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산이 생기기 전, 땅과 세계도 주께서 조성하시기 전 곧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는 하나님이시니이다
3주께서 사람을 1)티끌로 돌아가게 하시고 말씀하시기를 너희 인생들은 돌아가라 하셨사오니
4주의 목전에는 천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경점 같을 뿐임이니이다
5주께서 저희를 홍수처럼 쓸어 가시나이다 저희는 잠간 자는것 같으며 아침에 돋는 풀 같으니이다
6풀은 아침에 꽃이 피어 자라다가 저녁에는 벤바 되어 마르나이다
7우리는 주의 노에 소멸되며 주의 분내심에 놀라나이다
8주께서 우리의 죄악을 주의 앞에 놓으시며 우리의 은밀한 죄를 주의 얼굴 빛 가운데 두셨사오니
9우리의 모든 날이 주의 분노 중에 지나가며 우리의 평생이 일식간에 다하였나이다
10우리의 년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년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 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11누가 주의 노의 능력을 알며 누가 주를 두려워하여야 할대로 주의 진노를 알리이까
12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의 마음을 얻게 하소서
우리는 성경을 연구하면서 우리 자신이 누구인가와 하나님이 누구인가를 보게 됩니다. 성경은 우리 인간이 어떠한 존재이며 그러한 인간에 대해서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신가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읽으면서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해서 더 잘 알 수 있고 하나님에 대해서 더 잘 알 수 있습니다. 이 두 가지는 성경을 통해서 얻는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알지 못한다면 우리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알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인간이 누구인가를 먼저 생각해봅니다.
오늘 말씀에서 성경은 인간이 어떤 존재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12절을 보십시오.
“12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의 마음을 얻게 하소서”
우리는 우리의 유한함을 깨닫고 그 유한함 속에서 지혜의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 지혜의 마음은 바로 우리의 존재의 근거가 무엇인가를 깨닫는 것입니다. 그 존재의 근거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을 알 때에
비로소 우리의 존재의 의미를 깨닫게 됩니다. 우리의 존재는 하나님 앞에서 심판받는 존재입니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피조물이기 때문에 피조물로서 창조자
앞에 서게 됩니다. 그리고 창조자의 심판을 받게 됩니다.
“11누가 주의 노의 능력을 알며 누가 주를 두려워하여야 할대로 주의 진노를 알리이까”
우리가 이러한 주님의 진노와 심판을 이해하고 따르면 그에 합당한 삶을 살 수 있지만 그 심판을
부인하고 우리의 존재를 거부하면 그로 인해서 합당하지 않은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가 그 능력을
알고 그 진노를 피해서 살아갈 수 있도록 미리 알려주고 있습니다. 이와 연결된 고린도후서 5장 10절을 함께 봅니다.
“고린도후서 5:10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이러한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되는 것과 그 몸으로 행한 대로 받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심판이 앞에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그것을 준비하고 예비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로 인해서 자연히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칭찬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 노력할 수 있습니다.
시한부 인생을 사는 사람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 인생이 유한하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가장 보람되고 가장 의미있는 일을 하게 될 것입니다. 인생이 무한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 것은 슬픈일이기는 하지만 그 유한함을
기억하면서 오히려 하루를 의미있고 가치있게 살 수 있다는 것은 아이러니한 일입니다. 시간이 많이 있다는 것이 오히려 시간을 허비하게 만들지만 시간이
별로 없다는 것은 그 시간을 가장 중요한 일에 보낼 수 있는 역설을 만드는 것입니다. 또한 시험을 치르기 전 미리 미리 할 수 있는 많은 시간이
있었지만 그때는 별로 능률이 오르지 않습니다. 오히려 시험 치르기 전 몇 분에 더 많은 정보를 습득하게 됩니다. 이것은 우리가 오히려 심판을 생각하면서
가치있는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 인생의 의미를 깨달았을 때 우리는 비로소 하나님을 바라보게 됩니다.
그렇다면 인생이 심판을 생각하면서 바라보는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실까요? 4절입니다.
“4주의 목전에는 천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경점 같을 뿐임이니이다”
하나님은 시간에 있어서 영원하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아무리 오래된 과거도 하나님에게는 어제와 같고 우리에게는 아무리 먼 미래도 하나님에게는 내일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시간에 얽매이지 않으시고 어떤
상황이나 사건에 대해서도 초월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 하나님은 하나님의 영원한 시간과 그 나라를 생각하게 하십니다. 그 나라를
생각하면서 우리는 하나님께로 나아갑니다. 하나님의 구원이 바로 우리가 그 나라로 나아가게 하십니다. 1,2절을 봅니다.
