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충만] 60벧전 1; 10-13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이 가져다 주는 은혜
2018_1216-111411.pdf
195.1K 0 5년전
Loading the player... Loading the player... *
60벧전 1; 10-13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이 가져다 주는 은혜_1
2018. 12. 16. 주. 주일오전.
*개요: 그리스도 은혜의 귀중함, 56충만, 4극본, 6서신서 [벧전]1:10 이 구원에 대하여는 너희에게 임할 은혜를 예언하던 선지자들이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펴서 [벧전]1:11 자기 속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이 그 받으실 고난과 후에 받으실 영광을 미리 증언하여 누구를 또는 어떠한 때를 지시하시는지 상고하니라 [벧전]1:12 이 섬긴 바가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니요 너희를 위한 것임이 계시로 알게 되었으니 이것은 하늘로부터 보내신 성령을 힘입어 복음을 전하는 자들로 이제 너희에게 알린 것이요 천사들도 살펴 보기를 원하는 것이니라 [벧전]1:13 그러므로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다 주실 은혜를 온전히 바랄지어다
12월에서 우리는 계속해서 그리스도의 은혜를 묵상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다른 어떤 것들보다도 그리스도의 은혜가 우리에게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올 한해 복음의 원리에 대해서 꾸준히 살펴보아왔는데 그 모든 것의 결정체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은혜를 생각하는 것이 우리에게 중요합니다. 우리 교회 뿐만 아니라 다른 교회에서도 이 12월에 그리스도를 생각합니다. 다른 교회에서의 설교제목에서 그리스도에 관한 주제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 달에 다른 교회에서는 ‘그 분이 오십니다, 주로 오시다, 화목하게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 인자가 올 때 믿음을 보겠느냐’ 등등의 설교제목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도 그 중의 하나입니다. 성탄절을 맞이하는 많은 교회들처럼 우리도 그리스도를 맞이하는 시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복음의 결정체이자 복음의 완전한 핵심이 바로 ‘그리스도’라는 것을 다시 되새기고 있습니다. 이것은 나 자신을 생각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또한 다른 사람을 생각하는 것도 아닙니다. 오직 우리에게 오신 예수 그리스도 성자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 은혜를 생각할 때 그분께 의지하며 그분을 힘입어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 세상은 누군가를 의지하는 세상이 아닙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기 자신이 얼마나 특별한 사람인가를 자각하며 그 한껏 고무되고 고취된 자아숭배사상을 통해서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인간이 달에 가는 시대에 어떻게 종교가 존재할 수 있는가 하며 인간이 이상과 이념으로 평화시대를 구축할 수 있는 시대에 왜 하나님을 의지해야 하느냐고 말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제거된 자신만의 이상사회를 건설하면서 살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은 부자나 가난한 자나 높은 자나 낮은 자나 모두 자신의 무력함과 죄성을 인식하고 그리스도 외에는 아무런 소망이 없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몸을 숙여서 예수님을 의지합니다. 예수님은 바로 그러한 자들을 주님의 나라로 인도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자기를 높이는 자들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높이는 자들입니다. 이렇게 할 때 우리가 항상 끊임없이 예수님만 생각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해야할 일이 있고 감당해야만 하는 일들이 있습니다. 그런 일들을 생각하다 보면 그리스도에 대한 생각이 시들해지고 심지어는 잊어버릴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때가 되었을 때 정말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그리스도임을 깨달을 때 우리는 다시 방향을 바로잡습니다. 균형을 다시 되찾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음을 알고 그 속에서 흔들리지 않습니다. 하루 종일 밖에서 일하다가 모든 일이 끝나면 집으로 들어오는 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집으로 들어와서 쉴 수 있을 때에 다시 그 다음 날 밖으로 나가서 일을 할 수도 있습니다. 집에 들어오지 않는다거나 쉬지 못한다거나 한다는 것을 상상해 보십시오. 그러면 더 이상 일을 할 수가 없는 상황이 되어버릴 것입니다. 