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충만] 51골 1; 3-8 그리스도의 나라를 소망하며 자라남Loading the player... Loading the player... []
51골 1; 3-8 그리스도의 나라를 소망하며 자라남_1
2018. 5. 6. 주. 주일오전.
*개요: 그리스도 안에 사는 성도들, 56충만, 6서신서, 1적용 [골]1:3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감사하노라 [골]1:4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너희의 믿음과 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을 들었음이요 [골]1:5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쌓아 둔 소망으로 말미암음이니 곧 너희가 전에 복음 진리의 말씀을 들은 것이라 [골]1:6 이 복음이 이미 너희에게 이르매 너희가 듣고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날부터 너희 중에서와 같이 또한 온 천하에서도 열매를 맺어 자라는도다 [골]1:7 이와 같이 우리와 함께 종 된 사랑하는 에바브라에게 너희가 배웠나니 그는 너희를 위한 그리스도의 신실한 일꾼이요 [골]1:8 성령 안에서 너희 사랑을 우리에게 알린 자니라
모든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나 다 어린 시절이 있습니다. 어린 시절이 없는 사람이 없고 그렇게 어린 시절에는 모든 것이 다 낯설고 잘 모르며 어색합니다. 그러한 어린이였을 때의 시기를 잘 보내고 나면 그 다음에 어른이 되어서 모든 것을 배우고 경험하면서 성숙한 삶을 살게 됩니다. 그래서 그 어린이 시절에는 성인이 될 때까지 잘 보호되고 도움을 받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성장과 발전에 어려움을 겪게 되기도 합니다. 그와 같이 신앙에서 성장하는 과정 속에서도 신앙의 어린시절동안 도움을 잘 받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도움을 받을 때 그 신앙 생활이 고통이나 괴로움이 아니라 기쁨과 소망이 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럴 때 신앙생활을 하는 곳은 기쁨의 장소가 되고 신앙생활의 내용은 기쁨이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신앙의 어른이라면 신앙을 기쁨과 소망으로 받아들이는지가 중요합니다. 그래야 신앙의 어린이들이 기쁨과 소망 속에서 자라날 수 있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신앙에서 어린이라면 역시 신앙 속에서 기쁨과 소망을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신앙생활이란 결국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생활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믿기는 하지만 그것이 억지와 고통과 괴로움에 의한 생활이라면 하나님을 통한 은혜를 받기 보다는 하나님에 대한 반감만 쌓일 것입니다. 그것은 결국에는 자신에게도 악영향을 미쳐서 하나님께 대한 불순종과 부정적인 모습을 만들어 낼 것입니다.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신앙의 가장 기쁜 요소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그 기쁨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제 여러분의 신앙은 기쁨의 모습인지 아니면 괴로움의 모습인지를 생각해 보십시오. 신앙이 자신의 기쁨의 장소라고 한다면 그 속에서의 진정한 모범이 될 것입니다. 그것이 신앙의 어린이들에게도 귀한 영향을 주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신앙이 바로 그러한 기쁨의 내용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신앙이 고통과 괴로움의 내용이 되지 않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날마다 잘 자라게 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영의 아버지이시기 때문에 신앙 속에서 기쁨과 소망으로 잘 자라게 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이 말은 결코 신앙을 기쁨으로 할 수 없는 자들에게 신앙을 기쁨으로 할 수 있다고 하소연하는 말이 아닙니다. 도저히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할 수 없는 자에게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할 수 있다고 설득하는 말도 아닙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인정할 수 없는 자에게 그것을 인정해야 한다고 강요하는 것도 아닙니다. 이 말은 신앙을 기쁨으로 할 수 있는 자들에게 그것이 왜 기쁨이 되는가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말입니다.
