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2:1 내 형제들아 영광의 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너희가 가졌으니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지 말라
[약]2:2 만일 너희 회당에 금 가락지를 끼고 아름다운 옷을 입은 람이 들어오고 또 남루한 옷을 입은 가난한 사람이들어올 때에
[약]2:3 너희가 아름다운 옷을 입은 자를 눈여겨 보고 말하되 여기 좋은 자리에 앉으소서 하고 또 가난한 자에게 말하되너는 거기 서 있든지 내 발등상 아래에 앉으라 하면
[약]2:4 너희끼리 서로 차별하며 악한 생각으로 판단하는 자가 되는 것이 아니냐
[약]2:5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들을지어다 하나님이 세상에서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또 자기를 사랑하는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상속으로 받게 하지 아니하셨느냐
[약]2:6 너희는 도리어 가난한 자를 업신여겼도다 부자는 너희를 억압하며 법정으로 끌고 가지 아니하느냐
[약]2:7 그들은 너희에게 대하여 일컫는 바 그 아름다운 이름을 비방하지 아니하느냐
하나님 안에서의 경건은 성령충만함으로 행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여 하나님께 헌신되는 것이 바로 경건이었습니다. 그러한경건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전파하는것과는 다른 하나님의 뜻을 눈에 보이게 나타나는 것이었습니다. 그럴 때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은 하나님의뜻이 이런 것이구나라는 것을 세상 사람들에게 나타내 보이게 됩니다.
야고보서 1장은27절 말씀으로 끝이 났습니다.
“[약]1:27 하나님 아버지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
이어지는 2장은 1절 말씀으로 시작됩니다.
“[약]2:1 내 형제들아영광의 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너희가 가졌으니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지 말라”
이 두 구절 사이의 연결성은 바로 경건을 실천하고 하나님의뜻을 세상에 나타내는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냥 사람을 차별하지 말라는 것이아닙니다. 그것은 세상 사람들의 도덕에 불과합니다. 성경에서사람을 차별하지 않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그것은 영광의 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가졌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 이유가 세상 사람들과 전혀 다릅니다. 그래서 세상사람들은 그것을 도덕이라고 말하지만 그리스도인은 그것이 신앙이 됩니다.
이러한 말씀의 가치는 다른 종교와 비교해 볼 때 너무 분명하게나타납니다. 이슬람교에서는 주인과 노예 관계, 남자와 여자의관계, 신자와 불신자의 관계 등의 세 가지의 불평등을 경전 상에서 공인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슬람을 버리고 타종교로 개종하는 이른바 배교행위에 대해서는 공적이든 사적이든 보복이 따라옵니다. 일례로 이슬람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임산부에게 수단 정부가 사형을 선고한 것을 국제사회가 구한 사건이 2014년에 있었습니다. 무슬림 이민자들도 인권 의식이 낮다보니 이민와서도 장소를 구분못하고 인권침해 범죄 저질러서 처벌당하는게 다반사입니다. 경전자체가 폭력적이다 보니신자들도 자연히 폭력적이 되어 버립니다.
그러나 기독교에서 성경의 말씀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무엇입니까?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세상의 죄를 위해서 죽으셨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온세상을 위해서 끊임없이 복음을 전하고 그들을 용서하고 그들에 대한 사랑을 가져야 합니다. 그것이 크신사랑으로 세상을 위해서 죽으신 예수님을 믿는 자들의 모습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는것은 예수님의 뜻에 어긋나는 것입니다.
