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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선악] 46고전 1; 10-17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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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고전 1; 10-17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음_1

  

 

  

2023. 11. 5. . 주일오전.

  

 

  

*개요: 고린도전서를 통해서 성도를 세움, #23선악,

  

 

  

[고전]1:10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모두가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

  

[고전]1:11 내 형제들아 글로에의 집 편으로 너희에 대한 말이 내게 들리니 곧 너희 가운데 분쟁이 있다는 것이라

  

[고전]1:12 내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너희가 각각 이르되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게바에게, 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한다는 것이니

  

[고전]1:13 그리스도께서 어찌 나뉘었느냐 바울이 너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혔으며 바울의 이름으로 너희가 세례를 받았느냐

  

[고전]1:14 나는 그리스보와 가이오 외에는 너희 중 아무에게도 내가 세례를 베풀지 아니한 것을 감사하노니

  

[고전]1:15 이는 아무도 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말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고전]1:16 내가 또한 스데바나 집 사람에게 세례를 베풀었고 그 외에는 다른 누구에게 세례를 베풀었는지 알지 못하노라

  

[고전]1:17 그리스도께서 나를 보내심은 세례를 베풀게 하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복음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로되 말의 지혜로 하지 아니함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이번 달 우리는 로마서를 지나 고린도전서로 넘어와서 우리 각 개인의 신앙생활을 발전시키기 위한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해 보고 있습니다. 그동안 우리가 여러 모로 신앙성장을 위해서 노력해 왔는데 얼마나 발전이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올 한해도 열심히 보냈는데 과연 얼마나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살았는지 돌아봅니다. 우리가 믿는 복음이 온전하다면 그 복음을 통해서 우리의 삶에도 좋은 영향이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서를 통해 신앙의 의미를 바로 잡았다면 고린도전서를 통해서 그 신앙의 의미를 잘 돌아볼 수 있습니다. 그 신앙의 의미가 온전한가 온전하지 않은가에 대해서 오늘 말씀에서는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된가 아니면 헛되지 않은가로 나타납니다.

  

“[고전]1:17 그리스도께서 나를 보내심은 세례를 베풀게 하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복음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로되 말의 지혜로 하지 아니함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복음 만을 전하고 말의 지혜로 하지 않는 이유는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고 고백하는 사도 바울의 말 속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게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게 됩니다. 어떤 때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게 될까요? 그것은 그 앞서 나오는 대로 생활 속에 열매가 맺히지 않을 때입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게 됩니다. 다시 말해서 교회 안에 분쟁이 있는 경우입니다.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 세례를 베푸는 것이 중요하지 않고 복음을 전하는 것이 중요하며 말의 지혜로 해서는 안 되고 복음 만을 전해야 한다고 바울은 고백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바울의 개인적인 견해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이기도 했습니다. 십자가가 헛되지 않고 온전해 지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이 세례를 베풀었느냐 보다 얼마나 많이 복음을 알게 되었느냐가 중요합니다. 또한 말의 지혜로만 해서는 안 되고 복음의 능력으로 해야 합니다. 그럴 때 놀라운 십자가의 영광이 나타납니다.

  

 

  

그러면 이렇게 십자가가 헛되지 않고 효과 있게 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본문에서는 세례를 베푸는데 몰입하지 않고 말의 지혜로 하지 않으면서 오직 복음을 전하는 것이라고 나타나 있는데 그렇게 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물론 고린도전서의 다른 부분에서 그러한 십자가의 본질과 의미를 잘 보여주고 있지만 이 내용 속에서도 역시 우리가 조금만 눈을 열어 보면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는 방법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은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고전]1:14 나는 그리스보와 가이오 외에는 너희 중 아무에게도 내가 세례를 베풀지 아니한 것을 감사하노니

  

[고전]1:15 이는 아무도 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말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고전]1:16 내가 또한 스데바나 집 사람에게 세례를 베풀었고 그 외에는 다른 누구에게 세례를 베풀었는지 알지 못하노라

  

그는 자신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고 말하지 못하게 하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보와 가이오에게만 세례를 베풀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세례를 베풀지 않았습니다. 또한 스데바나 집 사람에게만 세례를 베풀었고 다른 누구에게도 세례를 베풀지 않았습니다. 그만큼 사도 바울은 정말 필요한 사람에게 필요할 때에만 세례를 베풀었지 아무에게나 세례를 베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의 세례를 받은 사람이라는 자랑이 생기지 않게 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러면 십자가가 헛되게 되기 때문이었습니다.

