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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계획] 2출5; 17-23 주께서도 구원치 아니하시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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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출5; 17-23 주께서도 구원치 아니하시나이다_1

 

 2012.7.8.주, 주일오전, 주제설교-계획

 

*개요   [51계획] {1역사서} <3분석> [3감정]-[5은혜]

 

17 바로가 가로되 너희가 게으르다 게으르다 그러므로 너희가 이르기를 우리가 가서 여호와께 희생을 드리자 하는도다

  18 이제 가서 일하라 짚은 너희에게 주지 않을지라도 너희가 벽돌은 여수히 바칠지니라

  19 이스라엘 자손의 패장들이 너희의 매일 만드는 벽돌을 조금도 감하지 못하리라 함을 듣고 화가 몸에 미친 줄 알고

  20 그들이 바로를 떠나 나올 때에 모세와 아론이 길에 선 것을 만나

  21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우리로 바로의 눈과 그 신하의 눈에 미운 물건이 되게 하고 그들의 손에 칼을 주어 우리를 죽이게 하는도다 여호와는 너희를 감찰하시고 판단하시기를 원하노라

  22 모세가 여호와께 돌아와서 고하되 주여 어찌하여 이 백성으로 학대를 당케 하셨나이까 어찌하여 나를 보내셨나이까

  23 내가 바로에게 와서 주의 이름으로 말함으로부터 그가 이 백성을 더 학대하며 주께서도 주의 백성을 구원치 아니하시나이다

 

 

우리가 주님이 주시는 감사하는 마음을 계속 이어가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주님이 하시는 일을 이해하는 일입니다. 주님이 하시는 일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감사는 끝이 나고 불평과 미움이 시작됩니다. 주님이 어떤 선물을 주셨다고 해보십시오. 그 선물을 받게 되었을 때의 감사는 그 선물을 풀어보고 나서 그 선물이 무슨 용도인지를 알지 못한다면 당혹감과 낭패감이 들 것입니다. 뭔가 잘못된 것 같다는 괴로움도 들 것입니다. 자꾸만 하나님이 원망스럽고 이런 선물은 주시지 않는 것이 더 좋았을텐데라는 생각이 들 것입니다. 분명 하나님이 주신 것은 좋은 것이었지만 그 이후로 진행되는 일에 어려움이 생길 때에 그것은 나쁜 것처럼 보입니다.

 

 

1.    세상에서 우리는 주의 일을 하려고 할 때 어려움 당하게 된다.

 

이 세상에서 우리가 경험하는 현실이 바로 이것입니다. 주님의 일을 하려고 하다보면 어려움 당한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응답에 따라 움직여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의 뜻을 따르면 만사형통하리라고 했건만 실제로 그 뜻을 따르다 보면 어려움이 생겨납니다. 오늘 성경 말씀에서 모세가 바로 그랬습니다. 그는 주님의 뜻에 따라서 바로에게 애굽의 종된 이스라엘 백성을 내어 놓으라고 말하였지만, 그로 인해서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더 큰 어려움이 찾아왔습니다. 바로가 이스라엘 백성을 괴롭히기 시작한 것입니다.

“17 바로가 가로되 너희가 게으르다 게으르다 그러므로 너희가 이르기를 우리가 가서 여호와께 희생을 드리자 하는도다

 18 이제 가서 일하라 짚은 너희에게 주지 않을지라도 너희가 벽돌은 여수히 바칠지니라”

 

바로는 모세가 그 많은 기사와 이적을 보여주었지만 기다렸다는 듯이 이스라엘 백성을 내주지 않았습니다. 그는 눈하나 깜짝하지 않고 조금도 변화되지 않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오히려 이스라엘 백성들을 더 괴롭히기 시작했습니다. 그 괴롭힘은 그들에게 일을 시키는데 더 힘들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전에는 벽돌을 주면서 그 벽돌을 쌓아서 성을 만들라고 했지만 이제는 벽돌도 주지 않으면서 성을 쌓으라고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게으르고 편안해서 내보내 달라고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한마디로 배가 부르니까 자유를 달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바로의 모습은 모세에게 괴로움이 되었습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어째서 바로는 하나님의 그 모든 기사와 이적을 보고도 조금도 끄떡하지 않을 수 있는가! 모세는 혼란스러움에 빠졌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이러한 바로의 강퍅함과 아울러 이스라엘 백성자신도 모세를 대적하기 시작했습니다.

“20 그들이 바로를 떠나 나올 때에 모세와 아론이 길에 선 것을 만나

  21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우리로 바로의 눈과 그 신하의 눈에 미운 물건이 되게 하고 그들의 손에 칼을 주어 우리를 죽이게 하는도다 여호와는 너희를 감찰하시고 판단하시기를 원하노라”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서 그들을 자유케 하려는 것이 아니었습니까? 애굽의 바로에게서 벗어나서 자유로워지면 누가 그 유익을 누리겠습니까?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 아닙니까? 그렇다면 누구보다도 더 인내하고 누구보다도 더 격려를 해줘야 할 사람들이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이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모세를 비난하고 원망하고 거역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우리를 죽인다고 하였습니다. 바로가 우리를 괴롭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너희가 우리를 괴롭히는 자들이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그들의 마지막 말은 더 가관입니다. ‘여호와는 너희를 감찰하시고 판단하시기를 원하노라’

모세가 바로에게 이스라엘을 자유케 해달라고 말한 모든 것이 다 여호와의 뜻이었지만 그들의 여호와는 그런 모세와 아론을 감찰하고 판단하는 분이었습니다. 진정한 여호와가 아니라, 그들만의 환상속의 여호와였던 것입니다.

