속에서 우리는 살아있고 존재한다는 것의 가치와 의미를 알게 됩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사랑하시고 기뻐하실 때에 그 관계는 너무나 친밀하며 그로 인해서 가장 충만함을 느끼는 상태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예수님의 사랑의 관계는 모든 사랑의 완성된 형태였습니다. 단지 하나님 편에서만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 자신도 하나님의 사랑하심과 기뻐하심을 느끼면서 하나님을 사랑하시며 또한 기뻐하셨습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2장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12:28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옵소서 하시니 이에 하늘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되 내가 이미 영광스럽게 하였고 또다시 영광스럽게 하리라 하시니

아들이신 예수님은 아버지이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였고 그럴 때 아버지 하나님은 아들 예수님을 영광스럽게 하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하나님을 사랑하시면서 함께 거하셨고 하나님도 역시 예수님을 사랑하시면서 함께 거하셨습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은 아버지로서 그리고 아들로서 가장 완전한 부모와 자녀의 사랑의 관계를 맺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의지적인 사랑이었습니다.

 

부모 자녀의 사랑의 관계에는 지식적인 관계와 감정적인 관계, 그리고 의지적인 관계가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사랑은 이 세 가지 수준에서 이루어집니다. 가장 기본적인 사랑의 의미는 지식적인 관계입니다. 사랑한다는 것을 아는 정도라면 지식에 불과합니다. 부모 자녀의 관계도 자녀가 부모가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만 한다면 그것은 가장 기본적인 수준일 뿐입니다.  자녀가 부모를 그정도로만 생각한다면 부모도 역시 자녀를 그정도로만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했다는 것을 알아만 다오라고 했기 때문에 네 알고는 있어요라고 대답하게 됩니다.

그보다 조금 더 나아가는 것이 감정적인 관계입니다. 부모가 자녀를 정말 마음으로 사랑한다고 한다면 역시 동일한 감정을 자녀도 느낍니다. 그래서 부모가 자녀에게 나는 너희를 참 사랑한다라고 말할 수 있고 그러면 자녀도 저도 엄마를 참 사랑해요’ ‘아빠를 참 사랑해요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더욱 나가는 것은 의지적인 관계입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내가 널 정말 사랑하기 때문에 이렇게 하마라고 할 때 자녀도 이렇게 대답할 수 있습니다. ‘저도 부모님을 정말 사랑하기 때문에 이렇게 할께요이것은 가장 친밀하고 가장 온전한 수준의 관계입니다. 그런 관계속에서 부모와 자녀는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부모가 했던 좋은 일을 자녀가 따르게 되고 또한 자녀가 했던 좋은 일을 부모가 따라가게 되는 것입니다. 단지 감정적으로 사랑해서가 아니라 그 방향이 정말 올바르고 정직하고 의롭기 때문에 더욱 동일한 방향으로 의지적으로 나아가면서 사랑이 더욱 커지게 됩니다.

 

자녀를 사랑하는데 그 자녀가 잘못된 길을 가는 것을 그냥 내버려두고 잘못된 행동을 사랑으로 덮어주려고 한다면 그 사랑은 올바른 사랑은 아닙니다. 그 사랑이 정말 의지적으로 나타나는 온전한 사랑이 되기 위해서는 결과도 중요합니다. 그 결과가 의롭고 정직하고 선해야 합니다. 자녀의 악을 따라가는 부모의 사랑이란 감정적일 뿐입니다. 오히려 자녀의 악을 막아서고 올바른 길로 가게 할 때에 부모의 사랑이 진정한 의지의 사랑입니다. 이에 더하여서 같은 선한 방향과 올바른 방향을 부모와 자녀가 함께 이루어나간다면 그것은 얼마나 귀한 사랑이 되겠습니까? 우리가 그러한 온전한 사랑을 바라볼 때 하나님과 예수님은 바로 그러한 온전한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의 온전한 사랑 속에서 가장 아름답고 순결하며 거룩한 일을 이루셨습니다. 요한복음 17장에서 예수님은 하나님께 바로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17:21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17:22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예수님은 단지 하나님을 감정적으로 사랑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의지적으로 사랑하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하나님께 간구한 것은 이 세상의 사람들이 다 하나가 되어서 하나님 아버지를 믿고 예수님을 믿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예수님을 믿게 되어서 예수님의 영광을 보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구원을 얻어서 하나님 안으로 들어오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바로 그것을 하나님도 원하시는 일이었으니 하나님은 얼마나 그 간구를 기뻐하셨겠습니까? 예수님이 원하시는 이 구원의 일이 사실 하나님도 원하시는 일이었다는 것은 다음에 이어지는 예수님의 말씀 속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17:23           곧 내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그들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

[]17:24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 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그들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다고 하셨습니다. 또한 나를 사랑하심 같이 그들도 사랑하신 것을 알게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나님과의 가장 친밀하고 온전한 사랑의 관계 속에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예수님 자신도 원하시면서 바로 우리들을 구원하기를 간구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구원을 받아서 예수님과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이 온전한 사랑의 관계 속에서 마침내 하나님은 예수님의 소원을 이루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예수님을 믿는 자들을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자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하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진실로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과 하나님이 한 마음이 되셔서 두 분이 가장 기뻐하시는 일을 우리들 가운데 온전히 이루셨습니다.

