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지배] 44행 1; 12-17 다 거기 있게 된 것에 대한 감사Loading the player... Loading the player... .
44행 1; 12-17 다 거기 있게 된 것에 대한 감사_1
2021. 11. 21. 주. 주일오전. 추수감사절.
*개요: 사도행전에서의 믿음의 소원, 교회-선악, 서신서, 46지배-55동행, 분석적해석
[행]1:12 제자들이 감람원이라 하는 산으로부터 예루살렘에 돌아오니 이 산은 예루살렘에서 가까워 안식일에 가기 알맞은 길이라 [행]1:13 들어가 그들이 유하는 다락방으로 올라가니 베드로, 요한, 야고보, 안드레와 빌립, 도마와 바돌로매, 마태와 및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셀롯인 시몬, 야고보의 아들 유다가 다 거기 있어 [행]1:14 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 [행]1:15 모인 무리의 수가 약 백이십 명이나 되더라 그 때에 베드로가 그 형제들 가운데 일어서서 이르되 [행]1:16 형제들아 성령이 다윗의 입을 통하여 예수 잡는 자들의 길잡이가 된 유다를 가리켜 미리 말씀하신 성경이 응하였으니 마땅하도다 [행]1:17 이 사람은 본래 우리 수 가운데 참여하여 이 직무의 한 부분을 맡았던 자라
오늘 추수감사절 예배를 드리면서 우리 삶에 있는 일들에 대한 감사를 생각해 봅니다. 지난 삶에 대해서 감사를 찾는 것이 중요하고 감사하려고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럴 때 감사의 편에 서고 하나님 편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좋은 음식이 있고 나쁜 음식이 있고 좋은 음식도 시간이 지나면 나쁜 음식이 될 수 있는 것처럼 우리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을 잘 구별해야 병이 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와 같이 우리 마음 속에 들어가는 생각들도 잘 구별해서 받아들일 때 하나님이 주시는 사랑과 희락과 평강을 누릴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의 오늘 말씀에서 우리는 ‘감사’를 찾는 방식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우리가 감사를 찾고자 하니까 감사가 발견되는 것이지 감사를 찾으려고 하지 않는다면 감사를 발견할 수 없습니다. 본문 속에서 저절로 감사의 조건이 찾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감사를 찾으려고 하면 감사의 이유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감사할 내용은 13절의 ‘다 거기 있어’라는 어구입니다. “[행]1:13 들어가 그들이 유하는 다락방으로 올라가니 베드로, 요한, 야고보, 안드레와 빌립, 도마와 바돌로매, 마태와 및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셀롯인 시몬, 야고보의 아들 유다가 다 거기 있어” 감사한 일은 예수님의 죽으심 이후에 그들이 흩어지지 않고 부활과 승천을 함께 경험했다는 것입니다. 마음이 상하고 실족해서 다 흩어질 수도 있었지만 그들은 감사하게도 다 함께 있었습니다. 그 어려운 시기를 잘 견디면서 그들은 그 다음에 예수님께서 예비하신 성령의 충만함을 향해서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가룟 유다를 제외한 11명의 제자들이 모두 다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 이후에 성령을 기다리는 그 시간에 동참하였습니다. 우리에게도 감사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함께 참여하고 다 있어야할 자리에 그대로 있을 수 있었다는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럴 때 그 다음으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물리적으로 무조건 그대로 존재해야만 감사할 수 있다는 말이 아닙니다. 시간이 흐르고 상황에 따라서 사라질 수도 있고 사라져야만 하는 것이 존재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여기에서 ‘모두 다 거기 있다’는 말은 잘 견뎌내고 잘 극복해 내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반대로 ‘거기 있지 않았다’는 말은 견뎌내지 못하고 극복하지 못하고 안 좋은 상태로 떨어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면 가룟 유다와 같은 경우입니다. 가룟 유다는 거기 있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단순히 그 자리에 있지 않은 것만이 아닙니다. 그는 불의의 삯을 얻기 위해서 예수님을 대제사장들에게 팔았습니다. 또한 자신의 잘못을 회개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의 생명을 스스로 버렸습니다. 그래서 그는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고 함께 하던 자리에 남지 못했습니다. 커다란 악에 빠져 버렸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자리에 없는 경우가 아닙니다. 그러면 가룟 유다는 왜 그렇게 되었을까요? 그의 실족함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그는 자기가 하려고 했지 하나님을 따르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주도함과 통제함과 다스림을 더욱 중요하게 여겼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다스리심과 충돌하였고 결국에는 스스로 가장 악한 일을 저지르면서 함께 있던 자리에서 떠나 악한 자리에 이르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감사하지 못함은 인간 뿐만이 아닙니다. 천사라 할지라도 이런 상황은 동일합니다. 만약 가브리엘이나 미가엘이나 스랍(세라핌)이나 그룹(케루빔)과 같은 천사라고 해도 그들이 하나님을 따르고자 하지 않고 자기 자신을 따르고자 한다면 더 이상 천사가 아니라 사탄이나 악마가 됩니다. 왜냐하면 정말 천사와 사탄의 차이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는 자들인가 자기가 하고자 하는 일을 이루려는 자들인가에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무엇이었든지 간에 어떤 위치에 있든지 간에 내 뜻대로 하려고 한다면 우리는 더 이상 ‘남아 있는 자들’이 되지 않고 ‘떠나가는 자들’이 될 것입니다. 그것은 어디에 있든지 마찬가지입니다. 있는 곳에서 여전히 남아있는 자들이 되려면 항상 자기 뜻대로 하려고 하지 않고 하나님 뜻대로 하려고 해야 합니다. 