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계획] 52살전 5; 12-18 예수 안에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Loading the player... Loading the player... []
52살 5; 12-18 예수 안에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_1
2018. 6. 24. 주. 주일오전.
*개요: 그리스도인의 미래, 4극본, 6서신서, 51계획 [살전]5:12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 가운데서 수고하고 주 안에서 너희를 다스리며 권하는 자들을 너희가 알고 [살전]5:13 그들의 역사로 말미암아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며 너희끼리 화목하라 [살전]5:14 또 형제들아 너희를 권면하노니 게으른 자들을 권계하며 마음이 약한 자들을 격려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며 모든 사람에게 오래 참으라 [살전]5:15 삼가 누가 누구에게든지 악으로 악을 갚지 말게 하고 서로 대하든지 모든 사람을 대하든지 항상 선을 따르라 [살전]5:16 항상 기뻐하라 [살전]5:17 쉬지 말고 기도하라 [살전]5:18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재림의 의미를 생각하면서 이제 6월 마지막 주에 이르렀습니다. 미래의 재림을 생각하면서 데살로니가전서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는데 우리 모두가 동일하고 일치된 하나의 이해를 가질 수 있도록 말씀을 증거하였지만 여전히 그러한 이해는 항상 우리 모두가 갖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너무나 당연한 현실일 것입니다. 이상은 온 교우가 동일한 수준에서 동일한 이해로 동일한 신앙을 갖게 되는 것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을 수 있습니다. 저는 이러한 현실을 충분히 감안하고 알고 있습니다. 은혜를 받아들이는 각자의 상황과 처지가 각각 너무나 다양하기 때문에 그 결과 또한 다를 수 있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작은 교회 뿐만이 아니라 큰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현재의 교회 뿐만 아니라 초대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심지어는 데살로니가 교회도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만약 데살로니가 교회가 완벽했다면 그들에게는 따로 편지를 줄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들이 정말 완벽했다면 우리가 보는 본문에 나오는 것처럼 사역자들을 귀히 여기고 성도들끼리 화목하며 모든 사람에게 오래 참으라고 굳이 말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부족함이 있고 연약함이 있기 때문에 한번 더 이야기 하게 되고 한번 더 권면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러한 과정이 의미가 있어서 그 당시의 사람들에게나 현재의 우리들에게 깊은 이해를 주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이 말씀을 볼 때에도 동일한 결과에 이르지 않았다고 해서 낙심하거나 절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어차피 하나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언젠가는 그 방향성을 향해 나아가게 될 것입니다. 바로 지금 당장이 아니더라도 그 언젠가는 이전에 이야기했던 그 방향성을 향해 나아가게 될 때가 있습니다. 예전에 한번은 초등학교에 다니는 딸이 학교에서 숙제를 내주었다면서 우리 집의 가훈이 무엇이냐고 물어봤습니다. 그 때 말해주었던 가훈은 ‘항상 기뻐하라, 쉬지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였습니다. 그 다음 해에 딸이 다시 우리집 가훈이 뭐였느냐고 물어보았습니다. 그때 저는 깨달았습니다. ‘아, 우리집 가훈은 그냥 숙제용이었구나, 내가 자주 말해주지 않았구나’ 한 가족에게서도 가족의 목표가 분명하게 이해되지 않는 경우가 있는데 하물며 이삼십 명이 모이는 교회는 어떠하겠으며 더 많은 사람이 모이는 교회는 어떠하겠습니까? 그래서 재림에 대해서도 그것을 준비하는 우리들의 마음가짐이 하나의 방향성으로 가르쳐져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그에 대해 받아들이는 마음은 달라도 동일한 방향을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제 재림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말씀 속에서 하나의 방향성을 갖고자 할 때 그 방향성은 ‘재림을 준비하는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의문 속에서 구체적인 대답이 나타납니다. ‘재림을 준비하는 그리스도인은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오늘 말씀 속에서 우리는 이러한 방향성을 발견하게 됩니다. 