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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희생] 42눅22: 47-51 이것까지 참으신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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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눅22: 47-51 이것까지 참으신 예수님_1



  2012.3.25.주, 주일오전-주제설교

*개요 [53희생] {5복음서} <3관점> [4욕구]-[5은혜]

47 말씀하실 때에 한 무리가 오는데 열둘 중에 하나인 유다라 하는 자가 그들의 앞에 서서 와서
48 예수께 입을 맞추려고 가까이 하는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유다야 네가 입맞춤으로 인자를 파느냐 하시니
49 좌우가 그 될 일을 보고 여짜오되 주여 우리가 검으로 치리이까 하고
50 그 중에 한 사람이 대제사장의 종을 쳐 그 오른편 귀를 떨어뜨린지라
51 예수께서 일러 가라사대 이것까지 참으라 하시고 그 귀를 만져 낫게 하시더라
 


최근 한 뉴스에는 조직폭력배의 대부로 유명한 김태촌씨와 관련한 한 사건이 소개되었습니다. 김태촌씨가 서울대병원에 입원해 있는데 그 부하 한 사람이 옆에서 간호를 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갑자기 김태촌씨가 상태가 악화되어서 간호원을 부르니까 응급상황임을 직감하고 의료진들이 달려와서 응급조치를 했다고 합니다. 그런 와중에서 한 간호원이 보호자는 잠시 밖으로 나가달라고 하니까 이 부하가 성을 내면서 간호원을 폭행했다는 것입니다. 이 사람이 경찰에 넘겨져서 왜 간호원을 때렸느냐고 하니까 자기를 무시하는 듯이 나가라고 해서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결코 보호자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응급조치를 취하기 위해서 나가라고 했던 것인데 그 부하라는 사람은 이런 일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람이라서 그렇게 반응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일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누구에게나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그 무엇인가가 있습니다. 다른 사람은 뭘 그런 것 가지고 그러느냐 하겠지만 역시 그 사람에게도 도저히 참을 수 없는 무엇인가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것이 침해되고 자극되고 도전될 때에 폭발해버리게 됩니다. 그리고 그로 인해서 하지 말아야 할 말과 행동이 나오게 되어서 죄도 저지르게 되고 악도 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도발적인 자극에 아주 민감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소한 말과 행동에도 기분이 상하게 되고 강하게 반발하게 되는 사람들입니다. 또한 그런 자극에 아주 둔감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왠만한 말에도 견뎌내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단지 정도의 차이일 뿐이지 모든 사람들에게는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그 무엇인가는 분명히 있습니다.

개인적인 모든 상실을 잘 견뎌내는 사람이 있다면, 반대로 사회적인 모든 상실을 견뎌내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개인적으로 유익을 잃어버리는 것은 잘 참는다면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지 못하는 것을 못견뎌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또한 반대로 사회적으로 다른 사람들의 지탄을 받는 것은 잘 견디지만 개인적인 뜻을 이루지 못할 때 그것을 못견디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상황에서는 별다른 문제가 없지만 다른 상황에서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한 사람이 집에서나 혼자있을 때의 모습이 직장이나 학교에서의 모습과 다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와 목표와 욕구가 상황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예수님은 이런 어려움을 어떻게 경험하셨을까요? 또한 그런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하셨을까요? 하나님의 아들로서 또한 인간으로서 예수님은 우리가 느끼는 이런 괴로움,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그 한계에 대해서 잘 알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에 대해서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도 잘 알고 계셨습니다. 오늘 성경 말씀이 그런 참을 수 없는 모든 것에 대해서 예수님이 어떻게 말씀해주셨는지를 보여주십니다. 51절을 보십시오.
“51 예수께서 일러 가라사대 이것까지 참으라 하시고 그 귀를 만져 낫게 하시더라”

주님의 말씀은 분명합니다. 이것까지도 참으라는 것입니다. 이것까지만 참으라가 아니라 이것까지도 다 참으라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도저히 못참겠습니다’가 아니라 ‘이것도 참아내겠습니다’라고 말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말씀은 우리들에게 커다란 짐이 되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참으라고만 하시니 우리에게 예수님은 너무나 버거운 분이신 것 같습니다. 도대체 그런 예수님에게 참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요? 예수님이 참지 않아도 된다고 허락해주시는 정당한 분노는 무엇입니까? 주님은 혹시 그를 믿는 모든 성도를 아무 것도 못하는 비겁자로 만들어 버리시려는 것은 아닐까요?

