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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실천] 40마 2;1-8 왜 헤롯은 동방박사들을 따라가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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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마 2;1-8 왜 헤롯은 동방박사들을 따라가지 않았는가_1



2010.12.12. 주일오전예배, ‘예수 그리스도’

성탄절이 되면 항상 단골로 등장하는 등장인물이 있습니다. 물론 예수님은 가장 중요한 등장인물이지만 아기일 뿐이기 때문에 큰 역할은 하지 않습니다. 마리아와 요셉도 역시 중요한 인물이기는 하지만 성탄과 관련해서는 베들레헴에 해산할 곳이 없어서 방을 찾아다니는 장면 이외에는 별다른 활약이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탄절 연극이나 장식이나 혹은 조금 확장된 성탄이야기 속에서 정말 빠짐없이 등장하는 중요 인물이 있으니 그들이 바로 동방박사들입니다.

동방박사들은 그 특유의 동화적인 감성과 모티브를 가지고 우리에게 나타납니다. 먼 동방에서부터 별을 연구하는 박사들이 왕으로 태어나신 예수님께 경배하기 위해서 보물을 가지고 찾아온다는 내용은 우리에게 원래 예수님이 그렇게 귀하신 분이었는가?를 새삼스럽게 다시 생각하게 만듭니다. 목동들이 천군천사의 찬양과 경배를 보고 아기 예수님을 찾아오는 것보다 더욱 현실감있고 더욱 진실성있게 느껴집니다. 그들은 정말 아기 예수님의 가치를 그 어떤 영광스러운 왕의 탄생보다도 더욱 고귀하고 아름답게 만든 자들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의 모습을 많은 성탄절 성화속에서 발견합니다. 또한 여러 가지 성탄절 트리속에서도 발견합니다. 예전에 제가 다녔던 교회에서는 동방박사들을 세사람의 모습으로 형상화해서 예배당 정면에 붙여놓기도 했습니다. (그들이 정확히 세사람이 아니라는 이야기는 이제 많이 듣는 이야기가 되었으니까 더이상 언급하지는 않겠습니다.) 어떤 교회는 교회 지붕에다가 동방박사 세사람의 모습을 달아놓기도 하였습니다.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동방박사들이 아기로 태어나신 위대하신 하나님의 아들을 보여주는 중요한 화살표로 중요한 지침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비록 요즘은 동방박사들 트리나 모양을 자주 발견하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역시 그들의 중요성은 끊임없이 부각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등장은 어떤 사람들에게는 사실 그렇게 환영받지 않는 모습으로 나타났습니다. 헤롯과 모든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그의 신하들에게는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를 찾는다고 말하면서 불쑥 방문한 이 동방박사들의 모습은 과히 기분좋은 모습은 아니었던 것입니다. 오히려 이 박사들이 말하고 있는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라는 지칭은 헤롯과 및 그와 함께 한 자들이 큰 소동을 일으키게 하였습니다. 그들이 비록 동방에서 온 권위있고 유명하며 지체높은 자들이라고 하더라도 지금 자신들에게 유일한 왕은 바로 헤롯 자신이며 또한 그와 함께 하고 있는 자들이 유력한 권세를 형성하고 있는데 새롭게 태어난 왕이라는 말은 그 아기가 헤롯의 아들이 아닌 이상, 결코 좋게 들리지가 않는 것입니다.

예를들어 사울왕에게 외국의 사절단이 와서 다윗이 새로 기름부음을 받았으니 축하하러 왔습니다라고 말한다면 사울이 기분이 좋겠습니까? 또한 현직 대통령이 있는데 외국에서 대사들이 와서 다음 대통령으로 어떤 사람이 유력하다는데 그분에게 가서 인사를 하겠습니다라고 한다면 기분이 어떻겠습니까? 그와 같이 헤롯과 그의 일원들도 유대인에게 새로운 왕이 태어났다는 것은 그리 기쁜 일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자신들의 세력과 지배력을 약화시키고 오히려 반역세력을 조장할 수 있는 매우 위험스러운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헤롯 왕과 온 예루살렘은 듣고 소동을 일으키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까지의 내용 속에서 우리는 동방박사들의 갑작스러운 등장이 가져온 헤롯왕과 온 예루살렘의 소동함이 왜 일어났는지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에 이어지는 대목은 도대체 이해하기가 힘든 부분입니다. 왜 그 다음이 이해하기 어려운가를 4절을 보며 확인해보겠습니다.
“4. 왕이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서기관들을 모아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뇨 물으니”

