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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충만] 55딤후 1; 1-6 너로 생각하게 하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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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딤후 1; 1-6 너로 생각하게 하노니_1

  

 

  

2018. 8. 5. 주. 주일오전.

  

 

  

*개요:  인생의 마지막 변화의 기회, 56충만, 1적용

  

[딤후]1:1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약속대로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은

  

[딤후]1:2             사랑하는 아들 디모데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로부터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네게 있을지어다

  

[딤후]1:3             내가 밤낮 간구하는 가운데 쉬지 않고 너를 생각하여 청결한 양심으로 조상적부터 섬겨 오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딤후]1:4             네 눈물을 생각하여 너 보기를 원함은 내 기쁨이 가득하게 하려 함이니

  

[딤후]1:5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이 있음을 생각함이라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

  

[딤후]1:6             그러므로 내가 나의 안수함으로 네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불일듯 하게 하기 위하여 너로 생각하게 하노니

  

 

  

8월에 우리가 살펴보는 성경은 디모데후서입니다. 디모데후서는 우리가 이 시기에 받을 수 있는 그리고 받아야 하는 은혜를 생각나게 합니다. 디모데후서 자체가 바울이 마지막으로 디모데에게 보내는 편지였기 때문에 더욱 절실하고 간절한 은혜를 깨닫게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가기 전에 사도 바울 자신이 이 세상에 남아있는 디모데에게 그가 받을 수 있는 은혜를 받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모습을 볼 때 우리는 우리가 받아야 하는 은혜를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은혜는 더 추가되어야 하는 은혜가 아니라 생각되어야 하는 은혜였습니다. 지나쳐 왔던 은혜를 다시 돌이켜서 깨달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 은혜를 깨달을 때 세상의 모든 사역을 마치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던 사도 바울처럼 우리도 그렇게 담대하게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종말에 이르기 전에 깨닫게 되는 마지막 은혜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이전에 알았던 은혜를 다시 알게 되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그럴 때 그 은혜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기 때문입니다. 처음 그 은혜를 받았을 때에는 중요한지 모릅니다. 언제든지 다시 그 은혜를 얻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실제로 삶을 살아보면 그 은혜를 계속 누린다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경험합니다. 자신의 이유로 혹은 다른 사람의 이유로 그 은혜가 사라집니다. 그런 은혜의 부족을 경험하고 나면 그 은혜를 다시 깨닫기 위해서 노력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노력을 하면서 비로소 그 은혜가 얼마나 귀한 것이었는가를 새삼 알게 됩니다.

  

체력을 생각해 보십시오. 체력은 이전의 체력이 대개 더 좋았습니다. 체력이 점차 나아지는 것은 열심히 체력훈련을 했을 경우에만 해당되고 대부분의 경우는 예전 체력이 지금 체력보다 더 좋게 느껴집니다. 그래서 과거의 체력을 지금 회복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느낍니다. 건강을 생각해 보십시오. 예전에 건강했던 것은 지금 그 건강을 잃었을 때 아쉽게 느껴집니다. 예전에는 눈이 좋았을 때 귀가 잘들렸을 때 이가 좋았을 때 그 때의 건강을 가지고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허리가 아프고 팔과 무릎이 아프고 뛰거나 걷기가 힘들 때 예전의 건강을 아쉬워하게 됩니다.

  

이와 같이 은혜도 예전의 은혜생활을 아쉬워할 때가 있습니다. 그때에는 열심을 가지고 있었고 교회에도 많이 나왔고 예배도 많이 드렸고 성경공부도 많이 했고 봉사도 많이 했었던 것을 생각합니다. 그때에는 순수하고 정직하고 기대감이 있고 소망이 있었던 것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못할 때에 그때의 은헤생활을 아쉬워만 할 뿐입니다.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기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몸의 각 부분이 약해지면 다시 원상태로 돌아갈 수 없듯이 신앙도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상황이나 환경을 바라보면 은혜는 회복될 수 없지만 하나님을 바라볼 때 그 모든 은혜는 다시 회복될 수 있습니다. 애초에 은혜를 받았던 것도 상황이나 환경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 때문이었습니다. 그 상황과 환경에서 은혜를 주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뜻이 있었고 또한 하나님께 은혜를 사모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은혜를 받았던 것이기 때문에 지금도 그 은혜를 사모하고 얻고자 할 때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얻는 은혜는 이전에 받았던 은혜를 다시 생각나게 하며 다시 회복하는 은혜입니다.