골로새서는 특별히 이러한 신앙의 가장 기쁜 요소가 무엇인가를 핵심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가장 기쁠 수 있는 요소와 가장 기뻐해야만 하는 요소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지금까지 우리가 살펴보고 있는 서신서의 흐름과도 일맥상통합니다. 그 핵심요소는 바로 ‘그리스도’입니다. 골로새서는 신앙의 가장 핵심 요소인 ‘그리스도’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기쁨을 발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럴 때 우리의 신앙은 가장 기쁠 것입니다. 또한 가장 의미 있을 것입니다. 신앙은 항상 내 삶 속에 유지되며 그 신앙은 내 생각과 마음에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이러한 기쁨의 요소를 찾지 못하면 우리는 그 기쁨을 찾기 위해서 기회가 있는 대로 노력을 해야 합니다. 먼저 이 기쁨의 요소가 되는 그리스도를 알기 위해서 3절을 함께 보도록 하겠습니다. “[골]1:3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감사하노라” 골로새서는 그리스도의 특별함과 온전한 가치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그리스도에 대해서 설명할 때 그 시작은 그리스도는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이시라는 것입니다. 또한 그리스도의 아버지가 하나님 아버지시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되시고 그분이 얼마나 귀하신 분인가를 보여줍니다. 그리고 우리는 바로 그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자들이며 그로 인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들임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는 말 그대로 ‘우리는 너희를 위해서 기도할 때마다 우리가 믿는 예수님의 아버지이신 하나님께 감사한다’는 것입니다. 이 기도와 감사 속에는 분명한 감사의 이유와 기쁨의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이 감사와 기쁨의 되는 이유가 그 다음에 나타납니다. “[골]1:4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너희의 믿음과 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을 들었음이요” 그 이유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너희의 믿음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또한 그리스도 예수 안에 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온전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이 있었기 때문에 너희를 위해 기도할 때 하나님께 감사하였던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을 가지고 있고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귀한 일인지 모릅니다. 그 말은 상대적으로 그리스도께서 그를 믿고 계시고 그리스도께서 그를 사랑하신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믿음과 사랑은 결코 저절로 생겨나지 않습니다. 분명히 그 자신도 그리스도로부터 은혜를 받았기 때문에 그런 믿음과 사랑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렇게 믿음과 사랑을 가질 수 있도록 은혜를 주신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를 드립니다. 이러한 믿음과 사랑이 바로 기쁨의 요소들입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마음과 모든 성도를 사랑하는 마음이 그리스도 안에 있음을 기뻐하는 요소가 됩니다. 우리에게 신앙에 대해서 기쁨이 있을 때에 그 기쁨은 신앙의 대상인 예수님께 대한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분이 주신 사람들에 대한 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믿음과 사랑 속에서 우리는 그리스도를 의지하고 따라가는 신앙생활에 기쁨을 갖는 것입니다.
이러한 기쁨의 요소는 다른 어떤 곳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음과 사랑이 없는데 그곳을 기뻐할 수 있겠습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만약 자신의 집에 믿음과 사랑이 아닌 미움과 분노가 있다면 그곳에 들어가고 싶지 않을 것입니다. 부부싸움을 하거나 자녀들과 불화가 생기거나 부모님과 갈등이 있다고 한번 해보십시오. 아무리 좋은 집이라도 그 집은 가장 들어가고 싶지 않은 장소가 되어 버립니다. 학교나 도서관에 가도 그곳에 불신과 갈등이 있다고 해보십시오. 가장 가기 싫은 곳이 학교가 될 것입니다. 직장은 두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곳에 증오와 분노가 넘쳐난다면 너무나 고통스러운 장소가 되어 버릴 것입니다. 그렇다면 나머지 까페나 영화관이나 지하철이나 공원이나 들판이나 시골이나 도시나 서울이나 지방이나 국내나 해외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음과 사랑이 없는 곳은 그 어떤 곳도 기뻐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 믿음과 사랑은 어떻게 생겨나는 것일까요?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과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에 대한 사랑은 어떻게 해서 가질 수 있는 것일까요? 그것은 소망으로부터 옵니다. 5절 말씀을 봅니다. “[골]1:5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쌓아 둔 소망으로 말미암음이니 곧 너희가 전에 복음 진리의 말씀을 들은 것이라” 그 믿음과 사랑은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쌓아 둔 소망으로 말미암음이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늘에 쌓아 둔 소망으로 인해서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과 성도들에 대한 사랑이 생깁니다. 그러니 그 믿음과 사랑이 단순히 그리스도의 현실의 나타남이나 착하고 아름다운 성도들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나라인 하늘에 쌓아 둔 소망 때문에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갖는 것이고 그 하늘에 쌓아 둔 소망 때문에 바로 지금 함께 있는 성도들에 대한 사랑을 갖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소망은 어디에서 생겼습니까? 하늘에 가보지 않았는데 어떻게 그런 하늘에 대한 소망을 가지게 되었습니까? 그것은 전부 복음 진리의 말씀을 받아 들였기 때문에 알게 된 것들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하늘나라가 어떠하며 그리스도의 영광이 무엇인지를 들었기 때문에 그 들은 말씀을 받아들임 속에서 하늘에 대한 소망이 생겼고 그 소망으로 인해서 믿음과 사랑이 생긴 것입니다.