 

 

2.    모든 어려움 중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주님이 역사하시지 않는 것이다.

 

이 모든 저항과 반대 속에서 모세는 무너지고 있습니다. 그 자신도 이제 혼란스러워졌습니다. 그도 인간인지라 바로의 강퍅함과 이스라엘 백성들의 비난과 저주에 자기 자신도 확신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리고 나서 주님께 돌아왔을 때에 모세를 가장 괴롭히는 것은 바로도, 이스라엘 백성도 아니었습니다. 그에게 있어서 모든 어려움 중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주님이 역사하시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왜 하나님은 이런 상황을 그냥 내버려 두고만 계실까요? 왜 빨리 바로를 넘어뜨리시지 않는 것일까요? 왜 이스라엘 백성을 빨리 풀어주시지 않는 것일까요? 왜 이스라엘 백성들이 깨닫도록 역사하시지 않는 것일까요? 주님은 잠잠하시고 잠잠하십니다. 모세를 정말 괴롭히는 것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주님이 역사하시지 않는 것입니다.

“22 모세가 여호와께 돌아와서 고하되 주여 어찌하여 이 백성으로 학대를 당케 하셨나이까 어찌하여 나를 보내셨나이까

23 내가 바로에게 와서 주의 이름으로 말함으로부터 그가 이 백성을 더 학대하며 주께서도 주의 백성을 구원치 아니하시나이다”

 

그의 말을 통해 생각해 보면, 모세는 하나님께서 왜 이 백성으로 학대를 당하게 하시는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그는 왜 그를 보내셨는지도 모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정말 중요하게 모르는 것은 왜 주님께서 그의 백성을 구원하시지 않는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 묻고 있는 것입니다. 모든 두려움과 분노와 절망감을 가지고 주님께 대해서 이유가 무엇이냐고 묻고 있습니다.

 

 

3.    하나님은 그분의 놀랍고 의로운 계획대로 역사하신다.

 

우리가 주님의 뜻을 모를 때, 그분의 계획을 모를 때, 이전에 가졌던 감사는 송두리째 사라집니다. 하지만 그 감사를 다시 찾고자 한다면 주님의 뜻을 알아야 합니다. 이 모든 복잡한 상황 속에 감추인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놀랍고 의로운 계획대로 역사하십니다. 주님은 인간처럼 실수하시는 분도 아니고 모르시는 부분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모든 것은 주님의 온전하고 완벽한 뜻과 계획에 따라 이루어집니다. 다만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계획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계획이 아닌 하나님의 계획대로 이루어집니다. 그것을 알고 그것을 배울 때에 우리는 하나님을 이해하게 됩니다. 그리고 주님의 수준에까지 높아집니다. 주님이 어떤 분인지를 알고 신뢰하며 의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이러한 수준으로 올라 올 수 있도록 가르쳐 주십니다. 먼저 바로에 대해서입니다.

“출6: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제 내가 바로에게 하는 일을 네가 보리라 강한 손을 더하므로 바로가 그들을 보내리라 강한 손을 더하므로 바로가 그들을 그 땅에서 쫓아내리라

 2 하나님이 모세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나는 여호와로라”

 

바로에게 대해 하나님은 강한 손을 더하므로 결국에는 바로가 그들을 쫓아내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대로 그 이후부터 애굽에 열가지 재앙이 임하게 되었습니다. 그 열 가지 재앙을 통해 바로는 하나님께 심판받았으며 하나님의 말씀대로 정말 그들을 쫓아 내었습니다. 하나님을 이를 통해 이스라엘을 내보내시는 하나님은 능력의 여호와이심을 나타내셨습니다.

 

또한 이스라엘 백성에 대해서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출6:6 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기를 나는 여호와라 내가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어내며 그 고역에서 너희를 건지며 편 팔과 큰 재앙으로 너희를 구속하여

출6:7 너희로 내 백성을 삼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니 나는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어낸 너희 하나님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지라

출6: 8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기로 맹세한 땅으로 너희를 인도하고 그 땅을 너희에게 주어 기업을 삼게 하리라 나는 여호와로라 하셨다 하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필요한 것은 그들이 자유케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가나안으로 나아가리라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일을 이루는 자는 자애로운 바로가 아니라 능력의 하나님이심을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럴 때 그들은 하나님의 진정한 백성이 되고 하나님의 땅으로 기업을 삼는 하나님의 나라가 될 것입니다. 이것을 알게 하시기 위해서 백성들은 어려움 당했던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은 하나님 자신에 대해서는 뭐라고 말씀하실까요? 왜 하나님은 구원치 않으셨나요?

