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결심] 50빌 2; 13-14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는 하나님Loading the player... Loading the player... [pdf보기] (비디오는 18분까지만 녹화되었습니다)
50빌 2;13-18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는 하나님_1
2015.1.3.주.주일오전.
*개요: 신년의 목표, 6서신서, 1적용, 6결심, [빌]2:13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빌]2:14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
새해가되었습니다. 2016년도에는 이전 해와는 다른 더욱 큰 소망과 계획을 갖게 됩니다. 지난 2015년도에도 소망과 계획을 가졌었지만 2016년에 비할 바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2015년은 과거가 되었고 2016년은 현재이자 미래이기 때문입니다. 항상 미래에 더 큰 소망과 계획을 갖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렇지않다면 우리의 현재와 미래는 어둡고 불안한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더 큰 소망과계획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면서 더욱 발전되고 성숙하게 되어 있습니다.우리는 항상 새로워져야 합니다. 그러면서 모든 낡고 오래된 것으로부터 떨쳐 일어서게 됩니다.
이를위해서 우리가 새로워지고자 하기 위해서는 근원이 필요합니다. 그 근원이 없이는 새로워질 수 없습니다. 그 변화되고자 하는 마음의 근원을 무엇으로 삼을 수 있을까요? 무엇이변화의 근원이자 원동력이 되는가는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 새롭게 되고자 하는 마음의 근원이 금방 소진되는것이라면 그것은 얼른 중단되어버릴 것입니다. 또한 그것이 악한 마음이라면 결국에는 악하게 변해버릴 것입니다. 하지만 그 근원이 오래가고 흔들림없는 것이라면 그리고 선하고 올바른 것이라면 그로 인한 결과도 역시 더 보람되고가치있는 것이 될 것입니다. 오늘말씀은 우리의 근원이 바로 하나님이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을 우리 인생의 분명한 근원으로삼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우리의 힘의 근원이 되시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드셨기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없이 살아가도록 만드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 살아가도록 만드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힘입어 살아갈 때 가장 잘 살 수 있게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원리를 13절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빌]2:13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사도바울은 빌립보서를 통해서 우리에게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분은 우리 안에서 행하시는분이십니다. 이는 우리 안에서 역사하신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그 역사하심은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우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는 일입니다. 영어로는 다음과같습니다. " it is God who works in you to will and to actaccording to his good purpose." 이말이 무슨 뜻인가를 잠시 생각해 봅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멀어져 있는 분이 아니고 우리 안에서 행하시는분이십니다. 그런데 우리 안에서 하나님이 행하시고 역사하시는 원리는 강제나 압박이나 명령이 아니라 우리에게소원을 주시고 그 소원으로 행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소원을 따라서 행하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기쁘신 뜻을 이룬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우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신다고 말하고있습니다.
이를설명하기 위해서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사람이 말을 타는 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걸어서 가면 많은 시간이 걸리는 거리를 말을 타고 가면 빨리 갈 수 있습니다.사람이 들고 가면 감당하지 못할 무게를 말이 끌고 가면 쉽게 운반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이렇게 말을 이용해서 이동하거나 운반하거나 할 때 무슨 원리로 말을 움직이는 것일까요? 쉽게 생각할때 당근과 채찍의 원리가 있습니다. 당근을 주어서 움직이게 하거나 채찍을 때려서 움직이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말을 너무 모르는 간단한 이해일 뿐입니다. 말에 대해서알면 말이 얼마나 감정적인 동물인가를 알게 됩니다. 말은말들끼리만 통하는 방식으로 의사소통을 합니다. 콧소리를 내거나 발을 두드립니다. 두눈으로 360도를 볼 수 있는 넓은 시야를 가지고 있어서 위험으로부터도피합니다. 방어수단으로 물거나 뒷발질을 하기도 합니다. 좋은기억력을 가지고 있어서 귀소성이 있고 자신을 학대하는 사람에게 반감을 나타내며 사랑해주는 사람에게는 귀를 세우거나 얼굴을 비비면서 애교를 부립니다. 