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4서신서} <1적용> [1영역]-[8사역]
1. 예수님은 우리가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이 우리의 구주이심을 시인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시인한다 혹은 시인하지 않는다 라는 것은 그 사람에게 영광 혹은 수치가 됩니다.
-예수님에 대해서도 우리가 주님을 시인하고 혹은 시인하지 않는 것은 바로 우리 자신에게 영광이 되거나 혹은 수치가 됩니다.
“내가 또한 너희에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인자도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
-얼마전 오락 프로그램에 홍서범씨와 조형기씨가 나와서 하는 말이 홍서범씨가 조형기씨에게 자신들이 친구라는 사실을 말하지 말라고 했다는 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홍서범씨 말은 조형기씨에게 폐가 될 거라는 이유였습니다.
-하지만 조형기씨는 홍서범씨가 그렇게 자신을 외인으로 취급하는 것은 아무래도 자신도다 더 나이가 많이 들어보이기 때문이었다고 불평하였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시인할 때 우리 자신이 수치스러워 질 수 있을 것입니다. 교회다닌다고 하면 아무래도 행동과 언행에서 더 부끄러울 것 같기 때문입니다.
-또한 예수님을 부인한다면 오히려 더 당당하고 떳떳하고 자연스러워질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과 연계되어 있다는 부담감이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로 우리가 예수님을 부인할 때 우리는 예수님이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시는가를 기억해야 합니다.
2. 왜냐하면 우리가 시인하지 않으면 부인하는 것이고 그 부인함으로 인해 동일하게 부인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부인할 때 주님도 우리를 부인하십니다.
“9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는 자는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서 부인함을 받으리라”
-수치스럽지 않고 부담스럽지 않고 자유롭고 홀가분하게 되기를 원해서 예수님을 부인했을 때 우리는 결국 예수님에게서도 부인함을 받는 자들이 되고 맙니다.
5남매를 모두 대학까지 졸업시키고 결혼시키고 이제는 한시름 놓은 어느 아버지가 건강이 안좋아져 하루는 자식, 며느리, 사위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네 애비가 너희들 키우고 사업하느라 빚을 좀 졌다. 빚에 빚이 늘어나 지금은 한 7억정도 된다. 내가 건강이 안좋고 이제는 벌 능력도 없으니 너희들이 얼마씩 갚아 줘야 곘다. 여기 이 종이에 얼마씩 갚겠다는 금액을 좀 적어라"
아버지 재산이 좀 있는 줄 알았던 자식들은 서로 얼굴만 멀뚱히 쳐다보고는 아무 말이 없었습니다. 그중 그리 잘 살지 못하는 셋째 아들이 종이에 '5천만원'이라고 적었습니다. 그러자 마지못해 나머지 자식들이 종이에 '1천만원', '1천 5백만원' '2천만원' '2천5백만원'을 적었습니다.
수개월 뒤 다시 아버지가 이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내가 죽고나면 너희들끼리 얼마되지도 않은 유산으로 싸우고 반목할까봐 재산을 정리했다. 지난번에 너희가 적운 액수의 5배를 주겠다. 이것으로 너희들에게 주는 재산상속은 끝이다"
-우리가 주님을 시인하면 시인한대로 주님께 가까이 나아가게 되지만 우리가 주님을 부인하면 부인한대로 주님으로부터 더욱 멀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은 우리가 예수님을 시인할 수 있는 사람들이나 환경 속으로 우리를 데리고 가십니다.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하면 주님을 시인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요? 걱정마십시오. 하나님이 우리를 시인할 수 있는 곳으로 인도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11 사람이 너희를 회당과 정사 잡은 이와 권세 있는 이 앞에 끌고 가거든 어떻게 무엇으로 대답하며 무엇으로 말할 것을 염려치 말라”
-여러분은 어떤 사람 앞에 혹은 많은 사람들 앞에 혹은 권세 있는 자 앞에 초대되거나 인도함을 받아 가게 될 것입니다. 살다보면 그런 날이 반드시 있습니다.
-회식 자리에서, 혹은 식사 자리에서, 혹은 만남의 시간 속에서 우리를 주님은 그곳으로 인도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우리가 주님을 부인하면 어떻게 될까요? 아무도 우리가 주님을 안다는 것을 모를 것입니다.
-주님을 부인한다는 것은 주님과의 관계를 모르게 한다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어떻게 주님을 부인했는지를 보십시오. 누가복음 22장 56절부터 59절입니다.
“56 한 비자가 베드로의 불빛을 향하여 앉은 것을 보고 주목하여 가로되 이 사람도 그와 함께 있었느니라 하니
57 베드로가 부인하여 가로되 이 여자여 내가 저를 알지 못하노라 하더라
59 한 시쯤 있다가 또 한 사람이 장담하여 가로되 이는 갈릴리 사람이니 참으로 그와 함께 있었느니라
60 베드로가 가로되 이 사람아 나는 너 하는 말을 알지 못하노라고 방금 말할 때에 닭이 곧 울더라”
-이것이 바로 주를 부인하는 것이고 주님과의 관계를 숨기는 것입니다. 우리도 주님과의 관계를 나타내지 않으면 주님과의 관계를 부인하는 사람이 됩니다.
4. 삶속에서 우리는 예수님을 시인함으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나타내시는 복음을 증거하는 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저도 처음에 대학에서 주님을 부인하며 살았습니다. 한학기가 되어가도 제가 교회를 다닌다는 것을 친구들이 알지 못했습니다. 친구들은 나중에 내가 교회다닌다는 것을 알고 적잖이 놀랐습니다.
-그 이유는 제가 교회이야기를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전도를 하지 않으니까 당연히 교회이야기도 하지 않았고 주님을 부인하며 살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주님을 부인하며 살고 있습니까? 아니면 시인하며 살고 있습니까? 주변에서 주님을 시인하십시오. 여러분을 아는 사람들이 여러분이 교회에 다니는 사람임을 알게 하십시오. 그래서 전도하십시오.
-이번 한주 주님을 부인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주님을 시인하는 사람들이 되게 해달라고 함께 기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