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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존경] 43요 1; 25-29 너는 어찌하여 세례를 베푸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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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1; 25-29 너는 어찌하여 세례를 베푸느냐_1

  

 

  

2021. 10. 31. 주일오전예배.

  

 

  

*개요: 요한복음에서의 믿음의 소원, 교회-관계, 복음서, 존경-동행, 적용적해석

  

 

  

[]1:25  또 물어 이르되 네가 만일 그리스도도 아니요 엘리야도 아니요 그 선지자도 아닐진대 어찌하여 세례를 베푸느냐

  

[]1:26  요한이 대답하되 나는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너희 가운데 너희가 알지 못하는 한 사람이 섰으니

  

[]1:27  곧 내 뒤에 오시는 그이라 나는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하더라

  

[]1:28  이 일은 요한이 세례 베풀던 곳 요단 강 건너편 베다니에서 일어난 일이니라

  

[]1:29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요한복음에서 우리는 유독 세례요한에 대해서 많이 설명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공관복음인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에서 모두 세례 요한에 대해 설명하고 있지만 유독 요한복음에서는 세례요한이 받았던 질문과 대답을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세례요한 메시야가 오시기 전 나타나는 엘리야로서 하나님의 아들로 이 세상에 오신 메시야이신 예수님을 잘 설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받아들이든 받아들이지 않든 간에 요한복음은 마지막 선지자였던 세례요한에게서 메시야이신 예수님으로 이어지는 하나님의 계시와 말씀의 연속성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메시야이자 모세가 말하던 그 선지자임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이해시키기가 바리새인들과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힘들어 보입니다. 아니 어쩌면 예수님이나 하나님을 믿지 않는 그 어떤 사람들에게도 어떻게 말을 하든지 간에 세례요한이 소개하고 예비하며 이어지게 했던 메시야이자 그리스도는 바로 예수님이다는 사실을 알게 하기가 어려워 보입니다.  

  

하지만 그 결과가 어떻든 우리는 그것을 말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세례요한에서 예수님께로 이어지는 하나님의 계시의 연결성을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이든지 하나님께서는 요한복음을 통해서 그것을 말씀해 주고 계십니다.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은 어쩔 수 없고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바로 이것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요한복음에 걸쳐 나타나고 있는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라는 말씀을 영접하는 자들 자신은 잘 기억해야 합니다. 안 믿는다는 사람들 때문에 자신의 권세를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전철이나 버스나 기차를 탈 때를 생각해 보십시오. 처음에 함께 탔다 하더라도 계속 타고 가는 사람들이 있고 중간에 내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또 중간에 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믿음이 그렇습니다. 다 각자 자신의 길과 때가 있습니다. 각 사람은 자신의 목적지와 방향만 기억하면 됩니다. 괜히 남이 내린다고 해서 내리고 남이 탄다고 해서 탈 필요가 없습니다. 내가 내려야 한다고 생각하면 내리고 내가 타야 한다고 생각하면 타면 됩니다. 내가 믿는 대상이 있고 그 대상을 내가 따라간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렇게 믿음과 신앙생활은 주도적이고 자발적이며 능동적인 것이기 때문에 오늘 요한복음의 본문에 나오는 것처럼 다른 사람들이 지금 자신이 하고 있는 신앙생활에 대해서 물어볼 때에 대답을 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성도들에게 지금 하고 있는 신앙생활의 의미에 대해서 묻습니다.

  

당신은 목사도 아니고 전도사도 아니고 장로도 아닌데 왜 그렇게 신앙생활을 합니까?”

  

당신은 주변에 교회 다니는 사람도 없는데 왜 그렇게 교회를 꾸준히 다닙니까?”

  

이러한 말은 그리스도인의 믿음의 모습이 이해가 되지 않을 때 세상 사람들이 하는 질문입니다. 이런 말을 들어본 적이 있다면 오늘 성경본문에 나오는 말씀도 이해를 할 수 있습니다.

  

“[]1:25 또 물어 이르되 네가 만일 그리스도도 아니요 엘리야도 아니요 그 선지자도 아닐진대 어찌하여 세례를 베푸느냐

  

세례요한이 그리스도요 엘리야요 그 선지자라면 세례를 베푸는 것이 이해가 갔을 것입니다. 그럴 때 그는 굉장히 높고 권위있으며 위대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는 되야 세례를 베풀고 엘리야급은 되어야 세례를 베풀며 그 선지자 정도는 되어야 세례를 베푸는 것이 의미가 있을 텐데 세례요한은 아무 것도 없이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라고 하면서 세례를 베풀고 있으니 다른 사람들은 이해가 안 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아무 것도 아닌 사람이 대단해 보이는 일을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믿음이나 신앙을 어떤 감투나 책임감이라고 생각합니다. 불교에서도 보살 정도는 되어야 진정한 불교인이라고 명함을 내밀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그런 직책이나 직분이나 명칭이 없으면 어떤 식으로든 진실한 신앙생활은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뿐만 아닙니다. 성도에게 설사 그런 직책이나 직분이나 명칭이 있다 하더라도 세상 사람들은 끊임없이 그 의미를 깎아내리고 평가절하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성도는 자신의 목적과 의미와 바라보는 목표를 끊임없이 자각하지 않으면 은연중에 다른 사람들에게 끌어내려 앉혀지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세례요한은 그 질문에 대해서 무엇이라고 말했을까요?