이러한 말은 단순히 당근과 채찍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교감과 신뢰로 움직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진실한 관계를 맺는 말은 많은 일을 할 수 있고 그렇지 못하면 통제되지 못하기 때문에 자신의능력을 발휘할 수가 없습니다. 말을움직이는 원리처럼 하나님께서 인간이 그 자신의 능력과 힘을 활용할 수 있게 하는 방법도 이와 비슷합니다. 하나님께서인간으로 행하게 하시는 방법은 바로 소원을 갖게 하시고 그 소원이 하나님의 뜻에 맞게 하셔서 그것을 통해 움직이게 하십니다. 그것은 말이 단순히 당근과 채찍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교감과 신뢰로 움직이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이럴 때 인간이 하나님의 뜻에 따르는 소원이 아니라 자신만의 소원을 갖는다면 그것은 단지 순수한 소원이 아닐 수 있습니다. 잠언 11장 23절은이렇게 말합니다. "[잠]11:23 의인의 소원은 오직 선하나 악인의 소망은 진노를 이루느니라" 의인도무엇인가를 소원하고 악인도 무엇인가를 소망합니다. 둘 다 동일한 바라고 소원하고 소망합니다. 그런데 의인의 소원은 선을 이루지만 악인의 소원은 진노를 이룹니다. 하나님께서의인의 소원은 기뻐하시지만 악인의 소원에 대해서는 진노하심으로 벌을 내리십니다. 그 차이가 무엇일까요? 의인의 소원은 하나님의 뜻에 맞지만 악인의 소원은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 부여하신 하나님의 법칙을 어기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고 오직 자신만의 욕심과 탐욕과 이기심만을 이루려고할 때 그것은 하나님의 진노를 부르는 악인의 소망이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를생각하고 그것을 이루려고 할 때 그리고 그것이 소원이 될 때 그것은 하나님이 적극적으로 권하시고 힘주시며 반드시 이루어지게 하시는 선한 것이 됩니다. 그러한 것이 이루어지기를 주님도 원하시고 기뻐하십니다. 그러한 바램와애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선이 이루어지를 원할 때 비로소 하나님의 행하심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와같이 하나님이 역사하심을 경험할 때에는 하나님을 따라가며 하나님께서 주신 소망을 따라서 기뻐하면서 일을 행할 때입니다. 하지만 반대로 우리가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경험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때는주님께 원망과 불평이 가득할 때였습니다. 바로 이러한 원리를 보여주는 14절 말씀을 보십시오. "[빌]2:14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 여기서'원망'은 영어로 'complaining'입니다. 그리고 시비는 'arguing'입니다. 이 두 단어는 영어단어가 더 실제적으로 들립니다. 삶속에서 우리는수없이 많은 'complain'과 'argue'를 하면서살아갑니다. 그리고 그렇게 원망과 시비의 대상은 삶속에서는 사람들이지만 신앙속에서는 하나님께 대합니다. 하나님께 원망과 시비를 말하면서 살다보니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그 행하심을 경험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고통과괴로움을 스스로 경험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렇게 원망과 시비를 하게 되는 이유는 본질적으로 하나님의뜻에 따른 소원을 갖지 못하고 자신의 뜻에 따른 소원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구약성경요나서에서는 하나님의 선지자였던 요나가 왜 자신의 부르심을 거부하고 사역을 중단해 버렸는지가 나옵니다. 그이유는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니느웨를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고 단지니느웨에 회개를 선포하는 것이 그들이 당할 심판에 대한 준비과정이라고만 생각했기 때문에 그는 하나님의 행하심을 스스로 중단해버리고 말았습니다. "[욘]4:1 요나가 매우 싫어하고 성내며 [욘]4:2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내가 고국에 있을 때에 이러하겠다고말씀하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므로 내가 빨리 다시스로 도망하였사오니 주께서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신 줄을 내가 알았음이니이다 [욘]4:3 여호와여 원하건대 이제 내 생명을 거두어 가소서 사는 것보다 죽는것이 내게 나음이니이다 하니 " 그리고그는 니느웨에서의 모든 사역을 중단하고 성읍에서 나가서 초막을 짓고 성읍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를 기다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complain'하며 'argue'하고 있었습니다. 원망하며 시비를 논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 대해서 하나님은 그가 보여주는 원망과 시비에 대해서 즉각 훈계하거나 처벌하거나 진노하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대답은 이것이었습니다. "[욘]4:4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가 성내는 것이 옳으냐 하시니라" 다만하나님께서 그에게 그의 성내는 것이 옳으냐고 물으시기만 한 것은 그가 진정으로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 있지 않지만 그것을 지금 당장 바꾸시는 것이아니라 그의 소원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변화되기를 기대하고 기다리시기 때문이었습니다. 요나가 원망과시비로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과 순종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게 되기를 기다리셨습니다.