보십시오. 헤롯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을 모아서 새로운 유대인의 왕인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는가를 물어보았습니다. 여기서 ‘그리스도’란 ‘기름부음을 받은 자’라는 뜻의 헬라어입니다. 그리고 기름부음을 받은 자는 왕이 됩니다. 동방박사들이 찾아와서 새로운 왕을 찾았지만 헤롯에게는 아무런 새로 태어난 아들이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헤롯에게서 나지 아니한 다른 왕이 태어났다는 뜻이었고 헤롯은 그 왕이 어디서 태어났는가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성경 속에서 찾아보게 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헤롯왕은 그들로부터 놀라운 대답을 듣게 되었습니다.
“5. 가로되 유대 베들레헴이오니 이는 선지자로 이렇게 기록된바 6. 또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하였음이니이다”

새로운 왕이 예언되어 있었습니다. 그 왕은 결코 자신의 자손이 아니었습니다. 그 왕은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특별한 왕이었습니다. 그는 유대인의 왕으로서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실 새로운 왕이었습니다. 그것을 헤롯은 동방박사들 때문에 서기관들에게서 새롭게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태어나는 장소까지 구체적으로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미 구약에서 새로운 왕의 탄생은 예언되어 있었습니다. 그 왕은 태어날 때부터 메시야, 그리스도, 기름부음을 받고 태어난 사람으로써 그가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하고 온 세상을 구원할 자였습니다. 그것이 이미 오래전부터 이스라엘 민족들에게 예언되어있었고 그들은 자신들에게 새로운 왕이 오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 당시 그들은 로마제국의 지배를 받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헤롯도 로마제국이 허락해준 분봉왕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그러한 새로운 왕의 탄생은 이스라엘의 구원을 의미하는 것이요 새로운 삶의 시작을 알리는 놀라운 소식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알게된 헤롯왕의 반응은 냉담했습니다. 그는 기뻐하지도 반가워하지도 않았습니다. 다만 그는 다른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베들레헴으로 보내면서 아기를 찾거든 꼭 자신에게 알려주어서 자신도 아기에게 경배할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리고 헤롯은 그이외에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정말 헤롯이 왕의 탄생과 자기 나라를 구원해줄 새로운 구원자가 나타났다는 것을 기뻐하고 감사하였다면 동방박사들과 함께 간다든지 혹은 그들을 도와준다든지 아니면 그 외에 어떤 새로운 반응을 보였을 텐데 그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렇습니다. 헤롯은 별로 기쁘지가 않았던 것입니다. 별로 달갑지가 않았던 것입니다. 새로운 왕의 출현으로 인해 소동하게 된 것을 불쾌하게 생각했습니다. 더 나아가서 새로운 왕을 미워하게 되었습니다. 동방박사들은 왕의 자녀가 태어난 줄 알고 헤롯왕에게 갔지만 새로운 왕은 궁궐에 없었습니다. 헤롯왕이 아닌 다른 왕이 등장한 것입니다. 비록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고 그것이 구약의 예언이고 이스라엘의 구원과 회복을 의미하는 놀라운 약속의 성취였다 하더라도 지금 당장 자신의 세력이 약화되는 것은, 지금 당장 자신의 자리가 위협받는 것은, 지금 당장 불편하게 되는 것은 원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헤롯과 그 부하들은 가만히 동방박사들을 다시 보냅니다. 그리고 아기를 찾으면 꼭 연락하라고 합니다. 그러면 가만히 기다리고 있다가 연락이 온 다음에 가서 그 왕으로 태어난 아기를 죽여버리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귀찮게 왔다 갔다 할 필요도 없고 원래 하던 일도 계속 할 수 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자신의 세력을 더욱 굳게하고 더 오래 왕을 해 먹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헤롯과 그의 부하들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은 것입니다.