  

그렇지만 단지 회복만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게 은혜가 회복되는 것이 사실이 더욱 넘치는 은혜입니다. 왜냐하면 상황과 환경은 은혜를 받을 수 없는 형편 속에서 은혜를 얻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젊을 때의 체력이나 건강상태는 당연한 것이었지만 나이 들어서 젊은 때의 체력과 건강을 갖는다는 것은 매우 특별한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디모데후서를 읽으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면 그것은 매우 커다란 은혜를 새롭게 깨닫는 것이 됩니다.

  

 

  

디모데후서는 이러한 은혜를 생각나게 하는 성경입니다. 그 이유는 이 성경은 사도 바울이 순교하기 전 옥중에서 마지막으로 디모데에게 편지를 쓰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나게 했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죽음을 앞두고 있다면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진실하며 더 간절하고 더 절실한 마음을 갖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바로 그러한 마음으로 디모데에게 그가 받은 은혜를 깨닫고 그 은혜로 충만해지기를 원했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은 바로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이기도 합니다.

  

그런 이유에서 사도 바울은 디모데후서 서두에서 이렇게 디모데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딤후]1:1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약속대로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은

  

[딤후]1:2             사랑하는 아들 디모데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로부터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네게 있을지어다

  

바울이 이전에 디모데전서를 쓸 때와 디모데후서를 쓸 때 자신에 대한 소개나 혹은 디모데에 대한 표현이 어떻게 달라졌는가를 보십시오. 디모데전서에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딤전]1:1            우리 구주 하나님과 우리의 소망이신 그리스도 예수의 명령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은

  

[딤전]1:2             믿음 안에서 참 아들 된 디모데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로부터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네게 있을지어다

  

 디모데전서는 로마에서의 1차 투옥 이후에 감옥에서 풀려난 후에 다시 전도여행을 하던 중에 쓴 서신서라서 주후 63년경으로 보고 있고 디모데후서는 2차 투옥 이후에 감옥에 갇힌 중에 쓴 마지막 서신서라서 주후 66년경으로 봅니다. 그 상황의 차이 속에서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의 명령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에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약속대로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로 바뀌었습니다. 또한 디모데에 대한 표현은 ‘믿음 안에서 참 아들 된 디모데’에서 ‘사랑하는 아들 디모데’로 바뀌었습니다.

  

이러한 표현의 변화는 사도 바울의 상황과 형편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보여줍니다. 하지만 그러한 바울에게 전혀 변하지 않는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은혜를 바라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로부터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네게 있을지어다’ 이 말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다시 말해서 사도 바울은 항상 자신이 받는 은혜나 디모데가 받는 은혜는 하나님과 예수님으로부터 오는 것임을 알고 있었고 또한 언제나 그러한 은혜가 긍휼과 평강과 함께 있기를 간절히 바랬던 것입니다.

