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계획] 61벧후 1; 1-4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들Loading the player... Loading the player... *
61벧후 1; 1-4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들_1
2019. 1. 6. 주. 주일오전.
*개요: 신앙의 소원의 의미, 51계획, 2분석, 6서신서, [벧후]1:1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며 사도인 시몬 베드로는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와 함께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벧후]1:2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앎으로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벧후]1:3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이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 [벧후]1:4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
새해 우리 교회의 표어가 바뀌었습니다. 지난 해 복음의 내용을 살피면서 교회표어를 바꿔야겠다는 생각을 하였고 올해 1월부터 본격적으로 교회표어를 바꾸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교회의 표어는 ‘신앙의 소원을 삶에 이루는 교회’입니다. 지금까지는 ‘신앙과 삶의 소원을 이루는 교회’였지만 앞으로는 신앙의 소원을 삶에 이루는 것에만 초점을 맞추려고 합니다. 이것은 신앙의 소원과 삶의 소원을 하나로 만드는 것이기도 합니다. 신앙의 소원이 삶에 이루어지기를 노력함으로써 삶의 소원을 별개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신앙의 소원이 성취된 모습으로의 삶을 생각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한 그러한 삶은 신앙의 소원을 계속 생각하는 삶으로 반복되어질 것입니다. 이러한 선순환의 삶을 통해서 우리가 계속해 신앙의 삶과 믿음의 삶을 만들어 가기를 기대합니다. 신앙의 소원을 삶에 이루는 것은 우리가 살펴본 복음의 원리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 대한 간절한 믿음의 간구가 단순히 신앙분야에서만 국한되지 않고 구체적으로 삶 속에 나타나야 할 것을 성경은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신앙은 신앙대로 삶은 삶대로 구별되고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신앙에 맞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중요함을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가르침을 묵상할 때 우리는 신앙의 소원과 삶의 소원을 하나로 만들어서 신앙의 소원을 삶에 이룰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신앙과 삶이 하나된 삶은 복음에서 성경말씀을 통해 항상 강조하고 깨닫게 하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베드로후서에서 동일한 말씀을 보게 됩니다.
베드로후서에서의 주제는 ‘이단과 거짓교사들의 위험성에 대한 경고’입니다. 베드로사도가 이 서신을 쓴 시기인 66년 혹은 67년은 교회 내에 많은 이단과 거짓교사들이 침투해 왔던 시기입니다. 교회의 복음이 널리 사람들에게 퍼지면서 동시에 다양한 세속적인 가치관이나 주장들도 무분별하게 교회로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그럴 때 교회에는 이러한 잘못된 가치관이나 주장들이 걸려지고 정화되어야만 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오히려 잘못된 신앙이 진실한 신앙으로 오해되고 결국에는 진실한 신앙을 파괴해 버리는 상황이 될 것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게 모든 잘못된 생각을 정화하고 분별하는 방법을 알게 하기 위해서 베드로 사도는 베드로후서를 썼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이 베드로사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주셨습니다. 그래서 1,2절에서 나타나는 것은 단순히 베드로사도가 성도들에게 주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주시는 말씀이 되었습니다. “[벧후]1:1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며 사도인 시몬 베드로는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와 함께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벧후]1:2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앎으로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요 사도로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또한 이 편지를 받는 자들은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통해 동일한 믿음을 함께 받은 자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더욱 기쁨으로 성도들에게 하나님과 예수님을 아는 데에서 오는 은혜와 평강이 넘치도록 축복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그를 믿는 성도들이 하나님과 예수님을 잘 알게 되어서 은혜와 평강을 얻게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것을 망가뜨리는 것이 모든 ‘이단과 거짓교사들의 위험성’입니다. 