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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희생] 25애 1; 1-5 이스라엘의 심판에 대한 슬픔의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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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1; 1-5 이스라엘의 심판에 대한 슬픔의 마음_1

  

 

  

2022. 2. 6. . 주일오전.

  

 

  

*개요: 예레미야 애가에서의 신앙의 목표, 4조직문제, 3희생, 6통찰해석,

  

 

  

[]1:1    슬프다 이 성이여 전에는 사람들이 많더니 이제는 어찌 그리 적막하게 앉았는고 전에는 열국 중에 크던 자가 이제는 과부 같이 되었고 전에는 열방 중에 공주였던 자가 이제는 강제 노동을 하는 자가 되었도다

  

[]1:2    밤에는 슬피 우니 눈물이 뺨에 흐름이여 사랑하던 자들 중에 그에게 위로하는 자가 없고 친구들도 다 배반하여 원수들이 되었도다

  

[]1:3    유다는 환난과 많은 고난 가운데에 사로잡혀 갔도다 그가 열국 가운데에 거주하면서 쉴 곳을 얻지 못함이여 그를 핍박하는 모든 자들이 궁지에서 그를 뒤따라 잡았도다

  

[]1:4    시온의 도로들이 슬퍼함이여 절기를 지키려 나아가는 사람이 없음이로다 모든 성문들이 적막하며 제사장들이 탄식하며 처녀들이 근심하며 시온도 곤고를 받았도다

  

[]1:5    그의 대적들이 머리가 되고 그의 원수들이 형통함은 그의 죄가 많으므로 여호와께서 그를 곤고하게 하셨음이라 어린 자녀들이 대적에게 사로잡혔도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선지자로서 예루살렘의 회개와 자성을 촉구했습니다. 하지만 그가 활동을 시작한 요시야왕13년인 BC 627년부터 예루살렘이 멸망한 BC 586년까지 41년 동안 이스라엘은 회개하지 않았고 하나님께 돌이키지 않았습니다. 요시야, 여호아하스, 여호야김, 여호야긴, 시드기야라는 다섯 명의 왕이 지나갔지만 여전히 이스라엘은 우상숭배와 배교와 혼합주의로 살아갔습니다. 그렇게 회개하지 않는 이스라엘에 대해서 하나님은 바벨론이 이스라엘을 침공하게 하셨고 마침내 이스라엘은 B.C. 586년에 멸망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죽고 살아남은 자들도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게 된 참담한 상황에서 더 이상 선지자를 통해서 증거되는 하나님의 말씀은 없었습니다. 그럴 때 선지자는 애가를 지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 말씀은 정확히 하나님의 마음을 대변하였습니다. 시켜서 한 것은 아니었고 자원하는 마음으로 했지만 그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되었습니다.

  

어떻게 이러한 일이 가능할 수 있었을까요? 선지자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면서 그 속에서 하나님의 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 하나님의 의도와 목적에 대한 이해가 멸망한 이스라엘에 대한 슬픔과 고통으로 표현되었습니다. 그의 신앙은 단순히 형식적이고 소극적이며 타성적인 신앙에 그치지 않았고 본질적이고 적극적이며 주도적인 신앙으로 성장하였습니다. 그랬기에 이스라엘의 멸망에 대해서 안타까워 하며 눈물을 흘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쉬운 일인가 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실제 삶 속에서 우리가 경험하는 것을 생각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나라의 정치나 사회의 문화에 대해서 분노하기도 하고 외면하기도 합니다. 미움과 분노나 절망이 더 익숙한 감정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슬픔과 고통과 아픔을 느낀다면 그런 사람은 이상하게 보일 것입니다. 우리 자신이 그런 마음을 가진다고 한 번 상상해 보십시오. 과연 가능한 일일까요?

  

 

  

이제 예레미야가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했기 때문에 슬픔의 애가를 말할 수 있었다면 그가 이해한 마음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그를 통해서 하나님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11절을 보십시오.

