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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충만] 50빌 2; 1-8 새로운 마음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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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2; 1-8 새로운 마음의 시작_1

  

 

  

2018. 4. 29. . 주일오전

  

 

  

*개요:  하나님의 자녀들의 교회생활의 모습, 56충만, 2분석, 6서신서,  

  

[]2:1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의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2:2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마음을 품어

  

[]2:3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2:4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

  

[]2: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2: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2: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2: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2:9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2: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2: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사람이 오래 살다 보면 자신이 태어날 때 가지고 태어나지 않은 새로운 것을 몸에 달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자신의 치아를 새롭게 임플란트 치아로 바꾸는 경우가 있습니다. 백내장이 와서 수정체를 바꾸는 경우도 있습니다. 관절이 자신의 관절이 아닌 인공관절을 사용하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보다 좀 더 나아가서 의족이나 의수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여기까지는 몸의 외적 요소입니다. 좀더 내적인 요소로 내과적인 면에서 장기를 이식 받는 경우도 있습니다.

  

장기이식 수술에서는 신장, , 췌장, 심장, , 소장, 췌도의 7가지 장기와 골수, 안구의 2가지 조직이 주된 이식대상입니다. 이러한 장기이식이 성공하여 잘 안정을 취하게 되었을 때에 이식 받은 사람은 새로운 삶을 살게 됩니다. 죽을 수 밖에 없던 사람이 새로운 생명을 갖게 되고 죽을 때까지 고통받을 수 밖에 없던 삶이 새로운 생활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신앙적으로 그리스도인은 예수님 안에서 이미 새로운 삶을 허락 받은 자들입니다. 그래서 이전에 그들의 목적지였던 지옥이 천국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들의 신분이 사탄의 자녀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변화되었습니다. 이러한 놀라운 변화 속에서 이 세상을 살면서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계속해서 새로운 변화가 일어납니다. 그것은 그들에게 있어서 새로운 그 무엇인가가 과거의 무엇인가를 대치해 나간다는 것입니다. 외면적인 모습에서 이전의 세상적이었던 그 무엇이 신앙적으로 바뀝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바뀝니다. 어디론가 향하던 발이 바뀝니다. 무엇인가를 행하던 손이 바뀝니다. 그래서 이전에 입고 있던 세상의 옷이 아닌 그리스도의 옷으로 바뀌는 변화를 경험합니다. 이러한 외면적인 변화에 대해서 갈라디아서에서는 이러한 말씀이 있습니다.

  

“[]3:27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그리스도로 옷 입는 것은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었다는 신분과 정체성의 변화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외면적인 변화가 끝이 아니라 그 다음에는 내면적인 변화가 있습니다. 조직이식 등의 신체 외부적인 변화가 있고 장기이식 등의 신체 내부적인 변화가 있는 것처럼 신앙인에게도 내면적인 변화가 있습니다. 그것은 생각과 마음이 변화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본 빌립보서 말씀에서 나오는 것은 내부적이며 본질적인 변화입니다.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는 것입니다. 5절에서 그러한 변화를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변화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2: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이것은 그 이전까지 있었던 외면적인 변화와 차원이 다릅니다. 내면적인 변화를 갖게 된 것입니다. 마치 신체 내의 장기가 교체되어서 새로운 삶을 사는 것처럼 본질적이고 영속적인 변화가 그리스도인들에게 생기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복음의 전파를 기뻐하며 그 일에 협력하는 것을 기쁨으로 여기는 자들의 모습은 본질적인 변화를 경험한 모습입니다. 그 마음 속에서 선호도가 바뀌고 취향이 바뀌며 인생의 의미가 달라진 모습입니다. 그래서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마음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과거의 마음에서 새롭게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바뀌어진 모습이 2,3절에서 나옵니다.

  

“[]2:2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마음을 품어

  

[]2:3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이러한 모습은 단순히 행동을 바꾸는 것으로는 이루어질 수 없는 모습입니다. 앉으라면 앉고 서라면 설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을 같이 하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마음을 품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입니다. 행동이 구체적이거나 명료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마음의 변화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음의 변화는 결코 구체화하거나 명료화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하는 순간 그것은 마음의 변화가 아닙니다. 다시 행동의 변화로 돌아가 버리게 됩니다.