그와 같이 그리스도를 묵상하고 그리스도를 의지한다는 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힘과 능력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있음을 깨달을 때 우리는 밖에서의 모든 어려움과 괴로움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생각하는 것이 이렇게 중요하기 때문에 선지자들은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은혜에 대해서 열심히 연구를 했습니다. “[벧전]1:10 이 구원에 대하여는 너희에게 임할 은혜를 예언하던 선지자들이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펴서 [벧전]1:11 자기 속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이 그 받으실 고난과 후에 받으실 영광을 미리 증언하여 누구를 또는 어떠한 때를 지시하시는지 상고하니라” 여기서 ‘이 구원’이란 그리스도를 통한 믿음의 결국인 영혼의 구원입니다. 그리스도가 아니면 구원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귀중하고 가치 있는 일이 바로 구원의 근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일이었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은혜를 예언하던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폈습니다. 그래서 그들 속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이 그들 속에서 증언하는 대로 누가 그리스도이며 그 그리스도가 어떻게 고난 받으시고 어떻게 영광을 받으시는가를 찾고자 하였습니다. 이렇게 연구하고 살피고 상고하는 선지자들을 통해서 우리는 그 누구란 바로 ‘예수님’을 의미하는 것이었고 어떠한 때란 ‘십자가의 사건’을 의미하는 것이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그분의 고난과 영광은 바로 ‘우리’를 위한 것이고 우리가 ‘구원을 받는 때’를 위함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그 선지자들의 증거를 통해서 자기 자신을 위한 그리스도의 사랑과 바로 이 때에 구원을 얻게 하기 위한 그리스도의 고난과 영광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럴 때 비로소 그리스도의 중요성을 알 수 있습니다. 성탄절에 대해서 세상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분의 고난과 영광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세상의 평화와 인간의 영광만을 노래합니다. 성탄절에 행복을 누릴 수 있게 된 것이 인간의 선함과 인간의 노력 덕분으로 호도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진정한 성탄의 의미는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영광에 있습니다. 그분을 바라볼 때 비로소 그분의 은혜가 각 사람에게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임할 은혜를 부지런히 살폈던 선지자들이 그토록 애써서 그리스도의 고난과 영광을 증언하여 그것이 누구를 또는 어떠한 때를 지시하는지 찾고자 했던 이유는 그들 속에 있는 그리스도의 영이 사람들에게 임하는 은혜를 증거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이미 있었고 그 은혜를 이미 가진 자들로서 성도들에게 임하게 되는 그리스도의 은혜를 증거하면서 은혜의 귀한 결과를 드러내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 은혜의 귀한 결과가 바로 구원입니다. 구원을 받으면서 그 은혜가 얼마나 큰지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구원을 통해서 놀라운 은혜를 주고 계십니다. 그 구원은 단순히 천국에 갈 수 있는 구원 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문제로부터 나오는 것도 구원입니다. 삶 속에서 누리는 평안함이나 아무런 어려운 일이 없는 것도 구원입니다. 어려움이 있다 하더라도 그 모든 어려움을 이겨내는 것도 역시 구원입니다. 그 모든 구원 속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있습니다. 그 은혜 속에서 우리는 예수님께 대한 감사함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아까 하루 종일 밖에서 일하더라도 끝나고 나서 집에 들어가서 쉴 수 있으면 좋다는 것을 말했는데 만약 그 집에 가족이 아무도 없으면 그 집은 얼마나 적적한 곳이 되겠습니까? 혹은 그 집에서 평안하게 있어야 할 가족이 아프거나 병에 들거나 심각한 문제에 빠지게 되었다면 어떻게 자기 혼자서만 집에 들어가서 쉴 수 있겠습니까? 그것이 불가능하고 오직 자신과 가족 모두가 평안 해야 진정으로 집에서 좋은 마음을 가지고 쉴 수 있는 이유는 그럴 때에 비로소 걱정과 근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걱정과 근심이 많은 상태에는 우리가 밖에 있든 안에 있든 낮이든 밤이든 결코 쉴 수 없습니다. 걱정과 근심이 다 사라지고 난 다음에야 비로소 평안히 쉴 수 있습니다. 몸은 힘들어도 마음은 평안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렇게 온 가족이 평안하고 아무 일이 없는 것은 무슨 이유인지를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그것이 그리스도의 은혜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이미 그리스도의 은혜 속에 있어서 그 은혜의 고마움을 알지 못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은혜 속에 있을 때의 기쁨은 놀라운 것입니다. 그것을 깨닫는 것이 귀한 일이기 때문에 선지자들은 그 은혜를 상고하였습니다.
