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희락] 45롬 14; 13-18 하나님 나라의 의미와 가치는 희락이다Loading the player... Loading the player... [pdf보기] 45롬 14;13-18 하나님 나라의 의미와 가치는 희락이다_1
2017.6. 18. 주. 주일오전
*개요: 희락의 의미, 3분석, 6서신서, 65충만-63희락 [롬]14:13 그런즉우리가 다시는 서로 비판하지 말고 도리어 부딪칠 것이나 거칠 것을 형제 앞에 두지 아니하도록 주의하라 [롬]14:14 내가주 예수 안에서 알고 확신하노니 무엇이든지 스스로 속된 것이 없으되 다만 속되게 여기는 그 사람에게는 속되니라 [롬]14:15 만일음식으로 말미암아 네 형제가 근심하게 되면 이는 네가 사랑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라 그리스도께서 대신하여 죽으신 형제를 네 음식으로 망하게 하지 말라 [롬]14:16 그러므로너희의 선한 것이 비방을 받지 않게 하라 [롬]14:17 하나님의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롬]14:18 이로써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느니라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의가치가 무엇이고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는 사람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이 무엇이며 하나님의 나라의 의미가무엇인가를 잘 보여줍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이 세상의 목표와 일치하고 하나님의 나라는 단지 세상에서의목표를 구현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너무나 실망스러운 삶밖에 살 수 없을 것입니다. 세상의 목표를이루려는 것은 죄에 근거하기 때문에 그것이 안좋은 것이고 세상에서의 목표를 구현하려고 하면서 이 세상 나라가 얼마나 타락하게 되었는가를 잘 알고있는 자들이 다시 동일하게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나라를 추구하면서 동일한 세상의 목표를 이루고자 한다면 결국 하나님을 이용하는 것 밖에는 되지않습니다. 그렇지만 정말 하나님을믿는 사람들의 가치는 이런 것이 아닙니다. 또한 하나님의 나라의 목표는 세속적인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거룩하신 하나님을 높이는 것이며 그 하나님을 따라가는 것이 바로 진정한 목표요 진정한 가치입니다. 그 이외의 모든 것은 전부 세속적인 목표이자 죄성에 근거한 가치가 됩니다. 하나님을높이고 그분을 따라가는 것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정말 중요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그럴 때 비로소우리는 우리 자신을 위해서 살지 않고 하나님을 위해서 살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 얼마나 우리는하나님의 사람들이 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자가 되는지 모릅니다. 그러한 삶을 살 때 비로소 우리는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자로서의 모습을 갖게 됩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가무엇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깨닫게 해 줍니다. “[롬]14:17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희락이라”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설명할 때 하나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닙니다.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은 전부 이 세상에서우리가 누리고 즐기고 탐하는 것들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그러한 것을 목표로 하는 나라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 나라가 목표로 하는 것은 무엇인가라고 할 때 그것은 ‘성령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입니다. 그냥 의와 평강과 희락이아니라 성령 안에서 얻게 되는 의와 평강과 희락입니다. 성령님께서 깨닫게 하시는 의가 중요합니다. 그 안에서 이루는 평강이 중요합니다. 그 속에서 누리는 희락이 중요합니다. 무엇이 의를 이루는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무엇이 평강을 이루는가가중요합니다. 무엇으로 희락하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 모든 것은 성령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어야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집니다. 예를 들어, 건축물을 짓는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노약자와 장애인을 배려해서 건축물을짓는다면 그러한 요소가 건축물에 들어갈 것입니다. 그러면 일반인에게도 편리합니다. 지진을 대비해서 지진내진설계가 건축물에 들어간다고 해보십시오. 그러면그 건축물은 지진에도 안전하게 됩니다. 또는 열관리를 감안해서 설계를 한다고 해보십시오. 그러면 그 목적에 따라서 효과적인 에너지 관리가 이루어지게 됩니다. 그리고이 모든 것은 그렇게 하지 않는 것과는 다른 특별함을 갖게 됩니다. 이러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하게되는 것은 그러한 목적이 없는 것과는 구별되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이루는 하나님께 대한믿음이나 하나님을 의지하고 바라보며 이루어지기를 원하는 하나님의 나라도 하나님의 뜻을 고려하여 만들어 지는가가 중요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며 행할 때와 그렇지 못할 때가 전혀 다르게 나타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신앙생활을 할 때에 무엇을 먹는가 마시는가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고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평강과 희락을 이루도록 노력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럴 때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우리의 신앙생활에 구현하게되는 것입니다.
