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교육] 40마 26; 6-16 다양한 관점의 생각으로 묵상하라2Loading the player... Loading the player... *
40마 26; 6-16 다양한 관점의 생각으로 묵상하라2_2b
2019. 6. 2. 주. 주일오후.
*개요: 성경비전, [마]26:6 예수께서 베다니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 계실 때에 [마]26:7 한 여자가 매우 귀한 향유 한 옥합을 가지고 나아와서 식사하시는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 [마]26:8 제자들이 보고 분개하여 이르되 무슨 의도로 이것을 허비하느냐 [마]26:9 이것을 비싼 값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 하거늘 [마]26:10 예수께서 아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이 여자를 괴롭게 하느냐 그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마]26:11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마]26:12 이 여자가 내 몸에 이 향유를 부은 것은 내 장례를 위하여 함이니라 [마]26:13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서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하시니라 [마]26:14 그 때에 열둘 중의 하나인 가룟 유다라 하는 자가 대제사장들에게 가서 말하되 [마]26:15 내가 예수를 너희에게 넘겨 주리니 얼마나 주려느냐 하니 그들이 은 삼십을 달아 주거늘 [마]26:16 그가 그 때부터 예수를 넘겨 줄 기회를 찾더라
성경연구를 비전으로 삼아서 하나님의 사역을 준비할 때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성경을 잘 해석하는 일입니다. 그 성경의 내용을 많이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성경을 해석하는 틀을 가지는 것입니다. 각 교회에서는 다양한 방식을 통해서 성경을 연구하는 자신만의 방법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그 속에서 각각의 교회마다 자기교회만의 색깔을 가지고 성경을 연구합니다. 우리도 역시 우리 교회만의 비전과 목표를 가지고 성경은 연구합니다. 특히 우리 교회는 이 모든 성경공부의 과정을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성경연구법을 통해서 진행합니다. 적용적해석, 관점적해석, 분석적해석, 극본적해석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 방법들은 마치 햇빛에 스펙트럼을 대는 것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풍성하게 깨달을 수 있도록 돕습니다. 그래서 성도들이 성경 그 자체에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와 묵상을 얻게 하려고 합니다. 오늘 보려고 하는 관점적해석은 이와 같은 목표를 가지고 성경말씀을 다음과 같은 네 가지 관점에 따라서 나누는 성경연구방법입니다. ‘1자신, 2타인, 3하나님, 4사탄’ 함께 읽은 말씀을 통해 함께 성경말씀을 살펴보면서 관점적 해석을 해보려고 합니다. 이러한 다음과 같은 네 가지의 해석을 해볼 때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풍성하게 깨닫게 되는 시간을 갖게 됩니다.
첫 번째, 자신의 관점으로 주님을 위해 행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임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 여인은 값비싼 향유를 주님께 부었습니다. 7절을 보십시오. “[마]26:7 한 여자가 매우 귀한 향유 한 옥합을 가지고 나아와서 식사하시는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 이것은 주님을 당황스럽게 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식사하시는 예수님은 식사하는 태도로 앉아 계시는 예수님의 의미였습니다. 유대인들은 식사할 때에 비스듬히 기대어 앉아서 식사를 하였는데 예수님은 바로 그렇게 앉아 계셨습니다. 또한 식사시간에 향유를 붓는 것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그 당시의 식사예절이기도 하였고 향유를 쏟아붓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아무도 여기에 대해서는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당연하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값비싼 향유를 주님께 부었다는 점입니다. 이 여인이 이렇게 한 것은 주님이 가장 중요하시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여인이 이렇게 했던 이유는 예수님의 은혜가 감사하였기 때문에 그분께 향유를 바쳤던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 그러한 사랑과 헌신을 드렸습니다 . 우리가 주님께 행하는 일들이나 주님을 위하여 하는 일들은 모두 주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와 기쁨의 표시입니다. 그럴 때 주님은 영광을 받으십니다. 우리도 그런 기쁨으로 봉사할 때가 있고 헌신할 때가 있지 않습니까? 그것은 바로 주님께서 주신 은혜에 기쁨으로 화답한다는 의미가 됩니다.