  

본질적으로 이 원리의 핵심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자랑하고 그 십자가를 귀하게 여기면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되지만 자신의 행위를 자랑하고 자신의 업적을 높이게 되면 결국 십자가는 무용지물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만약 십자가를 번쩍이는 금이나 다이아몬드로 만들어서 목걸이나 뱃지로 만든 뒤 붙이고 다닌다면 얼마나 그 십자가가 헛되겠습니까? 사람들은 그 금이나 다이아몬드를 보는 것이지 결코 십자가를 보는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의 본질은 바로 그리스도를 높이는 것에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붙이고 다니는 십자가가 그 본질이 아닙니다.

  

 

  

이러한 원리로 성도가 자신을 내세우면 내세울수록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헛되게 됩니다. 그 모습이 바로 이렇게 나타났습니다.

  

“[고전]1:11 내 형제들아 글로에의 집 편으로 너희에 대한 말이 내게 들리니 곧 너희 가운데 분쟁이 있다는 것이라

  

[고전]1:12 내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너희가 각각 이르되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게바에게, 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한다는 것이니

  

[고전]1:13 그리스도께서 어찌 나뉘었느냐 바울이 너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혔으며 바울의 이름으로 너희가 세례를 받았느냐

  

여기서 글로에의 집 편이라는 말은 글로에의 가족 중 어떤 사람이 전해준 말이라는 뜻입니다. 고린도전서는 AD55년경 사도 바울이 3차 전도 여행중 에베소에서 3년간 체류했을 때 고린도 교회에 보냈던 편지였습니다.

  

“[]19:1 아볼로가 고린도에 있을 때에 바울이 윗지방으로 다녀 에베소에 와서 어떤 제자들을 만나

  

이러한 편지를 통해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서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게 되는 것을 막았습니다. 왜냐하면 그에게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헛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의 노력 자체가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헛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만약 정말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된 것이라면 그런 것을 보면서도 그냥 내버려 두었을 것입니다. 교회 내에 분쟁이 있고 분열이 있으며 그로 인한 악행이 있어도 그냥 가만히 있기만 한다면 그 자체가 바로 십자가가 무의미하다는 뜻입니다.

  

십자가는 그 모든 죄악들을 바로 잡고 올바르게 하며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보여줍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분열과 분쟁과 죄악들을 사해주시면서 계속 그렇게 하게 하시기 위해서 십자가에 달리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죄를 용서해 주시면서 그렇게 살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십자가에 달리신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그 십자가가 헛되지 않다면 그 십자가에 따른 노력도 같이 생겨날 것입니다. 바로 그것이 십자가가 가치 있는 이유입니다. 예수님은 예수님을 믿는 자들에게 그러한 노력이 가능하고 그래야만 한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생활 속에서 용감한 의인들의 이야기를 종종 듣습니다. 그 중에 인상깊은 것은 전문적으로 그런 일을 하는 분들이 우연히 사건과 사고의 현장에 있었을 때 자신의 역할을 수행한다는 것입니다. 소방관인 분이 우연히 화재 현장에 있다가 신속하게 불을 끕니다. 경찰관인 분이 우연히 범죄 현장에 있다가 재빠르게 범인을 제압합니다. 군인인 분이 사고 현장에 있다가 피해자를 구해 냅니다. 그들이 그럴 수 있는 것은 평소에 하던 일이 헛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신앙 생활 할 때에도 십자가가 헛되지 않다는 것을 나타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말합니다.

  

“[고전]1:10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모두가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

  

이런 말을 괜히 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실제로 십자가가 살아있기 때문에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십자가에 합당하게 살고자 할 때 같은 말과 분쟁이 없는 모습과 같은 뜻으로 합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삶을 사는 우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럴 때 우리에게 십자가가 헛되지 않고 매우 유익합니다.

  

 

  

오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면서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게 하지 않도록 노력하면서 살아가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구성: 극본적 해석

  

1. 성도의 생활은 신앙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신앙을 통해 생활을 발전시킬 수 있다.

  

2. 십자가가 헛되지 않고 의미 있게 할 때 복음의 삶이 나타나게 된다.

  

3. 자신을 자랑하지 않고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을 살아야 한다.  

  

4. 그리스도를 따를 때 생활 속에서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온전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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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23-11-05 (일) 21:16 1년전
*소감
1. 십자가에 보석을 붙여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2. 세례주고 받는 행동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복음을 받아들이며생활도 좋은 방향으로 변화하게 됩니다.
3. 제가 삶 속에서 일으키는 분쟁들의 예수님의 희생의 십자가를 헛되이 만든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저의 무지함을 깊이 뉘어치며 그리스도를 더욱 높이는 결정들을 매사에 내릴 수 있도록 하나님께 간구드리겠습니다.
4. 복음의 능력으로 행할 때 놀라운 십자가의 영광이 나타나기를 소원합니다.
5. 십자가가 드러나도록 하는 것이 태도에 있는 것임을 깨다고 좀더 깊은 자세를 가지고 십자가(복음)을 바라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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