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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가정] 1창 6; 17-22 자녀관계에 대한 하나님의 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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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6; 17-22 자녀관계에 대한 하나님의 능력_1

  

 

  

2019. 9. 15. . 주일오전.

  

 

  

*개요:  가정에 대한 하나님의 은혜, 12가정-52능력,

  

[]6:17  내가 홍수를 땅에 일으켜 무릇 생명의 기운이 있는 모든 육체를 천하에서 멸절하리니 땅에 있는 것들이 다 죽으리라

  

[]6:18  그러나 너와는 내가 내 언약을 세우리니 너는 네 아들들과 네 아내와 네 며느리들과 함께 그 방주로 들어가고

  

[]6:19  혈육 있는 모든 생물을 너는 각기 암수 한 쌍씩 방주로 이끌어들여 너와 함께 생명을 보존하게 하되

  

[]6:20  새가 그 종류대로, 가축이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이 그 종류대로 각기 둘씩 네게로 나아오리니 그 생명을 보존하게 하라

  

[]6:21  너는 먹을 모든 양식을 네게로 가져다가 저축하라 이것이 너와 그들의 먹을 것이 되리라

  

[]6:22  노아가 그와 같이 하여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오늘 우리가 본 본문은 자녀관계에 대한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창세기에서 보여주는 인류의 시작을 읽어보면 자녀에 관해서 가장 의미 있는 내용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이 본문입니다. 그전에도 자녀에 대해서 나오지만 그때의 자녀는 그냥 부모가 낳은 대상입니다자녀를 낳은 다음에 어떤 활동이나 상호관계나 의미 있는 목적을 갖고 있음을 보여주는 본문이 없습니다태어났을 때 이름을 짓거나 그 이름에 의미를 부여하는 경우는 있었습니다. 하와가 가인을 하나님이 주신 아들임을 고백하거나 므두셀라의 아들 라멕이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노아라고 하면서 삶의 위안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갖기만 할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에 부모와 자녀가 특별한 목적의 상호관계를 갖고 그 관계 속에서 구체적인 활동과 사역을 행한 것은 노아와 그의 자녀가 처음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시대에 부모 자녀간에 아무런 교감이나 관계가 없었다는 것은 아닙니다. 있기는 했지만 성경에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나타날 정도의 의미가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노아의 경우를 통해서 우리에게 중요한 자녀의 의미를 보여주십니다. 그 의미 속에서 우리는 자녀 관계에 대한 하나님의 능력의 은혜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자녀 관계에 대한 하나님의 능력의 은혜를 가장 잘 보여주는 한 구절은 이것입니다.

  

“[]6:18             그러나 너와는 내가 내 언약을 세우리니 너는 네 아들들과 네 아내와 네 며느리들과 함께 그 방주로 들어가고

  

하나님께서는 노아에게 세상의 종말과 구원의 방법을 알려주셨고 그 구원의 방법에 대해서 하나님께서는 내 언약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언약의 당사자들이 그와 그 아들들과 그 아내와 그 며느리들이 되었습니다자녀 관계에 대한 하나님의 능력은 바로 구원에 있었습니다. 구원을 얻게 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이 자로 자녀 관계에서 나타납니다. 모든 그리스도인 부모들이 가져야 하는 가장 중요한 자녀 관계가 바로 이것입니다. 자녀는 부모와 함께 구원에 동참하는 존재입니다.

  

 

  

어쩌면 이것은 일반적인 세상의 자녀관계에서의 목표와 다를 것입니다이 세상에 살고 있는 세상 사람들은 자녀관계에서의 의미를 세상에서의 성공에 둡니다. 그 성공을 이루기 위해서 그 관계를 종속적인가 독립적인가, 허용적인가 지배적인가, 수동적인가 능동적인가 정도로 이해합니다. 그래서 각각의 자녀가 나름 잘 살게 되기만을 바라고 그것을 인생의 목표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심판이 결정되었고 하나님께서 모든 기식 있는 자들을 심판하시려고 할 때에는 그런 목표는 너무나 무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 종속적인지 독립적인지 허용적인지 지배적인지 수동적인지 능동적인지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결국은 자신의 죄로 인해서 심판을 받을 뿐이기 때문입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구원의 여부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자녀 관계에 대한 목표가 단순히 구원을 의미하기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시 말해서 구원을 받았으면 됐고 교회를 다니면 됐고 예수님을 믿으면 끝이 나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의 방향성입니다. 그 방향성으로 함께 나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노아의 홍수에서 구원은 하나의 사건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첫 번째 물심판에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은 온 세상을 뒤엎을 커다란 홍수에서 노아와 그의 가족들은 방주를 통해서 살아남게 하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홍수 이후에 세상에는 노아와 그의 가족들만 존재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새로운 세상을 하나님의 뜻대로 다스리게 되었습니다.

