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상담]] 1창 3; 8-13 다른 대상을 의식하는 마음인 두려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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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창 3; 8-13 다른 대상을 의식하는 마음인 두려움2_2c
2018. 11. 25. 주. 주일오후.
*개요: 상담비전, 3.감정, [창]3:8 그들이 그 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창]3:9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창]3:10 이르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창]3:11 이르시되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알렸느냐 내가 네게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열매를 네가 먹었느냐 [창]3:12 아담이 이르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창]3:13 여호와 하나님이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하였느냐 여자가 이르되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지금까지 우리가 살펴본 미움, 분노, 절망은 개인적인 감정에 해당됩니다. 그리고 오늘 살펴볼 두려움은 대인적인 감정에 해당됩니다. 두려움이 대인적인 감정이라는 말은 대상이 존재한다는 의미입니다. 그 대상은 사람일 수도 있고 어떤 존재일 수도 있고 어떤 상황이나 환경일 수도 있습니다. 두려움의 사전적 정의는 ‘누군가를 꺼려하거나 어려워하는 마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전에 누군가를 꺼려하지 않았는데 지금부터는 그를 꺼려하고 어려워하기 시작한다면 그를 두려워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굳이 ‘두렵다’고 말을 하지 않아도 나타나는 반응이 ‘꺼려하거나 어려워한다면’ 그것은 ‘두려움’에 해당합니다. 이 두려움은 미움과는 조금 다릅니다. 미움은 달리 말하면 싫어하는 마음입니다. 자신을 중심으로 해서 다른 대상을 멀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두렵다고 말하면서 그 대상을 싫어하고 배척하고 멀리 하려고 한다면 그것은 정확히 말해서 미워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두려움은 이와 다릅니다. 그 대상을 중심으로 해서 갖는 마음입니다. 그 대상이 중심이 되기 때문에 나는 그보다 낮습니다. 내가 더 작고 초라한 존재입니다. 그리고 때로는 그 대상을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다만 내가 불편해지거나 내가 부자연스러울 수 밖에 없습니다. 그 대상은 나보다 더 우월하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 느끼는 마음이 바로 ‘두려움’입니다. 예를 들면, 쥐나 바퀴벌레나 벌은 내가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미워하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내게서 없어지기를 바랍니다. 내가 그것을 피해서 도망간다 하더라도 나는 그것을 싫어하는 것 뿐입니다. 하지만 천둥이나 번개나 불이나 물난리는 내게 두려움의 대상입니다. 나는 그것을 없앨 수가 없고 다만 힘들어하고 어려워할 뿐입니다. 이렇게 사람들은 자신보다 더 큰 대상에 대해서 두려움을 느낍니다.
본문에서 아담은 두려움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 두려움은 죄를 짓고 난 다음에 하나님께 대한 마음이었습니다. 이전에 아담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늘 하나님을 편하게 대했습니다. 그러나 잘못을 저지르고 난 다음에는 하나님을 피해서 숨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두려워했기 때문입니다. 9,10절을 보십시오. “[창]3:9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창]3:10 이르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그는 자신을 찾는 하나님께 말하기를 자신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숨었다고 했습니다. 이러한 두려움은 올바른 두려움이 아니었습니다. 정말 두려워하였다면 죄를 안지었을 것입니다. 주님을 정말 올바르게 두려워한다면 그분 앞에서 인내하고 순종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면 그렇게 주님을 무서워하여 숨을 필요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한 올바른 두려움은 ‘경외심’이라고 표현됩니다. 그러나 그는 죄를 지었습니다. 그런 다음에 갖게 된 마음이 두려움이었기 때문에 그 두려움은 죄의 결과일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날마다 동산을 거니시는 주님 앞에 나아오지 못하고 주님으로부터 멀어지고 스스로를 숨기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때로 아이들도 이러한 두려움을 가질 때가 있습니다. 뭔가 잘못을 하거나 나쁜 짓을 했을 때 그의 마음은 떨립니다. 힘들어 하거나 어려워합니다. 가끔 둘째 딸은 방에서 뭔가를 하다가 자신을 부르면 굳은 표정으로 후닥닥 나올 때가 있습니다. 낌새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채고 방에 들어가 보면 온갖 화장품이나 물건을 다 꺼내놓고 어질러 놓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다 본능적으로 이러한 두려움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두려움 이면에는 우리가 저지른 죄의 문제가 있습니다.
