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그런즉 율법은 무엇이냐 범법함을 인하여 더한 것이라 천사들로 말미암아 중보의 손을 빌어
베푸신 것인데 약속하신 3)자손이 오시기까지 있을 것이라
20중보는 한편만 위한 자가 아니니 오직 하나님은 하나이시니라
21그러면 율법이 하나님의 약속들을 거스리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만일 능히 살게하는 율법을
주셨더면 의가 반드시 율법으로 말미암았으리라
22그러나 성경이 모든 것을 죄아래 가두었으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약속을
믿는 자들에게 주려 함이니라
1.기: ‘범법함을 인하여 더한 것이라’
오늘 우리는 기승전결의 ‘극본적 해석’으로 본문 말씀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러한 해석을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더욱 깊이 나누게 되기를 바랍니다. 본문 속에서 어구의 형식으로 발단을 찾아봅시다. 그럴 때에
우리는 19절의 ‘범법함을 인하여 더한 것이라’라는 부분을 찾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의 모든 내용의 발단이 되고 있습니다.
“19그런즉 율법은 무엇이냐 범법함을 인하여 더한 것이라 천사들로 말미암아 중보의
손을 빌어 베푸신 것인데 약속하신 3)자손이 오시기까지 있을 것이라”
율법의 의미는 바로 이것입니다. 범법함을 인하여 더한 것입니다.
범법하지 않았으면 더하지 않았을 것이지만 너무나 범죄함이 다양하고 복잡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율법을 주셔서 사람들의 범죄함을 막으셨습니다. 아담과
하와에게 주셨던 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것은 오직 하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것을 어겨서 범법한 자들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야곱이 애굽으로 이주한
이후 약 430년 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너무나 많은 범죄를 저지르고 있었습니다. 애굽 속에서 애굽 사람들처럼 살아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도록 해야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십계명이요 율법이었습니다. 이것은 그들의 범죄함때문에
주셨던 것입니다.
2.승: ‘약속하신 자손이 오시기까지 있을 것이라’
이어지는 전개는 이 율법이 영원한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것은
한시적으로 주어지는 것이었습니다. 그 시간제한은 바로 ‘약속하신 자손이 오시기까지 있을 것이라’는 부분입니다. 19절 하반절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19그런즉 율법은 무엇이냐 범법함을 인하여 더한 것이라 천사들로 말미암아 중보의 손을 빌어
베푸신 것인데 약속하신 자손이 오시기까지 있을 것이라”
율법이 영원한 것이 아니라는 점은 이 율법의 목적이 한시적임을 보여줍니다. 무엇이든지 시간의 제한은 목적의 제한을 보여줍니다. 율법은 약속하신 자손,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전까지만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오시면 율법은 사라집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은혜의 법을 통해서 율법을 완성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대기권에 위성을 올리기 위해서 로켓을 쏘아올립니다.
그 때 맨처음에 분리되는 로켓이 있는데 그것은 대기권까지 위성을 올려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에는 다음 로켓이 있고 그 다음이 로켓이
있어서 각각 점화되고 분리되면서 위성을 궤도위에 올려놓습니다. 그와 같이 하나님의 자녀들을 성장시키기 위해서 율법은 그들이 은혜를 알때까지 은혜를
받아들일때까지만 유효하게 됩니다.
3.전: ‘하나님의 약속들을 거스리느냐’
여기서 ‘절정’단계에 이르릅니다. 문제는 이 율법이 적절하게 끝이
나지 않을 때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들을 거스리느냐’의 어구를 찾을 수 있습니다. 이부분에 대한 온전한 이해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결국 율법은 하나님의 약속과 배치되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21그러면 율법이 하나님의 약속들을 거스리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만일 능히
살게하는 율법을 주셨더면 의가 반드시 율법으로 말미암았으리라”
이것은 율법과 은혜가 충돌한다는 것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율법이
하나님의 약속과 배치되는 것이 아닙니다. 율법은 율법대로의 기능이 있고 은혜는 은혜대로의 기능이 있습니다. 이 둘이 각자 적절히 발휘될 때에 비로소
은혜가 은혜되고 율법이 율법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율법이 은혜의 자리를 차지하려고 할 때 둘은 서로 충돌하는 것처럼 보여줍니다. 하지만 율법은
살게 하는 것이 아니라 죽지 않게 하는 것 뿐이었습니다.
배가 난파할 때를 생각해 보십시오. 사람들에게 구명조끼를
입혀줍니다. 또는 구명정을 내립니다. 바다 한가운데서 과연 구명조끼는 구명정은 사람들을 살려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다만 구조선이
올때까지 버티게 하는 것입니다. 구조는 외부로부터 와야 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구조선일 때 율법은 단지 구명조끼일 뿐입니다. 임시적으로 죄가운데
죽지 않게 만들어진 것 뿐입니다. 이 둘은 서로 충돌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실 때 그것으로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반대로 구원을 기다리게 하시는 것입니다.
4.결: ‘약속을 믿는 자들에게 주려 함이니라’
이제 마지막 결론 부분을 찾아봅시다. 22절에서 ‘약속을 믿는
자들에게 주려 함이니라’라는 부분이 결론이 됩니다. 이 말은 율법속에서 구원을 믿고 기다리는 자에게 진정한 약속을 주신다라는 뜻입니다. 22절을
함께 읽어봅니다.
“22그러나 성경이 모든 것을 죄아래 가두었으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약속을
믿는 자들에게 주려 함이니라”
아까 구명조끼, 구명정, 그리고 구조선의 예를 말씀드렸는데, 이부분이
바로 구명조끼나 구명정에서 구조선으로 옮겨가는 것을 보여줍니다. 율법으로는 온전하게 될 수가 없습니다. 그것으로 구원을 이룰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율법으로 매어진 하나님의 백성들이 은혜로 갈아탈 때에 비로소 구원이 이루어집니다. 그것은 애초에도 믿음으로 얻는 구원입니다. 자신의 행위로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얻는 하나님의 선물인 것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약속을 믿는 자들에게 주기 위해서 율법과 은혜의 과정이 있는 것입니다.
이 약속은 애초에도 믿음으로 생겨나는 것이었고, 그 믿음의 약속을 믿는 자들에게 주는 것이 바로 구원을 받는 신앙고백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율법과 은혜를 이해할 때에 비로소 행위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임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신앙생활 속에서 아주 중요한 부분입니다. 구원은 우리의 노력이나 행위로 얻는
것이 아님을 알때 끊임없이 하나님을 의지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래서 하나님 안에서 의로워지고 하나님 안에서 더 큰 믿음을 갖게 됩니다. 더 큰
자신감이나 더 큰 자아존중감이 아닌 더 큰 의지함과 소망함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말씀의 구체적인 설명을 통해 우리에게 진정한 구원을 주시려는 하나님을 깨달으시기를 바랍니다. 그것은 믿음에 믿음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입니다. 지금도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행위가 아니라 믿음입니다. 그 믿음이 하나님께
순종하게 하나님께 굴복하게 하나님께 매달리게 하기 때문입니다.
더욱 큰 믿음을 가짐으로써 하나님의 마련하신 온전한 구원의 길을 담대히 걸어가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