이제 예수님의 뜻에 합당하고 그분의 목적에 맞게 행동한다는것이 무엇인가를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약]2:2 만일 너희회당에 금 가락지를 끼고 아름다운 옷을 입은 사람이 들어오고 또 남루한 옷을 입은 가난한 사람이 들어올 때에
[약]2:3 너희가아름다운 옷을 입은 자를 눈여겨 보고 말하되 여기 좋은 자리에 앉으소서 하고 또 가난한 자에게 말하되 너는 거기 서 있든지 내 발등상 아래에 앉으라하면
[약]2:4 너희끼리서로 차별하며 악한 생각으로 판단하는 자가 되는 것이 아니냐”
예수님의 뜻에 따른다는 것은 마치 예수님께서 행하셨을 모습대로행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아름다운 옷을 입은 자를 눈여겨보고 여기 좋은 자리에 앉으소서’라고 하시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겠습니까? 또는 가난한 자에게는 ‘너는 거기 서 있든지 내 발 아래 앉든지하라’는 것을 상상할 수 있겠습니까? 전혀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마음의 중심을 보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겉모습을 보시는 것이 아니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수로보니게 여인이 와서 자신의 딸을 고쳐달라고했을 때에도 ‘자녀에게 줄 떡을 개에게 주는 것이 옳지 않다’고하신 분이셨습니다. 수로보니게 사람은 헬라 귀족이었습니다. 지체높은사람에 대해서도 예수님은 결코 주눅들거나 아부하거나 하시는 분이 아니셨던 것이비다.
우리 삶속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과 같은 존재가 아니라서 예수님의 마음을 다 이해할 수는 없지만 예수님의 마음을 따르고자 노력할수는 있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의 중심은 보이지 않지만 그 사람의 겉모습에 따라서 행동하지는 말아야하겠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교회에서 사회에서 가정에서 가장 하나님의 뜻에 맞게 행동하고하나님의 뜻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가장 가난하고 가장 부족하며 가장 도움이 필요한 자가 누구입니까? 그 사람을 우리는 도와줄 수 있습니다.
하나니은 오늘도 그 뜻이 우리에게 이루어지기를 원하십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뜻을 우리고 나타낼 때에 하늘의 상이 큽니다. 하나님께서그렇게 행한 우리 모두에게 나누어주실 유업과 상급은 큽니다. 5절을 보십시오.
“[약]2:5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들을지어다하나님이 세상에서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또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상속으로 받게 하지 아니하셨느냐”
우리는 원래 아무 것도 없는 자들이었지만 하나님의 은혜로믿음에 부요하게 된 자들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들입니다.그러한 부요함과 사랑으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상속받게 하셨습니다. 그런데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데에 있어서 소홀하거나 불성실하다면 어떻게 받기로 된 그 나라를 받을 수 있겠습니까?
삼성 그룹의 장남은 이맹희 씨입니다. 하지만 선친인 이병철 회장이 3남인 이건희씨에게 그룹을 물려주었습니다. 여기에는 사연이 있습니다. 이병철 회장의 장남 이맹희씨도 삼성그룹의역사에서 한 때 후계자의 반열에 올랐다. 이건희 회장보다 11살이많은 이맹희씨는 아버지 밑에서 차근차근 경영수업을 받았다. 그러나 이맹희씨는 1966년 국민적 공분을 일으켰던 삼성의 사카린 밀수사건(1966년, 삼성그룹의 계열사 한국비료가 사카린 2259포대(약 55톤)을 건설자재로꾸며 들여와 판매하려다가 들통이 난 밀수 사건)을 계기로 삼성그룹뿐 아니라 집안에서도 내쳐지는 신세가됐다. 또한 이병철 회장이 경영일선에서 후퇴해 있을 당시 이맹희씨가 차남 이창희씨와 함께 삼성그룹을장악하려다가 이병철 회장의 눈 밖에 나서 그룹승계에서 제외되기도 하였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나라를 물려받고자 할 때에 하나님의 뜻을실천하고 사람을 자기 기준으로 평가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자들이 있고 그들은겉모습으로 판단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삶을 살고자 할 때에 우리는 비로소 세상과 다른 하나님의 온전한뜻을 현실 속에서 나타내게 되는 것입니다.
이시대에도 하나님의 뜻은 그리스도인들을 통해 나타납니다. 그 뜻을 잘 실천해서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누리고 귀한 삶을 살아가는 자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