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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희락] 23사 12; 1-6 생각의 변화로 드리는 세 가지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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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12; 1-6 생각의 변화로 드리는 세 가지 감사_1

 

 2014.11.16..주일오전. 추수감사절

 

*개요:    추수감사절, 4선지서, 1적용, 5은혜-6결심

[] 12:1 그 날에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여주께서 전에는 내게 노하셨사오나 이제는 그 노가 쉬었고 또 나를 안위하시오니 내가 주께 감사하겠나이다 할 것이니라

[] 12:2 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내가 의뢰하고 두려움이 없으리니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심이라

[] 12:3 그러므로 너희가 기쁨으로 구원의우물들에서 물을 길으리로다

[] 12:4 그 날에 너희가 또 말하기를 여호와께감사하라 그 이름을 부르며 그 행하심을 만국 중에 선포하며 그 이름이 높다 하라

[] 12:5 여호와를 찬송할 것은 극히 아름다운일을 하셨음이니 온 세계에 알게 할지어다

[] 12:6 시온의 거민아 소리를 높여 부르라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가 너희 중에서 크심이니라 할 것이니라

 

 

우리가 살아가면서 정말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때가 있습니다. 정말 감사하고 고마워하는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때는 아이러니하게도가장 슬프고 괴로울 때입니다. 또한 가장 원망스럽고 원통할 때입니다.참 반대가 되지 않습니까? 가장 기쁘고 즐겁고 감사하고 고마울 때는 가장 슬프고 괴롭고원망스럽고 원통할 때가 되는 것입니다. 원리적으로 보면 이러한 일이 일어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입니다. 그런 반대되는 상황에서의 기쁨은 마치 가장 깊이 떨어지다가 다시 올라갈 때에 느끼는 압력과 같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그냥 떨어지기만 하거나 그냥 올라가기만 할 때 느끼는 압력과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지옥에 있다가 천국에 가게 되면 그냥 천국에 가는 것보다도 더욱 감사하게 느끼게 됩니다. 하나님께 감사할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냥 일상적으로 드리는 감사는감사로 여겨지지가 않습니다. 습관적으로 하는 감사도 역시 별로 감흥이 없습니다. 그러나 신앙적으로 가장 고통과 괴로움에 있다가 가장 기쁨과 즐거움에 이르게 될 때에는 진정한 감사를 드릴 수있습니다. 이러한 식으로 삶에 어려움이 있거나 문제가 있어서도 그럴 수 있는데 사실 그런 구체적인 일이없어도 우리는 감사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 대해서 갖는 어려운 생각이 변화될 때 우리는 감사할수 있기 때문입니다. 상황의 변화로 인한 감사가 큰 것처럼 생각의 변화 속에서 얻는 감사도 큰 것입니다.

오늘 이사야서의 말씀에서는 이러한 감사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감사를 드리는 이유는 구체적인 어떤 일이 있기 때문이 아닙니다. 하지만단지 생각의 변화만으로도 하나님께 감사를 드릴 수 있습니다. 오늘 이사야 선지자는 바로 그러한 생각의변화 속에서 드려지는 세 가지 감사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가 드리고 있는 첫 번째 변화의 감사는 그분의 노하심으로부터 안위하심을 깨달음으로 인한 감사입니다. 1절을 보십시오.

“[] 12:1             그 날에 네가말하기를 여호와여 주께서 전에는 내게 노하셨사오나 이제는 그 노가 쉬었고 또 나를 안위하시오니 내가 주께 감사하겠나이다 할 것이니라

이사야 선지자는 말하기를 이전에는 네가 하나님께 대해서노하심만 생각하였으나 그 날에는 하나님의 안위하심을 생각하게 되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노하심만생각하였다가 주님의 노하심이 끝나고 새로운 안위하심을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감사로인해 바로 그 날에 기쁨이 넘칠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날은 언제일까요? 그 날은 이전 장에서 나오는 날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그 날에 대해서 11장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 11:1             이새의 줄기에서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 11:2 여호와의 신 곧 지혜와 총명의신이요 모략과 재능의 신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신이 그 위에 강림하시리니