그럴 때 진심으로 감사할 수 있는 자들이 되고 선을 따르는 자들이 될 수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가룟 유다의 불순종과 감사하지 못함은 그 자신을 파국으로 이끌고 갔습니다. 그리고 그의 모습을 보면서 남아 있는 자들은 더 큰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됩니다. 그것은 그런 악함은 모두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되었음을 보여준다는 점입니다. 16, 17절을 보십시오. “[행]1:16 형제들아 성령이 다윗의 입을 통하여 예수 잡는 자들의 길잡이가 된 유다를 가리켜 미리 말씀하신 성경이 응하였으니 마땅하도다 [행]1:17 이 사람은 본래 우리 수 가운데 참여하여 이 직무의 한 부분을 맡았던 자라“ 가룟 유다의 실족함과 패역함을 통해서 믿는 사람들은 미리 말씀하신 성경이 응하였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것은 시편에 기록된 악인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다윗을 통해서 하신 말씀의 성취였습니다. “[행]1:20 시편에 기록하였으되 그의 거처를 황폐하게 하시며 거기 거하는 자가 없게 하소서 하였고 또 일렀으되 그의 직분을 타인이 취하게 하소서 하였도다” 하나님 말씀은 불순종하고 감사하지 못하는 자들의 거처가 황폐해지며 남아 있는 자들이 없게 하시며 그 직분을 타인이 취하게 하신다고 말씀하였습니다. 그래서 악인의 존재는 오히려 선인의 모습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짐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감사할 때에만 비로소 우리를 존재하게 하시며 더욱 굳세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뻐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악의 존재는 선의 중요성을 더욱 깨닫게 만듭니다. 감사로 받아들이는 모든 삶은 감사하지 않는 삶으로부터 빠져나올 수 있었음을 깨닫게 합니다. 감사를 나아갈 때만이 아이러니하게도 불평불만으로 가득 찰 수 있었던 지난 날을 뒤로 하고 하나님께로 더욱 힘차게 나아가게 합니다. 감사가 없다면 결코 감사한 삶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불평과 불만이 있을 때에 삶은 언제나 불평과 불만으로 넘치게 되어 버립니다.
어떤 사람은 ‘집이 넓으면 싸울 일이 없겠네’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오산입니다. 집이 넓으면 넓은 데로 싸웁니다. 먹을 것이 많고 풍성한 삶을 살면 감사도 넘치리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풍성한 삶이 있기 때문에 더욱 싸웁니다. 더 큰 풍성함을 얻지 못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다 할 수 있으면 감사하리라고 생각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다면 그렇지 못한 단 한 가지의 조건으로 인해서 분노가 차 오릅니다. 그래서 애초에 하나님은 감사로 시작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면 그 다음 감사가 생기고 그로 인해서 다른 감사가 생깁니다. 그 이유는 감사를 하게 되면 하나님 편으로 방향을 틀고 하나님께로 나아가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께로 흐르기 때문에 하나님께 감사할 때 흐름을 탈 수 있습니다. 그래서 더 큰 감사로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럴 때 비로소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런 것이 아니고서는 아무리 해도 세상의 되어지는 일들 속에서 감사를 찾을 수 없습니다. 평안할 때에도 감사하지 않았고 풍성할 때에도 감사하지 않았기 때문에 어렵고 힘들 때에는 더더군다나 감사할 수 없습니다. 미리 그 이전부터 감사로 나아갈 때만이 비로소 힘들 때에도 감사로 나아가서 하나님께 이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이 세상을 움직이시는 거대한 하나님의 다스림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말씀을 깨닫고 주님께로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그 남은 자들’ 하나님을 열심히 기도로 섬겼습니다. “[행]1:14 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 [행]1:15 모인 무리의 수가 약 백이십 명이나 되더라 그 때에 베드로가 그 형제들 가운데 일어서서 이르되” 그들이 감사를 아는 자들이었기에 기도할 수 있었지 감사할 수 없는 자들이라면 그렇게 기도할 수 없었습니다. 감사로 나아오는 자들이 백이십 명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때가 되었을 때에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서 다 말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우리도 이와 같이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도하는 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우리 삶 속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말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삶의 평안함의 조건이 우리를 감사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지난 날에 대한 하나님의 은혜의 고백이 우리를 감사하게 함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아서 감사의 이유를 발견하고 그 속에서 항상 하나님을 의지하며 기도하고 그 은혜 속에서 더 큰 감사로 나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구성 1. 추수감사절을 통해 감사의 이유를 찾을 때 하나님 중심의 ‘감사’의 의미를 생각할 수 있다. 2. 하나님께서는 제자들이 ‘다 함께 모여 있을 수’ 있게 하셨고 그 감사 속에서 신앙생활을 하게 하셨다. 3. 감사할 때만이 실족하지 않고 예수님의 말씀이 이루어짐과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되었음’을 알게 된다. 4. 은혜의 분별 속에서 온전한 선으로 나아가서 ‘더 큰 감사’로 나아가는 성도들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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