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계획] 37학 1; 1-8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는 사람들Loading the player... .
37학 1; 1-8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는 사람들_1
2023. 2. 5. 주. 주일오전예배.
*개요: 학개서를 통해서 사람을 세움, 61계획
[학]1:1 다리오 왕 제이년 여섯째 달 곧 그 달 초하루에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로 말미암아 스알디엘의 아들 유다 총독 스룹바벨과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학]1:2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여 이르노라 이 백성이 말하기를 여호와의 전을 건축할 시기가 이르지 아니하였다 하느니라 [학]1:3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학]1:4 이 성전이 황폐하였거늘 너희가 이 때에 판벽한 집에 거주하는 것이 옳으냐 [학]1:5 그러므로 이제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니 너희는 너희의 행위를 살필지니라 [학]1:6 너희가 많이 뿌릴지라도 수확이 적으며 먹을지라도 배부르지 못하며 마실지라도 흡족하지 못하며 입어도 따뜻하지 못하며 일꾼이 삯을 받아도 그것을 구멍 뚫어진 전대에 넣음이 되느니라 [학]1:7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니 너희는 자기의 행위를 살필지니라 [학]1:8 너희는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가져다가 성전을 건축하라 그리하면 내가 그것으로 말미암아 기뻐하고 또 영광을 얻으리라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
지난 한 달 우리는 스바냐서를 통해서 우리를 세워 가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무엇인가를 생각했습니다. 다음에 이어지는 학개서는 저술시기나 역사적 상황으로 볼 때에는 스바냐서와 이어지는 것은 없습니다. 스바냐는 남유다의 요시야왕 시기인 B.C. 640-609년에 활동했던 선지자였습니다. 그러나 학개서는 B.C.538년에 고레스 칙령으로 포로로 끌려갔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시 본국으로 돌아올 수 있게 된 다음부터 사역한 선지자입니다. 이렇게 시대적인 차이는 분명히 존재합니다. 그러나 그 시기와 배경을 뛰어넘는 연속성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대해서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스바냐서의 마지막은 ‘칭찬과 명성을 얻게 하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학개서에서 우리는 성전건축을 중단하고 포기상태에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시 본국으로 돌아와서 하나님의 성전을 세우고자 했으나 어려움이 생겨서 포기하고 그 이후에는 계속 이어져서 다리오왕 때까지 아무런 시도를 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런 상황에서 하나님께서는 학개를 통해서 말씀해 주셨고 그것은 상황에 근거하는 신앙이 아닌 믿음에 근거하는 신앙을 일깨워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상황에 근거해서 해야 할 일을 포기하였던 이유가 있었다.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이 왜 상황에 근거해서 자신들의 해야 할 일을 포기하게 되었는지 다음 말씀을 통해서 살펴봅니다. “[학]1:1 다리오 왕 제이년 여섯째 달 곧 그 달 초하루에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로 말미암아 스알디엘의 아들 유다 총독 스룹바벨과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학]1:2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여 이르노라 이 백성이 말하기를 여호와의 전을 건축할 시기가 이르지 아니하였다 하느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다리오 왕 이년 여섯째 달에 학개로 말미암아 총독 스룹바벨과 대제사장 여호수아에게 임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셨던 말씀은 이 백성이 여호와의 전을 건축할 시기가 이르지 아니하였다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전 건축을 포기하고 있었던 이유였습니다. 그 말씀은 정확한 것이었습니다. 그들의 포기하는 이유는 자신들의 기준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언제 재개될까를 기다리지도 않았습니다. 그냥 시기가 이르지 않았다고만 나름 생각하고 아예 잊어버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 책망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님 중심의 생각이 아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때로 성도들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에 대해서는 하나님의 때를 앞당깁니다. 하지만 자기가 하고 싶지 않은 일에 대해서는 그 때를 늦춥니다. 아예 하지 않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지금 하고 싶지는 않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하는 것은 자기 중심적입니다. 하나님 중심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에서 멀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유치원 다니는 자녀가 초등학교에 가는 것은 가고 싶어서 가는 것이 아닙니다. 해야 할 때가 되었기 때문에 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그 자녀는 무척 힘들어하고 괴로워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때를 결정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이 아닙니다. 부모님이기도 하고 학교이기도 하며 국가이기도 합니다. 그 필요성을 따를 때 자신에게도 좋고 다른 사람에게도 좋습니다. 