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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마 8; 5-13 다른 사람을 위한 기도의 결실2_5
2018. 11. 2. 금. 금요철야.
*개요: 마태복음 연구 [마]8:5 예수께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한 백부장이 나아와 간구하여 [마]8:6 이르되 주여 내 하인이 중풍병으로 집에 누워 몹시 괴로워하나이다 [마]8:7 이르시되 내가 가서 고쳐 주리라 [마]8:8 백부장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사옵나이다 [마]8:9 나도 남의 수하에 있는 사람이요 내 아래에도 군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 [마]8:10 예수께서 들으시고 놀랍게 여겨 따르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노라 [마]8:11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동 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으려니와 [마]8:12 그 나라의 본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 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마]8:13 예수께서 백부장에게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 하시니 그 즉시 하인이 나으니라
우리 총회에서는 '중보기도'라는 말을 사용하지 말라고 여러 경로를 통해 각 교회에 공지하고 있습니다. 이는 '중보기도'라는 말이 신학적으로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중보’라는 말은 양자의 중간에서 화해시킨다는 말인데, 우리가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하는 것을 중보기도라고 하면 하나님과 그 사람 사이를 화해시킨다는 뜻이 되어 버리고 맙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중보는 오직 한 분 뿐이라고 나와있습니다. "[딤전]2:5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그러므로 우리는 '중보기도'라는 말을 사용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면 ‘다른 사람을 위한 기도’의 의미는 어떤 것인지 성경 말씀을 통해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는 전형적으로 다른 사람을 위해 예수님께 간구하고 있는 사람이 나옵니다. 그는 로마의 백부장이었습니다. 이 백부장은 비록 로마인이었지만,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그 능력과 권세를 믿었습니다. 그만한 믿음은 이스라엘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군인이었습니다. 명령의 상하체계에 익숙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영적인 세계에 있어서 과연 누가 위에 있고 누가 아래에 있는지를 확실하게 알았던 사람입니다. 그의 믿음의 고백을 들어 보십시오. "[마]8:8 백부장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사옵나이다” 그에게 확실하게 느껴졌던 것은 예수님께서 분명히 모든 권세에 명령할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단지 명령만 하면 병마도 사라질 것이라는 믿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믿음을 가지고 주님께 나아왔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사랑하는 종을 위해서 예수님께 간구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다른 사람을 위해 드리는 기도가 무엇인지를 깨닫습니다. 그것은 주님의 힘과 능력과 권세를 믿고 나의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간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간구함에는 두 가지 요소가 있습니다.
첫 번째, 주님을 믿고 간구하는 것입니다. 만약 주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간구한다면 그것은 제대로 된 기도가 아닐 것입니다. 백부장의 믿음에 대해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8:10 예수께서 들으시고 놀랍게 여겨 따르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노라" 이것이 다른 사람을 위한 기도에서 중요한 첫 번째 요소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기도하는 것이나 간구하는 것이 별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백부장에게는 이러한 믿음이 분명히 있었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군대 경험을 통해서 분명하게 체득한 것이었습니다. 그는 그 믿음의 이유를 이렇게 말했습니다. “[마]8:9 나도 남의 수하에 있는 사람이요 내 아래에도 군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 일단 예수님께 그러한 권세가 있음을 믿고 난 다음에는 자연히 여러 악한 세력들이 그 권세 아래에 순종하게 될 것은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졌던 것입니다. 오늘날 믿음이 부족한 성도들에게는 백부장의 ‘이만한 믿음’이 절실합니다.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모르기 때문에 예수님에 대해서 신뢰하지 못하고 불안해 하며 조마조마해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모든 존재 중에서 가장 높으신 분이며 모든 존재에 대해서 명령을 내리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모든 존재가 그로 인해서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예수님을 믿을 때 백부장의 믿음을 따를 수 있습니다.
두 번째, 자신의 불이익을 무릅쓰며 나아와 간구하는 것입니다. 백부장은 자기 자신을 위해서 간구하는 것도 아니고 다른 사람을 위해서 주께 나아와 간구하였습니다. 백부장은 로마인으로서 유대인인 예수님을 만나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로마 백부장이 평범한 이스라엘 사람이었던 예수님을 공개적으로 찾아와 만난다는 것은 자존심 상하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백부장은 전혀 자존심 상해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예수님께서 친히 가서 고치신다고 말씀하실 때에, 겸손하게 예수님의 오심을 감당치 못하겠다고 말합니다. 그는 스스로 죄인이요 이방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예수님에 대해서 겸손해진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권세가 무엇인지 압니다. 하지만, 그 권세로 나아가지 않는다면 그 권세를 통한 도우심을 얻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위해 하는 기도도 마찬가지 입니다. 그 기도는 하나님께서 명하신 것이고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하는 기도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면서 진실한 마음으로 주께 나아오기 보다는 형식적으로 혹은 외식적으로 자기 자신의 유익을 따르다보니 주께 나아오지는 않으면서 다른 사람을 시켜서 하는 기도는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백부장에게 주신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마]8:11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동 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으려니와 [마]8:12 그 나라의 본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 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믿음으로 나아왔을 때 그들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았습니다. 기쁘시게 할 수 없다는 것은 주님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불순종하는 것입니다. 모든 일을 주님은 온전하게 이루십니다. 비록 인간은 악하고 잘못할 지라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를 감싸 주시기 때문에 우리는 여전히 주 앞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위한 기도 속에서 백부장은 예수님께 나아와 간구했습니다. 사랑하는 종의 회복을 위해 그는 예수님께 간구했습니다. 그리고 그 간구함에 대해서 하나님의 들으심을 얻었습니다. 그는 예수님께 믿음이 있었고 그 믿음으로 예수님께 나아옴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그에 대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한 마디로 그분의 권세를 보이셨고 그에게 칭찬하시며 복을 주셨습니다. “[마]8:13 예수께서 백부장에게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 하시니 그 즉시 하인이 나으니라” 이것이 바로 다른 사람의 기도의 결실입니다. 믿음과 나아옴으로 인해서 하나님의 복을 받게 됩니다. 이와 같은 다른 사람을 위한 기도의 의미를 생각하면서 앞으로도 더욱 다른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시고 힘과 능력을 공급해 주신 하나님께 간구하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대한 진실한 믿음과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다른 사람을 위한 기도’를 통해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해 주실 것입니다. 이러한 은혜가 삶 속에 넘치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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