  

“[]1:26 요한이 대답하되 나는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너희 가운데 너희가 알지 못하는 한 사람이 섰으니

  

[]1:27  곧 내 뒤에 오시는 그이라 나는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하더라

  

세례요한은 말하기를 나는 물로 세례를 베풀 뿐이고 내 뒤에 오시는 그분은 너희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시는 진짜 메시야이시다라고 하였습니다. 자신을 높이려고 세례를 베푸는 것도 아니고 자신이 높아서 세례를 베푸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이는 우리 식대로 말하자면 자신이 직책이 있고 직분이 있어서 신앙생활하는 것이 아니고 또한 높아지려고 신앙생활하는 것도 아니라고 말한 셈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는 이유는 나를 구원하신 예수님을 따라가려고 하는 것뿐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자신은 그분을 따라가려는 것이지 그분을 대신하거나 그분처럼 높아지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었습니다.

  

 

  

이러한 이해는 요한복음을 통해서 우리가 알아야 하는 중요한 의미입니다. 세례요한의 이 한 마디 말에 우리가 발견하는 신앙의 소원이 있습니다. 나는 물로 세례를 베풀지만 진짜는 예수님이 하실 것이다는 고백은 우리가 가져야 하는 놀라운 소원입니다. 이에 따라서 우리는 이런 고백을 할 수 있습니다. ‘나는 잠시 예배를 드리지만 진정한 예배는 삶 속에서 드려질 것이다, 나는 그저 찬양과 기도를 할 뿐이지만 역사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시다, 나는 주어진 분량 대로 목회를 할 뿐이지만 진정한 열매는 하나님께서 거두실 것이다...’ 여러분 자신도 자신 만의 이유를 찾아보십시오. 여러분은 왜 신앙생활을 하십니까? 여기에 대한 여러분 자신의 진실한 신앙적인 이유는 무엇입니까? 지금 대답을 하지 않더라도 집에 가서 곰곰이 생각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그 대답을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대답을 말해야 하고 나타내야 합니다. 스스로의 마음 속에 간직해야 합니다. 나는 바로 이러한 이유로 신앙생활을 한다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모든 세상 사람들의 다양한 회유와 설득과 유혹을 견뎌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대답 속에서 세례 요한의 다음 행동도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신앙생활을 하니까 그 다음의 신앙적 행동도 할 수 있습니다.

  

양궁선수들이 어떻게 훈련을 했는가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들은 화살을 쏘는 훈련을 한 것이 아닙니다. 과녁을 정확하게 맞추는 훈련을 했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중요한 순간에 흔들림없이 과녁을 정확하게 맞췄습니다. 그와 같이 우리가 예수님을 따르는 신앙생활을 하기 때문에 결국에는 예수님을 따르게 되어 있습니다. 늘 하던 훈련이 생활이 삶이 그와 같이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세례요한은 마침내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자신이 그렇게 설명하고 가르치며 고백하던 바로 그 분을 만났습니다. 그 예수님이 자신에게 세례를 받으려고 나아오셨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때 그는 소리를 높였습니다.

  

“[]1:29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예수님을 보고서 그분이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인 줄을 알아 보았던 것은 그가 항상 예수님의 세례를 준비하는 자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도 열심히 신앙생활하고 어느 날 신앙생활을 하지 못하게 되었을 때 그게 굉장히 익숙해지지 않게 되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열심히 예수님을 따라가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지금은 삶의 패턴과 습관적인 방식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것 뿐이지만 다른 상황과 환경에서 더 이상 하나님을 찾지 않고 예수님을 의지하지 않고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하지 않는다면 그건 지금까지 습관적인 종교생활을 했을 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되지 않도록 우리는 지금부터 예수님을 생각하는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럴 때 가장 중요할 때 예수님을 의지하고 따라가는 진실한 신앙인이 될 것입니다.

  

그것은 행동의 문제가 아닙니다. 어떻게 항상 예배시간에 일찍 올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항상 예배시간에 졸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항상 예배시간에 딴 생각을 안 할 수 있겠으며 어떻게 항상 예배시간 끝까지 남아 있을 수 있습니까? 그 이외에 기도를 하고 찬양을 하며 성경을 보는 것도 항상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본질적으로 예수님께서 세상 죄를 지고 가시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시면 나의 죄를 지고 가시는 구원자이심을 믿는다면 그 모든 행동의 수준에 상관없이 예수님을 따라갈 수 있습니다. 이것은 마음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행동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로 예수님을 따라가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우리 자신이 왜 신앙생활을 하는지에 대한 궁극적인 답을 가지고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럴 때 가장 중요한 순간에 예수님을 따라갈 것입니다. 예수님이 내리자고 할 때 내릴 것입니다. 버스 종점에, 전철 종점에, 기차 종점에 내리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내리는 곳에서 내립니다. 그것이 우리의 구원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하나님께 대한 믿음과 예수님께 대한 신앙을 가지고 살아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요한복음에서 여러분 자신의 믿음의 소원을 발견하여 그것으로 예수님을 따라가는 진실한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구성

  

1. 바리새인이 보낸 사람들은 세례 요한이 세례를 베푸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물었다.  

  

2. 세례 요한이 세례를 베푸는 이유는 자신이 높아서가 아니라 사람들을 그리스도께 인도하기 위해서였다.

  

3. 성도가 신앙생활을 하는 이유도 자신이 높거나 혹은 높이기 위함이 아니라 그리스도께 나아가기 위함이다.

  

4. 신앙생활을 통해 자기 자신이 하나님의 어린 양을 따라야 함을 깨닫고 그러한 삶을 사는 자들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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