  

“[]1:1  슬프다 이 성이여 전에는 사람들이 많더니 이제는 어찌 그리 적막하게 앉았는고 전에는 열국 중에 크던 자가 이제는 과부 같이 되었고 전에는 열방 중에 공주였던 자가 이제는 강제 노동을 하는 자가 되었도다

  

예레미야는 애가의 저자로서 슬프다는 말로 시작합니다. 슬프다가 히브리어로 אֵיכָה’이고 애가의 히브리어 제목도 역시 ‘ אֵיכָה’입니다. 이러한 슬픔의 내용은 이전과 달라진 심판 이후의 모습이었습니다. 이전에는 예루살렘에 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지금은 적막하게 되었습니다. 이전에는  자가 이제는 과부 같이 되었고 이전에 공주였던 자가 이제는 노예가 되어서 강제 노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의 변화, 신분의 변화, 처지의 변화가 바로 슬픔의 내용이었습니다.

  

누가 생각해도 이러한 비참한 상태로의 변화는 괴로운 일일  밖에 없지만 예레미야가 그런 상황에 대해서 슬퍼하고 안타까워한다는 것은 바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랬다는 의미가 됩니다. 누구나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랠 수는 있지만 그런 일이 어떻게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가에 대해서  방식과 방법이 오직 하나님일 때에만 비로소 슬픔을 가질  있습니다.  슬픔은 오직 하나님 안에서만 가질  있는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마음은 하나님 뜻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지 못한 민족에 대해 안타깝게 여김이었습니다.

  

윤동주의 서시를 읽어보면  시대에  사람의 힘없는 국민으로서 가졌던 슬픔이 무엇인지를   있습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   부끄럼이 없기를, /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 모든 죽어 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 걸어가야겠다. /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단순한 사색이 아니라 나라와 민족과 자신에 대한 통렬한 성찰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시가 쓰여진 사회적 배경을 알고 시를  저자에 대한 이해가 있으니까  시가 의미하는 바를 이해할  있습니다. 저자는  시대에  상황을 이렇게 바라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단순한 미움, 분노, 절망이 아니었습니다.

  

지금 우리는  시대를 살면서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까? 우리의 신앙은 어떤 위치에서  상황을 생각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관점을 갖는다는 것은 자신의 관점을 갖는 것이 아닙니다.  관점이 하나님의 관점일 수도 없습니다.  관점을 넘어서 하나님의 관점을 가질  그것이 비로소 진정한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관점이 하나님의 관점이라고 철썩 같이 믿고 있는  우리는 죽을 때까지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할  없습니다. 그러나 무엇인가 내가 알지 못하는 하나님의 마음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하나님의 뜻을 바라볼  있습니다.

  

 

  

그 뜻을 바라보기 위해서 이어지는 2,3절을 보십시오.

  

“[]1:2  밤에는 슬피 우니 눈물이 뺨에 흐름이여 사랑하던 자들 중에 그에게 위로하는 자가 없고 친구들도 다 배반하여 원수들이 되었도다

  

[]1:3    유다는 환난과 많은 고난 가운데에 사로잡혀 갔도다 그가 열국 가운데에 거주하면서 쉴 곳을 얻지 못함이여 그를 핍박하는 모든 자들이 궁지에서 그를 뒤따라 잡았도다

  

