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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경건] 41막 7; 24-30 소원을 통해 침상에 누운 아이를 보게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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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7; 24-30 소원을 통해 침상에 누운 아이를 보게 됨_1

  

 

  

2024. 1. 14. . 주일오전예배.

  

 

  

*개요: 소원을 통해 이루는 것들, #74경건

  

[]7:24 예수께서 일어나사 거기를 떠나 두로 지방으로 가서 한 집에 들어가 아무도 모르게 하시려 하나 숨길 수 없더라

  

[]7:25 이에 더러운 귀신 들린 어린 딸을 둔 한 여자가 예수의 소문을 듣고 곧 와서 그 발 아래에 엎드리니

  

[]7:26 그 여자는 헬라인이요 수로보니게 족속이라 자기 딸에게서 귀신 쫓아내 주시기를 간구하거늘

  

[]7:27 예수께서 이르시되 자녀로 먼저 배불리 먹게 할지니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7:28 여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상 아래 개들도 아이들이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7:29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말을 하였으니 돌아가라 귀신이 네 딸에게서 나갔느니라 하시매

  

[]7:30 여자가 집에 돌아가 본즉 아이가 침상에 누웠고 귀신이 나갔더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소원을 구하게 하시고 예수님께서 소원을 이루어 주실 때 여기에는 중요한 하나의 목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선을 이루고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소원을 구하지 않아도 원래 선을 이루시고 하나님 자신의 뜻을 완성하십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창세 이래부터 영원 전부터 해오시던 일입니다. 이제 그 일을 우리의 소원을 통해서 이루고자 하시는 것은 우리를 하나님의 뜻에 동참하게 하시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기쁨으로 그러한 하나님의 뜻에 맞는 소원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그 소원 속에서 하나님의 사역에 동참해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과 관계를 맺는 사람이 될 수 있고 하나님과 연합하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이 시대에 주님이 하시는 일은 사람을 살리는 일입니다. 그 일에 동참하면서 우리는 그 결실을 얻게 됩니다. 그 신령한 일에 연합할 때 하나님께 대해서 소원을 갖는 것이 의미가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 개인적이고 세속적인 일에 소원을 갖는다면 그것은 결국 욕심에 불과합니다.

  

오늘 말씀에서 예수님이 하시는 일이 있는데 우리가 그 일에 참여할 때 놀라운 축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 결과를 보게 되는 것이 바로 소원을 통해서 이루어진 일입니다. 24절입니다.

  

“[]7:24 예수께서 일어나사 거기를 떠나 두로 지방으로 가서 한 집에 들어가 아무도 모르게 하시려 하나 숨길 수 없더라

  

[]7:25 이에 더러운 귀신 들린 어린 딸을 둔 한 여자가 예수의 소문을 듣고 곧 와서 그 발 아래에 엎드리니

  

[]7:26 그 여자는 헬라인이요 수로보니게 족속이라 자기 딸에게서 귀신 쫓아내 주시기를 간구하거늘

  

예수님은 두로 지방으로 가셔서 그곳에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셨습니다. 아무도 모르게 하시려고 했던 것은 사역 자체를 숨기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병고침에 대한 일을 숨기시고 복음전파에 대한 일을 나타내시려고 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병고치는 능력에 대한 소문을 듣고 가나안에서부터 온 여인은 숨길 수 없이 예수님을 찾아와서 예수님의 발 아래에 엎드렸습니다. 그리고 자기 딸에게서 귀신 쫓아내 주시기를 간구했습니다.

  

예수님이 복음전파에 관한 일을 하실 때에는 예수님의 사람들은 그 일을 돕는 것이 당연한 일입니다. 또한 병고침에 관한 일을 하실 때에는 당연히 그 일을 도와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귀신 쫓는 일을 하신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역시 당연히 그 일을 도와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어떤 일을 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하시는 일에 연결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 일을 소원을 통해서 이룰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의 소원의 의미가 중요합니다. 그것이 욕심이 아니라 소원이라면 하나님께서 더 좋게 해주시는 것에 대해서 따를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욕심이라면 하나님이 원래 바라던 것보다 더 좋게 해 주시려고 할 때 거부하고 분노할 것입니다. 자기 욕심대로 해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본질적으로 하나님께 대해서 연합하려고 하는 성도들입니다. 하나님을 통해서 내 욕심을 채우려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더 좋게 해 주실 때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애초에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은 욕심이 아니라 소원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원자탄으로 유명한 손양원 목사님은 1948년 두 아들을 폭도들에게 잃었습니다. 하지만 두 아들을 죽이는데 선동한 범인이 잡혔을 때 그를 용서했습니다. 그리고 두 아들의 장례를 치르면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는데 그 중의 하나로 아들들이 대학에 가기를 바랬는데 천국에 가게 되어서 감사합니다 라고 했습니다. 보통 사람은 결코 생각할 수 없는 감사의 내용을 감사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 목사님에게 하나님께 대한 소원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천국에 가고 구원을 얻고 하나님과 함께 있고자 하는 소원이 있었을 때 비로소 그런 감사를 할 수 있었습니다.