그 날이 바로 하나님의 노하심을 생각하던 삶에서 하나님의안위하심을 생각하게 되는 날로 바뀌는 날이 됩니다.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서 결실하는 날이 왜하나님의 안위하심을 생각하게 되는 날이 되는가 하면 그 날에 비로소 하나님을 올바르게 이해하는 날이 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이새의 줄기에서 나는 한 싹은 예수님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왜 예수님을 보내주셨는가 하면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예수님을 보내주셔서그를 믿고 그의 말을 순종하게 하셨습니다. 상황을 바꿔주시지 않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지 않고분노하시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였지만 그 상황을 바꿀 수 있는 가르침을 주시는 것은 사실 하나님이 우리를 정말로 사랑하신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을 이해할 때에 우리는 감사할 수 있습니다. ‘전에는 노하셨다고생각했지만 예수님을 믿는 것으로 인해서 안위하심을 깨닫게 되니 내가 주께 감사를 드립니다라고 말할수 있습니다. 그것을 알기 전에는 하나님께서 노하시기만 한다고 생각하고 괴로워하며 고민하고 때로는 도망가려고도하면서 살았지만 믿음의 가치를 알게 되었을 때에 비로소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었습니다. 

 

어려서부터 주일학교를 다니는 경우에 이러한 감사는 두드러지게나타납니다. 어떤 통계에 의하면 한 교회에서 어린이가 교회에 다니는 비율은 52%,  청소년이 교회를 다니는 비율은 26%, 그리고 청년들이 교회에 나오는 비율은 21%라고 합니다. 이는 다시 말해서 어린이가 초등학교때부터 교회에 출석을 해도 그중에 얼마는 떨어져 나가서 일부만이 중고등학교때에도교회를 다니고 그중에 또 얼마가 떨어져 나가서 대학청년부에 교회를 다니는 사람은 소수가 된다는 것입니다. 장년부도마찬가지입니다. 지난 10여년간 한국의 기독교 인구는 꾸준히감소를 했습니다. 99년 개신교 교인수는 1870만이었지만 2005년 교인수는 862만이었습니다. 계속해서 하락을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이는 몇년 다니다가 점차교회를 안나가게 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이와 같은 통계를 통해서 볼 때 우리가 끝까지믿음을 갖게 되는 것이 얼마나 감사하고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멀리 통계를 생각해 보지 않아도 우리는 가까운 데서 그증거를 찾을 수 있습니다. 학생때 함께 교회다니던 친구들이 성인이 되어서는 교회에 나가지 않습니다. 성인으로 함께 교회를 나가던 성도들이 나이들어서 더이상 교회에 나가지 않습니다. 연초에 함께 시작했던 자들이 연말에까지 남아있지 않고 사라지기도 합니다. 이렇게점차 사라지는 사람들을 볼 때 우리는 끝까지 예수님을 붙들고 신앙생활을 유지한다는 것이 얼마나 귀하고 감사한 일인가를 생각해 봅니다. 떠나가는 사람들은 남아있는 사람들을 비웃겠지만 남이 있는 사람들은 떠나가지 않은 것을 감사하게 여기게 되는것입니다. 그것은 예수님은 우리를 붙들어 주시고 우리가 예수님을 붙들었기 때문입니다. 다 떠나가도 나만은 예수님을 버리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또한나 자신도 흔들릴 때 예수님께서 우리들을 붙들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버틸 수 있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전부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하셨기 때문에 이루어질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신 것이 아니며 우리는 버림받은 자들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가장 힘들고 어려울 때 예수님을 우리 마음에 보내어주셔서 많은 시련과 역경을 이기고 믿음을 계속 유지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말하는 두 번째 변화의 감사는 주님이 행하신 일을 알지 못하였다가 그 일을 알게 됨으로 인해 얻는 감사입니다. 4,5절을 보십시오.

“[] 12:4             그 날에 너희가또 말하기를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 이름을 부르며 그 행하심을 만국 중에 선포하며 그 이름이 높다 하라

[] 12:5 여호와를 찬송할 것은 극히 아름다운일을 하셨음이니 온 세계에 알게 할지어다

하나님이 하신 일로 인해서 감사하고 찬송하는 것은 사실그 전에 그분이 행하신 일을 알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지 않으셨다는 말이 아닙니다. 다만 하나님의 행하심을 알지 못했다가 그 행하심을 알게 될 때에 비로소 감사하고 기뻐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럴 때 그 이름을 부르며 그 행하심을 선포하며 그 이름이 높으시다고 찬양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행하신 일을 비로소  고백하고 비로소 인정하며 비로소 깨닫는 자의 모습입니다.