하나님도지금 우리를 그렇게 기다리십니다.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는 하나님은 우리 속에 하나님 뜻에 합당한소원이 생기기를 기다리십니다. 그러한 소원이 생기도록 하나님은 상황을 변화시키십니다. 또한 그것을 깨달을 수 있도록 주변정황을 바꾸십니다. 그래서 우리각 사람이 지금 당장은 하나님 뜻에 맞는 소원이 없다 하더라도 시간이 흐르고 때가 되고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여러가지 일을 겪다 보면 비로소 하나님뜻에 맞는 소원을 가지게 됩니다. 교회를다니는 것도 그렇습니다. 교회에 다니면 당장 믿음이 생길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믿음이라는 것이 무슨 졸업장 따듯이 딱 가지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설명해주어도 아무리 노력해도 아무리 느끼려고 해도 안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교회가 하는 일이 아무것도없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스스로 각 사람에게 진정한믿음이 생길 때까지 교회는 그들을 붙들어줍니다. 정말로 하나님을 만나는 때가 오기를 기다립니다. 그 자신에게 하나님 뜻에 맞는 소원이 생길 때를 바라보면 인내합니다. 그렇게간절히 기다릴 때에 어느 순간 불현듯 마음에 하나님의 기쁘신 뜻이 이해가 됩니다. 그리고 보이지 않던하나님, 들리지 않던 하나님, 인정할 수 없던 하나님을 붙들게됩니다. 교회는 그 순간을 기다리며 인내하고 돌보며 애씁니다. 하나님의기쁘신 뜻을 따르는 순간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요나에게도 하나님의 기쁘신 뜻에 대해서 보여주셨습니다. 요나서 4장에보면 특별한 사건이 하나 생겼습니다. 성읍이 어떻게 되는가를 기다리던 요나에게 박넝쿨 하나가 생겨서그늘을 만들어 주어 참 기뻐하게 되는 일이 생겼는데 그 박넝쿨이 그만 벌레에게 먹혀서 시들어 버리고 말았습니다.그러자 요나는 너무 안타까워하며 아쉬워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요나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욘]4:10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재배도 아니하였고 하룻밤에 났다가하룻밤에 말라 버린 이 박넝쿨을 아꼈거든 [욘]4:11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명이요 가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 삶의 일을 경험하면서 신앙의 일을 알게 되었습니다. 단순히신앙의 일만 생각하다 보면 신앙의 일을 알게 되는 줄 알았는데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우리 삶이 바로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하나님의 원하심을 알게 되는 그런 장소였던 것입니다. 요나에게 깨닫게 하시는 말씀은지금도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소중하게 생각하면 하나님도 그 무엇인가를소중하게 여기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소중하게 여기시는 것은 우리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보다 더 크고중요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이 세계를 만드셨고 그속에 있는 사람들을 지으셨으며 그들이 어떻게 될것인가를 다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항상 우리는 우리 생각속에서만 소원을 갖는 것이 얼마나어리석은지를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항상 나와 나의 가족과 나의 아는 사람만 생각합니다. 전체를 보지 못합니다. 그로 인해서 내가 나와 내 가족과 내가 아는사람만 챙기려고 하고 돌보려고 할 때 결국은 하나님의 큰 뜻을 못보는 것입니다. 그 결과 하나님은 내속에서 역사하시지 않습니다. 하지만하나님의 뜻을 보려고 할 때에 비로소 하나님의 시각을 갖게 됩니다. 그 큰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 살아가려고하고 그것이 우리의 소원이 될 때 하나님은 내 속에서 역사하십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놀라운 기쁨과 평강이있습니다. 우리를 움직이시는 놀라운 능력이 하나님 바로 그분으로부터 나오게 됩니다.
오랫동안목회를 해오면서 벌써 17년이 되었습니다. 17년째 이일을해오면서 돌아보면 어디서 그런 힘이 있어서 이일을 17년째 하고 있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여러분은 저를 4,5년 본 것이겠지만 사실 저는 17년동안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부흥이 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발전이 이루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또한 그렇다고 안되는 것도 아니고 망하는 것도 아닌 계속 근근히 이어져나오고 있는 이 교회생활이 때로는 못견디게 답답하기도 했고 절박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진행되어온지난 날을 생각해 보면 이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내 속에서 행하셨음을 알게 됩니다. 그것은 저에게 하나님뜻을 따르고자 하는 소원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고 그것을 행하게 해달라는소원이었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는 항상 어려움을 극복하게 하시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하셨고 난관을뛰어넘게 하셨고 고통을 견디게 하셨습니다. 빌립보서를쓴 사도 바울도 바로 그랬습니다. 그는 빌립보서를 쓸 당시 로마감옥에 있었습니다. 빌립보서는 사도 바울이 로마감옥에 갇혀서 쓴 편지였습니다. 옥중서신이네 가지가 있는데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가 바로 그것입니다. 그는 자신이 복음을 위하여 갇힌 자되었다고고백합니다. 그는 로마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가이사에게 상고하였고 그래서 로마의 감옥으로 이송되어서가이사의 재판을 기다리는 자가 되었습니다. 바로 그때 이 빌립보서를 기록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 자신이 옥에 갇혀 있으면서 그는 원망과 시비로 하나님의 일을 한 것이 아님을 고백합니다. 그 자신이 하나님께 불편한 마음을 갖고 있으면서 복음을 증거한 것이 아닙니다.그는 자신을 통해서 로마에 복음에 전하여지고 그로 인해서 믿게되는 자들이 있다면 현재 자신의 형편에 대해서는 개의치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기쁘신 뜻에 따라 소원을 가지고 행하는 자였기 때문입니다.
우리가바울과 같은 삶을 살지는 않더라도 우리의 삶속에서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일까를 생각해보고 그것을 위해 노력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기는 하지만 알기도 하지만 그것을 소원하지 않는다면 무의미합니다. 이 두 가지가 다 이루어질 때 우리는 비로소 우리 속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합할 때 우리는 우리 속에서 힘주시고 능력주시는 하나님과 함께 뛰고 달리고 걷게 됩니다. 사람과 말이 혼연일체가 되어서 멋진 마장마술을 펼치는 것을 생각해 보십시오.우리가 하나님과 연합하여 신앙생활을 할 때 비로소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경험하게 됩니다. 올해2016년이 바로 그러한 한해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새로운계획과 결심속에서 더욱 하나님과 함께 뛰고 그로 인해서 놀라운 발전과 능력을 이루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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