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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인정] 43요 1; 12-16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 왜 커다란 권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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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1; 12-16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 왜 커다란 권세인가_1

  

 

  

2021. 10. 17. . 주일오전.

  

 

  

*개요: 요한복음에서의 믿음의 소원, 극본적해석, 45인정-56충만, 5복음서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1:13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1:15     요한이 그에 대하여 증언하여 외쳐 이르되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시는 이가 나보다 앞선 것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하니라

  

[]1:16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

  

 

  

요한복음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알게 되고 그 예수님을 믿는다면 그것은 단순히 예수님을 성인이나 위인으로 아는 것이 아닙니다. 그 이상의 의미를 갖습니다. 그것은 우리 자신의 존재와 본질을 새롭게 정의합니다. 성인이나 위인을 믿고 따르는 것은 도덕적이며 수준 높은 인간임을 보여주지만 하나님의 아들로서 신이신 예수님을 믿는다면 그것은 우리의 위치가 신을 믿는 자들이며 하나님의 백성이자 자녀가 되는 것임을 보여줍니다.

  

세상 사람들은 성인이나 위인을 믿어서 도덕적이며 수준 높은 인간이 되는 것은 용인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신을 믿고 영생을 얻으며 신이신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자녀가 된다는 것은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이 믿는 성도들을 볼 때에는 이상하게 생각합니다. 어떻게 눈에 보이지 않고 세상을 창조하셨으며 세상을 심판한다고 하는 하나님이라는 신을 믿을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또한 그러한 신을 믿는다고 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영생을 얻어서 천국에 가는 자들이 된다는 것은 그들의 상식과 이성으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것이 됩니다.

  

우리는 바로 이러한 타인의 부정적인 시선과 그로 인한 자기 자신의 내적인 고민 속에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시선은 성경을 통해서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어둠 속에서 빛을 바라보는 것이기 때문에 어둠을 바라보면 빛을 바라볼 수 없습니다. 오직 빛이 되고 있는 성경과 그 성경의 증언을 따라서 빛되신 예수님을 바라볼 때 비로소 빛되신 예수님을 믿고 진정한 예수님의 사람들이 될 수 있습니다.

  

어두운 산길을 지날 때 플래쉬를 비추며 지나가는 경우를 상상해 보십시오. 빛이 아닌 다른 것에 관심을 가지면 길을 잃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정신을 집중해서 빛을 따라간다면 목적지에 안전하게 도달할 수 있습니다. 그와 같이 요한복음은 우리에게 우리가 누구이며 우리가 따르는 대상이 누군가를 조명해 줍니다. 그 빛을 따라갈 때 빛되신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 오늘 말씀의 12, 13절을 주의깊게 살펴보십시오.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1:13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성경의 조명은 예수님을 영접하고 그분의 이름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놀랍고 큰 권세인 이유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 되기 때문입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친히 믿는 자들에게 주시는 자녀됨의 권세입니다. 인간에서 올라간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내려온 것이기 때문에 놀랍고 큰 은혜의 권세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위해서 어떤 선행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고행을 해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오직 예수님을 영접하고 그 이름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을 때 하나님께서 자녀의 권세를 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권세를 감사함으로 그대로 받을 때 성도는 자녀로서 모든 하나님과의 관계를 하나님과 가까이에서 누릴 수 있습니다. 말 그대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그렇게 예수님을 영접하고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 자녀의 권세를 주셨는가 하면 그것이 사람의 뜻으로 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난 자들임을 보이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사람의 노력으로 만들어진 자녀의 권세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허락된 자들임을 알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중요한 의미였습니다.

  

예수님 자신이 이 세상에서 인간이셨지만 사실은 그 이전부터 하나님의 아들이셨기 때문에 믿는 성도들이 그 예수님의 본질을 믿고 따른다면 그들 자신도 이 세상에서 한 사람의 인간일 뿐이지만 사실은 하나님의 자녀였음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믿음과 순종이 결국은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자기 자신의 본질과 정체를 이해하는 계기가 되는 것입니다.

  

높으신 하나님의 은혜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영생을 얻고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특별한 권세를 주신 분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영접하고 하나님의 아들 되심을 믿는 자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었습니다. 아래(인간의 노력)로부터 위(성도의 자격)로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로 부르신 하나님의 권세로부터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된 것을 깨닫는 믿음이 생깁니다.

