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로 역정' 은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힌다고 합니다.
순례자의 이야기를 그린 '천로 역정'을 읽고, 믿음의 의미를 되새겨 봅시다.
사람들은 누구나 이상향(이상적이며 완전하고 평화로운 상상의 세계)을 꿈꿉니다. 악한 것도 없고 고통도 없는, 오직 선하고 아름다운 것들로 가득 찬 세상 말입니다. 현실이 힘들고 괴로울수록 이상향에 대한 갈망은 더욱 커지지요. 그런 이유 때문일까요? 세상의 모든 종교는 인간의 고통을 달래 주고 악을 경계하기 위한 저마다의 이상향을 갖고 있습니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천국, 불교에서 말하는 극락정토 같은 것들이지요.
영국의 작가 버니언은 『천로 역정』을 통해, 그 당시 사회에 널리 퍼진 부패와 사회악을 꼬집는 한편, 참된 기독교 신자가 가져야 할 올바른 품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는 직설적이면서도 은유적인 목소리로 천국에 이르기 위한 진실된 신앙심과 참된 인간상에 대해 묘사합니다. 『천로 역정』은 분명 기독교 신앙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종교적인 편견이나 선입관을 버리고 읽는다면, 가슴에 전해지는 감동은 누구에게나 똑같을 것입니다. 인간과 세상, 그리고 인간이 겪어야 할 고난과 인내, 그 뒤 마침내 다다르게 되는 최고선(윤리학에서, 인간 행위의 가장 높은 도덕적 이상을 이르는 말)의 경지에 대해 생각하면서 『천로 역정』을 읽어 보기로 합시다.
1. 천상의 도시로 떠나다
‘천로 역정’이라는 제목이 좀 어렵게 느껴지나요? ‘천로’는 ‘천당으로 가는 길, 곧 선을 행하고 공을 세우는 일’을 의미합니다. ‘역정’은 ‘거쳐 온 길, 지나온 과정’이라는 뜻이고요. 요즘 말로 고치면 ‘천국으로 가는 먼 길’ 정도가 되겠네요.
지은이가 꿈 이야기를 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진 『천로 역정』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집니다. 1부는 주인공 ‘크리스찬’이 등에 무거운 짐(죄)을 지고 손에는 한 권의 책(『성경』)을 들고, 고통스럽게 눈물을 흘리는 모습으로 시작합니다. 크리스찬은 자기가 살고 있는 ‘멸망의 도시’가 곧 엄청난 곤경에 빠지게 될 것을 알고 아내와 자식들에게 그 재앙을 예고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믿지 않자 마침내 그들을 두고 집을 떠나지요.
영원한 생명과 구원을 얻기 위해 길을 떠나는 크리스찬. 가족과 주위 사람들은 모두 그런 크라스찬이 미쳤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크리스찬은 길에서 만난 전도사를 통해 ‘생명에 이르는 좁은 문’ 너머의 세계가 있다는 신념을 갖게 됩니다. 그곳에 가면 자신의 등에 얹힌 무거운 짐도 벗어 버릴 수 있고, 영원히 죽지 않고 고통 없이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지요. 참회와 구원, 그리고 영원한 생명을 위하여 길을 떠나지만, 크리스찬의 앞에는 지금까지의 세상살이보다 더 힘들고 어려운 여정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는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지요. ‘고집쟁이, 유순(성질이 부드럽고 순함), 속세 현인, 전도사, 인자(어진 사람), 설명자, 문지기, 수다쟁이, 희망, 신의, ……’ 이름대로 그들은 크리스찬이 만나게 되는 종교적 유혹입니다. 그러나 그들을 만나면서 하나씩 깨달음을 얻어 가기 때문에, 유혹인 동시에 교훈이기도 하지요.
그렇게 여러 사람들을 만나면서 ‘낙담의 늪’과 ‘죽음의 계곡’을 건너고, 또 ‘어려움의 산’을 넘어 ‘허영의 거리’를 지납니다. 크리스찬은 마침내 ‘천상의 도시(천국)’에 도착해, 십자가 앞에서 비로소 등에 짊어진 무거운 짐을 벗게 되지요. 한편 마지막에 그와 동행했던 ‘무지’라는 사람은 진실된 신앙을 증명할 증거가 없어, 천당의 문안까지 들어와서 마지막에 버려지게 됩니다. 그때 크리스찬은 천당에도 지옥으로 가는 문이 나 있는 것을 봅니다. 천당은 그렇게 지옥 가까이에 있었던 것이지요. 마치 지상에 선과 악이 공존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 뒤 꿈에서 깨어난 크리스찬이, 꿈의 비유로 얘기한 진실에 대해 잘 생각해 볼 것을 권유하는 것으로 1부가 끝납니다.