그 잘못된 생각이 세상으로부터 들어옵니다. 그 생각들은 은혜가 아니라 욕심을 생각하게 합니다. 평강이 아니라 두려움을 생각하게 합니다. 그래서 결국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이러한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교회의 복음이 전파되는 곳은 어디에서든지 이러한 일들은 일어날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이 전파되는 만큼 많은 사람들이 복음 안으로 들어옵니다. 그럴 때 그들이 가지고 있는 잘못된 생각까지도 함께 들어옵니다. 그것을 말씀 속에서 걸려내지 않는다면 그러한 생각들은 교회에 남아있다가 성도들을 미혹하며 실족하게 만들 것입니다. 그것을 막기 위해서 우리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성경이 보여주는 온전한 믿음의 모습이 무엇인가를 마음에 새겨야 하겠습니다. 동물의 왕국에 보면 사슴이나 소나 말과 같은 순한 초식동물들이 떼를 이루어 모여있는 곳에 포악한 이리나 늑대나 사자 등의 육식동물이 다가옵니다. 이러한 육식동물에 맞서서 잘 대응을 하면 아무 지장이 없지만 함께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고 혼자 돌아 다니면 결국에는 잡아 먹혀 버리고 맙니다. 신앙에서도 우리가 그렇게 되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이단이나 거짓교사등에 빠져서 신앙을 잃어버리면 그렇게도 가고자 했던 천국과 아버지의 나라에 갈 수가 없습니다. 자신도 변질되어서 다른 사람들을 실족시키는 악한 자로 변모하고 맙니다.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는 성경을 잘 이해하고 말씀 속에서 보여주는 구체적인 방법들을 잘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 변질되고 변모하며 이리나 늑대의 먹이가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이해해야 합니다. 자신도 실족하고 다른 사람도 실족하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 본질을 알지 못하면 무엇을 피하려다 더 심한 무엇을 만나게 된다는 속담처럼 되어버립니다. 지금도 이단에 빠진 사람들은 자신들이 결국 무엇을 피하려다 무엇을 만나게 되었는지를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을 알므로 은혜와 평강을 누리는 사람들은 무엇을 피하려다 그런 은혜와 평강을 만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들은 오직 하나님과 예수님을 찾고 찾음으로 비로소 은혜와 평강을 누리게 되는 사람들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과 예수님이 바로 그 은혜와 평강을 전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이어지는 3절을 보십시오. “[벧후]1:3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이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 우리 주 예수님은 그분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분 자신이 생명이고 그분 자신이 거룩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그것은 우리가 어떠한 삶을 살게 하시는가를 가르쳐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 놀라운 삶의 변화가 일어납니다. 잠수에서 중요한 것은 산소마스크입니다. 아무리 손과 발의 동작이 잘 되어 있어도 산소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물속에 있을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산소통을 메고 산소마스크를 쓰면 물 속에서도 안정적으로 호흡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이렇게 호흡이 되면 물 속에서도 여러 가지 일을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대해서 신앙을 가지고 있는 우리가 삶 속에서 신앙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이유도 이와 같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생명과 경건에 관한 모든 것을 공급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산소마스크를 통해 산소를 들이마시고 이산화탄소를 내뱉으니까 물속에서 호흡이 가능한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영적 생명을 주십니다. 또한 경건에 속한 삶을 알려주십니다. 이 모든 것은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을 아는 것에서 말미암았습니다. 그 하나님을 귀하게 여기고 감사하게 생각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이 모든 은혜의 마음을 얻게 된 것입니다. 이 둘이 얼마나 다른가를 생각해 보십시오. 이단과 거짓교사는 욕심과 두려움을 이용합니다. 그래서 오히려 신앙생활을 통해서 더 많은 욕심을 추구합니다. 더 많은 두려움을 자극합니다. 그렇게 속아 넘어가는 것이 자신의 본질을 잃어버리는 것이고 변질되는 것이며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정한 생명과 경건은 은혜와 평안을 얻게 합니다. 그 은혜와 평안은 자신의 영광과 덕으로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과 예수님을 아는 것에서부터 옵니다. 