 

올해를 돌아볼 때에 하나님께서 행하신 것은 무엇인가를 생각해봅니다. 교회적으로 올해 행사로는 연초에 있었던 일출등반, 유초등부야유회, 피택장로 선출, 부활절 행사, 야외예배, 여름성경학교, 전교인수련회, 위임목사 청빙투표, 청년부 야유회 등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시간 시간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와 손길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그 시간에 우리가 하나님의 손길을 느낄 수 있었다고 해서 그 시간에만 하나님께서 역사하신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우리가 의식하건 의식하지 않건 간에 역사하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우리가 그 은혜 속에서 살았는가아니면 그 은혜와 상관없이 살았는가만이 구별될 뿐입니다. 우리가 정말 그 은혜 속에서 살았다면 그것을사람들에게 알게 하며 그 은혜를 고백할 것입니다. 그래서 그 이름을 찬양하며 높이며 온 세계가 그 이름을알게 하기 위해서 살아갈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나에게서 그 이름이 나타나지 않으며 나를 통해 그 이름을알게 하는 것이 없다면 우리는 진정한 감사와 찬양이 없는 사람일 뿐입니다.

우리가 웃긴 이야기를 듣고 그 이야기를 다른 사람에게 해주는경우가 있습니다. 그 이야기를 직접 들려주면서 웃는 경우가 있습니다.그것은 그 이야기가 정말 재미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별로 웃기지 않는 이야기는 그냥흘러 듣고 그냥 잊어버립니다. 정말 재미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하나님에 대한 감사와 찬양은 그냥 흘려듣는 이야기입니까, 아니면 다른 사람들에게 증거하는 이야기입니까? 하나님에 대한 감사와 기쁨이 크면 클수록 그것을 또 이야기하고 또 이야기하고 대대로 전해서 증거하게 됩니다. 비록 듣는 사람은 힘이 들어도 전하는 사람은 그 이야기가 의미가 있으니까 또 말하고 또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올해 일출등반이 정말 좋았고 여름성경학교와 전교인수련회가 참 감사하였습니다. 부서별 야유회도 기뻤고 각종 제직회와 공동의회가 하나님의 은혜로 충만했습니다.이 모든 순간들 속에서 그리고 그에 대한 고백 속에서 우리들은 하나님의 행하심을 목격하고 증거하게 됩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말한 세 번째 변화의 감사는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다가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오는 감사입니다. 이전에는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았습니다. 이전에는 세상을 더욱 의지했고사람을 더욱 의지했습니다. 세상의 기술과 방법과 사람들의 제안과 조언들에 더욱 이끌려서 살았습니다. 그것이 더 믿을 만했고 그것이 더 나은 결과를 가져다 주는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를 깨닫고 나니 이제는 하나님을 의지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얻게 되는 감사가 바로세 번째 변화의 감사입니다. 2,3절입니다.

“[] 12:2             보라 하나님은나의 구원이시라 내가 의뢰하고 두려움이 없으리니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심이라

여기서 보라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고 말하는 자들은 1절에서 말하는그 날에 네가 말하기를에서 말하는 자들입니다. 1절에서의 말이 2절에서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노하셨다고 생각하고 두려워하거나 절망하기만 했던 자들이 하나님의 안위하심을 깨닫고 하나님께감사하게 됩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보라 하나님은 나의구원이시라라고 고백하며 의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변화는 완전하고도 발전된 감사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예전에는 하나님을 의뢰하지 않았고그래서 두려움이 많았지만 이제는 의지적으로 더욱 나아가서 하나님을 의뢰하고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전에는세상의 그 무엇인가를 자신의 힘으로 삼았지만 이제는 하나님을 자신의 힘으로, 자신의 노래로, 자신의 구원으로 삼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진정한 변화를 이루고진정한 감사를 드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인생 속에서 무엇인가를 통해 힘을 얻게 됩니다. 무엇인가가 자신의 노래가 됩니다. 또한 그 무엇인가가 자신의 구원이됩니다. 그 근원이 단순히 눈에 보이는 것에 불과한 사람들은 불행한 자들입니다. 보이는 것에서 들리는 것에서 만져지는 것에서 자신의 삶의 근원을 찾는 자들은 늘 괴로움을 당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서 그런 물질적인 것은 언제나 부족하고 결핍되며 유한하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그에 근거를 두고 있는 그 사람도 역시 유한한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좀더 비물질적인 것에 대해서 근거를 두고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인간관계라든지 미래의 소망이라든지삶의 행복이라든지 하는 더 높은 가치와 미래적인 모습에 의미를 두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것들도이 세상에 결부된 것들일 뿐입니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충만을 이루어주지는 않습니다. 이 세상에 흔들릴 때 그런 것들도 흔들리게 되어있습니다. 세상이흉악해지고 사람들이 강퍅해질 때에 그러한 가치도 역시 무너지게 되어버립니다. 때로는 정말 그런 일들을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럴 때 참으로 온전하고 진정한 가치는 오직 하나님 뿐임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나의 힘이시고 하나님의 나의 노래이시고 하나님이 나의 구원이실 때 비로소 우리는 가장 완전한핵심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알게 될 때 변함없는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3절을 보십시오.