일반적인 두려움은 잠시 있다가 다 사라집니다. 두려움도 감정이기 때문에 한없이 지속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 두려움은 계속 지속이 되기도 합니다. 불은 타오르다가 꺼지기 마련인데 꺼지지 않는 불이 있다면 뭔가가 계속해서 불을 지피고 있기 때문입니다. 두려움도 빨리 사라지지 않는다면 좀더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두려움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생각해보게 됩니다. 두려워하는 이유, 두려움을 갖게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를 원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앞서 설명 드린 대로 그 두려움의 대상이 자신보다 크고 우월하고 압도적이기 때문에 그 대상에 대해서 무엇인가를 얻기를 원합니다. 그 대상이 무엇인가를 뺏을 까봐 걱정하며 두려워하며 무엇인가를 줄까 봐 역시 두려워하며 걱정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본능적으로 아담의 마음에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피하며 숨었습니다. 8절을 보십시오. “[창]3:8 그들이 그 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그가 하나님의 낯을 피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동산 나무 사이에 숨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부끄러움만 가리지 않았습니다. 그는 아예 자신의 몸 전체를 숨기고 있습니다. 나중에 살펴보겠지만 이것은 수치심이 아닙니다. 두려움입니다. 하나님께 나아가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물론 자신이 지은 죄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죄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그는 하나님께 죄를 지었습니다. 그 죄로 인해서 얻어야 할 것을 얻지 못하리라고 생각되었을 때, 또는 원하지 않는 얻게 되지 않을까를 생각하였을 때 그는 두려워하면서 주님으로부터 숨게 되었습니다. 11,12절을 보십시오. “[창]3:11 이르시되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알렸느냐 내가 네게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열매를 네가 먹었느냐 [창]3:12 아담이 이르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아담은 벗었기 때문에 숨은 것이 아닙니다. 누군가 벗고 있음을 알려주었기 때문에 주님을 두려워하기 시작한 것이 아닙니다. 그가 나무 실과를 먹고 죽을 자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주님의 멍령을 기억했습니다. 실과를 먹는 날에는 죽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실과를 먹고 말았습니다. 들키는 날에는 죽으리라고 생각했고, 그 죽음을 통해 자신의 위치와 신분을 잃어버리는 것을 두려워했습니다. 그래서 숨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두려워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 와는 달리 그리스도의 죄사함을 받은 우리는 주님을 두려워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주님을 경외해야 합니다. 두려움은 올바른 감정이 아닙니다. 그것은 주님으로부터 숨어버리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경외하면서 주님 앞에 나아가야 하지, 주님을 두려워하면서 그분으로부터 멀어져서는 안됩니다. 주님을 두려워한다는 것은 죄를 지었음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아까 예를 든 것처럼 이름을 부를 때 후닥닥 방에서 뛰어 나오는 것은 뭔가 잘못을 저질렀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주님을 두려워한다는 것은 그 전에 뭔가 잘못을 저질렀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두려움이란 좋은 것이 아닙니다. 언제나 앞으로 죄를 짓지 않도록 근신하는 마음이 중요하지 이미 지은 죄로 인해서 두려워하면서 주님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은 올바른 마음이 아닙니다. 롬8:15을 보겠습니다. “[롬]8:15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아버지께 나아오는 것입니다. 주님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이 아니라 나아와야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버리고 주님을 의지하는 마음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디모데후서의 말씀을 보십시오. “[딤후]1:7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 두려워하면 멀어지지만 능력과 사랑과 절제의 마음을 가지면 두려워하는 마음을 버리고 의지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이렇게 나아가면 하나님은 용서의 은혜와 사죄함을 받는 축복을 주십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능력과 사랑을 통해서 관계가 회복되기를 원하시고 두려워하면서 멀어지게 되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두려움은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듭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용서를 구하고 회개로 나아가면 하나님은 용서해 주십니다. 그리고 나서 가져야 하는 마음은 주님을 따르고자 하는 마음입니다. 그러면 절제함으로 죄를 짓지 않게 됩니다. 안타깝게도 하와는 잘못된 아담을 보면서도 여전히 두려움이 시달리게 되었기 때문에 올바른 죄의 고백을 하지 못했습니다. “[창]3:13 여호와 하나님이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하였느냐 여자가 이르되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이러한 하와의 어리석음은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지 못하고 자신의 잘못을 뱀에게 전가함으로써 뱀과의 관계에서 더 큰 벌을 받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살펴본 두려움의 감정을 잘 이해하셔서 악한 두려움에 빠지지 않고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 뿐만 아니라 사람에 대한 두려움에 대해서도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두려움의 실체가 악한 욕심에서 생긴다는 것을 기억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함으로 더욱 근심하고 주님을 경외하는 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삶 속에 가깝게 나타날 것입니다. 이러한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충만하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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