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시몬 베드로가 서서 불을 쬐더니 사람들이 묻되 너도 그 제자 중 하나가 아니냐 베드로가 부인하여 가로되 나는 아니라 하니
26 대제사장의 종 하나는 베드로에게 귀를 베어 버리운 사람의 일가라 가로되 네가 그 사람과 함께 동산에 있던 것을 내가 보지 아니하였느냐
27 이에 베드로가 또 부인하니 곧 닭이 울더라
28 저희가 예수를 가야바에게서 관정으로 끌고 가니 새벽이라 저희는 더럽힘을 받지 아니하고 유월절 잔치를 먹고자 하여 관정에 들어가지 아니하더라
29 그러므로 빌라도가 밖으로 저희에게 나가서 말하되 너희가 무슨 일로 이 사람을 고소하느냐
30 대답하여 가로되 이 사람이 행악자가 아니었더면 우리가 당신에게 넘기지 아니하였겠나이다
31 빌라도가 가로되 너희가 저를 데려다가 너희 법대로 재판하라 유대인들이 가로되 우리에게는 사람을 죽이는 권이 없나이다 하니
32 이는 예수께서 자기가 어떠한 죽음으로 죽을 것을 가리켜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
1. 시몬 베드로는 예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주님을 부인하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이 대제사장에게서 심문을 받으시는 것과 마찬가지로 베드로도 역시 대제사장의 종들에게 심문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가 그런 심문을 받는 것은 온전히 주님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이었고 그로 인해서 그는 실패하고 있습니다. 그가 따른 것은 따뜻한 불이었고 그렇게 불을 쬐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미혹에 넘어가고 말았던 것입니다.
우리는 그 과정을 통해서 어떻게 따르는 것이 실패로 나아가게 되고 죄로 나아가게 되는지를 기억하고 그러한 전철을 밟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본문에서 베드로는 따뜻한 불을 쬐면서 대제사장의 종에게 심문을 받고 있습니다. 25절을 보십시오.
“25 시몬 베드로가 서서 불을 쬐더니 사람들이 묻되 너도 그 제자 중 하나가 아니냐 베드로가 부인하여 가로되 나는 아니라 하니”
베드로는 자신의 입으로 제자가 아니라고 부인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단지 부인만으로 세상을 만족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입니다. 세상은 단지 입으로만 부인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목표가 아닙니다. 세상의 목표는 완전한 부인입니다. 삶으로 부인하게 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하필 그때 그곳에 베드로가 저질렀던 일의 증거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자리잡고 있는 것입니다.
“26 대제사장의 종 하나는 베드로에게 귀를 베어 버리운 사람의 일가라 가로되 네가 그 사람과 함께 동산에 있던 것을 내가 보지 아니하였느냐 27 이에 베드로가 또 부인하니 곧 닭이 울더라”
세상은 이렇게 죄의 증거와 유혹을 가지고 분명하게 베드로가 부인하며 거부하고 예수님을 떠나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유혹이 집요하고 미혹이 강한데 온전히 하나님을 붙들지 않는다면 어떻게 극복해 나갈 수 있겠습니까?
2.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예수님을 죽이기 위해서 빌라도에게 고소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러한 원리로 유대인들은 빌라도에게 예수님을 고소하고 있습니다. 가장 악하고 집요하며 멈추지 않는 악의 의도를 가지고 세상은 예수님을 정죄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온전히 주님을 의지한다는 것은 주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고 그것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먼저 그들의 모습을 보십시오.
“28 저희가 예수를 가야바에게서 관정으로 끌고 가니 새벽이라 저희는 더럽힘을 받지 아니하고 유월절 잔치를 먹고자 하여 관정에 들어가지 아니하더라”
그들이 원했던 것은 자신의 유월절 잔치이며 그들이 이루고자 하였던 것은 예수님의 죽으심입니다. 이를 이루기 까지 그들은 조금도 주저하지 않았고 쉬지도 않았습니다. 31절을 보십시오.
“31 빌라도가 가로되 너희가 저를 데려다가 너희 법대로 재판하라 유대인들이 가로되 우리에게는 사람을 죽이는 권이 없나이다 하니”
그들은 빌라도가 자신들을 대신하여 예수님을 죽일 때까지는 결코 포기하거나 물러서지 않을 작정이었습니다. 그들의 의지는 매우 확고하였습니다.
3. 이 모든 일들은 예수님이 하신 말씀대로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이보다 더 확고한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구원을 이루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또한 자신의 죽으심에 대해서 하신 말씀을 이루고자 하시는 예수님의 뜻이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것은 유대인들의 뜻에 의해서 움직이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모든 것은 세상 죄를 지고가시는 예수님의 뜻에 따라서 이루어지는 것이었습니다. 32절에 그 뜻이 나타납니다.
“32 이는 예수께서 자기가 어떠한 죽음으로 죽을 것을 가리켜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
주님의 말씀은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 말씀대로 주님은 죽으셨고 3일 후에는 부활하셨습니다. 주님의 말씀대로 되어졌습니다. 그러므로 그 말씀을 듣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주님은 말씀을 들어야 일이 이루어지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 일이 이루시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어떤 식으로든 그 말씀은 이루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반드시 그 말씀은 이루어지십니다. 다만 그 말씀이 그렇게 이루어지리라는 것을 알고 그 뜻에 더욱 순종하며 나아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주님은 말씀대로 죽음으로 나아가셨지만 살고자 했던 베드로는 주님을 배반하면서 살아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목숨은 부지했는지 모르지만 살아도 사는 것 같지 않은 삶이었습니다. 불순종한 삶이며 주님께 온전히 따르지 못하는 삶이었습니다.
4.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졌음을 깨닫고 앞으로 이루어질 말씀을 믿으면서 주님을 의지하는 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지금도 주님의 말씀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주님은 그 말씀을 지금도 이루십니다. 그 승리의 말씀을, 그 충만의 말씀을, 그 충성의 말씀을 이루고 계십니다. 우리가 그 말씀을 들으면서 함께 하고자 할 때에 그 놀라운 말씀의 결과를 경험하게 되지만 단순히 듣기만 하는 자라면, 또한 온전히 따르지 못하는 자라면 그 놀라운 말씀의 성취를 외면할 수 밖에 없습니다.
베드로가 주님을 그렇게 부인하는 자가 되고 말았기 때문에 그는 여러 면에서 부족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요한복음21장에서 그는 나중에 갈릴리 바닷가로 고기 잡으러 떠나버리고 있습니다. 뭔가 구체화된 삶이 없을 때 그의 신앙은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져 버렸던 것입니다.
“요21:3 시몬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하매 저희가 우리도 함께 가겠다 하고 나가서 배에 올랐으나 이 밤에 아무것도 잡지 못하였더니”
우리는 한번의 실족함이 변화되지 않는다면 계속 반복될 수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주님이 죽으심으로 온전히 말씀을 이루심을 바라보면서 우리도 주님의 가신 길을 가고자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그 말씀의 성취 속에서 함께 기뻐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러한 자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