어쩌면 지금도 동방박사들과 헤롯왕, 그리고 그와 함께 한 사람들의 모습은 지금도 나타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동방박사들처럼 일찍부터 분주히 왕의 나심을 준비하기 위해 부지런함을 보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별을 보고서 일찍부터 선물을 챙겨가지고 긴 여행을 시작했습니다. 그처럼 우리 주변에는 연초부터 혹은 여름부터, 아니면 최소한 12월 초순부터 예수님께 드릴 경배와 찬양을 가지고 12월말 한해의 마지막을 기다려온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12월의 성탄절은 또 다시 찾아온 연말행사가 아닙니다. 한해를 마무리할 때 지나야 하는 통과의례도 아닙니다. 그들은 2010년의 예수님을 간절히 만나고 싶어합니다. 그래서 작년처럼 자신의 가장 중요한 것을 예수님께 내어 드리면서, 예수님 밖에 없음을 예수님이 정말 자신의 왕이심을, 내 마음을 또 한번 다스려 달라고 간구합니다. 그럴 때 그들은 예수님으로 인해 마음의 평안과 기쁨과 희락에 가득 차서 다시 삶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그들이 바로 동방박사들과 같은 자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예수님을 만나는 베들레헴에 이르기 전에 예루살렘에 도달하게 되고 그들은 헤롯과 그의 부하들과 만나게 됩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을 왕으로 섬기며 만나고자 하는 동방박사들과 예수님을 적으로 생각하며 그를 죽이고자 하는 헤롯일당이 바로 그곳에서 마주칩니다.
어떤 사람들은 정말 헤롯 일당들처럼 예수님께 관심이 없습니다. 그들에게 예수님이 오신 성탄절은 번거롭고 귀찮은 시간일 뿐입니다. 그로 인해서 생겨나는 모든 모임과 준비들은 전부 자신이 하려고 했던 것을 하지 못하게 막는 방해물일 뿐입니다. 잠깐 파문이 일어날 수는 있고 약간 소동할 수는 있을 것입니다. ‘그래 맞아 성탄절이었지, 예수님이 오신 날이지, 예수님을 생각해야지..’그러나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동방박사들을 따라서 예수님을 찾아나서기에는 열의가 부족합니다. 그러고 싶은 마음도 없습니다. 꼭 그래야 하나라는 의구심도 듭니다. 그래서 그냥 자리에 주저앉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헤롯일당처럼 찾아내어서 없애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마음 속 한구석에 자리잡는 것은 이 분주함이 빨리 지나갔으면 하는 생각입니다. 어서 성탄절의 떠들썩함과 소란은 사라지고 다시 조용해져서 원래 하던 일을 계속 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역시 예수님이 조용히 사라져 주었으면하고 바라는 마음은 헤롯일당과 크게 다를 바가 없습니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요? 동방박사들같이 열심있는 사람들이 존재하는데 헤롯일당들과 같은 사람들은 왜 이렇게 예수님에 대해서 아무런 열의가 없게 되어 버렸을까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그들은 이스라엘 사람들 아닙니까? 그들은 대제사장들아닙니까? 그들은 서기관들 아닙니까? 그들은 백성 중에서 높은 지도자들 아닙니까? 그런 그들이 왜 그렇게 예수님에 대해서 무기력하게 변했을까요? 왜 그렇게 적대적으로 변했을까요?
헤롯일당 같은 오늘날의 사람들을 보십시오. 왜 그렇게 그들은 변해버렸을까요? 왕년에는 성탄절에 뜨겁게 찬양하던 자가 아니었습니까? 열심히 연극준비를 하던 자가 아니었습니까? 즐겁게 모여서 하나님을 찬양하던 자가 아니었습니까? 때로는 새벽송도 하고 목자들처럼 밤을 지새우며 하나님을 찬양하던 자들이 아니었습니까? 그런데 왜 이제는 아무런 열의도 없고 아무런 감흥도 없고 아무런 느낌도 없이 빨리 조용히 성탄절이 지나가기 만을 바라게 되었을까요?