그 풍성한 은혜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신앙생활의 온전한 모습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분별해서 악을 물리치고 선을 선택해야 합니다. 그것은 결국은 우리 자신을 살리는 가장 중요한 선택입니다. 그러한 이유 때문에 신앙의 모습이 어떠한가가 우리의 삶을 결정합니다. 정말 순수하고 온전한 신앙의 모습 만이 삶의 풍성한 열매를 얻게 합니다. 가습기 살균제를 생각해 보십시오. 가습기가 오래되면 때가 많이 끼고 더러워집니다. 그래서 그 가습기를 더욱 청결하기 위해서 살균제를 사용합니다. 그런데 살균제를 사용해서 가습기가 깨끗해지는 줄 알았는데 도리어 그 가습기를 쓰는 사람의 폐가 망가집니다. 그래서 죽음에 이르거나 아니면 평생 산소호흡기를 달고 살게 됩니다. 이 얼마나 끔찍한 일입니까? 그런데 바로 그런 일이 신앙생활에서 일어납니다. 교회의 어떤 부조리나 문제나 한계를 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어떤 사람들의 말을 듣게 되고 그 이야기에 솔깃해집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받아들여서 기존의 모든 교회에서의 가르침과 설명과 성경말씀에 대한 해석을 다 바꿔버립니다. 때로 그렇게 가르치는 위대한 교사가 있습니다. 그 교사를 따르다 보니 어느 새 자신이 다른 성도들의 신앙을 망가뜨리고 있는 이단이 되어 있습니다. 그로 인한 형벌은 사탄이 받는 형벌과 동일합니다. 자신은 교회에서의 부조리나 문제나 한계를 해결했다고 생각했지만 그런 것들은 전혀 해결되지 않았고 오히려 더 큰 악을 자신의 삶에 불러들이고 말았습니다. 자신의 온 생애가 그 잘못된 신앙에 얽매어서 파국에 이르게 됩니다. 이러한 끔찍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우리가 바라보아야 하는 것은 하나님과 예수님입니다. 내가 교회의 문제를 다 해결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다 보면 하나님께서는 좋은 길로 인도해 주십니다. 내 삶의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삶속에도 수많은 한계와 어려움이 있습니다. 어떤 때에는 하나님의 도움이 간절히 필요하지만 받지 못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도움이 뜻대로 나타나지 않는다고 해서 사탄의 도움을 받을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사탄의 도움은 당장은 도움이 되는 것 같지만 결국은 내 영혼과 내 영원을 잃어버리게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따르는 것은 지금은 힘들지만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하나님을 붙들면 진정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도우심을 알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4절 말씀에 나오는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벧후]1:4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 하나님은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것은 모든 피조물된 인간에게 주시는 약속입니다. 이 약속을 받아들이면 그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됩니다. 그 자녀들은 하나님 아들의 성품을 갖게 되는 자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바로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들인 것입니다. 그 성품에 참여하기 전에는 인간은 단순히 피조물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 피조물 된 상태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는 기회가 바로 하나님의 약속 속에 있습니다. 만약 그 약속을 버리면 그는 피조물에서 떨어진 하나님의 원수가 됩니다. 이미 사탄이 그러하였고 사탄을 위해 예비된 지옥이 있습니다. 그 지옥에 사탄이 떨어지게 되어 있는데 하나님의 약속을 저버리면 피조물인 인간도 동일하게 그 지옥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약속을 버리게 되면 그 자신으로서는 의를 이룰 수가 없게 되기 때문입니다. 인간 자신에게 바로 정욕이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 정욕을 버리고 세상에서 썩어지는 것을 피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는데 하나님의 자녀가 되지 못한다면 그 정욕을 따라서 세상에서 썩어지게 됩니다. 세상에서 썩어진 그 모습이 바로 사탄과 같이 지옥에서 심판을 받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을 선택한 자들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신앙에 대한 소원입니다. 그 소원을 가지고 삶에 적용하는 자들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게 됩니다. 바로 하나님의 아들의 성품입니다. 이것이 올 한해 우리의 목표입니다. 이러한 목표를 생각하면서 삶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을 누리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서 가장 은혜와 평강이 넘치셨던 것 같이 그 은혜와 평강을 온전히 누리게 되는 하나님의 귀한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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