먼저 12절을 보십시오. “[살전]5:12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 가운데서 수고하고 주 안에서 너희를 다스리며 권하는 자들을 너희가 알고 [살전]5:13 그들의 역사로 말미암아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며 너희끼리 화목하라”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전서를 애초에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라는 이름으로 보냈습니다. 여기서 실루아노는 실라입니다. 실라는 사도 바울과 함께 전도여행을 하면서 모든 시련을 함께 견디어 냈습니다. 또한 은혜로 충만하여 빌립보 감옥에서 함께 바울과 찬양을 하던 사람이었습니다. 디모데는 바울의 영적인 아들로서 역시 충직한 사람이었습니다. 이러한 사역자들이 우리로 명명되고 있습니다. 그들이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구하는 것은 그들 가운데서 수고하고 주안에서 그들을 다스리며 권하는 자들을 알고 그들을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며 그들끼리 화목하라는 것이었습니다. 특별히 이러한 내용을 사도 바울은 구한다고 하였습니다. 헬라어로는 ‘ἐρωτάω’ 라고 하는데 영어로는 ‘ask, request, beseech’이고 해석은 ‘간청하다, 애원하다’의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부연하자면 ‘제발 사역자들을 귀히 여기고 너희들끼리 화목하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사역자들을 귀히 여기고 그들끼리 화목하는 것이 정말 중요했기 때문에 그렇게 말할 수도 있고 아니면 그들이 그렇지 못했기 때문에 그렇게 하라고 하는 경우일 수 있겠습니다. 어떤 것이든 중요한 것은 사역자를 귀히 여기고 성도들끼리 화목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재림에 대해 준비하는 모든 일의 시작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에서 특별히 이런 일이 중요했던 이유는 그 교회가 그 도시가 에게해에서 가장 훌륭한 자연항에 위치해 있었고 그 지역이 로마와 아시아를 연결하는 주요 도로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 환경이었기 때문에 그 교인들은 똑똑하거나 돈이 많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사역자들을 낮게 여기거나 혹은 성도들끼리 화목하지 않았을 지도 모릅니다.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여하튼 재림을 준비하는 자들로서는 사역자들을 귀히 여기고 성도들과 화목하는 것이 중요한 준비였습니다. 왜냐하면 그 사역자는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인도자들이며 그 성도는 그 인도하심을 받아서 하나님께로 나아가야 하는 자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사역자는 하나님의 일꾼이며 성도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우리 각 사람이 아무리 똑똑하고 돈이 많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일꾼을 무시해서는 안됩니다. 또한 하나님의 자녀를 업신여겨서도 안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 뒤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자신이 똑똑하지 않고 돈이 없다고 하더라도 역시 하나님의 일꾼을 거부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의 성도도 멀리해서는 안됩니다. 그를 통해서 자신이 어떤 혜택을 받을 수 있을지 어떻게 알겠습니까? 하나님의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이 이루고자 하시는 특별한 계획이 있기 때문에 늘 그 계획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은혜로 채워지게 됩니다. 자신이 따라야 하는 사역자는 어쩌면 멀리 있는 어떤 유명한 사역자와 비교될 수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 유명한 사역자가 자신에게 어떤 하나님의 축복을 가져다 주는 것은 아닙니다. 누군가를 존경하고 모델로 삼을 수는 있지만 정말 도움을 받는 사람은 가까이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증거해 주는 사역자입니다. 또한 다른 훌륭한 성도들을 보면서 부러워할 수는 있겠지만 자신과 함께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사람들은 현재 함께 있는 성도들입니다. 자신이 탈 구원의 방주는 바로 옆에 있는 사역자와 성도들과 함께 지어 나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그래야만 그 다음 단계도 이룰 수 있기 때문입니다. 