“1주여 주는 대대에 우리의 거처가 되셨나이다
2 산이 생기기 전, 땅과 세계도 주께서 조성하시기 전
곧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는 하나님이시니이다”
그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 되시고 우리가 의지하고 믿는 대상이 되심을 고백할 때에 우리는 하나님을
바르게 바라보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거처가 되시고 우리가 섬기는 대상이 되십니다. 시간과 공간을 인정할 때에
그 시간과 공간 속에 거하는 것처럼 하나님을 고백하고 의지하며 신뢰할 때에 하나님의 법칙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느 나라를 들어갈 때를 생각해 보십시오. 비자를 받고
입국수속을 합니다. 그 모든 과정은 그 나라의 권세와 권한과 능력을 인정하고 그 속에 따르기 때문에 이루어지는 일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과
그 권세를 고백하고 인정할 때 비로소 그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 나라에 들어가기를 원하기 때문에 주님을 바라봅니다. 그렇지 않을 때에
우리 자신에게는 구원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구원을 받고 하나님 나라에 거하게 되는 것이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바라시는 일이었습니다.
“요한복음 14:3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이제 이러한 은혜를 기억하면서 우리는 하나님께 예수님을 의지하여 간구할 수 있습니다. 그 나라에 들어가게 되기를 그리고 그 나라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입기를 간구하는 것입니다. 이 모든 일이 우리를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일이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을 온전한 영의 아버지로 받아들이고 그분 안에서 구원을 얻기를 소망해야 합니다. 이 과정을 통해
우리는 세상이 받을 심판에서 하나님 나라의 구원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우리가 주님 나라로 가는 것은 선택이 아닙니다. 그것은 인간된
우리에게 필수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우리 자신의 죄악으로 인해 죽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 결과는 아무리 성공하고 유명하였다 하더라도 순식간에
사라지게 되는 삶입니다.
“3주께서 사람을 1)티끌로 돌아가게 하시고 말씀하시기를 너희 인생들은 돌아가라
하셨사오니
5주께서 저희를 홍수처럼 쓸어 가시나이다 저희는 잠간 자는것 같으며 아침에 돋는 풀 같으니이다”
이러한 무의미하고 찰나적인 삶에서 영원하고 무한한 삶으로 이어질 수 있는 길을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해 주십니다. 그 하나님께로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며 나아가는 것이 우리에게 필수적인 일인데 하나님은 바로 그렇게
그분에게로 나아가는 길을 보여주고 계십니다. 그 길은 온전히 예수 그리스로를 믿고 따르는 길입니다. 그 길을 반정도 따르고 나머지 반은 자기의
길을 가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100% 하나님의 길을 따르는 길입니다. 그럴 때 모든 회의와 의심과 혼란을 이기고 하나님의 길을 찾아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 길이 바로 성경에 나와있습니다. 성경말씀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길을 찾을 수 있게 됩니다.
그런데 성경에는 다소 우리가 이해하기 어렵고 풀기 어려운 일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어려움에 부딪힐 때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베드로후서 3:16 또 그 모든 편지에도 이런 일에 관하여
말하였으되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
중요한 핵심은 이것입니다. 바로 억지로 풀다가 멸망에 이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알기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억지로 풀지 말고 순리대로 풀고자 할 때에 하나님께서 깨닫게 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그럴 때 비로소 하나님의
은혜로 채워지게 됩니다.
예전에 저는 노트북이 고장나서 억지로 분해를 하려고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분해가 잘 안되는 부분이 있어서 과도하게 힘을 주다가 결국에는 연결고리가 부러져 버렸습니다. 그래서 전문 수리센터에 맡길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알고보니 그 노트북의 구조속에는 일부러 분해하기가 어렵게 만든 내용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을 모르고 억지로 풀고자 했으니
망가지는 것이 당연하였습니다.
성경의 내용에도 우리가 다 이해하지 못하는 그 어떤 것이 있습니다. 그것을 억지로 풀려고 하다가 망가져 버리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오직 받아들일 부분을 받아들이고 현재에는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은 좀더 기다리다 보면 다시 알게 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우리는 늘 우리가 다 알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의 계시의 정신을 바랄 때에 때가 되면 주님은 우리에게 주님을 아는 지식을 허락하십니다. 그럴 때만이 온전하게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의 인생의 의미와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게 되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의 원리 속에서 더욱 깊은 하나님의 뜻과 섭리로 나아가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