최근 여러 가지 일로 구원파 이단에 대한 관심이 다시 일어났습니다. 유병언, 이요한, 박옥수 계열의 구원파가 왜 이단이며 이들이 왜 문제가 되는지를 새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구원파는 자신의 구원을 강조하면서 이단이 되었습니다. 복음의 말씀을 들으며 그들은 오직 자신의 구원을 생각합니다. 그리스도를 생각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회개와 성화를 통해서 그리스도의 사람들이 되고 그리스도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신앙을 거부하고 회개없이 자신의 깨달음만으로 구원을 받으며 그로 인해서 이 세상에서 사업이나 교제나 교세확장을 통해서 자신들만의 복음과 구원관을 전파하는데 목적을 둡니다. 그들은 사회적으로도 문제를 일으켜서 오대양 집단자살사건이나 세월호 침몰사건 등을 일으켰습니다. 이들과 비교할 때 그리스도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의 의미를 더욱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하늘에 대한 소망이며 그 소망의 핵심은 바로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을 통해 내가 구원받았다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나같은 죄인을 구원해 주셨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럴 때 그 예수님은 우리의 구세주가 되시며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하시며 하늘나라에 이르게 하십니다. 그리고 그 하늘나라는 바로 그리스도의 나라입니다. 조금 뒤의 13절에 이 말씀이 있습니다. “[골]1:13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이것을 볼 때 우리가 하늘의 소망을 갖는 것은 그리스도의 나라에 대한 소망을 갖는 것이고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과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에 대한 사랑을 갖게 합니다. 이러한 요소들이 모두 모여서 우리에게 신앙생활을 기쁨으로 할 수 있게 하는 근원이 됩니다. 또한 반대로 기쁨이 없다면 이러한 요소들 중에 어떤 것이 없기 때문에 우리에게 기쁨이 없는 것입니다. 소망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나라인 하늘에 대한 소망이 없는 것이고 믿음이 없다면 그리스도께서 정말 그 나라의 주인이신지에 대한 확신이 없는 것이고 사랑이 없다면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이 함께 그 나라에 들어가도록 돕는 자들인지에 대한 불신이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자신에게 부족한 것을 깨닫고 그것을 보완할 때 비로소 소망과 믿음과 사랑에 근거한 기쁨을 갖게 될 수 있습니다. 교회는 바로 그것을 위해서 존재합니다. 교회는 각 사람이 자기 자신의 믿음을 갖게 되고 사랑을 갖게 되며 소망을 갖게 되도록 노력합니다. 그 일을 감당하는 책임자가 담임목사입니다. 골로새 교회의 담임교역자는 ‘에바브라’였습니다. 에바브라를 통해서 골로새 교인들은 신앙이 기쁨이 되는 것을 배웠습니다. 7,8절을 보십시오. “[골]1:7 이와 같이 우리와 함께 종 된 사랑하는 에바브라에게 너희가 배웠나니 그는 너희를 위한 그리스도의 신실한 일꾼이요 [골]1:8 성령 안에서 너희 사랑을 우리에게 알린 자니라” 그는 바울과 함께 그리스도의 종 되었던 자이고 사랑하는 자였습니다. 또한 그 사랑 속에서 그리스도의 일꾼으로 그리스도의 나라를 성도들에게 가르친 자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사랑을 바울과 함께 하던 사람들에게 알린 자이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원리가 지금도 적용되어서 우리 각자는 담임목사에게 혹은 담당교역자에게 아니면 그 누군가에게 배웁니다. 