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용서] 36습 3; 14-20 주의 성도를 기뻐하시는 하나님Loading the player... .
36습 3; 14-20 주의 성도를 기뻐하시는 하나님_1
2023. 1. 29. 주. 주일오전예배.
*개요: 스바냐에서 사람을 세움, 54용서,
[습]3:14 시온의 딸아 노래할지어다 이스라엘아 기쁘게 부를지어다 예루살렘 딸아 전심으로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습]3:15 여호와가 네 형벌을 제거하였고 네 원수를 쫓아냈으며 이스라엘 왕 여호와가 네 가운데 계시니 네가 다시는 화를 당할까 두려워하지 아니할 것이라 [습]3:16 그 날에 사람이 예루살렘에 이르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시온아 네 손을 늘어뜨리지 말라 [습]3:17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습]3:18 내가 절기로 말미암아 근심하는 자들을 모으리니 그들은 네게 속한 자라 그들에게 지워진 짐이 치욕이 되었느니라 [습]3:19 그 때에 내가 너를 괴롭게 하는 자를 다 벌하고 저는 자를 구원하며 쫓겨난 자를 모으며 온 세상에서 수욕 받는 자에게 칭찬과 명성을 얻게 하리라 [습]3:20 내가 그 때에 너희를 이끌고 그 때에 너희를 모을지라 내가 너희 목전에서 너희의 사로잡힘을 돌이킬 때에 너희에게 천하 만민 가운데서 명성과 칭찬을 얻게 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1월 한 달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연초의 분주함을 느끼면서 설 명절까지 지내고 나니 마치 한 해가 지나간 것 같은 느낌입니다. 앞으로 2월이 시작되고 짧은 한 달이 지나고 나면 더더욱 시간의 빠름을 실감하게 될 것입니다. 멀리 바라보면 미래는 긴 시간이지만 짧게 바라보면 현재는 짧은 시간임을 자각합니다. 스바냐도 시작한지 엊그제 같은데 벌써 끝을 내야 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이 끝을 잘 정리하면 더 큰 목표를 바라볼 수 있습니다. 시간이 빠르지만 목표를 바라본다면 그 빠른 시간도 보람되고 가치 있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면에서 신앙적으로 부쩍 성장한 자기 자신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스바냐서를 통해서 얻는 깨달음이 무엇인가요? 그것은 하나님의 심판 속에서 용서의 의미를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알게 된 용서의 의미는 우리로 하여금 심판을 통해서 이루고자 하셨던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합니다. 그것은 불순종과 교만과 무시함으로 인해 이방인들이 받았던 심판을 보면서 용서를 받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순종과 겸손과 경배를 할 수 있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냥 용서를 받고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용서를 받고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용서를 받은 사람이 되어서 기쁨으로 놀라운 일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심판이 아닌 용서를 받았다는 것은 앞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놀라운 동기와 능력이 됩니다. 기쁨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심판을 통해 용서의 가치를 알게 되었을 때 성도는 기뻐할 수 있다. 그 기쁨의 모습을 오늘 말씀에서는 14, 15절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습]3:14 시온의 딸아 노래할지어다 이스라엘아 기쁘게 부를지어다 예루살렘 딸아 전심으로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습]3:15 여호와가 네 형벌을 제거하였고 네 원수를 쫓아냈으며 이스라엘 왕 여호와가 네 가운데 계시니 네가 다시는 화를 당할까 두려워하지 아니할 것이라” 이 말씀의 내용이 바로 용서받은 이스라엘에 대한 설명입니다. 시온의 딸이 노래하고 이스라엘이 기쁘게 부르고 예루살렘의 딸이 전심으로 기뻐하며 즐거워하는 이유는 여호와께서 형벌을 제거하셨고 원수를 쫓아내셨으며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심판을 걱정할 필요가 없게 되었으며 하나님의 보호를 받으면서 살게 되었으니 이러한 기쁨이 있는 것입니다. 이런 기쁨을 현대에 비유한다면 이것은 마치 대출과 채무를 탕감 받는 것과 같습니다. 무거운 대출의 짐을 벗을 수만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를 항상 생각하고 있는데 마침내 누군가의 도움으로 짐을 벗게 된다면 얼마나 기쁘고 감사하겠습니까? 그렇게 해주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감당해야 하는 죄의 값을 사해 주셨습니다. 죄의 결과로 맞이해야 했던 커다란 심판의 고통을 하나님은 예수님을 보내셔서 대신 사해 주셨습니다. 그것을 기억할 때 우리는 하나님께 대한 절실한 감사와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주변을 둘러보면 우리는 죄의 값을 치르며 사는 사람들을 봅니다. 그들을 통해서 우리가 얻은 은혜를 생각해야 합니다. 상대적인 자각은 아이러니하게도 더 낮게 몸을 숙일 때 일어납니다. 어려운 사람을 도와줄 때, 힘든 사람을 격려할 때, 고통받는 사람을 안타까워할 때 우리 자신에게는 그렇게 할 수 있음에 대해서 감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다른 사람에게는 관심을 끊고 자기 만의 세계 속에서 살 때 마음은 더욱 강퍅해 집니다. 더 자기 만족을 위해서 살고 더 이기적이 되며 더 큰 결핍을 느끼면서 더 괴로워집니다. 그 자체가 하나님이 주시는 형벌을 겪는 것입니다.