2. 또 다른 여정
『천로 역정』의 2부는 남편을 뒤좇아 떠난 크리스찬의 아내와 아이들의 여행에 관한 기록으로, 천국에 다다르는 또 하나의 여정을 보여 줍니다.
크리스찬의 아내 ‘크리스치아나’는 남편이 순례(종교적으로 의미 있는 곳을 찾아다니며 참배하는 것)의 길을 떠난 뒤 마음의 가책(자기가 저지른 잘못을 마음속으로 깨달아 스스로 책망하는 것)을 느낍니다. 그리고 남편이 불행을 예언했을 때 차갑게 대했던 일과, 집을 떠난 남편이 겪을 괴로움을 떠올리지요. 그녀는 꿈에서 남편을 봅니다. 아름다운 곳에서 왕과 영생자(예수를 믿고 그 가르침을 따르면서 천국에서 영원히 사는 사람)들과 함께 행복하게 살고 있었지요. 더 이상 주저할 것 없이 크리스치아나는 아이들과 함께 크리스찬이 그랬던 것처럼 길을 떠납니다.
크리스치아나도 여행 길에서 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고난을 겪습니다. ‘겁쟁이’를 만나 방해를 받기도 하고, 여행을 좌절시키려는 악마를 꿈에서 만나기도 하지요. 그녀는 두려움을 물리치고, ‘자비심’과 ‘큰 마음’ 등의 도움으로 여행을 계속해 나갑니다. 크리스치아나와 아이들, 그리고 ‘자비심’, ‘정직’, ‘큰 마음’ 일행은 ‘겸손의 계곡’과 ‘죽음의 그늘 골짜기’를 지나, 가이우스의 집에서 정성스런 대접을 받습니다. 그러나 힘든 순례의 길에서 이렇게 좋은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무척 드문 일이었습니다. 큰 위험과 좌절이 기다리고 있는 그들의 여행은 끝없는 고통의 연속이었지요. 그러나 일행은 ‘진리의 용사’와 ‘불굴’을 만나 더욱 강한 신념을 갖게 되고, 그 힘으로 마법에 걸린 땅을 지나 마침내 쁄라 땅에 들어서게 됩니다.
쁄라! 밤낮으로 태양이 비추는 그곳은 왕의 부름을 받기 전에 모든 순례자들이 함께 머무는 곳이었습니다. 그곳에서는 나뭇가지에 달린 과일을 마음대로 따 먹을 수 있었습니다. 그곳은 마치 천국으로 가기 전의 마지막 대기소 같은 곳이었지요. 순례자들은 긴 여행으로 지친 몸과 마음을 쁄라에서 위로받습니다.
3. 지상의 모든 순례자들을 위하여
『천로 역정』은 기독교와 관련 있는 책 가운데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힌다고 합니다. 지은이 버니언은 허가 없이 설교를 했다는 죄목으로 감옥에 갇혀 있을 때 『천로 역정』을 썼습니다. 버니언의 생애 역시 고난으로 가득 찬 가시밭길이었습니다. 자신의 그러한 경험이 소설의 바탕이 되었겠지요.
기본적으로 기독교에 대한 신앙의 토대 위에서 쓰였지만, 그렇다고 해서 『천로 역정』이 기독교 신자들에게만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천로 역정』의 의미를 넓혀 보면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진리와 교훈을 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저마다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순례자일지도 모르니까요. 사람들은 누구나 깨끗하고 아름다운 꿈을 한 가지씩 가슴에 품고 삽니다. 구체적인 모습은 다르더라도 남을 해치지 않고 세상을 이롭게 하는 것이라면, 그 꿈은 각자가 바라는 작은 천국일 것입니다. 그 천국에 다다르기 위해서 우리는 현실의 고난과 위험, 두려움들을 이겨 내야 하는 것이겠지요.
버니언이 『천로 역정』을 쓸 때에는 의로운 순례자의 일생을 통해 기독교적 교리를 일깨울 목적이 있었겠지요. 그러나 이 책을 단순히 종교적 테두리 안에서만 이해하는 것은 몸에 좋고 맛있는 과일을 반쪽만 먹는 것과 같습니다. 『천로 역정』의 진정한 가치는, 인간의 본성과 구원에 대해 깊이 성찰하고, 저마다 품은 이상향에 이르는 올바른 길을 발견하려고 하는 데 있을 것입니다.-박소영/독서평설 명저의 향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