 

그 온전한 사랑을 바라보면서 우리들의 사랑을 생각해 봅니다. 우리들의 자녀에 대한 사랑은 혹시 이러한 온전한 사랑에 미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요? 우리는 정말 의지적인 사랑을 하고 있습니까? 우리의 자녀들에 대해서 가장 올바르고 가장 의롭고 가장 정직하고 가장 선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온전한 사랑을 해야 겠습니다. 너무 예쁘고 너무 사랑스럽고 너무 안쓰럽고 너무 해달라는 대로 다 해주고 싶어서 모든 것을 해주는 사랑을 하고 있더라도 그것이 정말 올바르고 선하고 아름답고 의로운 것이 아니라면 그런 사랑은 단지 감정적인 사랑일 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어떻게 사랑하시고 어떻게 기뻐하셨는지를 생각해 본다면 우리의 사랑을 더욱 의지적으로 온전하게 만들어서 우리의 자녀가 하나님의 가장 사랑받고 기뻐하시는 자녀가 되도록 하나님의 사랑을 따라가야 하겠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사랑받고 기뻐하시는 아들로서 하나님의 가장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기를 간절히 원하셨음을 생각하며 하나님의 구원받은 자녀로서 더욱 예수님의 사랑을 본받아 우리도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며 그분을 기뻐하면서 살아야 하겠습니다.

 

변화산에서 일어났던 하늘로부터 들리던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의 음성에 대해서 제자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그들의 반응은 진정한 예수님과 하나님의 사랑의 관계를 알지 못하던 어리석은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들은 단지 구름속에서 들리던 소리로 인해서 두려워하였습니다.

“[]17:6 제자들이 듣고 엎드려 심히 두려워하니

[]17:7   예수께서 나아와 그들에게 손을 대시며 이르시되 일어나라 두려워하지 말라 하시니

[]17:8   제자들이 눈을 들고 보매 오직 예수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아니하더라

그들은 홀연히 빛난 구름속에서 들리던 음성 그 자체 때문에 두려워하며 놀랐지만 사실 그것은 하나님과 예수님의 놀라운 사랑의 관계였습니다. 변화산 자체가 모세와 엘리야와 함께 십자가에서 고난 받으실 것을 준비하시던 예수님의 의지적 사랑에 대해서 하나님의 의지적 사랑하심이 나타나는 놀라운 순간이었던 것입니다. 나중에 베드로는 그것이 두려운 일이 아니라 너무나 영광스러운 사건이었음을 베드로후서1장에서 고백하였습니다.

“[벧후]1:17          지극히 큰 영광 중에서 이러한 소리가 그에게 나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실 때에 그가 하나님 아버지께 존귀와 영광을 받으셨느니라

[벧후]1:18            이 소리는 우리가 그와 함께 거룩한 산에 있을 때에 하늘로부터 난 것을 들은 것이라

십자가의 고난을 준비하시던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로서 얼마나 사랑하시는 자요 기뻐하시는 자였는가를 생각하며 우리의 삶속에서 하나님이 예수님과 맺으셨던 그 온전한 사랑의 관계를 이 세상에서 우리가 자녀들과 부모님과 누리게 되기를 소원합니다. 단지 공부만 잘하고 건강하기만 하고 말만 잘듣는 자녀로 기뻐하는 것으로 그치지 말고 하나님을 잘 섬기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하나님을 향해 함께 나아가는 자녀가 되도록 사랑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럴 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부모와 자녀의 온전한 사랑 속에서 여러분의 가정이 더욱 하나님 기뻐하시는 방향으로 하나님 안에서 함께 나아가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자녀가 하나님 안에 굳게 서며 우리의 모든 부모가 하나님 안으로 올바르게 나아가는 사랑의 가정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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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6 55동행
42눅 2; 25-35 성화계획으로의 동행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12-29 20 6692
815 62희락
23사 12; 1-6 생각의 변화로 드리는 세 가지 감사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11-17 20 7433
814 61사랑
62요일4; 7-10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다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01-05 17 6726
813 61사랑
62요일4; 10-17 자신의 사랑에서 하나님 사랑으로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01-12 15 6738
812 65긍휼
45롬11;29-36 자녀를 통해 긍휼을 알고 베풀게 하심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05-04 18 7309
811 65긍휼
42눅7;11-16 부모를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05-11 14 6697
810 65긍휼
49엡4;21-32 가르침을 받은 대로의 긍휼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05-19 9 6733
809 65긍휼
59약2;8-13 긍휼을 행해야 하는 이유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05-25 23 6620
808 66양선
45롬15;7-14 그리스도인의 양선의 모습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06-01 14 6939
807 66양선
1창4;3-7 감정을 변화시키는 양선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06-09 15 6863
806 66양선
41막 9;20-24 감정의 괴로움에서 건지시는 주님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06-16 12 7342
805 66양선
43요 5;2-16 몸의 문제속에서 행할 수 있는 선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06-23 14 7233
804 66양선
43요 9;4-12 나를 보내신 이의 일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06-29 16 7043
803 71충성
58히 3;1-6 하나님의 집에 충성하는 자들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07-07 17 8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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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왕상 17;8-14 나의 유익보다 앞선 하나님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07-13 15 7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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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삼하 7;4-9 의무가 아닌 사랑으로 섬김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07-27 10 67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