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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절망] 18욥 3; 20-26 고통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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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 20-26 고통 속에서 나님의 뜻을 깨닫게 된다_1

  

 

  

2021. 1. 31. . 주일오전.

  

 

  

*개요: 욥기에 나타난 믿음의 소원, 6통찰적해석, 33절망, 51계획, 4시가서

  

 

  

[]3:20  어찌여 고난 당는 자에게 빛을 주셨으며 마음이 아픈 자에게 생명을 주셨는고

  

[]3:21  이러한 자는 죽기를 바라도 오지 아니니 땅을 파고 숨긴 보배를 찾음보다 죽음을 구는 것을 더다가

  

[]3:22  무덤을 찾아 얻으면 심히 기뻐고 즐거워나니

  

[]3:23  나님에게 둘러 싸여 길이 아득한 사람에게 어찌여 빛을 주셨는고

  

[]3:24  나는 음식 앞에서도 탄식이 나며 내가 앓는 소리는 물이 쏟아지는 소리 같구나

  

[]3:25  내가 두려워는 그것이 내게 임고 내가 무서워는 그것이 내 몸에 미쳤구나

  

[]3:26  나에게는 평온도 없고 안일도 없고 휴식도 없고 다만 불안만이 있구나

  

 

  

 

  

욥은 첫 번째 재앙을 맞았을 때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거두시는 이도 여호와시라고 고백면서 다시 예배를 드렸습니다. 이어지는 두 번째 재앙에서는 나님으로부터 복도 받았으니 화도 받지 않겠느냐면서 나님을 원망지 않았고 범죄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고백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대단지만 여전히 욥의 고통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세 번째 시험이 이어졌습니다. 그것은 그런데 왜 이렇게 우울할까?’라는 고민이었습니다. 그것은 사탄이 준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냥 욥의 마음 속에서 일어난 갈등이었습니다.

  

욥의 친구들은 욥의 환난에 대해서 듣고 위로해 주려고 찾아왔었고 그들은 아무 말도 지 않고 다만 옆에서 같이 있어 주었습니다. 그런데 욥의 마음이 견디기가 어려웠습니다. 친구들이 무엇인가를 말해서가 아닙니다. 오히려 친구들은 아무 말도 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위로가 되기를 바랬고 옆에 있어 주었을 뿐이었습니다. 지만 욥의 마음이 고통스러웠기 때문에 그는 자신의 고통을 친구들에게 털어놓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이 오늘 읽은 3장의 첫 시작이 되는 1절입니다.

  

“[]3:1  그 후에 욥이 입을 열어 자기의 생일을 저주니라

  

 욥은 아무 말도 없던 친구들에게 자신의 입을 열어서 말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의 말은 자신의 생일을 저주는 말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말의 결론은 오늘 본문 20절에 나오는 것처럼 고난 당는 자에게 주신 은혜에 대한 거부감이었습니다.

  

“[]3:20 어찌여 고난 당는 자에게 빛을 주셨으며 마음이 아픈 자에게 생명을 주셨는고

  

그는 왜 고난 당는 자에게 빛을 주셨고 마음이 아픈 자에게 생명을 주셨는지를 괴로워했습니다. 그러한 말은 분명 범죄함의 말은 아니었습니다. 그렇지만 본이 되는 말도 아니었습니다. 악에 동참지는 않았지만 선을 주도는 말은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욥의 한계였습니다그는 고통을 잘 감수기는 했지만 그 일에서 나님께 영광을 돌리지는 않았습니다.

  

우리도 그럴 때가 있습니다. ‘주시는 분도 여호와시요 거두시는 분도 여호와시라고 고백합니다. 또한 나님으로부터 복도 받았으니 화도 받지 않겠느냐고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도 합니다. 지만 그렇게 말은 해도 마음은 좋지 않습니다. 거두시는 나님, 화를 주시는 나님께 대해서 머리로는 이해는 지만 마음으로는 거부감이 생깁니다.  

  

어떻게 생각을 해야 그런 고백이 참된 기쁜 마음으로 변화될 수 있을까요? 왜 올바른 신앙고백을 했는데 마음에서는 불편함이 있을까요? 욥의 모습 속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습니다.

  

“[]3:21 이러한 자는 죽기를 바라도 오지 아니니 땅을 파고 숨긴 보배를 찾음보다 죽음을 구는 것을 더다가

  

[]3:22  무덤을 찾아 얻으면 심히 기뻐고 즐거워나니

  

욥이 말기를 고난 당는 자, 마음이 아픈 자는 죽기를 바라고 죽음을 구는 것을 더 원한다고 였습니다그러기에 무덤을 찾으면 기뻐고 즐거워지만 생명을 얻으면 싫어고 괴로워한 것입니다. 죽음과 소멸 속에서 그가 추구한 것은 자신의 고난의 종결과 몸의 마음의 안식 만을 원였습니다. 그럴 때 계속 이어지는 삶과 생명은 너무나 괴로운 일이 되어 버렸습니다.

