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
14 너희가 나의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15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니라
16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 하고 또 너희 과실이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니라
17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명함은 너희로 서로 사랑하게 하려 함이로라
*개요 {5복음서} <B관점> [5은혜]-[6결심]
1. 예수님은 우리가 그분의 사랑을 받아들이고 진정한 친구로서 서게 되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안에서 열매를 맺으시려고 하실 때 그 관계는 포도나무와 가지의 관계였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관계가 전부가 아닙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과의 관계를 나무에 비유할 수도 있고 돌에 비유할 수도 있고 달에 비유할 수도 있는 것처럼, 주님과 우리의 관계는 단지 포도나무와 가지에 비하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거기에는 관계에 대한 새로운 비유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친구관계로 보는 것입니다.
친구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서로를 위하는 일입니다. 친구가 서로를 위하지 않고 서로를 해치려고 한다면 그것은 결코 친구가 아니고 원수가 되어버립니다. 친구가 서로를 위하기 위해서 해야 하는 일은 자기를 희생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친구로 부르십니다. 왜냐하면 주님이 우리를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희생의 이유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3,14절을 보십시오.
“13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 14 너희가 나의 명하는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주님은 이미 친구인 우리를 위해서 목숨을 버리셨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주님의 친구로서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우리 나름의 희생을 통해서 친구된 관계를 보여주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2. 이미 주님은 우리를 위해서 모든 것을 버리고 모든 것을 더하여 주셨습니다.
이러한 친구로서 우정의 요구는 우리에게는 매우 분에 넘치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친구는 물론이고 종의 호칭도 감당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우리는 죄인이고 원수였을 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의인으로 부르시고 자녀로 만드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와의 관계를 통해 많은 것을 희생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까워하지 않으시고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또다시 희생하시는 이유는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사랑하기로 결심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자격조건보다도 하나님의 사랑이 더 크시기 때문에 우리는 그 사랑에 빠져들수 밖에 없습니다.
15절은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심으로 우리를 위해 행하신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있습니다.
“15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니라”
주님은 우리가 잘되기를 원하시기 때문에 들은 모든 것,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다 알려주시면서 우리가 잘되도록 하십니다. 주님이 우리를 친구로 삼아 주셨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성경속에서 이러한 진실한 친구관계를 요나단과 다윗의 모습을 통해 우리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요나단은 다윗에게 모든 것을 알게 하였습니다. 다윗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위했습니다.
“삼상18:1 다윗이 사울에게 말하기를 마치매 요나단의 마음이 다윗의 마음과 연락되어 요나단이 그를 자기 생명 같이 사랑하니라"
그리고 그는 다윗이 아버지 사울의 질투를 피해 안전할 수 있도록 모든 것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심지어는 자신의 왕이 되는 것 까지도 친구를 위해 양보했습니다. 그런 사랑보다 더 놀라운 사랑이 바로 예수님의 사랑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생명을 우리를 위해서 주셨습니다. 이는 우리가 생명을 얻게 되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3. 그로 인해서 주님은 진정한 사랑의 열매가 우리 속에 맺혀지기를 원하십니다.
이제 우리가 그 은혜를 받았다면 그 결국이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를 위해 흘리신 피와 눈물이 결코 헛되게 되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해 열매를 맺을 때 그리스도께서 원하시는 일을 이루게 됩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도 이루게 됩니다. 16절을 보십시오.
“16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 하고 또 너희 과실이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니라”
바로 이것이 주님이 원하신 일인 것입니다. 이것을 친구와 같은 마음으로 주님은 우리에게 간절히 원하십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친구와 같은 마음으로 주신 한없는 은혜를 잃어버릴 수 밖에 없습니다.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간절한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소원이신지 그것은 성령님을 통해서도 다시 나타납니다.
“롬8:23 이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 24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25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찌니라 26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우리는 기다림의 인내의 열매를 맺어야 할 때 그 열매를 맺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친구이신 예수님이 아버지이신 하나님이 우리의 보혜사이신 성령님이 바로 이일을 위해서 탄식하심으로 도우십니다. 그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말입니다.
4.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받아들일 뿐만 아니라 그분의 원하시는 실천을 더해 드리는 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한번은 사람들이 벤자민 프랭클린에게 질문했습니다.
"당신은 수많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포기하지 않고 한 가지 일에만 전념할 수 있었습니까?"
그러자 프랭클린은 좋은 일을 하면서도 절망에 빠진 모든 사람들이 가슴 속에 새겨야만 할 다음과 같은 말을 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들은 말하는 석공을 자세히 관찰해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석공은 아마 똑같은 자리를 백 번 정도 두드릴 것입니다. 갈라질 징조가 보이지 않더라도 말입니다. 하지만 백 한 번째 망치로 내리치면 돌은 갑자기 두 조각으로 갈라지고 맙니다. 이처럼 돌을 두 조각으로 낼 수있었던 것은 한번의 두들김 때문이 아니라 바로 그 마지막 한 번이 있기 전까지 내리쳤던 백 번의 망치질이 있었기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아름다운 열매를 맺기 위해서 지금부터 열심히 노력해야 합니다. 그것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을 지 모릅니다. 그러나 때가 되면 열매를 맺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을 하나님이 보증해 주십니다. 낙심하지 않으면 해주신다고 언약해 주십니다.
"갈 6:7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8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9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찌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이 말씀을 생각하면서 열매를 맺기 위해서 지금부터 노력합시다. 이번 달부터 노력합시다. 그래서 이달이 끝날 때에 더 놀라운 열매를 맺어서 그것으로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