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동행] 51골 1; 24-29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의 소망Loading the player... Loading the player... []
51골 1; 24-29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의 소망_1
2018. 5. 27. 주. 주일오전.
*개요: 그리스도의 소망을 아는 성도들, 55동행, 4극본적 해석, 6서신서 [골]1:24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골]1:25 내가 교회의 일꾼 된 것은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직분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 함이니라 [골]1:26 이 비밀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감추어졌던 것인데 이제는 그의 성도들에게 나타났고 [골]1:27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얼마나 풍성한지를 알게 하려 하심이라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 [골]1:28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 [골]1:29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
5월 한 달 동안 우리는 골로새서의 주제인 그리스도의 영광에 대해서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그 영광을 어린이의 모습으로 바라보았고 또한 자녀의 입장에서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교사와 학생의 입장에서도 역시 바라보았습니다. 우리의 위치와 입장과 방향이 세월의 흐름에 따라서 바뀌기는 하지만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면서 항상 바라보는 것은, 그리고 마땅히 바라보아야 하는 것은 항상 그리스도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항상 그리스도와 함께 있어야 하고 항상 그를 따라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그리스도안에 있으면서 우리의 최종 목적지인 하나님의 나라에 이르게 됩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영의 아버지 되신 하나님의 나라에 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나라에 가기 위해서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할 때에 그 나라는 그리스도의 나라이기도 합니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아들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믿는 성도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열심히 그리스도를 의지하고 따라갈 때에 그리스도의 나라에 이르게 되고 그곳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여행객들이 여행을 하면서 가이드를 따라갑니다. 사람이 많이 있으면 가이드를 잘 따라오도록 깃발을 들고 있기도 합니다. 그러면 그 깃발을 잘 따라갈 수 있습니다. 가이드에게 바짝 붙어 있으면 여러 여행지에 대한 설명을 잘 들을 수도 있습니다. 좀 멀리서 따라가면 설명을 들을 수는 없지만 떨어지지 않는 것만도 잘하는 일입니다. 목적지에 잘 도착할 수 있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가이드는 예수님이고 우리의 목적지는 하나님 나라입니다. 예수님을 잘 바라보면 목적지에 잘 도착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면서 그분을 의지할 때에 우리의 믿음이 커지고 신앙이 돈독해집니다. 신앙 초기의 연약함은 점차 사라지고 더욱 흔들림 없고 든든한 믿음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신앙에서 성장하는 방법도 그리스도이고 또한 그리스도를 바라보면서 신앙도 성장합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모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바로 그러한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어느 누구보다도 더욱 그리스도를 의지하는 삶을 살았고 또한 그로 인해서 누구보다도 더욱 귀한 일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골]1:24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골]1:25 내가 교회의 일꾼 된 것은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직분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 함이니라” 그는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 된 교회를 위해서 자신의 육체에 채웠습니다. 이 말은 고난을 감수하고 인내하면서 복음 전파를 위해서 애썼다는 의미입니다. 또한 그러한 일을 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그 말씀을 성취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도 바울을 이방의 사도요 그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사용하시는 그릇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바울은 잊어버리지 않고 그 말씀에 순종하여 그 말씀을 실천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럴 때 그는 정체되거나 변질되거나 하지 않고 꾸준히 믿음의 진보를 이루어갈 수 있었습니다.