그런데 그 이유를 깨닫기 전에 우선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시키시려는 것은 아닐까에 대한 두려움을 접어두시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51절에서 이 말씀을 해 주신 것은 그 자신이 바로 이것까지도 참으셨던 것을 보여주시기 위함이기 때문입니다. 주님 자신이 이 모든 것을 참으심을 보여주고 계십니다. 우리에게 나타나는 것은 그렇게 인간으로서 거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참고 인내하셨던 예수님의 모습인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말씀을 해주신 상황을 다시한번 구성해 봅니다.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제자들과 함께 기도하고 계셨습니다. 그때 한 무리의 사람들이 예수님께로 나아왔습니다. 그들은 검과 몽둥이를 들고 다가왔습니다. 바로 호시탐탐 예수님을 잡고자 하였던 대제사장들이 보낸 수하들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때 낯익은 한 사람이 예수님께 다가섭니다. 그리고 천연덕스럽게 예수님께 다가와서 다정하게 웃으면서 인사를 건넵니다. ‘예수님 평안하십니까?’ 바로 예수님의 열두 제자중 하나였던 가룟 유다였습니다. 그가 대제사장들의 하속들을 거느리고 찾아와서 누가 예수님인지를 정확히 지목하여 주고 있었습니다. 자기가 나아가서 인사하는 그 사람이 바로 예수님이라는 것이 이미 사전에 약속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주님은 그 가룟유다를 보면서 말씀하십니다.
“48.. 유다야 네가 입맞춤으로 인자를 파느냐..”

이 말뜻은 유다야 ‘네가 결국 입맞춤으로 인자를 파는구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팔아넘기는 사람은 바로 자신이 데리고 다녔으며 3년동안이나 함께 가르쳤던 바로 그 돈궤를 맡은 제자였습니다.

3년간 친하게 지내온 어떤 사람에게 배신당한다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요? 그에게 믿고 맡겨두었던 돈을 다 빼돌리고 더군다나 그는 자신을 모함해서 감옥에까지 가게 된다는 것은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일까요? 역사나 소설에나 나올법한 함께 준비하고 함께 고생했던 누군가가 적과 내통을 하고 모든 사람을 다 적에게 넘겨버리는 이 장면은 사실 우리들의 삶속에서 지금도 일어나고 있는 가장 원통하고 억울한 장면입니다.
그로 인해서 통분해하며 억울해하고 괴로워하며서 그를 미워하고 증오하며 원수를 갚고자 하는 것은 결코 특별한 감정이 아닙니다. 그 한 사람의 배신과 한 사람의 횡령으로 인해서 모두가 고통하게 되고 괴로움을 겪게 되며 회복할 수 없는 손상을 얻게 되는 것에 대해서 도저히 참을 수 없게 되어 폭발해 버리는 것은 몇몇 소수에게만 일어나는 일이 아닌 것입니다.

그래서 제자 중 한 사람도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 폭발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49,50절을 보십시오.
“49 좌우가 그 될 일을 보고 여짜오되 주여 우리가 검으로 치리이까 하고 50 그 중에 한 사람이 대제사장의 종을 쳐 그 오른편 귀를 떨어뜨린지라”

사실은 가룟 유다를 죽이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다가가지 못하고 그를 보호하는 대제사장의 종을 향해 검을 휘둘렀는데 그것이 그의 귀를 짤랐던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심정입니다. 어쨌든 보복하고 싶은 마음이 바로 우리의 정서입니다. 그러나 그 때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이것까지 참으라’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 말씀은 우리들에게 단지 ‘참으라’고 하시는 주님의 권면을 보여주시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미 생각했습니다. 이 말씀은 ‘이것까지 참고 계시는’ 주님의 모습을 보여주시는 것이었습니다. 주님은 참지 못하면서 우리보고 참으라는 것이 아니라, 주님 자신도 참고 계시면서 우리에게도 주님의 참으심을 바라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생각해 보십시오. ‘이것까지 참았다’면 지금까지 얼마나 더 참으셨던 것입니까? 마지막 가룟유다의 배신을 참으셨지만 사실 주님은 그 이전에 가룟유다의 불순종도 참으셨습니다.
“요12: 3 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씻으니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더라 4 제자 중 하나로서 예수를 잡아 줄 가룟 유다가 말하되 5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하니”