그들은 너무 굳어버린 것입니다. 예전에는 따뜻했는데 예전에는 촉촉했는데 이제는 너무 강퍅해졌습니다. 너무 딱딱해졌습니다. 너무 말라버렸습니다. 그래서 예전같지가 않은 것입니다. 몸과 마음이 변해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변해버린 데에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그저 시간이 흘렀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그들이 바라보고 있던 다른 것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고 세상의 즐거움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굳어버린 것이었습니다.

창세기 19장에는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키시는 하나님의 모습이 나타납니다. 죄악으로 물들고 악행을 스스럼없이 행하던 소돔과 고모라는 그 모습을 더는 못참으시던 하나님에 의해 유황불로 멸망당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때 그 성에서 피신하여 나오던 롯의 가족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멸망당하지 않고 피신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성에서 나오고 있는 중이었는데 하나님은 그들에게 명령했습니다.
“창19:17그 사람들이 그들을 밖으로 이끌어낸 후에 이르되 도망하여 생명을 보존하라 돌아보거나 들에 머무르거나 하지 말고 산으로 도망하여 멸망함을 면하라”

절대 뒤를 돌아보지 말아라. 절대 들에 머무르지 말아라. 그것이 소돔과 고모라에서 구원받은 롯의 가족들에게 대한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하지만 한 사람은 그 명령을 어겼습니다. 그는 롯의 아내였습니다. 그녀는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그녀는 두고 나오는 세상 것들에 대한 아쉬움과 연민에 빠졌습니다. 안타까움과 괴로움이 들었습니다. 그것들을 멸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미움과 원망에 차올랐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조금씩 조금씩 소금기둥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발을 쓸 수가 없었습니다. 소금이 되어버려서, 그 다음에는 손을 쓸 수가 없었습니다. 소금이 되어버려서, 그 다음에는 가슴을 움직일 수가 없었습니다. 소금이 되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윽고 머리마저 소금이 되어버렸고 그녀는 죽어버렸습니다. 그렇게 롯의 아내는 소금기둥이 되었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소금기둥이 되어갑니다. 이 세상의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으로 인해 우리들에게는 더 많은 욕구가 자극됩니다. 더 많은 유익을 원하고 더 큰 편안함을 원하고 더 강렬한 쾌락을 원하고 더 확실한 인정과 더 구체적인 존경과 더 자극적인 지배를 원함으로 인해 우리는 소금기둥이 되어갑니다. 그런 욕구가 우리의 소원을 망각하게 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저버리게 하며 또 죄를 짓고 또 죄를 짓고 예수님을 왕으로 섬기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적으로 생각하면서 살아가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반응을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때로는 동방박사들처럼 멀리서 찾아와서 자신의 유익을 버리고 자신의 편안을 버리고 자신의 쾌락을 포기하고 주님께 나아와 변화되는 사람들이 되고 싶어하기도 했지만 너무나 소금기둥이 되어버려서 움직이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움직이고 싶어도 움직일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동방박사들과 같은 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살지만 이 세상에 속한 자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별을 보며 사는 자들입니다. 하늘의 영광과 권세를 사모하며 사는 자들입니다.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속해 있고 이 세상에서는 하나님의 복음을 가지고 그 복음을 전파하며 나타내며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 예수님을 찾아가자 할때 언제든지 따라갈 수 있으며 누군가 예수님을 의지하자 할 때 언제든지 동참할 수 있으며 누군가 예수님께 예물을 드리자고 할 때에 함께 예물을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예수님의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것을 잊지 않을 때 우리의 갈길이 정해집니다. 우리의 갈곳이 정해집니다. 우리가 만날 사람이 누군지가 정해집니다.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가 정해집니다. 동방박사들에게 천사들이 헤롯일당을 만나지 말라고 하신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위험을 피하고 평강으로 의로움으로 살아나갈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탄절 이후의 새해가 기쁜 한해가 됩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늘 승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가 그렇게 승리하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오늘 우리가 본 동방박사들의 여정의 시작은 예수님이 태어나신 다음에 시작되었습니다. 우리가 읽은 본문 마태복음 2:1절을 보십시오.
“1 헤롯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말하되”