14, 15절을 보십시오. “[살전]5:14 또 형제들아 너희를 권면하노니 게으른 자들을 권계하며 마음이 약한 자들을 격려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며 모든 사람에게 오래 참으라 [살전]5:15 삼가 누가 누구에게든지 악으로 악을 갚지 말게 하고 서로 대하든지 모든 사람을 대하든지 항상 선을 따르라” 이것이 전개에 해당하는데 애초에 사역자들을 귀히 여기고 성도들과 화목할 때 비로소 영향력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 속에서 게으른 자들을 권계하고 마음이 약한 자들을 격려하며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고 모든 사람에게 오래 참을 수 있습니다. 또한 악으로 악을 갚지 말게 하고 모든 사람에 대해서 항상 선을 따를 수 있습니다. 이 모든 일은 재림을 준비하는 자들이 정말 해야할 일들이고 그 속에서 그리스도의 본을 나타내며 그리스도의 뜻을 이룰 수 있습니다. 이 모든 일은 근본적으로 사람에게 관심을 가져야 가능한 일입니다. 일중심의 신앙생활에서는 게으른 자나 마음이 약한 자나 힘이 없는 자나 모든 사람은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오직 일만 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사람은 무의미 하게 됩니다. 하지만 진정한 열매는 바로 사람에게 어떻게 대하였는가입니다. 이를 위해서 교회 일에 재미를 느끼고 교회 일에 관여하여 교회 일만 생각하게 해서는 안되고 사람을 상대하며 사람과 어울리고 사람과 함께 있을 때 비로소 무엇이 중요한지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 다음에 그 중요성과 우선순위를 가지고 교회 일을 하면 됩니다. 항상 예수님의 뜻에 귀를 기울이고 그것에 집중하는 것이 중요하지 예수님의 방문을 어떻게 잘 이루어낼 것인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면 예수님이 집에 오셨을 때에 좋은 모습을 보이던 마리아처럼 되지 못하고 마르다처럼 되어버립니다. 그 장면을 우리는 누가복음에서 보게 됩니다. “[눅]10:38 그들이 길 갈 때에 예수께서 한 마을에 들어가시매 마르다라 이름하는 한 여자가 자기 집으로 영접하더라 [눅]10:39 그에게 마리아라 하는 동생이 있어 주의 발치에 앉아 그의 말씀을 듣더니 [눅]10:40 마르다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한지라 예수께 나아가 이르되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시나이까 그를 명하사 나를 도와 주라 하소서”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마르다가 해야 하는 일을 내려놓고 있을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교회에도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청소도 해야 하고 식사준비도 해야 하고 행사가 있으면 준비도 해야 하고 손님이 찾아오면 접대도 해야 합니다. 단순히 그 모든 것을 내려놓고 말씀에만 집중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그렇다면 정말 모든 사람에 대해서 항상 선을 따르는 사역이란 어떤 사역이겠습니까?
오래 전에 우리 교회에서 성탄절 발표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유초등부 아이들이 성극을 했습니다. 각자 맡은 배역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서 성극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중 한 아이가 하다가 자신이 맡은 대사와 역할을 잊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진행이 원활하지 못했습니다. 어찌 어찌 해서 성극은 끝이 났지만 그 실수를 한 아이에 대해서 안좋게 본 장년성도님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가는데 그 아이에게 한마디 했습니다. ‘너는 왜 그렇게 준비를 못해서 잘 하지 못했니? 준비를 더 잘했어야지’ 웃으면서 한 이야기였지만 그 말은 이 아이에게 상처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아이는 다시는 교회에 오지 않았습니다. 제가 찾아가서 설득을 해보았지만 한번 굳어져 버린 마음은 돌리기가 어려웠습니다.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나타나는 것이 모든 사람에게 대해서 선을 행하는 사역의 핵심이자 절정입니다. 바로 16, 17, 18절입니다. “[살전]5:16 항상 기뻐하라 [살전]5:17 쉬지 말고 기도하라 [살전]5:18 범사에 감사하라…”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재림을 준비하는 자들로서 가장 핵심적으로 결국에는 항상 기뻐하고 쉬지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기를 바라십니다. 누가복음에서도 마르다가 가졌어야 하는 마음과 모습은 무엇입니까? 