  

 

  

우리가 고작 100년도 안되는 삶을 살면서 은혜를 받는 수단이 사회나 문화나 혹은 시대적인 영향력 속에서 받는다고 생각한다면 너무나 근시안적입니다. 은혜는 본질적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옵니다. 그 방식이 어떤 것이든지 간에 하나님을 알아가는 은혜는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통해 은혜를 얻게 하시든 모세를 통해 얻게 하시든 다윗을 통해 얻게 하시든지 간에 은혜를 얻게 하는 근원은 전부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래서 북을 두드려야 은혜를 받게 하는 것도 아니고 마루에 앉아야 은혜를 받는 것도 아니고 교리공부를 해야 은혜를 받는 것도 아니고 성경시험을 봐야 은혜를 얻는 것도 아닙니다. 본질적인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은혜를 알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방법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러한 본질을 깨닫는다면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엇이 없어서 은혜를 받을 수 없고 혹은 무엇이 있어야 은혜를 받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면 모세가 없어서 은혜를 받을 수 없고 다윗이 있어야 은혜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습니다. 더 나아가서 은혜를 받기 위해서 호렙산이 있어야 하고 은혜를 받기 위해서 골리앗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면 얼마나 미신적인 생각입니까! 오히려 하나님의 은혜는 엘리야가 갈멜산 제단에 불을 내려 달라고 기도하기 전에 물을 듬뿍 붓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그 은혜를 사모하는 자에게 넘치도록 부어집니다. 문제는 은혜를 사모하는가 아니면 은혜의 조건을 사모하는가일 뿐입니다. 지금도 우리는 그 조건과 환경에 매우 관심이 많습니다.

  

이 모든 것을 초월하여 하나님의 은혜에 집중하고자 한다면 좀더 근원적인 질문을 가져봅니다. 우리는 도대체 왜 그렇게 하는 것일까요? 우리에게 은혜가 필요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우리에게 은혜가 있다면 하나님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 하나님을 생각할 때 하나님과 함께 있음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있음을 깨달을 때 우리 속에는 근원적인 기쁨이 생깁니다. 그 영적인 기쁨을 깨닫기를 원합니다. 그 기쁨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과 멀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가까워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은혜가 있기를 원합니다. 이것은 물질적인 것이 아닙니다. 영적인 것입니다. 물질적인 것으로 채울 수 없는 그 빈자리는 오직 영적인 것으로만 채울 수 있습니다. 우리의 조건과 상황과 형편이 어떤 것이든지 간에 그곳에 하나님의 은혜로 채워지고 그 은혜로 인해서 기쁨을 누릴 수 있다면 그 모든 조건이 가장 큰 감사의 조건이 됩니다.

  

 

  

이제사도 바울은 그 은혜를 어떻게 사모하고있는가 살펴보십시오. 로마 감옥에 갇혀서 가장 절박하고 위급한 상황에서도 사도 바울이 은혜로 채워질 수 있었던 것은  사랑하는 아들 디모데에게 있던 하나님께 대한 거짓이 없는 믿음을 생각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딤후]1:3            내가 밤낮 간구하는 가운데 쉬지 않고 너를 생각하여 청결한 양심으로 조상적부터 섬겨 오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딤후]1:4             네 눈물을 생각하여 너 보기를 원함은 내 기쁨이 가득하게 하려 함이니

  

[딤후]1:5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이 있음을 생각함이라

  

디모데를 생각하며 사도 바울은 걱정과 근심을 한 것이 아니라 기쁨과 감사를 하였습니다. 그 기쁨과 감사는 하나님께 대한 기쁨과 감사였습니다. 그 하나님은 조상 적부터 섬겨오는 하나님이었고 청결한 양심으로 섬기는 하나님이었습니다. 그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기에 디모데에 대해서 밤낮 쉬지않고 간구하면서 그를 위해 기도할 수 있었고 또한 그의 눈물을 기억하면서 그를 다시 보게 되기를 간절히 원했습니다. 그것이 사도 바울의 기쁨이 되는 이유는 디모데에게 있는 ‘거짓이 없는 믿음’을 생각하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단순히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만 얻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믿음의 사람들을 보면서 얻는 것이었고 그 진실하고 거짓이 없는 믿음을 보면서도 얻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믿는 자에게 기쁨이 되는 것은 자신에게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셨을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다른 사람에게도 은혜를 주셨음을 발견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은혜는 한 사람이 독차지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기적인 목적으로 사용되는 것도 아닙니다. 그 은혜는 함께 나누는 것이고 널리 퍼지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기를 기뻐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온전한 은혜입니다. 산에 함께 오르기를 원하고 바다에 함께 가기를 바라고 강과 계곡에 함께 가기를 바라는 것처럼 하나님의 은혜는 너무나 큰 것이기에 그것을 받은 또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할 때 더욱 더 기쁨과 감사가 커집니다. 또한 그 은혜는 아무렇게나 해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에서 나오는 사랑으로 바라볼 때 가능합니다.