  

 

  

바로 이것을 다른 사람이 아닌 우리 자신이 깨달아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그렇다고 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내가 그렇게 말하기 때문에 그런 것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빛으로 나아가지 못합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말씀은 말하기를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는 하나님으로 시작된다고 하였고 그 말씀에 따라서 예수님을 믿는다면 자녀의 권세를 가지고 그 다음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말씀을 따르지 않고 세상의 원리인 아래로부터 위로 올라가야 한다는 방식을 따르게 되면 자녀의 권세를 스스로 거부해 버립니다. 그러면 자녀가 될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빛으로 나아갈 수도 없습니다. 그런 식으로는 시간이 흘러도 앞으로 더 나아질 가능성이 없게 됩니다.

  

그러면 왜 그런 세상의 원리에 자꾸만 흔들리게 될까요? 그 이유는 스스로 자녀라고 인정받으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인정을 받기 위해서 노력하고 스스로도 그런 모습에 인정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는 계속해서 거부되고 유예되며 포기됩니다. 오히려 더 깊게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만이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를 가지고 그 자녀로서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그럴 때만이 하나님의 영광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 영광의 모습이 바로 14,15절입니다.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1:15  요한이 그에 대하여 증언하여 외쳐 이르되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시는 이가 나보다 앞선 것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하니라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고 말하는 그 사람이 바로 예수님입니다. 그 예수님은 세례 요한 보다 늦게 태어났지만 사실은 그 이전부터 존재하시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말씀으로 거하셨던 분이시고 그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게 되셨습니다. 이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그의 영광을 볼 때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고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모습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영광을 이해하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영광을 더욱 더 깨닫는 자가 되고 마음 속에 그 영광을 가득히 품으면서 충만한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일출을 본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새벽에 떠오르는 찬란한 태양을 볼 때 자신의 용모와 차림새에 의미를 두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런 모든 것을 다 무색하게 하는 것이 바로 태양의 찬란함입니다. 그 찬란함이 더욱 중요하기 때문에 태양의 떠오름을 보는 자들의 누추함이 가려집니다. 하나님은 바로 그렇게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아무리 잘하거나 노력하려고 해도 죄악된 본성과 악함은 원래 사라지지 않습니다. 오직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아들로 영접하는 그 믿음을 받아주시는 하나님이 놀라우신 은혜가 되는 것이지 인간이 스스로를 높여서 하나님이 받아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요한복음에서 사도 요한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바로 이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성도는 그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들일 뿐입니다. 그 정체성 위에 굳게 설 때에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거듭해서 깨달을 수 있습니다.

  

“[]1:16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

  

“From the fullness of his grace we have all received one blessing after another.”

  

영어성경으로는 ‘From the fullness of his grace’이고 그 충만함만 생각하면 은혜 위에 은혜를 주시는 감사함입니다. 만약 믿음이 없다면 얘기가 다르겠지만 믿음이 있다면 적으나 크나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은 자들이 됩니다. 그래서 은혜 위에 은혜가 넘치는 것입니다. 하나의 은혜로 감사하고 기뻐할 때 그 다음의 은혜가 우리에게 찾아옵니다. 연속적으로 은혜 위에 은혜가 임합니다. 우리는 이와 같이 이미 충만한 은혜 가운데 살아가고 있습니다. 앞으로 날마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살면 됩니다. 뭔가 있어야 하고 뭔가 채워져야만 충만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충만을 보여주셨기 때문에 그 충만에서부터 시작하면 됩니다. 그러면 그 충만을 자기 자신이 누리고 그 충만을 다른 사람에게 나타내면서 살 수 있습니다.

  

일출을 보고 나서 그 뿌듯한 마음은 오래 가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영광을 보고 나서 느끼는 뿌듯함은 오래 갈 수 있습니다. 그 예수님이 자신의 인생에 항상 충만하시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느끼면서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평생 하나님의 자녀로 인정받기 위해서 살아가는 자들이 아니라 날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충만함 속에서 살아가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럴 때 날마다 충만한 믿음 속에서 살아가며 그 영광을 증거하며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에서 믿음의 소원을 생각하면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 위의 은혜를 생각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 은혜 속에서 날마다 충만하신 예수님의 영광을 묵상하며 살아가고 그 속에서 기쁨과 평안을 누리시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구성

  

1. 성도는 하나님께서 주신 빛을 통해서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자들이다.

  

2. 그 은혜를 믿고 하나님께서 친히 자녀의 권세를 주셨음을 깨달을 때 하나님으로부터 난 자로서의 충만함을 알 수 있다.

  

3. 그러나 사람의 뜻을 강조하고 그 이름을 의심한다면 인정의 욕구와 씨름할 수 밖에 없다.

  

4. 성도가 하나님의 은혜를 온전히 받을 때 그 충만함 속에서 은혜를 깨닫는 자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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