주님은 가룟 유다의 파렴치한 말도 참으셨습니다.
“마26:25 예수를 파는 유다가 대답하여 가로되 랍비여 내니이까 대답하시되 네가 말하였도다 하시니라”

주님은 그 가룟 유다가 돌이키게 되기를 바라셨지만 결국에 배신하고 주님을 팔게 되었다 하더라도 그 모든 일을 다 참으셨습니다.
하지만 주님의 참으심은 단지 가룟 유다에게만 국한 된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그 인내는 모든 사람을 위해 흘리시는 대속의 사역에 있었기 때문에 주님은 모든 사람을 그렇게 참으셨던 것입니다. 주님은 지금까지 모든 것을 참으셨고 그 이후의 모든 것도 참으셨습니다. 주님의 가장 놀라운 참으심을 우리는 그 뒤에 있는 구절에서 발견합니다.
“눅23:33 해골이라 하는 곳에 이르러 거기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두 행악자도 그렇게 하니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 34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예수님은 실로 모든 것을 다 참으셨습니다. 자기를 못박는 자들에 대해서도 주님은 간구하십니다. 그들의 죄를 사하여 달라고 주님은 간구하십니다. 그들이 알지 못하고 행하는 죄를 나중에 회개할 때에 사함받을 수 있게 해달라고 간구하시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실제로 자신에게 못을 박는 자들을 위해서 기도하시고 그들을 위해 희생을 감수하시고 그들을 참으신다면 오늘날 이 시대에 살면서 주님을 믿고자 하는 우리들은 얼마나 더 용서해 주시겠습니까? 주님은 죄많은 우리를 지금도 참으시면서 우리가 주님께로 돌아오기를 간절히 바라고 계십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다 하나도 남김없이 참으셨던 것입니다.

 

그 은혜를 저버리고 3년 내내 돌이키지 않았고 마침내 예수님을 팔았으며 결국 죄책감에 목을 매어 자살하였던 가룟 유다는 예수님의 무한한 참으심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파멸에 들어간 자가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가룟 유다에게 베푸신 예수님의 사랑은 그 자신의 배은망덕함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의 모든 인류에게 여전히 놀랍게 전파되고 있습니다. 우리도 살아있고 주님을 믿게 된 것은 우리를 위해 희생하신 예수님의 은혜 때문입니다. 우리가 믿기 전에 그토록 주님을 핍박하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구원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예수님의 참으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오래 참으심으로 우리를 견뎌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구원받을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이 모태신앙이라고 해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이 모태신앙이 될 수 있도록 여러분의 부모님을 참아주신 분은 누구입니까? 바로 예수님입니다. 여러분의 부모님이 믿지 않을 때 행하던 그 모든 악행을 예수님이 다 참아주셨기 때문에 부모님이 결국에는 믿게 되었고 감사하게도 그 부모님 밑에서 태어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어떤 식으로든 우리는 예수님의 희생을 외면할 수 없습니다. 우리 자신의 죄건 우리 부모의 죄건 누군가는 갚아야 했던 그 죄를 예수님이 다 참아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나음을 얻고 죄사함을 얻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은혜를 기억해야 합니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까맣게 잊어버리는 자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살아 있는 이유도 전부 주님때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어쩌면 결코 주님을 본받아 희생하지 못할 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그 희생을 따라갈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만 기억은 하십시오. 그분의 희생이 보잘것 없는 것처럼 잊혀지지 않도록, 무가치한 것처럼 취급되지 않도록,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얼마든지 있으니 희생이란 말을 생각하는 것조차 부담스럽게 되어버리지 않도록 우리는 그분의 희생을 기억하고 감사하며 기념해야 하겠습니다.
오늘도 우리의 삶 속에 ‘모든 것을 참으셨던’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과 사랑에 대한 기억과 감사가 날마다 넘쳐나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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