“[] 12:3             그러므로 너희가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길으리로다

그것은 우물에서 물을 긷는 것과 같습니다. 그 우물은 구원의 우물이고 그 물의 기쁨의 물입니다. 구원의 근원되신하나님에게서 끊임없이 기쁨의 샘물을 길어 올릴 수 있습니다. 근원이 바로 하나님이기 때문에 가능한 놀라운일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얻는 감사는 어떤 환경이 일어나건 혹은 일어나지 않건, 어떤 조건이 주어지건 혹은 주어지지 않건 간에 날마다의 삶속에서 순간순간의 상황에서 기쁨으로 채워질 수 있는놀라운 경험을 향해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 감사는 오직 하나님으로 자신의 힘을 삼고, 하나님으로 자신의 노래를 삼고, 하나님으로 자신의 구원을 삼았기때문에 일어난 일입니다.

 

현대 추수감사절의 유래는 여러분들도 아시는 것처럼 미국에서처음 시작되었습니다. 영국의 청교도인들이 1620년에 메이플라워 호를 타고 미국에 도착하였을 때,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 중 반 이상이 굶어 죽고 병들어 죽었습니다. 게다가 남아 있는 사람들마저 해마다 겹치는 흉년으로 고통을 당했습니다. 도무지밝은 전망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전국적으로 금식기도를 선포하고 경건한  신앙인들이 하나님께 매달렸습니다. "하나님, 이 상황을 돌보아 주십시오. 우리를 도와주시옵소서." 이렇게 금식을 선포하고 기도를 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또 한번 대단히 어려운 형편에 놓이게 되자 그들은 다시 금식기도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금식기도 시행여부를 놓고 의논하는 자리에서 어떤 농부 한사람이 이렇게 제의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금식하면서 하나님께서 도와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달리 생각하기를 원합니다. 비록 농사가 흉년이 들고형제자매들이 병으로 쓰러지는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이 가운데서도 우리가 감사할 것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식량이풍족치 않고 여건이 유럽보다 편안하지는 않지만 신앙의 자유가 있고 정치적인 자유가 있습니다. 그리고우리 앞에는 광대한 대지가 열려 있습니다. 이것을 가지고 금식 대신에 감사 기간을 정하고 하나님께 감사를드리는 것이 어떻습니까?" 농부의 그 말은 참석한 사람들에게 깊은 감화를 주었습니다. 그들은 지금 현재 없는 풍성한 추수물이나 건강이나 평안보다도 자기들이 가지고 있던 하나님으로 인해서 기뻐하기를시작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금식 기도 주간을 선포하는 대신 감사 주간을 선포하고 하나님 앞에 감사한것이 감사주일의 시작이 되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1623년의플리머스 식민지에서 있었던 예배로서의 추수감사절이었습니다. 그것이 그 한 해 한 해 새로운 땅에서 견딜수 있게 하였고 마침내 그 땅을 자신의 축복으로 얻을 수 있었습니다.

 

동일한 추수감사절을 보내면서 그것이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인경우가 있고 그것이 단순히 사람들끼리의 축제인 경우가 있습니다. 축제로서의 추수감사일보다 예배로서의추수감사절이 더욱 하나님과 상관이 있습니다. 우리는 감사를 통해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그것이 우리로 하여금 진정한 기쁨을 갖게 합니다. 때로는 함께 하는사람이 없어도 때로는 추수감사를 드리는 환경의 어려움이 있어도 우리는 그것을 극복해내면서 하나님으로 인해서 기뻐합니다. 그것이 진정한 기쁨의 샘물을 길어내는 일입니다. 그 기쁨을 누리시기를바랍니다. 오늘 추수감사절을 보내면서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그속에서진정한 감사로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시기를 바랍니다. 그 의지함속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놀라운 기쁨으로충만하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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