  

오직 이러한 마음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질 때 생각할 수 있습니다그리스도의 마음으로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길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는 지극히 겸손한 마음으로 자기를 낮추셨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지고 자기를 낮출 때에 비로소 이러한 다툼이나 허영이 아닌 겸손함으로 남을 낫게 여길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번 달 계속해서 빌립보서에서 생각하고 있는 것은 기쁨이었습니다. 그 기쁨은 행동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마음의 변화를 의미합니다. 이전에 복음의 전파에 대해서 기쁨이 없던 사람이 복음의 전파에 대해서 기쁨을 갖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주님의 일에 협력하는 일에 기쁨이 없던 사람이 기쁨을 갖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행동의 변화보다 마음의 변화가 더 어렵고 노력하기가 쉽지 않은 이유는 행동의 변화는 즉각적이지만 마음의 변화는 점진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장점은 분명합니다. 행동의 변화는 일시적이지만 마음의 변화는 항구적입니다. 그래서 비록 느리게 변화되지만 마침내 이루어지게 되면 그것은 평생 변화지 않는 놀라운 확신이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행동의 변화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마음의 변화에 초점을 맞추는 것입니다.

  

신앙생활도 이래라 저래라 해서 하게 되는 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것은 행동의 변화를 의미하지 마음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예배도기도도, 성경을 알아가는 것도 결코 행동의 변화로 알 수 없습니다. 성경의 기적과 기록과 권위에  대한 그 수많은 의심과 불신과 혼란도 결코 행동의 변화 속에서 해결할 수 없습니다. 오직 마음의 변화 속에서 해결하는 것입니다.

  

제가 어떤 신앙서적에서 읽었던 한 회심의 장면을 소개하고 싶습니다한 신학생은 끊임없이 신학적 주제에 대해서 의심과 불신으로 인해서 괴로워하였습니다. 그래서 그 해답을 알고자 교수님에게 자신의 고민에 대해서 질문했습니다. 그 때 그 교수님은 자신도 역시 모든 것을 다 알지 못하지만 그 고민을 주님 안에서 해결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는 대답을 들었습니다. 그 대답을 들으면서 이 신학생은 깊은 깨달음을 얻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자신의 태도는 항상 의심과 불신의 태도로 일관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태도를 바꾸어 소망과 확신의 태도로 나아갈 때 비로소 자신의 고통과 괴로움이 해결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 때부터 그는 180도 자신의 태도를 바꾸어서 믿기 위한 노력으로 변화되었습니다. 그가 바로 유명한 신학자인 R.C. 스프룰 박사입니다. 이러한 변화는 마음의 변화이지 결코 행동의 변화가 아닙니다. 행동의 변화로는 이러한 진정한 변화를 이룰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다리고 또 기다리며 행동이 변화되는 것이 아닌 마음의 변화는 것을 소망하는 것입니다.   

  

예배시간에 일찍 오는 것도, 기도를 진실하게 하는 것도, 찬양을 힘차게 부르는 것도, 설교에 귀를 기울이는 것도, 성경공부를 하며 성경의 진리를 믿는 것도 그 어느 것이든지 행동의 변화로 이룰 수 없습니다. 오히려 행동의 변화로 뭔가를 이루려고 하면 할수록 그 마음은 더 멀어질 수 있습니다. 전도를 하는 것도 사역을 하는 것도 목회를 하는 것도 직분을 감당하는 것도 그 어떤 것이든지 마음의 변화 없이는 무의미합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것도 만약 진정으로 예수님을 따르려는 것이 아니라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또한 실제로 무슨 소용이 있었습니까?

  

모든 교회 일이 그렇습니다. 진심으로 마음을 다하지 않는다면 그 자신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오직 그를 진심으로 대하는 사람에게만 소용이 있을 뿐입니다. 이제 마음을 바꾸어 진심을 다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때 비로소 진심을 다해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게 될 것입니다. 모든 교회의 일 속에서 진심을 다하셨던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상상하게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오늘날 교회에 다니시면서 신앙생활을 하신다면 그분은 얼마나 진실하게 신앙생활을 하실 지를 상상해 보십시오.

  

 “[]2: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2: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예수님은 최고의 높은 곳에 계셨던 분이시지만 제일 말단의 낮은 곳으로 내려오셨습니다. 종의 형제를 가지시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 그 모습이 바로 그리스도인들의 모범입니다. 그러나 그 외면적인 모습을 따르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 마음을 본받으라는 것입니다. 그 마음은 자신을 낮추어서 하나님의 보좌에서 내려오시고 종의 형체인 인간의 육신을 입으셔서 사람들과 같이 되신 그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마음 속에서 예수님께서 간절히 이루기를 원하셨던 것은 바로 낮추시고 복종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시고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고자 하는 마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나타났습니다.

