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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양선] 45롬 8; 1-6 선을 이루는 일의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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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8; 1-6 선을 이루는 일의 가치_1

  

 

  

2017. 10. 29. . 주일오전.

  

 

  

*개요:  양선의 가치, 51계획-66양선, 2분석, 6서신서

  

[]8: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8: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8:3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8:4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8:5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8:6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8:7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8:8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양선에 대해서 이번 달 마지막 함께 보고자 하는 것은 선을 이루는 일의 가치에 대한 것입니다. 최종적으로 선을 이루는 것이 자신에게 있어서 높은 가치와 커다란 의미를 갖는 일이 아니라면 그 일은 결코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선을 이루고 선을 행한다는 것이 손해나는 일이고 어리석게 보이는 일이라면 굳이 선을 이룰 필요가 없는 없습니다. 그러면 아무리 선을 행하라고 권해도 선을 행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아무런 가치와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선에 대해서 우리가 갖는 가치와 의미가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 비로소 선을 실천할 수 있습니다.

  

어떤 아이가 친구에게 놀다가 한대 맞았습니다. 이 아이는 그 사실을 엄마에게 알렸습니다. 엄마는 아이에게 말합니다. ‘너는 왜 친구에게 대항을 못하니?’ 이 아이가 말합니다. ‘그건 옳은 일인 것 같지 않아서요.’ 아이는 자신이 생각하기에 옳은 일을 하려고 했지만 엄마의 가치관때문에 무엇이 옳은 일인지 판단하기 어렵게 되어 버렸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이런 식의 수많은 가치판단의 선택을 요구받습니다한대 맞으면 동일하게 한대 때리는 것이 옳은 일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내가 피해를 보면 동일하게 가해자에게 피해를 보게 하는 것이 옳은 일이지만 내가 남에게 피해를 주면 남은 나를 용서하는 것이 옳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럴 때 항상 적용되는 것은 내가 잃은 것이 없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내가 손해보거나 내가 피해를 보거나 내가 어려움을 겪거나 내가 잃어버리는 것이 있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럴 때 그것이 옳은 일이고 그것이 선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선이 아닙니다. 선을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결국은 악을 저지르게 되고 그 악에 대한 기준이 분명하기 때문에 선을 이루는 일은 가치가 떨어지게 됩니다.

  

 

  

진정한 선에 대한 가치와 의미를 알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선의 가치와 의미를 생각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옳고 그른 것 사이에서 판단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선악을 판단하시고 심판하십니다. 그래서 그 모든 일들에 대해서 그 대가가 이루어지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지으시고 만드실 때에는 이러한 선악의 기준과 판단도 함께 만드셨습니다. 이제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선의 가치와 의미가 무엇인가를 살펴보십시오.

  

“[]8: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8: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루어 주신 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게 하신 것입니다. 그로 인해서 우리에게는 정죄함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사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정죄함을 받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선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로 인해서 우리는 그 선을 받아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의미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람의 법에서 우리를 해방하였다는 의미입니다. 선의 의미와 가치는 바로 이것입니다. 생명과 성령의 법이 죄와 사람의 법에서 인간을 끄집어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선이 이렇게 놀라운 의미가 있습니다. 생명과 성령의 법이 인간을 구원하였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선을 깨닫고 그 선을 행하고자 할 때에도 동일하게 이루어집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받은 선에 감사하며 그 선에 응답하여 우리 자신도 선을 이루면서 살고자 할 때 그것은 생명과 성령의 법에 따라서 살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죄와 사망의 법에 따라 살지 않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이 바로 이것이고 우리가 선을 행할 때 이루어지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주신 선을 우리가 받았지만 우리는 정작 선을 행하지 않을 때 생명과 성령의 법을 통해서 구원은 받았으나 죄와 사망의 법 속에서 살아가는 모순적인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은 생명과 성령의 법을 받을 뿐만 아니라 생명과 성령의 법 속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삶 속에서 생명과 성령의 충만함을 누리게 됩니다.

  

 

  

이제 우리의 삶 속에서 생명과 성령의 법 속에서 살 때와 죄와 사망의 법 속에서 살 때를 비교해 보십시오. 먼저 5, 6절을 읽어봅니다.

  

“[]8:5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8:6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생각하고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합니다. 육신의 일은 전부 사망과 관계되어 있고 영의 일은 전부 생명과 평안과 관계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은 진리입니다. 그 진리를 우리는 우리 삶 속에서 경험합니다.

