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룟 유다는 열 두 제자중의 하나로 3년동안 예수님께 함께 거하였던 자입니다. 그러나 그 오랜 신앙생활의 기간이 그를 변화시키지 못했습니다. 그에게는 하고자 했던 일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 하는 일을 이루기 위해서 그는 조금도 뜻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주님께서도 그 일을 하도록 내버려 두셨습니다.”
1. 심령에 민망히 여기신 예수님
2. 가룟 유다의 의도와 계획
3. 교회 안에 들어오는 악한 자들에 대한 이해
4. 악한 자들에 대한 대비와 태도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중에 자신을 팔 자가 있다고 말씀하시는 구절은 그분의 고통과 고민이 잘 나타나 있는 부분입니다. 주님은 그냥 이중에 날 팔 자가 있다라고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분은 매우 고민하시며 괴로워하시면서 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여기서 ‘심령에 민망하여’라는 말은 헬라어로 tarasso라고 하는데 이는 고통과 두려움 속에서 고민하며 괴로워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경에서는 세 번 사용되었습니다. 헤롯이 새로운 왕이 나타났다는 말을 들었을 때, 사가랴가 천사의 나타남을 보았을 때, 그리고 본문에서입니다. 이것은 그정도로 주님이 가룟 유다의 배반을 괴로워하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가룟 유다는 결코 변화되지 않았습니다. 그 속에는 예수님에 대한 악한 생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일을 끊임없이 추구하고자 했습니다. 주님은 이점을 잘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결국에는 그가 그 마음에 품고 있는 일을 하라고 하십니다. 이것은 악한 일을 허락해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말을 하건 말건 그는 그 일을 했을 것입니다. 단지 그 속에 있는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드러내 주실 뿐입니다. 그리고 그 더러운 욕심에 내어버려두시는 것입니다. 그 계획은 예수님을 팔아 넘기는 것이었고 주님은 그것을 알고 계셨지만 그 악한 계획을 막아서시지 않았습니다.
교회에는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들어오고 나갑니다. 그들이 오고 가는 것을 막을 수 없습니다. 교회가 비밀단체도 아니고 열려있는 모임인데 또한 열심히 전도까지 하게 되면 더더군다나 그럴 수 없습니다. 그러다 보면 이런 자들이 발생합니다. 악한 의도로 다가오는 사람들 말이지요. 그리고 그들은 실제로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도 합니다. 그래서 교회에 피해를 입히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랬다고 해도 교회가 그들을 변화시키지 못한 책임을 지지는 않습니다. 예수님이 가룟 유다에 대해서 책임을 지지 않듯이 말입니다. 그 악한 일을 막을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가룟 유다를 막지 않으셨던 것처럼 말이지요.
그럼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겠습니까? 우리는 우리의 길을 가야 하겠습니다. 전도와 선교와 봉사와 다시 친절한 태도, 이 모든 것을 잃어버리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악한 자는 그 악한 일을 속히 하게 하고, 선한 자는 그 선한 일을 중단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선으로 악을 이겨야 합니다. 계속되는 전도가운데 우리는 더욱 이러한 자들을 만날 것입니다. 하지만 두려워하지 말고 꾸준히 나아갑시다. 그럴 때 비록 예수님이 그 심령의 괴로움을 이해하게 되겠지만 거기서 멈추지 않고 예수님께서 주신 사명 역시 완수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한 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