그 모든 배움을 통해서 알게 되는 것은 그리스도의 나라에 들어가는 법입니다. 그것이 기쁨으로 되는 것이지 억지로 되는 것이 아님을 배웁니다. 믿음과 소망과 사랑으로 이루어지는 것이지 고통과 괴로움과 슬픔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비유를 들자면 우리 각 사람에게는 마치 믿음의 날개가 있는 것과 같습니다. 각 사람의 연령과 교육수준과 생활수준과는 별개로 존재하는 각자에게 믿음과 소망과 사랑의 분량이 있고 그것을 모두 합쳐서 한 짝의 날개라고 생각을 해보십시오. 어린 아이가 강한 날개를 가질 수도 있습니다. 어른이 약한 날개를 가질 수도 있습니다. 부자가 약한 날개를 가질 수도 있고 가난한 자가 강한 날개를 가질 수도 있습니다. 지금 현재의 수준에서 우리는 이 모든 믿음의 날개를 연습하고 배우며 자라게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자라면 자랄 수록 더 많은 열매를 맺게 됩니다. 그 믿음의 날개가 우리로 하여금 더 많은 일들을 다양하게 합니다. 몸의 연약함과 육신의 부족함을 그 믿음의 날개로 극복할 수 있게 됩니다. 바로 이러한 발전을 이루고 믿음의 날개의 성장을 이룰 수 있게 하는 것이 우리의 신앙에 대한 기쁨입니다. 신앙의 기쁨이 있을 때에 우리에게 있는 믿음의 날개가 더욱 강해지고 분명해지며 튼튼해지게 됩니다. 그로 인해서 더 많은 열매를 거둘 수 있습니다. 그 열매들은 모두 그리스도의 나라를 바라보며 살고 있기 때문에 생기는 놀라운 변화의 결과물입니다. 그 열매를 맺고 있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자라나고 있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6절을 보십시오. “[골]1:6 이 복음이 이미 너희에게 이르매 너희가 듣고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날부터 너희 중에서와 같이 또한 온 천하에서도 열매를 맺어 자라는도다” 복음이 우리에게 알려져서 우리가 그 복음을 듣고 그 은혜를 깨달은 때로부터 우리에게는 믿음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그 믿음은 그리스도의 나라를 바라보는 소망이 있기 때문에 계속해서 자라나고 있습니다. 그 믿음은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에게로 퍼져나가는 사랑이 됩니다. 포기하지 말고 좌절하지 말고 조금씩 그 소망을 가져보면서 믿음의 날개짓을 해보십시오. 그 소망을 가지고 성도들에 대한 사랑을 품어 보십시오. 그럴 때 자신의 믿음의 날개가 펼쳐지고 자라나며 활개치고 퍼득거리게 되면서 날아오르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기쁨입니다. 자신이 하나님의 나라에서 자라나고 있음을 깨달으면서 알게 되는 즐거움입니다. 우리가 지금은 날개가 작고 볼품없고 힘도 약한 자라고 한다면 이제 그 신앙의 기쁨을 깨닫고 그 기쁨으로 살아갈 때에 더욱 더 힘차고 강력하며 아름다운 믿음의 날개로 발전되어질 것입니다.
바로 그 기쁨을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계속해서 하늘의 소망을 주십니다.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부어주십니다. 성도에 대한 사랑을 부어주십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항상 우리에게 이러한 기쁨을 알게 하십니다. 우리의 영원한 목표가 되시며 우리의 끊임없는 능력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면서 끊임없는 기쁨과 소망 속에서 자라나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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