  

욥에 대한 나님의 뜻은 그가 단순히 악을 행지 않는 것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나님의 뜻을 깨닫고 나님의 기준을 갖게 되어서 자신의 고통과 고난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럴 때 그는 나님의 기뻐시는 자가 되며 온전한 선의 주도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애초에 그는 나님의 자랑과 기쁨이 되었기 때문에 그렇게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었습니다. 다만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자기 중심적인 생각을 버리고 나님 중심으로 생각해야만 했습니다. 그럴 때 진정한 선을 주도는 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렇게 는 것이 자기 중심적인 사람에게는 얼마나 어려운 일일지를 상상해 보십시오. 또한 그렇게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얼마나 무거운 짐이 될지를 상상해 보십시오. 과연 그렇게 나님 기준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는 사람이 얼마나 많이 있겠습니까? 성도들이 다 욥처럼 살아야 는 것은 아닐 텐데 어떻게 욥에게 원셨던 그런 신앙생활의 기준을 보통 사람들에게 요구할 수 있겠습니까? 욥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욥이 부러운 사람이 있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고 욥의 변화와 성장을 생각해야 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그가 경험는 이 어려운 단계에서의 성장을 이루어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우리가 욥과 같이 위대한 신앙인이 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욥의 신앙을 본받을 수는 있습니다. 왜냐면 그것은 고통의 참된 의미와 가치를 보여주는 귀중한 열매이기 때문입니다. 욥보다 더 큰 고통을 겪는 사람들이나 아니면 욥보다는 작은 고통을 겪는 사람들에게도 모두에게 욥의 믿음과 인내는 큰 위로와 소망을 깨닫게 합니다.

  

그것은 욥이 자기 중심의 신앙에서 나님 중심의 신앙의 의미를 이해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기 중심의 신앙에서는 한탄고 괴로워며 자신의 인생과 삶을 저주는 자였지만 나님 중심의 신앙이 되었을 때 나님의 뜻과 계획과 부르심과 소망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진심으로 그 뜻에 연합고 순종여 기쁨과 평안을 누리는 자가 되었습니다.

  

25, 26절에서 욥은 자신을 평안는 것이 무엇이며 불안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가를 보여줍니다.

  

“[]3:25 내가 두려워는 그것이 내게 임고 내가 무서워는 그것이 내 몸에 미쳤구나

  

[]3:26  나에게는 평온도 없고 안일도 없고 휴식도 없고 다만 불안만이 있구나

  

그에게서 평온과 안일함과 휴식은 자신의 삶에 어떤 고통과 어려움이 닥쳤는가에 따라서 사라졌습니다. 그의 불안함과 두려움은 자신이 원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싫어고 두려워며 무시는 것들이 찾아왔을 때 더욱 배가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고통 속에서 평온이 없고 안일도 없고 휴식도 없이 괴로움 그 자체로 인해서 더욱 괴로웠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그 모습으로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3장부터 진행되는 친구들과의 대화를 통해서 자신의 기준과 내면 생활의 허상이 다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님께서 이루기를 원셨던 선을 주도는 온전한 믿음으로 발전되었습니다. 그 믿음은 나님 안으로 자신이 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 그 이전에는 자신 안에 나님을 넣으려고 했었다면 성숙과 변화를 통해서 욥은 나님을 새롭게 만났습니다. 그리고 그 나님 안에서 자신을 깨달았습니다. 비로소 나님 안에 있는 자신을 알게 된 것입니다.

  

욥은 맨 끝장 42장에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42:2 주께서는 못 실 일이 없사오며 무슨 계획이든지 못 이루실 것이 없는 줄 아오니

  

[]42:3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는 자가 누구니이까 나는 깨닫지도 못한 일을 말였고 스스로 알 수도 없고 헤아리기도 어려운 일을 말였나이다

  

그는 자신의 무지함을 고백했고 나님께서 모든 삶과 생활과 환경을 주장고 다스리고 계심을 깨달았습니다. 나님의 계획 속에 자신이 있고 자신의 삶은 나님의 계획 속에 있음을 알게 된 것입니다. 진정한 내면적인 신앙생활의 절정은 이렇게 나님 안에서 자신을 발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지금까지의 모든 고통과 고난이 놀라운 중요성과 가장 가치있는 목적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욥은 무의미고 아무 결실없는 삶을 살지 않았습니다. 나님 안에서 이루어지는 온전한 계획과 삶의 결실을 이루었습니다. 그것은 나님 안에 있는 자신을 발견는 것이었습니다.