-죄에 얽매이는 것이 아니라 의에 자유로워지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는 그렇게 되지 않도록 더욱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것이 익숙해져야 계속해서 하나님의 용서 속에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죄사함의 안도감에서 더욱 발전되어서 하나님의 영광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단순히 죄를 사해주시는 것만이 아니라 더 나아가서 의를 더욱 높여 주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그 가능성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16, 17절을 보십시오. “[습]3:16 그 날에 사람이 예루살렘에 이르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시온아 네 손을 늘어뜨리지 말라 [습]3:17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이 유명한 구절은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시는가를 보여줍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바라볼 때 하나님 안에서 평안과 안정을 누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며 나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잠잠히 사랑하시며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자각이 우리로 하여금 의에 대해서 열심을 갖게 합니다. 의에 대해서 자유로워지는 것입니다. 의로운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선하고 의로운 일을 제한하거나 억제하지 않으십니다. 그것을 지지하시고 후원하시며 격려하십니다. 그 소망을 가질 때 우리는 더욱 기쁨을 가지고 일할 수 있습니다. 새로운 회기가 시작되기 전에 조직의 모든 부서들은 다음 회기동안 하려고 하는 일들에 대한 예산을 청구합니다. 이런 저런 일을 한다고 계획을 세우고 그에 대한 예산을 청구하고 그 예산이 다 확보가 되면 그 다음부터는 열심히 일을 할 수 있습니다. 확보된 예산으로 다양한 조직 내의 사업을 진행할 수 있는 것입니다. 충분한 지원과 격려가 있을 때 일하는 것이 즐겁습니다. 기쁨으로 그 일을 행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뒷받침을 든든히 해주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성도의 모습을 보며 하나님은 기뻐하신다. 우리에게 용서가 있다는 것은 바로 이런 의미입니다. 과거적인 의미만 붙들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미래적인 의미로 이어지기 때문에 구체적인 목표가 생깁니다. 사도 바울은 죄사함 받은 기쁨으로 살았지만 그것 만이 전부가 아니었습니다. 디모데후서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딤후]4:7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딤후]4:8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하나님은 바울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보시면서 면류관을 예비해 주셨습니다. 우리에게는 그런 면류관이 없겠습니까? 아닙니다. 저와 여러분에게도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 주님의 면류관이 있습니다. 과거에 용서받았기 때문에 현재에 칭찬받을 수 있습니다. 또한 미래에 면류관을 받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랑하시기 때문에 용서하셨던 것이고 사랑하셔서 칭찬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기뻐하심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 사랑하심으로 모든 것이 설명됩니다. 그냥 괜히 기쁨을 이기지 못하고 잠잠히 사랑하시고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정말 사랑하시니까 그렇게 하십니다. 그 사랑을 우리는 삶 속에서 종종 느낍니다. 여러분이 사랑하는 어떤 사람, 존재, 대상에서 우리는 그 비슷한 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끝없이 사랑하고 끝없이 좋아지는 대상을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에게도 그런 사랑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바로 그런 사랑을 우리에 대해서 가지고 계십니다. 그래서 스바냐 선지자를 통해서 그 사랑을 나타내셨습니다. 그 말씀을 보면서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참 사랑하시는구나를 이해해야 합니다.
-주의 기뻐하심을 생각하며 칭찬과 명성을 얻는 자들이 되자. 이제 주의 기뻐하심을 기억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방법을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서 칭찬과 명성을 얻게 하십니다. “[습]3:19 그 때에 내가 너를 괴롭게 하는 자를 다 벌하고 저는 자를 구원하며 쫓겨난 자를 모으며 온 세상에서 수욕 받는 자에게 칭찬과 명성을 얻게 하리라 [습]3:20 내가 그 때에 너희를 이끌고 그 때에 너희를 모을지라 내가 너희 목전에서 너희의 사로잡힘을 돌이킬 때에 너희에게 천하 만민 가운데서 명성과 칭찬을 얻게 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전에 수욕 받았으나 이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자가 칭찬과 명성을 얻게 하고 하나님에 의해서 모여지고 사로잡힘에서 풀려나서 자유로움을 갖는 그분의 백성들이 명성과 칭찬을 얻게 하십니다. 그런 기회를 거부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되는 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우리도 기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기뻐하시듯 우리도 하나님께 대해서 기뻐할 수 있습니다. 그런 기쁨의 모습을 종종 운동경기에서도 봅니다. 그들의 뜨거운 함성과 환호를 봅니다. 아마 하나님도 그러시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스바냐를 통해서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리고 그 영광을 위해서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그럴 때 우리가 스바냐서의 주인공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성도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에게 그러한 결심과 다짐이 있어서 날마다 새로운 힘을 얻으며 기쁨 속에서 거하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구성: 분석적 해석 1. 심판을 통해 용서의 가치를 알게 되었을 때 성도는 기뻐할 수 있다. 2. 죄에 얽매이는 것이 아니라 의에 자유로워지는 것이 중요하다. 3. 하나님과 동행하는 성도의 모습을 보며 하나님은 기뻐하신다. 4. 주의 기뻐하심을 생각하며 칭찬과 명성을 얻는 자들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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