  

두 번째 심판은 불로 인한 심판입니다. 불 심판에서의 구원은 하나님 나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 나라에서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게 됩니다. 그러니 첫 번째 심판이나 두 번째 심판 모두 구원 그 이후를 준비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구원의 목표는 하나의 사건을 완성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목표를 완성하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구원의 상태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구원의 마음이 중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중차대한 의미에서의 구원은 단순히 교회에 다니거나 단순히 세례를 받거나 단순히 신앙을 갖게 됨으로써 끝낼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살아가는 삶을 살아가다가 마침내 자신이 노력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게 되면 그 이후에도 하나님의 일에 동참하려는 결심을 가져야 합니다이것이 하나의 삶의 방향성이 되어서 항상 하나님께 순종하면서 살아가려는 의지를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가 구원을 얻는다는 것을 삶의 방향성으로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노아와 그 자녀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처음 약속이 주어질 때 그들에게는 방주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 방주는 자신들이 만들어야 했으며 뿐만 아니라 단순히 방주를 만들고 들어가는 것 이상의 일들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우리도 바로 그런 일을 자녀들과 함께 나눠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일들을 이렇게 설명해주셨습니다.

  

“[]6:19             혈육 있는 모든 생물을 너는 각기 암수 한 쌍씩 방주로 이끌어들여 너와 함께 생명을 보존하게 하되

  

[]6:20  새가 그 종류대로, 가축이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이 그 종류대로 각기 둘씩 네게로 나아오리니 그 생명을 보존하게 하라

  

노아의 자녀들은 단순히 방주에 들어가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중요한 사역에 동참해야 했습니다. 그것은 혈육 있는 모든 생물을 암수 한 쌍씩 방주로 이끌어 들이는 것이었고 그렇게 해서 그 생명을 보존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노아에게 그들을 어떻게 방주로 이끌어 들일 것인가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말고 그들이 알아서 네게로 나아올 것이니 그 생명을 보존하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노아는 오직 자신들에게 나아오는 혈육 있는 모든 생물을 잘 보존하기만 하면 되었습니다.

  

그 자녀들은 바로 이 일에 동참하는 자들이었습니다. 아내나 자녀나 며느리나 모든 노아의 가족들은 이와 같이 생명을 보존하는 일에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자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생명이 보존되는 자들이었고 그래서 그들이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을 받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 가정에 존재하는 모든 자녀들에게도 이와 동일한 하나님의 약속이 있습니다. 그들은 모태신앙으로 혹은 어려서부터 믿는 신앙으로 남들보다 일찍 신앙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특별한 위치와 환경 속에서 믿는 부모의 자녀들은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 속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자신들이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이 패역한 세대에서 사람이 생각하는 것이나 계획하는 것이 항상 악하기만 한 이 세상 속에서 구원을 얻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자들은 하나님의 구원의 약속을 믿는 자들이었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하나님이 존재하시고 역사하심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하나님이 하고자 하시는 일에 동참하며 살아갑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인 자녀들에게 꿈과 소망을 주십니다. 자신들은 이 세상에서 어떤 생명 있는 존재들을 만나서 그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며 하나님 앞에서 그 생명을 보존하게 할까를 생각합니다. 단순히 자신을 위해서 먹고 마시고 즐겁게 살 것을 목표로 하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서 어떤 생명을 어떻게 살리는 일을 할 것인가를 생각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그 속에서 교회는 그들이 다녀야 하는 하나님의 나라이자 천국의 그림자입니다. 여기서 하는 일이 바로 하나님 나라이자 천국에서 하는 일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약속대로 구원을 받고 났을 때 그 모습은 어떠할까요? 그 모습이 자기를 위해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으로 자신을 즐길까를 생각하는 것이 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천국에서 하는 일은 바로 하나님의 일을 행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즐길까를 노력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생명을 살리는 일을 하시고 그 생명을 살리는 일이 하나님 나라에서 놀랍게 펼쳐지고 있습니다. 우리도 바로 그 일에 동참하는 자들이 될 때에 비로소 구원받는 자들이 됩니다

  

대학가는 사람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대학가서 무엇을 할까요? 직장에 들어가는 사람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직장에서 무엇을 할까요? 대학을 들어가기 원하고 직장에 들어가기를 간절히 원할 때 준비하는 일은 대학에 들어가기 위한 일이고 직장에 들어가기 위하는 일이며 그 일을 통해서 마침내 대학이나 직장에 들어갔을 때 그 이후에 하는 일도 바로 그 전에 했던 일을 더 활발하게 하는 것 뿐입니다.