  

 

  

지금도 우리의 삶은 그렇게 흘러가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있는 어려움과 환란과 고난이 결코 무의미지 않습니다. 오히려 너무 크고 많은 의미가 있습니다. 그래서 다 알아차릴 수가 없기는 지만 만약 좀더 노력해서 그 뜻을 알고자 한다면 주님은 나씩 소화해내고 이해할 수 있게 십니다. 그로 인해서 우리는 나님 밖에 있다가 나님 안에 거게 되며 나님을 의지지 않다가 나님을 의지게 되며 나님께 간구지 않다가 나님께 간구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나님께서는 지금 어려움 속에서도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게 시며 그리스도께서 행시는 일들을 사모며 살아가게 십니다. 그 고난의 의미를 깨달을 때에 가장 낮은 자도 거룩한 주의 백성이 되며 가장 높은 자도 신실한 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삶의 수준의 높고 낮음이 상관이 없이 오직 나님 안에 있음을 기뻐며 즐거워는 성도들이 될 수 있습니다.

  

100년전 기독교인들이 우리보다 더 고통스러운 삶을 산 것이 아닙니다. 10년전 성도들이 지금보다 더 괴로운 삶을 살아간 것이 아닙니다. 1년전 성도들이 지금보다 더 어려운 삶을 산 것도 아닙니다. 그런 것은 애초에 비교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나님 안에 있을 때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문화적으로 달라지는 점은 있겠지만 신앙안에서는 항상 나님 안에 있는 것이 가장 중요한 변화입니다. 그럴 때 우리 자신의 위치를 자각할 수 있습니다. 나님과 얼마나 가까운가가 바로 우리 자신의 삶의 위치입니다.

  

욥기를 통해서 더 큰 믿음의 소원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봅니다. 그가 경험한 것은 단순한 고통이 아니었습니다. 나님 안에 있음을 자각고 사모며 의지는 과정이었습니다. 결국 그는 큰 믿음을 나타내었고 나님의 기뻐시는 모습을 나타내었습니다. 우리도 그러한 큰 믿음의 소원을 가져서 나님을 기쁘시게 고 사람을 유익는 성도들이 되어야 겠습니다. 이러한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넘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구성

  

1. 욥은 악에 빠지지는 않았지만 선을 주도는 자가 되지는 못였다.

  

2. 그의 마음의 기준이 나님을 향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향해서 있었기 때문이다.

  

3. 내면적인 신앙생활의 절정은 나님 안에 내가 들어가는 것이다.

  

4.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고자 노력면서 선을 따라 가는 성도들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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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21-01-31 (일) 18:50 3년전
*소감

-나님의 중심의 스토리

-욥이 되고 싶은 사람이 없다는 말에 동감함,

-선에는 있지만 모범이 되지는 못는 모순을 생각게 됨,



-욥은 이러한 고통이 있었구나 위안을 받음, 살면서 욥처럼 그런 적이 있었는데 신앙적으로 해결는 것이 그런 것이구나, 사람은 배부르고 등따뜻나님 생각을 안는구나
-옛날에 고통스러운 시간을 떠올리면서 감사할 수 있는 것이 소중구나, 요즘처럼 건강주시고 큰 걱정이 없을 때에 더 예수님을 위해 살아야겠구나 나태지 말고 더 열심히 신앙생활 면서 살아야겠다,
-어려웠을 때에 새벽기도 산기도 빠지지 않고 나님을 찾았는데 지금은 그러지 못함, ㅏㄴ님 안에서 나를 발견해야겠다는 생각함,
-욥의 고통 속에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알고 나아가는 것과 고통의 끝에서 나님의 계획을 보면서 만나야 되는 것의 은혜를 생각함, 나님 안에서의 자신의 모습을 더욱 생각며 살아야 겠다고 결심함,



-우울함의 문제제기가 좋았음, 설교의 논리의 과정을 다 따라가진 못했음,

-욥의 변화되는 과정이 없어서 흐름을 이해기 어려웠음,

-욥에게 나님은 크고 위대심을 설명심, 그 부분은 그냥 굴복으로 보여짐,

-욥이 고생을 많이 했는데 그래도 빠져나갈 구멍이 있음을 알게 됨

-선한 영향력, 가족들에게 나타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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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눅 6; 39-42 온전게 된 자는 선생과 같으리라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05-23 0 4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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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눅 17; 1-6 형제를 용서나님을 의지는 믿음의 삶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05-16 0 43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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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눅 7; 11-17 나님께서 어버이를 돌보심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05-09 1 35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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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눅 18; 15-22 어린 아이와 같은 자들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05-02 0 3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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