  

디모데에게 있어서 그 믿음은 외조모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딤후]1:5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

  

이미 디모데는 외조모와 어머니를 통한 믿음의 계승자였습니다. 그렇게 믿음이 계승되면서 청결한 마음과 거짓이 없는 믿음은 온전한 것이 되었습니다. 자기 욕심을 위한 믿음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한 믿음으로 승화되었고 그렇게 온전한 믿음을 볼 때 하나님의 은혜가 더욱 풍성하게 나타났습니다. 우리가 이런 믿음을 가진 사람을 볼 때 진정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게 됩니다.

  

여러분들도 어떤 경로를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 경로를 생각해 보면 그것이 얼마나 큰 은혜인가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자신의 삶의 경로를 통해서 은혜를 얻게 되는 이유는 하나님의 역사하심과 온전케 하심 속에서 기쁨과 감사를 얻게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손길과 그 손길을 주신 오묘한 뜻을 발견할 때 우리 자신에게서 얻는 기쁨을 다시 한번 발견하게 되고 또한 더 나아가 진정으로 하나님께 감사하게 됩니다.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면서 우리에게는 이 은혜가 필요합니다. 디모데의 믿음이 로이스와 유니게를 통해 왔음을 깨닫듯이 그 은혜가 어떤 경로를 통해서 우리에게 왔는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또한 그러한 은혜의 사람들 속에 있을 때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있음을 깨닫고 감사하게 됩니다. 사도 바울이 죽음을 앞두고서 감사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 자신도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살아가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그 은혜의 중요성을 다시 깨닫게 하고 그 은혜가 더욱 불 일듯 일어나게 하게 위해서 이제 정말 중요한 일을 행하고 있습니다. 6절입니다.

  

“[딤후]1:6            그러므로 내가 나의 안수함으로 네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불일듯 하게 하기 위하여 너로 생각하게 하노니”

  

그것은 ‘너로 생각하게 하노니’라는 것입니다. 그 생각을 다시 하게 될 때에 ‘다시 불일듯 하게’ 되고 그렇게 다시 불붙는 것은 바로 이전에 ‘나의 안수함으로 네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입니다. 그렇게 되는 것이 바로 ‘너로 생각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마다 이전에 받았던 하나님의 은사가 있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받았던 놀라운 은혜가 있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은혜를 사모하며 우리로 하여금 다시 생각하게 하심을 통해 그 하나님의 은사를 깨닫는 것입니다. 그럴 때 꺼져가는 불에 새롭게 땔감이 주어지는 것처럼 우리에게 주셨던 하나님의 은사가 다시 불붙으며  우리의 기쁨과 감사가 다시 타오를 수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하나님은 은혜를 주십니다. 그 은혜를 사모하는 자들이 은혜를 얻게 됩니다. 그 은혜를 얻게 될 때에 기쁨과 감사가 있습니다. 그 기쁨과 감사는 자신 만의 외로운 삶이 아닙니다. 청결한 마음과 거짓이 없는 믿음으로 주를 바라보는 다른 성도들과 함께 있으면서 나타납니다. 그 은혜를 사모하며 더욱 주님께 나아갑시다. 그래서 예전에 받았던 그 은혜를 다시 생각하게 되며 예전에 누렸던 그 기쁨과 감사로 다시 충만하게 되어서 이 시대를 더욱 새롭게 살아가게 되는 귀한 하나님의 백성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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