  

먼저 부부의 경우를 생각해 보십시오. 남편이 아내에게 혹은 아내가 남편에게 선을 행할 때와 악을 행할 때를 생각해 보십시오. 남편이든 아내이든 선을 행할 때에는 항상 생명과 평안을 생각하고 그 일이 이루어지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남편이든 아내이든 악을 행할 때에는 항상 사망과 관계된 일을 생각하고 그 일이 이루어지기를 원합니다. 결국은 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배우자가 악을 행한 것과는 상관없습니다. 악을 행했기 때문에 혹은 악을 행했다고 해서 그에 당연한 대가를 치르게 되기를 바라는 그 마음은 선입니까, 악입니까? 그것은 선을 가장한 악입니다. 남편과 아내 관계에서 배우자에게 생명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사망을 생각하는 것은 그것이 악으로 인해서 비롯되었다 하더라도 선을 생각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근원은 육신을 따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사법적인 정의를 논하는 말이 아님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사법적인 절차와 과정에는 피의자의 죄에 대한 증거와 변호와 공판 과정이 필수적이지만 우리의 삶 속에서의 심판은 그러한 과정을 거치지 않습니다. 사법적 과정 자체가 감정적으로 판단하지 않기 위해서 무수히 많은 노력과 시간과 정당성을 필수적으로 포함하고 있지만 삶 속에서의 심판은 그렇지 않습니다. 순간적인 감정과 일시적인 육신의 상태에 의해서 좌지우지될 뿐입니다. 오히려 그러한 과정에 대해서는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8장에서 말씀하신 것이 더 중요한 의미로 나타납니다.

  

“[]8:7             그들이 묻기를 마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일어나 이르시되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고

  

현장에서 붙들린 간음한 여인을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끌고 와서 예수님 앞에서 이 여인을 돌로 쳐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를 물었습니다. 그것은 재판을 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감정적인 동요를 일으키는 것이었습니다. 더 나아가서 예수님을 책잡으려고 하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그럴 때 예수님은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정말로 원하시는 것은 사망이 아니라 생명이라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육의 일이 아니라 영의 일을 생각하신다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육신을 따르는 자가 아니라 영을 따르는 자임을 보여주셨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모두 자리를 떠났을 때 그들은 악을 행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따라서 선을 행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형제가 형제에 대해서 자매가 자매에 대해서 해야 하는 것은 악이 아니라 선입니다. 그 형제가 자신의 먹을 것을 빼앗아 먹었어도, 그 자매가 자신의 옷을 몰래 입고 나갔어도 여전히 나타내야 하는 것은 선입니다. 그럴 때 그 선을 행하는 사람은 생명과 성령의 법안에서 살아가게 됩니다.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되었습니다

  

부모와 자녀의 관계속에서도 부모가 어떻게 하든 자녀가 어떻게 하든 그에 상관하지 않고 여전히 생명과 성령의 법 속에서 살아갈 때에 그렇게 하는 부모가 혹은 자녀가 선을 행하는 자입니다. 그럴 때 그는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된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부모가 자신에게 이렇게 했기 때문에 혹은 자녀가 부모인 자신에게 이렇게 했기 때문에 그에 대해서 앙갚음하고 사망을 생각한다면 결국에 그는 죄와 사망의 법 속에서 살게 됩니다. 그 세계 속에서 그는 자신의 가해자에게 사형을 선고하고 사형을 집행하며 사형 속에서 살아갑니다. 항상 그를 사로잡고 있는 것은 사망 일 수 밖에 없습니다. 살리는 것이 아니라 죽이는 것 속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안타까운 것은 그렇게 살아가는 그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베푸셨던 것은 죄와 사망의 법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그에게 하나님께서 베푸신 것은 생명과 성령의 법이었습니다. 그 생명과 성령의 법 속에서 그는 구원을 받을 수 있었고 죄사함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 선하심을 누리지 못할 때 죄와 사망의 법 속에서 살아가는 그 사람은 여전히 고통과 괴로움 속에서 살아갈 수 밖에 없습니다. 육신을 따르고 육신의 일만을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최근 군대에서 사격장 근처에서 작업을 하다가 총상으로 사망한 군인의 사건이 보도된 적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허망하게 세상을 떠난 군인의 부모님은 군에서 총상원인에 대한 발표가 있은 뒤 더이상의 대응을 하지 않은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원인제공자를 찾고자 요구하지 않았고 슬픔 속에서 조용히 상황을 받아들였습니다. 억울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는데 피해자였던 고인이나 그 유족들은 더 이상의 대응없이 상황을 마무리하였습니다. 그러한 놀라운 모습 속에 담긴 자세한 이유에 대해서는 확실히 알 수는 없지만 아마 그분들은 죄와 사망의 법에살아가는 자들이 아니라 생명과 성령의 법 속에서 살아가는 자들일 것입니다.