예레미야는 죄의 결과를 안타까워 하고 있습니다. 죄로 인해 사랑하던 자들이 사라졌고 친구들이 원수가 되었으며 환난과 고난 가운데 거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경고와 심판의 예고를 무시했을 때 이스라엘은 쉴 곳을 얻지 못했고 사로잡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경고와 심판을 말했던 자가 바로 자신이었고 그 말에 귀 기울이지 않은 이스라엘의 비참한 상태를 눈물을 흘리며 슬퍼하였습니다. 그는 진심으로 그런 심판에 이르지 않게 되기를 바랬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 죄의 결과와 비참한 상태를 알고 계시기 때문에 그런 일을 겪지 않기를 바라십니다. 그래서 분명하게 경고하셨고 회개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런 일이 일어났을 때 하나님의 마음은 슬퍼하심으로 나타납니다. 예레미야의 애가가 바로 그러한 하나님의 슬퍼하심을 보여줍니다. 그 슬픔을 깨달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거부함과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가를 알게 됩니다. 올바른 것이 무엇인가를 알 때 비로소 그것에 이르지 못했을 때의 비참함을 알 수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런 자각이 없습니다. 죄의 참혹한 결과에 대해서도 오히려 당당하고 당연하며 의연합니다. 왜냐하면 그 반대인 사랑하는 사람들과 친구들과 쉴 곳과 자유로움에 대한 사모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너무나 열악한 삶 만을 생각하기 때문에 더욱 풍성한 삶 자체를 생각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슬픔도 후회도 괴로움도 없습니다. 오직 신앙 안에서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생각할 때에만 그렇지 않은 모습에 대한 안타까움도 가질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그 민감함과 진실함과 숭고함이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의 신앙의 목표가 형성될 수 있습니다. 천국에 대한 간절한 사모함이 있어야 지옥에 대한 경각심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애가를 통해서 우리는 신앙의 목표가 무엇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는 죄에 대한 슬픔을 보면서 의에 대한 사모함을 가져야 합니다. 다른 사람의 어리석음은 우리 자신에 대한 경각심으로 발전될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애가를 읽으면서 우리는 신앙의 목표를 더욱 새롭게 가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따라가는 의의 삶을 더욱 확고하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예레미야가 안타까워한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4,5절에서 이 모든 것이 죄의 결과였고 그는 그것을 안타까워 했다는 것을 분명하게 볼 수 있습니다.

  

“[]1:4  시온의 도로들이 슬퍼함이여 절기를 지키려 나아가는 사람이 없음이로다 모든 성문들이 적막하며 제사장들이 탄식하며 처녀들이 근심하며 시온도 곤고를 받았도다

  

[]1:5    그의 대적들이 머리가 되고 그의 원수들이 형통함은 그의 죄가 많으므로 여호와께서 그를 곤고하게 하셨음이라 어린 자녀들이 대적에게 사로잡혔도다

  

시온으로 나아가고 절기를 지키고 성문이 튼튼하고 제사장들이 의미있는 것은 오직 하나님을 사모하고 하나님을 섬기려고 할 때입니다. 하지만 죄가 많고 악이 많을 때 시온의 도로는 무의미해졌습니다. 절기도 사라졌습니다. 성문도 적막해지고 제사장은 탄식합니다. 처녀들은 근심하고 시온이 곤고를 받습니다. 더 이상 하나님께 나아오는 사람들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 대적들이 머리가 되어서 섬기고 원수들이 더 형통하고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그 모든 것은 결국 그의 죄 때문입니다. 그로 인한 죄의 심판이 곤고함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그 시대 뿐만이 아닙니다. 그 자녀 세대들도 가장 혐오하던 대적에게 사로잡히게 되었고 이 모든 것이 바로 죄의 결과의 모습들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미래가 되지 않도록 우리는 신앙의 목표를 가져야 하겠습니다. 왜 부모세대가 그렇게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는지를 알아야 하겠습니다. 무엇을 위해서 그렇게 애를 썼는지를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그 모든 신앙의 유산이 다 사라지고 나면 그 다음에는 아무 것도 남는 것이 없습니다. 지키지 않으면 사라질 뿐입니다. 유지하고 돌보지 않으면 다 썩을 뿐입니다. 그 결과를 안타까워 할 때 비로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과 해야 하는 일들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의 신앙의 목표입니다.

  

 

  

애가를 읽으면서 이것을 더욱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나를 위해 나의 가족을 위해 그리고 나의 자녀를 위해 또는 이 사회를 위해 이 나라를 위해 이 민족을 위해 슬퍼할 수 있고 안타까워할 수 있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고 그 마음을 이해하며 우리가 해야할 일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의 목표를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더욱 하나님께로 간절히 나아가는 귀한 신앙인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구성         

  

1. 애가는 예레미야의 선지자로서의 슬픔과 긍휼을 보여주면서 하나님의 마음을 대변하고 있다.

  

2. 그 감정은 멸망한 이스라엘에 대한 안타까움과 고통이었고 죄의 결과에 대한 슬픔이었다.

  

3. 죄의 결과에 대한 괴로움은 죄에 대한 거부감과 의에 대한 사모함이 된다.

  

4. 대상과 환경과 상황에 대한 깨달음을 통해서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할 때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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