  

목적지가 동일하다면 이렇게 가든지 저렇게 가든지 별 상관이 없습니다. 어떤 때에는 더 빨리 가는 다른 길이 있다면 그 길에 더욱 감사가 되기 마련입니다. 분노하고 거부되고 실망하고 절망하는 이유는 오직 목적지가 다르기 때문일 뿐이니 하나님께 목적지가 있는 사람에게는 이렇게 가든 저렇게 가든 아무 불만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보는 이 헬라인 수로보니게 여인은 그 목적지를 단순히 딸의 병을 고치는 데에만 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는 도저히 그 간구의 들으심을 얻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안 좋게 생각하고 돌을 던지면서 오직 병을 낫기 만을 바라며 나아올 수 있겠습니까? 이 여인에게는 근원적으로 예수님께 대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주님이시고 병을 고치시는 권세가 있는 전능자라는 확고한 신앙이 있었습니다.

  

“[]7:27 예수께서 이르시되 자녀로 먼저 배불리 먹게 할지니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7:28 여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상 아래 개들도 아이들이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동일한 사건이지만 마태복음에서와 달리 마가복음에서는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에게도 보내심을 받았다는 말씀은 나오지 않습니다. 직접적으로 자녀의 떡과 개들이라는 이야기로 넘어갑니다. 이 본문에서도 그에 대한 여인의 대답은 분명했습니다. 상 아래 개들도 아이들이 먹던 부스러기를 먹는다고 하였습니다. 마태복음에서는 개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는다고 하였던 것과 비교해 보면 의미는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주인의 상이든 아이들이 먹던 부스러기이든 개들에게는 부스러기라도 필요하다는 의미였습니다.

  

자신을 낮추면서 예수님을 높여서 예수님이 전능자임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 은혜를 얻고자 비굴하게 구는 것이 아니라 정말 예수님께 병을 고치시는 능력이 있음을 믿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예수님께서 그 여인에 대해서 믿음이 크도다고 하셨던 것이고 여기서는 이 말을 하였으니라고 하셨습니다. 그 믿음이 말로 고백 되어진 것입니다.

  

말하지 않고 어떻게 그 믿음을 나타낼 수 있겠습니까? 말을 들어보면 믿는지 안 믿는지를 알 수 있는데 그것을 어떻게 숨기겠습니까예수님이 들으신 소원 속에는 여인의 분명한 믿음이 있었고 그 믿음이 말 속에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 여인에게 돌아가라 귀신이 네 딸에게서 나갔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7:29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말을 하였으니 돌아가라 귀신이 네 딸에게서 나갔느니라 하시매

  

[]7:30 여자가 집에 돌아가 본즉 아이가 침상에 누웠고 귀신이 나갔더라

  

딸에게서 귀신이 나가는 그 감동적인 장면은 이 여인의 진실한 소원과 하나님께 대한 진정한 믿음으로 인해서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진실한 소원과 진정한 믿음의 결실은 이 여인이 집에 가서 보았을 때 알 수 있었습니다. 아이는 침상에 누워 있고 귀신은 나간 것입니다. 귀신이 나간 것을 볼 수는 없었지만 그로 인해서 아이가 조용히 침상에 누워 있을 수 있었던 것을 보니 알 수 있었습니다. 귀신이 있었을 때에는 도저히 그렇게 누워 있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들으시는 소원은 그로 인해서 사람이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물론 그것만 행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돈도 벌게 하시고 건강도 얻게 하시며 평안함도 찾게 하십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결국에는 사람이 구원을 받는 것으로 귀결되게 하십니다. 그걸 이해하고 아이가 침상에 누울 수 있는 그 기적을 보기를 원할 때 우리는 소원의 들으심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에 동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감사한 결과를 마음 속에 진심으로 바라고 의지하고 사모할 때 우리는 다시 소원을 향해 나아갈 수 있습니다. 소원의 들으심을 얻을 때 나타나는 하나님의 일을 꿈꾸기 때문에 그 소원과 함께 하나님과 연합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에 대해서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아무 것도 없어서 자포자기한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가진 것이 없어서 무서움이 없는 사람이 있기도 합니다. 이판사판이라고 생각하고 극단적으로 치닫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얻을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얻고자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 소원의 결과를 사모하기 때문에 주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극단적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지는 자들이 아니라 간절함으로 주님께 나아가는 사람은 반드시 하나님께 얻을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이 주실 것을 사모하며 나아가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침상에 누운 아이를 보게 된 여인처럼 바라는 것을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바로 그것이 커다란 차이를 만듭니다. 버스터미널에 왔다고 해서 무조건 버스를 타는 것이 아닙니다. 공황에 왔다고 해서 항상 비행기를 타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를 한다고 해서 모두 응답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소원이 되어야 합니다. 소원 속에서 하나님과 함께 하려고 할 때 그 들으심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귀신이 나가고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넘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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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24-01-15 (월) 11:06 10개월전
*소감,결심
1. 욕심이 아닌 소원을 가지고 하나님을 의지해야겠습니다.
2.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도록 노력해야겠다고 느꼈습니다.
3. 세상의 기준의 소원이 아닌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소원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4. 소원을 하나님 안에서 가지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나아가야겠다.
5. 소원은 예수님이 바라시는 방향으로 가져야 하고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6. 소원과 소원이 아닌 것을 잘 구분해야 되는 것을 알았습니다.
7.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그분께 영광 돌리는 소원을 가지고 간구하며 나아가겠습니다. 그리하여 그 소원을 이루어 주었을 때 그 소원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를 확장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들어주신 소원을 사용하겠습니다.
8. 잃을 것이 없는 사람은 파멸하지만 얻을 것이 있는 사람은 성공의 의미를 되새기며 주님 의지하는 삶이 되기를
9. 소원을 들으시는 하나님을 따르며 믿고 동행하며 살아야겠다.
10. 하나님의 뜻에 맞는 소원을 품고 그것의 이루심을 누리며 기뻐하는 신앙이 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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