  

“[]2: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그 겸손과 복종의 그리스도의 마음을 생각해 볼 때 그것이 우리 삶 속에서 어떻게 신앙생활 가운데서 나타날 수 있을까를 생각해 봅니다. 사도 바울이 말하는 그리스도의 마음을 본받는 신앙생활이 바로 처음에 우리가 본 말씀입니다.  

  

“[]2:2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마음을 품어

  

[]2:3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아까 우리가 보았던 그 사도 바울의 권면이 바로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는 모습의 표현이었습니다. 같은 사랑, 한 마음으로 겸손과 복종의 그리스도의 마음을 본받을 때 비로소 다툼이나 허영이 아닌 겸손한 마음으로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길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러한 모습을 나타낼 수 있다면 그것은 그리스도의 마음을 본받으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복음의 전파에 협력하면서 교회 일을 하면서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본받고자 할 때 정말 중요한 마음을 갖게 됩니다. 그것이 우리를 이전까지와 다른 새로운 마음으로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하는 것입니다.

  

교회에 견제와 억제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아직도 새로워지지 못했습니다. 신앙생활을 하기 위해서 따끔한 충고와 강력한 처벌이 필요하다면 여전히 우리는 과거의 문제를 답습하고 있는 것입니다. 장기이식이 필요한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그 장기가 제 기능을 다 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장기를 가진 사람이 죽음에 이르게 되어버렸습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가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이루어지지 못할 때 그리스도의 몸은 살아날 수가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몸을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 하나님 앞에서의 겸손과 복종이 아니라면 결코 머리 되신 그리스도의 뜻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결국에는 사망에 이르게 되어 버립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마음을 온전히 본받았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어떻게 높여 주셨는지를 상기시켜 주십니다.

  

“[]2:9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2: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오히려 겸손과 복종으로 하나님께 충성한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께서는 지극히 높여서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이러한 하나님의 복을 받으셨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마음을 본받는 자도 역시 하나님의 복을 받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를 닮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오늘도 겸손과 복종으로 예배에 참석하십니다. 함께 찬양을 하면서 함께 설교를 들으십니다. 예수님은 오늘도 우리와 같이 기도를 하시고 함께 식사를 하십니다. 함께 성경공부를 하시고 함께 전도를 나가시며 함께 청소를 하시고 함께 식사준비를 하시고 함께 설거지를 하십니다. 그 일을 하시면서 예수님은 즐거우십니다. 기쁘십니다. 예수님께서 함께 하는 그들이 바로 예수님께서 위해서 죽으셨던 구원받은 영혼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들과 함께 이루게 될 하나님의 나라를 생각하시면서 예수님은 즐거우십니다. 기뻐하십니다. 저는 그 기뻐하시는 예수님 옆에 있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여러분들도 그 기쁨에 동참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그 기쁨은 예수님의 기쁨이자 하나님의 기쁨이며 성령님의 기쁨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바꾸어서 이러한 하나님의 기쁨에 동참하게 만드신 그 예수님은 하나님은 지극히 높이셨습니다. 11절입니다.

  

“[]2: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지금도 우리는 예수님의 마음을 본받으면서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고 있습니다. 그 영광은 단순히 우리가 잘 먹고 잘 사는 것으로 영광을 돌리는 것이 아닙니다. 진심으로 그리스도를 기뻐하고 그 기쁨에 동참하고 그 속에서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일을 행할 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나라에 영광을 돌리는 것은 우리 각자가 자기 하고 싶은 일을 하고 평안하고 행복한 삶을 삶으로 영광을 돌리는 것이 아닙니다. 나라에 영광을 돌리는 것은 그 나라의 영광을 위해서 최선을 다했고 그리고 그 최선에 부족하였을 때 안타까워 함으로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우리가 돌리는 영광은 우리 자신의 영광이 아닙니다. 그것은 오직 하나님께만 돌리는 영광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은 그 영광에 우리를 부르십니다. 그래서 다시 우리도 기뻐하게 됩니다.

  

이러한 복음의 삶을 기억하고 새로운 마음을 가져보십시오. 그래서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시작되는 새로운 삶을 시작해 보십시오. 성공적으로 장기이식수술을 받은 환자들이 새로운 삶을 사는 것처럼 그렇게 마음이 바뀐 새로운 삶을 살아보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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