만약 초등학교에 올라가야 하는데 그것을 거부하고 있다면 그것은 자기 자신에게나 다른 사람에게 너무나 괴로운 일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할 수 있어서 성전건축을 하는 것이 아닌 해야 해서 하는 것을 원하셨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자신의 편안함과 안락함을 위해서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할 시기가 되지 않았다고 생각할 때 그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악한 일이었습니다. “[학]1:3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학]1:4 이 성전이 황폐하였거늘 너희가 이 때에 판벽한 집에 거주하는 것이 옳으냐 [학]1:5 그러므로 이제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니 너희는 너희의 행위를 살필지니라”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주의 성전은 황폐하였지만 백성의 집은 판벽했다는 것입니다. 판벽하다는 것은 화려하다는 의미입니다. 주의 성전은 고레스 왕의 칙령으로 건축이 시작되었지만 그 땅 백성들의 반대로 인해서 아닥사스다 왕 때 중단되었습니다. 그런 상태였기 때문에 성전은 황폐되어졌습니다. 그렇지만 백성들의 집은 완공되어 살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아야 하는 내용이 되었습니다. 이 차이는 단순히 지금 나의 생활과 하나님의 일을 구분해서 생각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항상 하나님의 성전만 지으라고 하시는 것도 아닙니다. 더 본질적으로 내가 생각하는 것과 하나님의 생각하는 것의 차이입니다. 내 기준과 하나님의 기준 중에서 내가 자신의 기준만 채우려고 한다면 하나님의 기준은 황폐해져 갑니다. 하지만 그것을 자각하고 하나님의 기준을 따를 때에 비로소 하나님의 기준이 풍성해지고 그 결과 나의 모습도 풍성해질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해야 하기 때문에 행하는 일의 중요성입니다.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해야 하기 때문에 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 모습을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성령의 거하시는 전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할 수 있을 때가 아니라 해야 한다고 생각할 때 이룰 수 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단순히 나의 일, 하나님의 일로 구분해서 생각하지 말고 내가 기준이 되는 일과 하나님이 기준이 되는 일로 확장해 보십시오. 그것이 잘 구분이 안 된다면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일까를 찾아보십시오. 스스로 지금은 성전을 건축할 때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않으면 하나님의 뜻을 찾을 수 있습니다. 오히려 해야 할 것을 성경을 통해서 말씀해주시고 생활 속에서 거부할 수 없도록 이끌어 주시는 하나님이 감사하게 느껴질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할 수 있을 때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일이라면 내가 해야 하고 또한 할 수 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럴 때 하나님의 계획하심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분명하였습니다. “[학]1:6 너희가 많이 뿌릴지라도 수확이 적으며 먹을지라도 배부르지 못하며 마실지라도 흡족하지 못하며 입어도 따뜻하지 못하며 일꾼이 삯을 받아도 그것을 구멍 뚫어진 전대에 넣음이 되느니라 [학]1:7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니 너희는 자기의 행위를 살필지니라 [학]1:8 너희는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가져다가 성전을 건축하라 그리하면 내가 그것으로 말미암아 기뻐하고 또 영광을 얻으리라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 하나님께서 백성들의 삶을 아시고 그들의 행위를 스스로 살피기를 원하셨던 이유는 그들이 성전건축은 아직도 멀었고 언제 할 지 모른다고 생각했을 때 수확이 적고, 베부르지 못하고 흡족하지 못하고 따뜻하지 못하고 삯은 구멍 뚫어진 전대에 넣음이 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지만 학개는 자신의 행위를 살피고 성전을 건축하면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실 것이라고 증거하였습니다. 자신의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준에 따를 때 그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었습니다. 실제로 백성들의 일은 별 것 아니었지만 하나님의 영광이 있을 때에 왕이 결정을 내려서 성전재건이 시작되었습니다.
-자기 자신이 결정하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르는 성도가 되자. 우리의 삶이 스스로 결정하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르고자 하는 삶이라면 놀라운 하나님의 계획에 동참할 수 있습니다. 그 계획에 동참하지 못하는 가장 큰 요소가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럴 때 무수히 많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을 수 있습니다. 결국 그 인도하심으로 인해서 성전건축은 재개될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를 때 놀라운 삶이 시작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에 예비하시는 모습이 있음을 기억하고 하나님의 전을 삶 속에 만들어 가보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 그 전에서 놀라운 생수가 솟아져 나오고 더할 나위 없는 평안이 넘치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한 주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구성: 4극본적해석 1. 이스라엘 백성들이 상황에 근거해서 해야 할 일을 포기하였던 이유가 있다. 2. 하나님은 할 수 있어서 성전건축을 하는 것이 아닌 해야 해서 하는 것을 원하셨다. 3. 하나님의 일은 할 수 있을 때가 아니라 해야 한다고 생각할 때 이룰 수 있다. 4. 자기 자신이 결정하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르는 성도가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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