어쩌면 여러분들은 제가너무 이상적이고 비현실적인 이야기를 한다고 생각하실 지 모르겠습니다. 사람이 살다보면 다 먹고 마시는것이 제일 중요하지 왜 꼭 그렇게 ‘성령 안에서의 의와 평강과 희락’을추구해야 하는지 이해가 안되실 지도 모르겠습니다. 또한 그런 일을 추구한다고 해도 그것은 신앙심이 깊거나혹은 더욱 수준이 높은 자들에게나 가능한 일이지 않느냐고 반문하실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지않습니다. 현재 우리의 수준과 상관없이 성경은 우리에게 놀라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읽는 자의 사정과 형편을 봐주면서 성경은 우리에게 말하지 않습니다. 성경은우리가 원하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이야기를 해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남녀노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항상 우리에게 전해지는 하나님의 뜻은 동일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닮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령 안에서의의와 평강과 희락을 이루고자 하는 이유는 그것이 그리스도를 닮는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들이사는 곳이 하나님의 나라요 그런 사람들이 이루는 목표가 바로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우리의 수준과 형편에 상관없이 성경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바로 이러한 하나님 나라의 모습을 마음 속에 새겨야 합니다.
이러한 성령 안에서의의와 평강과 희락의 모델은 바로 예수님 자신입니다. 예수님이 이루신 ‘의’를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님은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마]3:14 요한이 말려 이르되 내가 당신에게서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 [마]3:15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하시니 이에 요한이 허락하는지라” 예수님께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면서 이루신 의가 무엇입니까? 그것은하나님께서 세우신 절차와 방법을 따르는 것이었습니다. 거쳐야하는 과정을 거치며 내야할 세금을 내며 정당한방법으로 모든 정직한 일을 이루시는 것이 바로 예수님의 의였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님의 의이기도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예수님이 이루신 ‘화평’을 기억해 보십시오. 주님이 주시는 화평은 결코 세상이 주는 것과같지 않습니다. 그 화평은 바로 예수님과 함께 하기 때문에 얻는 화평입니다. “[요]16: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우리는 결코 이 세상에서상황과 조건이 좋아서 화평하고 평안을 누리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 안에 있기 때문에 평안을 누리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동행하고 예수님께서 이 세상을 이기셨기 때문에 내 자신은 환난을 당하고 내 자신은 괴롭지만 그래도화평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는 가장 두려울 때에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는 이미 세상을 이기셨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의와 화평을아는 자들이 바로 희락이 무엇인지를 알게 됩니다. 예수님의 희락은 바로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알게 된것으로 인해서 생기는 기쁨이었습니다. “[눅]10:21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으로 기뻐하시며 이르시되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서먹고 마시는 것으로 기뻐하시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이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것에 대해서 기뻐하셨습니다. 그 하나님의 뜻이 사람들에게 이해되고 깨달아져서 사람들이 그 하나님의 뜻에 동참하는 것에 대해서 기뻐하셨습니다. 그것에 기뻐하며 감사하시는 분이 바로 예수님이셨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희락에 동참하는 자들은 예수님을 닮는 자들입니다.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뜻을 알아가는 자들입니다. 그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을 때에 비로소 희락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런 하나님의 나라가우리에게 어떻게 이루어지는가를 생각하기란 어렵지 않습니다. 바로 그러한 상황이 13,14절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롬]14:13 그런즉 우리가 다시는 서로 비판하지 말고 도리어 부딪칠 것이나 거칠 것을 형제 앞에 두지 아니하도록 주의하라 [롬]14:14 내가 주 예수 안에서 알고 확신하노니 무엇이든지 스스로 속된 것이 없으되 다만 속되게 여기는 그 사람에게는 속되니라” 진정한 하나님 나라를목표로 하며 살아가는 신앙생활은 바로 이렇게 서로 비판하지 않고 서로 부딪칠 것이나 거칠 것을 형제 앞에 두지 않는 것입니다. 반대로 서로 비판하고 서로 부딪치는 것과 거치는 것을 형제 앞에 마련해 두는 것은 성령 안에서의 의와 평강과희락을 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먹는 것과 마시는 것에만 집중하는 모습일 뿐입니다. 이 로마서 14장에서 나타나는 주된 신앙생활의 모습을 좀더 살펴보면이러한 차이가 잘 이해가 될 것입니다. 10절을 보십시오. “[롬]14:10 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비판하느냐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냐 우리가 다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 뒤로 거슬러 올라가서가장 가까이에 있는 10절 말씀에서 나타나는 것은 형제를 비판하고 업신여기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같은 성도의 연약함에 대해서비판하고 업신여기는 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좀더 뒤로 가보면 1절 말씀이 있습니다. “[롬]14:1 믿음이 연약한 자를 너희가 받되 그의 의견을 비판하지 말라” 믿음이 연약한 자가있을 때 그를 비판하고 정죄하는 것은 옳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비판이나 정죄는 하나님의나라를 이루려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로마서의 말씀 속에서는 믿음에 대한 생각이나 우상제물에대한 태도나 기타 절기나 주일규정에 관한 생각의 차이로 나타나지만 비판하고 업신여길 수 있는 모습들은 사실 모든 삶에 대해서 적용할 수 있습니다. 우월하고 특별하며 자랑할 수 있는 그 어떤 요소가 있는 한 당연하게도 그렇지 못할 때 생겨나는 열등하고 일반적이며자랑할 수 없는 그 어떤 요소도 존재합니다. 자신을 높이는 바로 그 의지가 있을 때 바로 남을 낮추는바로 그 의지도 생겨나게 됩니다. 그래서 자신을 높이지 않고 자신의 기준을 주장하지 않고 자신을 드러내지않으려고 할 때에 만이 비로소 다른 사람의 연약함을 받고 다른 사람을 비판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업신여기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우리의 신앙생활 속에서 정말로 목표로 바라보아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는 성령 안에서의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는 것을 계속해서 끊임없이 생각하는것이 필요합니다. 반대로 먹고 마시고 즐기고 마음에 맞는 것을 생각하면 더 중요한 의와 평강과 희락을이룰 수가 없습니다.