  

천국에 들어가려는 것도 그렇습니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구원을 받는 것인데 그 구원을 받는 것이 생명을 살리게 되는 일입니다. 바로 자기 생명을 살리는 일인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구원을 받으려는 사람은 다른 생명도 살려야 합니다. 왜냐하면 구원을 받아서 천국에 가서 하는 일도 생명을 살리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자기 생명을 살리는 일이나 천국에서 하는 일이 생명을 살리는 일이기 때문에 지금 구원을 얻고자 하는 자들은 자신의 위치와 상황에서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 애를 써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구원 얻는 자들이 하는 일이고 하나님께서 세우신 언약입니다.

  

만약 그 반대를 생각해 보십시오. 지옥에 들어가려는 사람들이 하는 일이 무엇일까요? 이를 유추해 보기 위해서 교도소에 들어가고자 하는 사람들이 하는 일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들은 범법행위를 저지릅니다. 그래야 교도소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교도소에 들어갈 자격(?)을 얻게 위해서 죄를 저지릅니다. 그러면 교도소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지옥에 들어가려는 사람들도 마찬가집니다. 그들은 죄를 저지릅니다. 선을 추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따르지 않고 자기 자신의 욕심과 감정과 생각을 따릅니다. 그것이 악하기 때문에 그렇게 하고 싶은 대로 하면 자연히 지옥에 합당한 자가 됩니다. 죄를 저질렀기 때문입니다. 죄는 어디에나 따라다닙니다. 범죄를 저지르고 이 나라를 떠나도 다른 나라에서 범죄자로 살아가는 것처럼 인간의 심판을 받지 않고 죽어도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모르고 세상에서는 마음껏 자기 하고 싶은 대로의 일들을 하면서 살아갑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노아와 그 자녀들은 달랐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시키시는 생명을 살리는 일을 행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생명을 살리시는 하나님의 일을 행하게 되고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능력이 무엇인지를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바로 생명을 살리는 것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끊임없이 하나님의 생명의 능력을 의지하고 연합하며 순종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하나님께서는 먹을 것과 입을 것과 마실 것을 허락하십니다.

  

“[]6:21 너는 먹을 모든 양식을 네게로 가져다가 저축하라 이것이 너와 그들의 먹을 것이 되리라

  

비로소 먹을 양식을 가져와서 저축할 수 있게 하셨고 그것이 노아와 노아 가족들의 먹을 것이 되었습니다. 그 양식은 삶의 목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면서 살아가는 동안 먹고 살 수 있는 양식일 뿐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일을 행하게 하시면서 굶고 살게 하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열심히 행할 때에 먹을 것이 있게 하셨고 유지되고 보존되게 하셨으며 그것이 먹을 만한 것이 되도록 허락해 주셨습니다.

  

 

  

자녀 관계에 대한 하나님의 능력의 은혜를 깨닫는 것은 우리가 어떻게 자녀를 키울 것인가를 보여줄 뿐만 아니라 어떤 목표를 갖게 할 것인가를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바로 그런 능력을 주셨습니다. 그 능력을 활용해서 자녀들과 함께 하나님의 언약을 이루어가야 합니다. 구원에 관한 언약을 이루고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소망을 함께 꿈꾸어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약속의 신실함을 누릴 수 있습니다. 부족하더라도 어려워 보이더라도 우리는 그 방향으로 나아가야만 우리의 구원도 얻을 수 있습니다. 노아는 마침내 일어난 홍수를 잘 극복하고 모든 일이 다 끝나서 온전한 구원을 누렸고 그 때 하나님께서는 그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면서 모든 존재가 그들을 무서워하며 순종하게 하시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지금도 하나님께 순종하여 하나님의 구원의 일을 잘 끝낸 자들은 영광스럽고 존귀한 자가 됩니다. 우리에게는 이러한 존귀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소망이 있습니다. 이것을 현재의 가족들과 함께 이루며 살아가기를 소망하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크신 능력이 함께 할 것입니다. 이러한 은혜가 자녀 관계에 대한 하나님의 능력을 사모하시는 성도님들의 가정에 충만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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