여기 뭐라고 되어 있습니까?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라고 되어 있지요? 예수님은 이미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그 아기 예수님은 동방박사들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주님도 우리에게 대해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성탄절에 주님을 만나기를, 주님을 사모하며 사모하다가 우리를 구원하신 그 아기 예수님을 만나기를, 어쩌면 방긋 방긋 웃으면서 우리를 만나주실 것입니다. 모든 것을 다 아신다는 표정으로 우리를 쳐다보실 것입니다. 우리가 그분을 한번 안을 수 있기라도 한다면 그분은 우리를 꼭 안아주실 것입니다. 수고했다고 나를 만나러 오느라 그 먼길을 오느라 수고했다고 주님은 우리를 안아주실입니다. 비록 아기시지만 우리를 구원하러 오신 그 예수님은 우리의 창조자이시기에 우리를 사랑해주실 것입니다. 다가오는 성탄절에 그런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그 날을 기다리고 사모하면서 우리 모두가 동방박사들이 누렸던 은혜를 올해에 함께 누리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개요 {4서신서} <1적용> <4이야기> [2분류-선택]~[0복음-심판]
1. 동방박사들은 멀리서 왕이 나심을 보고 그 왕에게 경배하기 위해서 자신의 일을 제쳐두고 나아왔습니다.
2. 헤롯과 그의 부하들은 왕이 태어났다는 소식을 듣고도 자신의 일을 붙들면서 왕에게 나아가지 않았습니다.
3. 우리는 세상에 얽매어 있지 않을 때 우리를 인도하시는 인도하심에 따라서 움직일 수 있습니다.
4. 하나님은 이미 태어 나셨고 우리의 반응을 살펴보시면서 우리를 더 좋은 곳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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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롬 1; 18-23 하나님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 1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3-09-30 1 23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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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행 1; 22-26 부활하심을 증언할 사람이 되게 함 1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3-09-23 1 2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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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행 1; 12-17 마음을 같이 하여 직무를 행하는 성도 1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3-09-16 1 23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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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행 1; 6-11 성도는 하나님 나라를 위해 무슨 일을 해야 하는가 1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3-09-09 0 2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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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행 1; 1-5 약속을 기다리는 하나님의 성도들 1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3-09-02 2 2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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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요 3; 12-16 하나님의 성전 된 성도가 하는 일 1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3-08-26 1 2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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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요 3; 1-5 하나님의 나라를 준비하는 성도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3-08-19 1 14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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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요 2; 13-19 사흘 동안에 세워진 성전 1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3-08-12 1 22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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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요 2; 6-11 돌항아리의 물이 포도주가 됨 1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3-08-05 1 2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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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눅 4; 24-30 고향에서 환영을 받지 못하는 이유 1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3-07-29 0 2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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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눅 4; 14-21 말씀을 삶 속에 응하게 하심 1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3-07-22 1 2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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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막 2; 16-20 제자들이 예수님의 사람들인 것을 나타내는 때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3-06-24 1 13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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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막 2; 6-11 죄 사함에 대한 권세와 구원의 의미 1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3-06-10 2 27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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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마 2; 1-6 다스리고 목자가 되시는 그리스도의 오심 1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3-05-27 2 2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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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마 1; 18-23 아담과 다른 예수님의 출생의 은혜 1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3-05-20 0 31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