이러한 그리스도를 생각함은 단지 선지자들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이러한 그리스도를 사모하고 상고하며 묵상하는 것은 모든 하나님께 속한 자들이 행하는 일입니다. 12절을 보십시오. “[벧전]1:12 이 섬긴 바가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니요 너희를 위한 것임이 계시로 알게 되었으니 이것은 하늘로부터 보내신 성령을 힘입어 복음을 전하는 자들로 이제 너희에게 알린 것이요 천사들도 살펴 보기를 원하는 것이니라” 이와 같이 선지자들의 섬긴 바가 선지자들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믿는 성도들을 위한 것임이 나타났습니다. 또한 성령을 힘입어 복음을 전하는 자들도 성도들에게 바로 이러한 은혜를 알려주었을 뿐만 아니라 천사들도 흠모하는 것이 되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고난과 영광이 바로 이때에 우리들을 위한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잘 보여주는 것이 이사야 53장입니다. “[사]53: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그리스도의 고난을 통해서 바로 우리의 죄가 사함을 받았습니다. 그리스도의 영광은 그분을 믿는 자들을 통해 그분께 돌아가는 찬양과 영광 돌림에 있습니다. 이미 그리스도는 충분히 영광스러우신 분이기 때문에 그분의 고난의 혜택을 받는 성도들이 그리스도께 돌리는 영광과 찬양이야말로 예수님께 돌아가는 최고의 찬사입니다. 이러한 영광을 천사들도 보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그 모든 찬양이 그리스도께 돌려질 때에 주님은 가장 큰 영광을 받으십니다. 예전에 ‘아빠 힘내세요’라는 동요가 유행한 적이 있습니다. 1997년 창작동요제에서 입선한 노래입니다. 그러다가 외환위기 이후에 아버지들을 응원하기 위해서 서서히 알려지다가 2004는 한 카드회사 광고음악으로 사용되면서 유명해지게 되었습니다. 그 내용 속에는 힘들게 하루 일을 마친 아빠를 위로하는 딸의 마음이 담겨져 있습니다. ‘딩동댕 초인종 소리에 얼른 문을 열었더니/그토록 기다리던 아빠가 문 앞에 서계셨죠 너무나 반가워 웃으며 아빠 하고 불렀는데/어쩐지 오늘 아빠의 얼굴이 우울해 보이네요 무슨 일이 생겼나요 무슨 걱정 있나요/마음대로 안되는 일 오늘 있었나요 아빠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아빠 힘내세요 우리가 있어요’ 이 노래 속에서처럼 아버지의 수고와 고생을 위로하는 가족들이 있을 때 아버지는 얼마나 힘이 나겠습니까? 하지만 아버지의 수고와 고생은 너무나 당연하고 아무 가치가 없다고 말한다면 얼마나 힘이 빠지겠습니까? 이와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고난과 영광도 그분의 성도들을 통해서 찬양되고 묵상 되며 기억되어야 합니다. 그럴 때 그분의 고난과 영광에 그 성도들은 온전히 동참하게 됩니다. 그것이 얼마나 큰 하나님의 사랑의 은혜였는지를 깨닫게 됩니다. 참으로 이 한해가 무사히 지나가고 우리가 그 속에서 평안히 거하게 되기 위해서 예수님의 놀라우신 은혜가 있었습니다. 그것을 잊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이 12월에 그리스도를 묵상하면서 하려고 하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생각하고 또 묵상하는 것의 결실은 그분을 기뻐하는 것이고 그분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그 모든 것이 우리 자신을 기뻐하고 우리를 찬양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기뻐하고 그리스도를 찬양하는 데까지 나아가려고 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의 고난과 그 영광의 가치를 우리가 먼저 알아야 합니다. 베드로 사도는 말합니다. “[벧전]1:13 그러므로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다 주실 은혜를 온전히 바랄지어다” 이 모든 것이 이러할진대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다 주실 은혜를 온전히 바라라고 했습니다. 내 욕심과 관심과 취향은 그리스도께 돌려질 모든 찬양과 경배보다 더 커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그리스도께 돌려질 찬양과 경배는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내 욕심을 채우느라 그리스도께 돌아갈 찬양은 사라져 버리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한다면 이야기는 다릅니다. 내가 하고 싶은 일과 내가 추구하고 싶은 모든 관심을 단단히 동여매고 근신하면서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바라고 그 은혜를 간절히 바랄 때 주님은 놀라운 은혜를 베푸십니다. 이미 예수님을 간절히 찾고 만났던 동방박사들이나 목자들이 그 은혜를 누렸습니다. 또한 이전에 주님을 믿었던 믿음의 선조들이 그 은혜를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과거의 자신의 모습에서도 마음의 허리를 동여매고 은혜를 받던 장면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제 그 은혜를 다시 사모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가져다 주실 은혜가 있습니다. 우리를 우리 삶의 모든 걱정과 근심으로부터 구원하실 놀라운 구원의 은혜가 있습니다. 그 은혜 속에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나타내실 놀라운 사랑과 축복의 은혜가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간절히 사모함으로 인해서 그 은혜를 온전히 누려 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은혜가 무엇인지를 알게 하십니다. 그 가르치심과 깨닫게 하심을 통해서 올해도 우리에게 찾아오셔서 무한한 사랑과 은혜로 베푸시는 그리스도의 구원하심을 더욱 새롭게 경험하는 하나님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1주제설교 관련글[더보기]16설교소감 관련글[더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