“3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전능의 하나님으로 나타났으나 나의 이름을 여호와로는 그들에게 알리지 아니하였고

  4 가나안 땅 곧 그들의 우거하는 땅을 주기로 그들과 언약하였더니

  5 이제 애굽 사람이 종을 삼은 이스라엘 자손의 신음을 듣고 나의 언약을 기억하노라”

 

구원하지 않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구원하지 않는다고 생각한 것은 모세의 오해였습니다. 주님은 구원하십니다. 그러나 지금 당장 바로의 손아귀에서 구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자손이 자신들의 조상인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셨던 약속에 따르는 것이었습니다. 주님은 그 신음함을 들으시고 구원해 주십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당장의 필요를 알지 못했다 하더라도 약속을 생각하시고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받게 하심으로 언약을 이루시는 구원을 이루시는 분이셨습니다.

 

이를 위해서, 바로가 열가지 재앙을 받아야 했습니다. 또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혹독한 역사 가운데 주님을 간절히 부르짖어야 했습니다. 그들은 신음을 했을 뿐이지 간구를 한 것이 아닙니다. 현재 당면한 어려움 속에서 모세를 통해서 구체적으로 제시되는 주님을 부를 때에 비로소 그들은 주님을 구주로 맞아들이는 것이며 그분의 진정한 백성이 되어갑니다. 이를 위해서 주님은 온전한 구원을 이루고 계셨던 것입니다.

 

 

4.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 순종함으로 주의 역사를 이루는 자들이 되자.

 

우리의 삶속에서는 모세가 겪는 괴로움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경험하는 괴로움이 있습니다. 그 속에서 우리는 주님이 역사하시지 않는 것 같고, 구원하시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지금 역사하고 계십니다. 지금 구원하고 있습니다. 그 구원하심이 우리의 생각과는 다르다는 것 뿐이지 주님은 그분의 온전하신 뜻을 지금 이 순간에 이루고 계십니다. 그러니 우리는 그 뜻을 따르고 순종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주님의 역사를 이루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저는 날마다 저의 둘째 딸 지인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 줍니다. 그러면 가끔씩 지인이는 저에게 이렇게 물어볼 때가 있습니다. 오늘은 어린이집에 안가고 놀러가면 안되냐는 것입니다. 그러면 저는 안된다고 합니다. 어린이집에 가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면 지인이는 묻습니다. “왜?”

그 이유를 물어보는 진지한(?) 질문에 저는 그 이유를 생각해 봅니다. 왜 어린이집에 가지 않으면 안되는 것일까요? 그러한 질문을 첫째 딸인 예인이에게서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예인이는 이전에 초등학교에 등교하기를 싫어했습니다. ‘왜 내가 학교를 가야 하나요?’  이러한 질문을 우리는 많은 청년들, 장년들에게서도 듣습니다. 왜 내가 교회를 가야 하나요? 왜 내가 직장에 가야 하나요? 왜 내가 그런 모임에 가야 하나요? 안가면 안되나요?

 

지금도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그 이유를 묻는 우리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출6:7 너희로 내 백성을 삼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니 나는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어낸 너희 하나님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지라”

 

우리가 이일에 우리를 도우시는 하나님을 믿고 의지할 때에 하나님은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가 되십니다. 그 무거운 짐 속에서 우리를 언젠가 도우시고 빼어내실 하나님을 의지하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의 구세주가 되십니다. 그리고 그렇게 주님을 의지하면서 그 계획을 바라보면서 인내하며 나아가는 우리들에게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출6: 8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기로 맹세한 땅으로 너희를 인도하고 그 땅을 너희에게 주어 기업을 삼게 하리라 나는 여호와로라 하셨다 하라”

 

그것이 결국 우리의 진정한 구원이 되기 때문에 주님은 우리를 이곳으로 인도하셨습니다. 그 땅을 주어서 기업을 삼게 하려는 것이 주님의 뜻이기 때문에 우리를 인도하신 것입니다. 이제 이곳에서 흔들리지 말고 주님을 바라본다면 주님은 그 약속을 반드시 지키십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다시 돌아와서, 그래서 제가 지인이에게 해준 말은 이것이었습니다.

“지인아, 우리 모두는 해야할 일이 있단다. 때로는 하고 싶지 않아도 그일을 해야 할 때가 있어. 엄마도 아빠도 할머니도 언니도 해야할 일이 있고 너의 해야할 일은 어린이 집에 가서 선생님에게 배우고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는 거야. 우리 할일을 다 잘하고 조금있다가 다시  만나자?”  그러자 지인이는 “네”라고 대답했습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할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주님을 믿고 순종하는 일입니다. 그 일을 잘 하면 주님은 우리를 세워주십니다. 하고 싶지 않다고 해서, 힘들다고 해서 그만두게 하는 부모님은 없습니다. 하고 싶지 않지만, 힘들지만 그것을 이겨내게 하는 부모님이 있을 뿐입니다. 우리의 하나님은 우리가 그렇게 되도록 붙들어주십니다. 그 하나님 아버지를 의지하고 주의 구원하심을 바라봅시다. 그럴 때 주님은 우리를 온전히 구원해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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