 

  

생명과 성령의 법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이 이런 것입니다. 육신을 따르고 육신의 일을 생각하면서 결국에는 사망을 생각하는 것이 아닙니다. 영을 따르고 영의 일을 생각하면서 최종적으로는 생명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선에 대해서 높은 가치를 가지고 그러한 선의 모습에 대해서 귀한 의미를 가질 때 우리는 비로소 선을 행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선을 행할 때 우리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들이 될 수 있습니다.

  

“[]8:7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아니라  수도 없음이라

  

[]8:8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없느니라

  

육신에 속해서 육신의 일들을 생각하는 것은 하나님과 원수가 됩니다그것은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할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합니다.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탕자의 비유에서 둘째 아들이 회개하면서 아버지에게 돌아왔을 때 첫째 아들은 자신의 동생을 못마땅하게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아버지의 재산을(자신의 재산이기도 한) 다 들어먹은 동생을 다시 받아주는 아버지가 못마땅했던 것입니다. 육신에 속해서 육신의 일만을 생각한다면 회개하고 돌아오는 사람들이 별로 반갑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한 생각은 하나님을 기쁘게 하지 못합니다. 우리도 선을 행하고 악을 버릴 때 비로소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사망이 아니라 생명입니다. 다 죽고 다 심판받고 다 멸망하고 다 뿌리뽑히기를 우리가 원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생각이 아닙니다.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지 간에 가능한 살리고 도우며 세우고 고치려고 할 때에 그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합니다. 때로 우리가 살리고자 해도 안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먼저 죽이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육신의 일을 따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살리려고 해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대로 최선의 일을 행하는 사람이 됩니다.

  

 

  

그럴 때 우리 속에는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고 선을 행하고 영을 생각하면서 생명을 추구하고자 할 때에 우리 자신에게 놀라운 열매가 맺히게 됩니다.

  

밭 작물 중에는 뿌리나 줄기에서 열매가 나는 식물들이 있습니다. 뿌리나 줄기 자체가 열매인 것입니다. 고구마, 당근, , , 도라지, 인삼, , 더덕 등이 있습니다. 감자는 뿌리가 아니라 줄기에서 생기는 식물입니다. 이러한 줄기식물에는 연근, 양파, 토란, 마늘 등이 있습니다. 전부 땅 속에서 열매를 캡니다. 겉으로는 줄기와 잎사귀가 무성하게 자라지만 진짜 열매는 땅 속에서 나타납니다

  

여러분의 모습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이 맺는 진짜 열매는 바로 여러분 자신에 있습니다. 여러분이 이런 일을 하고 저런 일을 하겠지만 진짜 열매는 여러분 자신이 얼마나 선을 행하느냐에 달려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열심히 교회 일도 하고 신앙 활동도 하지만 그것은 전부 가지에 불과합니다. 교회봉사도 많이 하고 교회헌금도 많이 하고 교회건축도 많이 했다 하더라도 그 자신 속에 선이 없으면 결국은 열매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올라가는 것은 자기 자신이지 무엇인가를 가지고 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래서 선을 행할 때에 비로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한 사람의 모습을 이루게 됩니다. 그것은 이전에 율법이 하지 못했던 것을 비로소 하나님의 선을 통해서 이루는 것입니다.

  

“[]8:3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8:4  육신을 따르지 않고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영을 따라서 행하는 우리에게 예수님을 생각하면서 감사하면서 선을 행하는 우리에게 비로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자신이 선을 행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 선을 이루게 되기 위해서 우리는 신앙생활을 합니다. 그 선을 이루기 위해서 교회 활동을 합니다. 그 모든 신앙생활과 교회 활동의 온전한 목표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선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 목표를 결코 잊어서는 안됩니다. 골프의 최종 목적이 홀에 공을 집어넣는 것인 것처럼 우리의 모든 신앙생활의 목표는 하나님이 기뻐하실 선을 행하는 것입니다. 그 선을 행하기 위해서 우리는 오늘도 온 힘을 다해서 육과 싸우며 육의 일을 버리며 영을 생각하며 영을 따라야 합니다. 그럴 때 비로소 하나님의 뜻이 우리 속에 이루어집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온전한 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오늘도 선을 이루는 이 놀라운 일의 가치를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그 선을 이루어 보십시오. 그럴 때 우리는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되어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온전한 생명과 성령의 법안에 거하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넘치시기를 주님의 이름을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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