바로 이러한 기준에 비추어 볼 때 우리는 누구나 다 완성되지 않은 믿음과 더 자라야만 하는 신앙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든지 부족한 목회자요, 부족한 직분자요, 부족한 평신도 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시작이자 과정입니다. 그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서 그리스도를 바라보아야 하고 그럴 때 그리스도의 영광과 놀라우심을 만나게 됩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바로 그 부족함을 채워주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부족함을 그냥 내버려두시거나 우리 스스로 합리화하고 정당화하게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항상 그 부족함이 우리의 시작이지만 우리의 끝은 언제나 완성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믿음이 부족했던 도마에게 예수님이 어떻게 하셨는가를 생각해 보십시오. “[요]20:26 여드레를 지나서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있을 때에 도마도 함께 있고 문들이 닫혔는데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고 [요]20:27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예수님은 자신의 부활을 믿지 못했던 도마에게 말씀하시기를 그의 손가락을 내밀어서 자신의 손을 보고 그의 손을 내밀어서 자신의 옆구리에 넣어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믿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온전히 믿지 못함을 심판하시는 분이 아니라 온전히 믿을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럴 때 도마는 온전하게 믿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의 부족함이 채워지고 온전해지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과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의심이 있을 때, 혹은 그분의 말씀인 성경에 대한 불신이 있을 때, 아니면 그분의 행하심과 도우심에 대한 실망과 절망이 있을 때 성도는 연약해지고 부족해집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연약함과 부족함을 붙들어 주시고 도와주려고 하십니다. 때로는 그런 마음이 죽기 전에 다 해소되는 것이 아닐 수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서야 비로소 그 모든 것에 대해서 온전한 이해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나라에서는 모든 것이 설명되고 이해되며 깨달아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부족함이 있다 하더라도 하나님 나라로부터 멀어지면 안됩니다. 도마도 그가 예수님의 설명을 듣게 된 계기는 제자들과 함께 집안에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만약 그가 더 이상 제자들과 함께 다니지 않고 발을 끊었다면 과연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런 설명을 해 주셨을 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저는 누군가에게 하나님과 예수님에 대한 존재의 의심이 있다면, 그 말씀에 대한 불신이 있다면, 그 행하심에 대한 실망이 있다면 그 모든 것을 하나님 나라에 가서 확인해 보라고 말해줍니다. 또한 하나님 나라에 가면 하나님께서 그 모든 것을 설명해 주실 것이라고 확신 있게 말하기도 합니다. 천국은 그런 연약함을 온전하게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많은 시간을 보낼 가치가 있습니다. 천국에서는 시간이 많습니다. 그 시간은 결코 유한하지 않고 영원합니다. 그런 소망을 가질 수 있는 곳이 하나님께서 계신 하나님 나라입니다. 지옥에는 그런 것이 없습니다. 혹시 어떤 설명이 있다 하더라도 큰 의미가 없습니다. 아무리 왜 지옥에 오게 되었는지를 알게 된다 하더라도 지옥 자체에 있는 것이 괴롭기 때문에 그 고통을 사라지게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지옥에서 받는 영원한 고통이 있기 때문이고 무엇보다도 지옥에 있다는 것 그 자체가 고통이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하나님께서 그 자녀들의 부족함을 채우시는 특별한 방법은 놀랍습니다. 최종적으로는 하나님 나라에서 온전한 완성이 이루어지겠지만 그 완성을 이루시기 전에 먼저 특별히 이 세상에서 준비하시는 특별한 방법이 있습니다. 그 특별한 방법이 점차 진행될 때 마침내 하나님 나라에서의 온전한 완성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그것은 말하자면 ‘부족한 목회자, 부족한 직분자, 부족한 평신도’라고 할 때 그 부족함은 하나님 나라에서 완성되지만 먼저 이 세상에서는 그 부족함을 가지고 있는 그 어떤 사람이 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부족하지만 목회자요, 부족하지만 직분자요, 부족하지만 평신도가 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아예 목회자도 아니고 직분자도 아니고 평신도도 아니라면 부족하거나 말거나를 생각할 필요가 없지만 일단 목회자가 되고 직분자가 되고 평신도가 되게 하시기 때문에 그 다음에 부족함을 채우실 놀라운 계획이 생겨나게 하셨습니다. 이를 설명하는 26, 27절을 보겠습니다. “[골]1:26 이 비밀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감추어졌던 것인데 이제는 그의 성도들에게 나타났고 [골]1:27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얼마나 풍성한지를 알게 하려 하심이라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 만세와 만대로부터 감추어져 왔던 비밀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의 성도들에게 나타났습니다. 그 성도들을 통해서 그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얼마나 풍성한지를 알게 하셨습니다. 그 비밀은 바로 우리 안에 계신 그리스도였습니다. 그 그리스도가 의미하는 것은 영광의 소망이었습니다. 이를 이해하기 쉽게 다시 말하면 이방인들이 천국에 갈 소망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족하기는 하지만 그 부족은 천국에서 완성할 소망을 가지고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게라도 된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영광의 소망인 것은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어떤 외적인 모습으로 우리를 구원해 주신 것이 아니라 우리가 죄인이었을 때에 부족하고 죄 많은 인간이었을 때에 미리 사랑해 주셔서 우리에게 구원의 소망을 갖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부족하게라도 천국을 바라보며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오직 우리를 외모로 판단하지 않으시고 온전히 사랑해주신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영광이 풍성한 것입니다. 목회자로, 직분자로, 평신도로 부족한 모습이 있기는 하지만 그런 부족한 모습으로라도 존재하기만 할 때 그 자체가 감사한 일입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의 존재를 다 믿지 못하고 성경에 대해서 다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 역사하심에 대해서 실망과 분노가 있다 하더라도 성도라는 그 자체가 감사하고 고마운 일입니다. 아예 믿음 자체가 없다면 고민이나 의심도 존재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확신이 없고 의심이 많으면서도 교회에 꾸준히 나오기라도 하니까 그 나머지 부족한 부분은 그 언젠가 채워지리라고 소망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 아예 나오지도 않으면 아무런 소망이 없게 되어 버립니다.