두 번째, 다른 사람의 관점으로 볼 때 제자들은 예수님을 위해서 향유를 붓는 것보다는 차라리 팔아서 가난한 자들에게 주는 것이 더 나은 일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것이 더 우선적인 일이고 더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8절을 보십시오. “[마]26:8 제자들이 보고 분개하여 이르되 무슨 의도로 이것을 허비하느냐 [마]26:9 이것을 비싼 값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 하거늘” 그들에게는 예수님보다 가난한 자들이 더 중요했습니다. 그 향유로 많은 값을 받고 파는 것을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유향은 없어도 살 수 있지만 가난한 자들은 돈이 필요했습니다. 그 돈은 어쩌면 그들이 살아갈 수 있게도 했을 것입니다. 이것이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자 관점이었습니다. 오늘날 이러한 첨예하게 대립되는 관점이 여전히 존재합니다. 교회에서 사용되는 모든 헌신이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었으면 좋으리라는 생각이 있습니다. 교회에서 드려지는 모든 물질이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었으면 좋으리라는 생각이 있습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교회에는 교회의 것이, 가난한 자들에게는 가난한 자들의 받아야 할 것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것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어져야 한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역시 그 반대도 마찬가지입니다. 가난한 자들에게 주어야 할 것을 교회에 주는 것이 안타까운 것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것은 모두 사람의 뜻이었습니다. 이와 다른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다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보아야 합니다.
세 번째, 하나님께서는 믿는 자들이 그분의 뜻과 계획을 더 우선적으로 생각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러한 원리를 말씀하시고 그 여인을 칭찬하셨습니다. “[마]26:10 예수께서 아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이 여자를 괴롭게 하느냐 그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예수님은 여자를 괴롭게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여자는 좋은 일을 하였습니다. 그렇다고 가난한 자들에게 나쁜 일을 한 것도 아닙니다. 예수님께 행한 일은 가난한 자들에게 돌아가는 것은 아니었지만 더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지금 예수님은 십자가를 앞두고 계십니다. 그 십자가 전에 이 여인이 한 일은 바로 예수님의 죽으심을 빛내는 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시간 속에서 여인의 행한 일은 가장 적절한 타이밍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26:11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마]26:12 이 여자가 내 몸에 이 향유를 부은 것은 내 장례를 위하여 함이니라” 그 중요한 순간을 놓치지 않도록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주님을 가장 우선순위로 하라고 말입니다. 향유를 붓지 않는다고 예수님의 일이 중단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때 유향을 부음으로써 그 여인의 헌신이 빛났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그렇게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사람들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그런 중요한 순간은 항상 예수님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할 때만이 나타납니다.
마지막으로 네 번째, 사탄은 성도들을 미혹하여서 더욱 악으로 나아가게 만듭니다. 사탄은 어떤 갈등이든지 어떤 대립이든지 어떤 고민이든지 그 속에서 주님의 제자들이 죄짓게 되고 실족하게 되고 망하게 되기를 원합입니다. 결국 이 일에서도 사탄이 한 일을 보십시오. 가난한 자들에게 주는 것이 낫다고 한 사람들은 여러 명의 제자들이었지만 오직 가룟 유다는 사탄의 미혹을 받아서 더욱 악해졌습니다. 14절을 보십니다. “[마]26:14 그 때에 열둘 중의 하나인 가룟 유다라 하는 자가 대제사장들에게 가서 말하되 [마]26:15 내가 예수를 너희에게 넘겨 주리니 얼마나 주려느냐 하니 그들이 은 삼십을 달아 주거늘 [마]26:16 그가 그 때부터 예수를 넘겨 줄 기회를 찾더라” 그가 그렇게 변해버린 것은 향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않느냐고 말했던 주도적인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훈계를 잘 받아서 겸손하게 행했으면 좋았겠지만 그 속에는 예수님께 대한 반발심이 있어서 그렇게 말하면 할 수록 더욱 예수님을 대적하였습니다. 분노의 마음도 있었을 것입니다. 결국 예수님을 팔아버리는 제자가 되었고 그로 인해서 사탄에게 이끌리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 자신이 사탄에게 마음을 열어버렸기 때문에 사탄이 그 마음 속에 들어갔습니다. “[눅]22:3 열둘 중의 하나인 가룟인이라 부르는 유다에게 사탄이 들어가니” 그는 예수님의 교훈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감정적으로 대응했습니다. 그럴 때 사탄이 그를 미혹했고 결국은 자기 자신에게 커다란 해가 되는 가장 큰 악을 행했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사탄을 경계하며 우리 마음이 오직 예수님의 생각에만 순종해야 할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으로 더욱 나아갈 수 있습니다. 말씀에 대한 해석의 차이로 한 사람은 더욱 주님께 나아가고 한 사람은 더욱 주님으로부터 멀어졌습니다. 여러가지 관점을 기억하면서 우리는 힘써 하나님께로 나아갑시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다른 사람들의 모범이 될 수 있도록 은혜를 주실 것입니다. 그러한 은혜를 온전히 누리시는 저와 여러분되시기를 축원합니다. 11주제설교 관련글[더보기]16설교소감 관련글[더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