마르다는 마리아처럼 그냥 앉아서 예수님이 오시더라도 아무 것도 준비하지 말고 그 말씀만 들어야 하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마르다는 마르다 대로 준비할 것을 준비하면 됩니다. 다만 마리아에 대해서 안좋게 생각하지만 않으면 됩니다. 마르다는 자신이 준비할 것만 생각했고 마리아가 예수님 말씀 듣는 것의 중요성을 간과했기 때문에 마리아를 이끌어 내서 자기 준비에 도움이 되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마리아를 보내셔서 일 좀 하게 해달라고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마르다에게 마리아는 좋은 편을 선택했으니 빼앗기지 않으리라고 하셨습니다. 마르다는 마리아의 좋은 편을 빼앗아서는 안됩니다. 그리고 마르다에게는 하나만 해도 족하다고 하셨습니다. 마르다는 너무 완벽한 접대를 하려는 것이 아니라 기쁨의 접대를 해야 했습니다. 지금도 우리가 재림을 준비하는 자들로서 자신의 기준에 맞는 완벽함을 추구하고자 하면 하나님의 뜻을 잃어버립니다. 이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둘 다 가질 수는 없습니다. 교회생활의 전문성, 프로페셔널함을 추구하면 할수록 교회생활은 본질을 잃어버립니다. 그러나 부족하더라도 항상 기뻐하고 쉬지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려고 하면 전문성은 잃어버리겠지만 진실성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사역은 가장 화목하고 가장 은혜로우며 가장 감사한 것이 될 것입니다.
다시 그 사건으로 돌아와 어느 부서에서 성극을 준비한다고 해보십시오. 또 다시 유초등부가 성극을 한다면, 중고등부가 성극을 한다면, 청년부가, 남전도회가, 여전도회가 성극을 한다면 어떻겠습니까? 준비하는 과정에서 혹은 시연하는 과정 중에서 누군가가 실수를 하고 진행이 원활하지 않았고 아쉬움이 남았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정말로 재림을 준비하는 자들이라면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를 원하고 그렇게 하나님의 뜻을 이루다가 예수님을 만나기를 원하는 자들이라면 그들은 항상 기뻐할 것입니다. 쉬지 말고 기도할 것입니다. 범사에 감사할 것입니다. 그 부족함이, 그 어리숙함이, 그 아마추어같은 모습이 오히려 우리가 무엇을 추구했는지를 보게 할 것입니다. 그것은 세상이 알지 못하는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과 감사입니다. 그 한 사람이 그 일을 했다는 것 자체에 대한 보람과 가치입니다. 그러한 자들이 우리의 아이들이고 학생들이고 청년들이고 장년 남자와 여자라는 것이 우리의 기쁨과 감사가 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한 영혼 한 영혼이 그리스도 앞에 서기를 바라셨던 예수님께서 간절히 원하셨던 일입니다.
이렇게 할 때 모든 준비의 마지막 결말이 이루어집니다. 18절 나머지를 읽어보겠습니다. “[살전]5:18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 바로 이것입니다. 이 뜻을 잊어버리지 않는다면 우리의 재림을 준비하는 신앙생활은 놀라운 하나님의 뜻의 성취가 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인 이유는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리스도를 가장 잘 닮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그 누구보다도 가장 항상 기뻐하시며 쉬지않고 기도하시며 범사에 감사하셨던 분은 예수님 한 분 뿐입니다. 그분을 닮을 때에 하나님은 가장 기뻐하십니다. 이제 성도들이 예수님을 닮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따른다면 사역자를 가장 귀히 여기고 성도들과 화목하며 게으른 자들을 권계하며 마음이 약한 자들을 격려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며 모든 사람에게 오래 참으면서 악으로 악을 갚지 말게 하고 모든 사람을 대하여 항상 선을 따를 것입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재림을 가장 잘 분비하는 방법은 바로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잘 행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재림은 하나님의 영광의 시간이 되며 우리도 그 하나님의 영광에 동참하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언젠가 재림하실 예수님을 만나게 되실 여러분,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기억하고 그 뜻에 따라 잘 준비하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럴 때 재림의 영광이 여러분과 함께 할 것입니다. 이러한 은혜가 넘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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