이 영광의 소망 가운데 우리는 최종적인 절정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한 사람의 부족함을 채우는 순간이란 바로 그리스도 안에서의 완전함에 이르게 되는 때인 것입니다. 그래서 그 완전함을 바라보며 지금 해야할 일을 할 수 있습니다. 28절을 보십시오. “[골]1:28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 사도 바울이 복음의 일꾼으로서 주를 전파합니다. 그리고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칩니다. 그 목적은 하나입니다.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는 것입니다. 이 말은 각 사람이 주를 받아들이기에 부족한 부분이 있지만 완전함을 위해서 노력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 부족함이 주의 존재이건, 주의 말씀이건 주의 다스리심이건 그 모든 것이 완전해지기를 바라면서 애를 쓸 수 있습니다. 그런 소망이 없었다면 전파하지도 않고 권하지도 않고 가르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목회자나 직분자나 평신도에게 부족함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서 그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서 노력합니다. 그럴 때 중요한 목표는 그의 부족함이 채워져서 완전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완전하게 되는 것은 단순히 노력이나 지혜나 훈련으로 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가 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 부족함을 채우시는 분은 오직 그리스도 자신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바로 그 일을 각 사람에게 친히 역사하십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그 일에 일꾼으로 봉사하면서 그를 전파하고 그의 지혜를 가르쳤던 것입니다.
우리도 우리 자신의 인생 속에서 이러한 신앙생활을 살아갑니다. 영적인 지혜로 채워지는 것, 영적인 은사로 채워지는 것, 기도 제목의 응답을 받는 것, 또는 어려울 때 위기를 극복하는 것, 괴로움을 이기고 목표를 이루게 되는 것, 그 모든 것이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하게 하시려는 예수님의 자상하신 도우심입니다. 때로는 그 속에서 우리가 어리석고 무례하게 하나님께 행하는 모습이 있더라도 예수님께서는 다시 한번 용납해 주시며 일흔 번씩 일곱 번 용서해 주시면서 우리를 완전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그 일이 우리의 살아 생전에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그 나머지는 천국에서 이루어지게 될 것입니다. C.S.루이스는 천국에서도 진화론자일까요? 천국에서도 연옥을 믿고 있을까요? 천국에서도 술과 담배를 피고 있을까요?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그곳에서 그는 완전하게 되어서 그의 모든 부족함이 사라진 모습으로 그가 당대 최고의 기독교 저술가로 교수로 평신도로 행해 왔던 모든 좋은 것에 대한 칭찬과 상급으로 충만해 있을 것입니다. 이는 마치 욥이 고통 속에서는 어리석은 말을 많이 하였지만 하나님을 만나고 많은 설명을 들은 다음에는 자신의 어리석음을 회개하였고 하나님께서 그를 용서하시며 그를 의롭게 하신 것과 같습니다. 마찬가지로 모든 부족한 목회자가, 부족한 직분자가, 부족한 평신도가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완전한 모습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면서 자신들을 그 모든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나라로 인도하신 그리스도의 영광을 찬양할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영광의 소망입니다. 그 소망이 있기에 사도 바울은 지금 자신이 처한 삶 속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골]1:29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 한 사람이 자신의 속에서 능력을 주시고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릅니다. 그리고 자신의 있는 힘을 다해서 최선을 다해서 복음의 일꾼으로 수고합니다. 그 수고함으로 또 다시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알고 있는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칩니다. 그것이 이 세상에서 완전함을 이루게 되지 못할 지라도 나머지는 하나님 나라에서 보충해 주시리라고 믿고 수고합니다. 그러면서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를 경험하게 됩니다. 우리는 이러한 소망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 안에 계신 그리스도의 소망입니다. 이 소망을 함께 가지고 나아가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있는 그리스도의 소망이 지금 얼마나 크고 영광스러운지, 앞으로 얼마나 더 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나타날지를 깨닫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마침내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모든 수고의 결실이 완전함으로 이루어질 때까지 함께 그리스도의 영광의 소망을 바라보고 나아가는 우리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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