웃음에는 맞는 코드가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웃기는 것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전혀 웃기지 않는 것이기도 합니다. 어린 아이들에게는 웃기는 것이 나이든 사람들에게는 전혀 웃기지 않기도 합니다.유치원에서 아이들에게 ‘똥, 방구’이란 말을 하면 자지러지게 웃습니다. 어른들에게는 전혀 웃기지 않는데말이지요. 젊은 사람들의 웃음코드가 나이든 사람들과 전혀 다르기도 합니다. 또한 나이든 사람들이 웃는 이유가 젊은 사람들과 다르기도 합니다. 나이든사람들은 몸과 표정으로 웃겨야 비로소 웃음을 터트립니다. 우리가 성령 안에서의희락을 느끼는 이유가 있다면 우리가 주님과 희락의 코드가 맞기 때문일 것입니다. 주님이 기뻐하시는 이유로우리도 기뻐한다면 주님의 뜻과 우리의 뜻이 맞는 것입니다. 단순히 웃음 뿐만 아니라 즐거운 이유도 우리가우리 자신에게 맞추면 전혀 즐겁지 않겠지만 우리가 그 이유를 하나님께 맞추면 그분의 즐거움에 동참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기뻐하신다면 그 기뻐하심의 이유가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십시오. “[롬]14:18 이로써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느니라” 의와 평강과 희락으로그리스도를 섬기며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들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고 할 때 하나님의 기뻐하심의 이유는 무엇일까요?하나님께서는 절대로 하나님 자신으로 인해서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우리들로인해서 기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눈과 마음을 항상 우리들에게 두십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는 우리의 눈과 마음을 우리 자신에게 둔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하나님의 기쁨이 전혀 우리 자신의 기쁨이 되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서 눈과 마음을열면 바로 우리를 보고 계시는 하나님을 알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께 마음을 열고 하나님을 기뻐하실때하나님께서 예수님을 기뻐하신 것이 우리의 모습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벧후]1:17 지극히 큰 영광 중에서 이러한 소리가 그에게 나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내 기뻐하는 자라 하실 때에 그가 하나님 아버지께 존귀와 영광을 받으셨느니라” 원래 하나님은 예수님을사랑하시고 기뻐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기뻐하셨을 때 예수님께서 하나님 아버지로부터존귀와 영광을 받으셨습니다. 우리가 기뻐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기뻐하는 것이 우리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뻐할 때 우리는 비로소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비록우리가 본성적으로 우리 자신을 기뻐할 수 밖에 없는 육체적인 존재라 하더라도 그 존재의 한계를 이겨내고 영적 존재로서 하나님을 기뻐할 때에 비로소우리는 하나님을 기뻐하셨고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받으셨던 예수 그리스도처럼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받게 됩니다. 어린아이가 태어나서얼마 만에 엄마 아빠를 보고 웃을 수 있을까요? 1살 일까요, 2살일까요, 3살일까요? 어린아이가 이 세상에서 비로소 엄마 아빠를 보고 기뻐할수 있을 때 그 아이는 엄마 아빠와 소통하는 존재가 됩니다. 우리는 신앙생활한 지 얼마만에 하나님을기뻐하는 자가 될 수 있을까요? 1년 일까요, 2년 일까요, 3년 일까요? 여러분이 하나님을 기뻐하는 바로 그때 여러분의 존재가하나님과 소통하는 자가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바로 그렇게 되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여러분의 희락의 근원이여러분 자신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 아버지가 되어서 하나님의 영원한 희락에 들어가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1주제설교 관련글[더보기]16설교소감 관련글[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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