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정체성] 47고후 10; 12-18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은 무엇인가2Loading the player...
47고후 10; 12-18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은 무엇인가2_5
2018. 4. 20. 금. 금요철야
*개요: 고린도후서 연구 [고후]10:12 우리는 자기를 칭찬하는 어떤 자와 더불어 감히 짝하며 비교할 수 없노라 그러나 그들이 자기로써 자기를 헤아리고 자기로써 자기를 비교하니 지혜가 없도다 [고후]10:13 그러나 우리는 분수 이상의 자랑을 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이 우리에게 나누어 주신 그 범위의 한계를 따라 하노니 곧 너희에게까지 이른 것이라 [고후]10:14 우리가 너희에게 미치지 못할 자로서 스스로 지나쳐 나아간 것이 아니요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너희에게까지 이른 것이라 [고후]10:15 우리는 남의 수고를 가지고 분수 이상의 자랑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 믿음이 자랄수록 우리의 규범을 따라 너희 가운데서 더욱 풍성하여지기를 바라노라 [고후]10:16 이는 남의 규범으로 이루어 놓은 것으로 자랑하지 아니하고 너희 지역을 넘어 복음을 전하려 함이라 [고후]10:17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할지니라 [고후]10:18 옳다 인정함을 받는 자는 자기를 칭찬하는 자가 아니요 오직 주께서 칭찬하시는 자니라
세상 사람들은 자신의 정체성에 있어서 끊임없이 다른 사람들과 자신을 비교합니다. 다른 사람들의 수준과 모양에 관심을 갖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자신보다 더 우울하면 쉽게 좌절해 버립니다. 그 사람들은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환멸을 느낍니다. 혹 자신보다 부족한 삶을 사는 사람을 찾는다면 자신이 너무 과도한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정체성의 수준을 다른 사람에게 맞추어 버립니다. 그러나 이것은 스스로 온전한 모습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그의 정체성과 평가는 자기가 자신에 대해 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 여전히 부족한 부분을 깨달을 수 있고 분명히 잘 된 부분은 감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심판과 평가를 맡겨드리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최대의 결과를 얻게 만듭니다. 이제 우리는 어떻습니까? 자신의 정체성을 어디에 맞추십니까? 다른 사람들입니까? 아니면 자기 자신입니까? 다른 사람의 경우라면 자신보다 더 경건한 사람입니까, 아니면 더 못한 사람입니까? 근본적으로 우리의 정체성은 어떤 기준에 맞추어져야 할까요?
오늘 말씀은 자기 자신으로서 스스로를 헤아리고 다른 사람으로 자신을 비교하는 자들은 지혜가 없다고 합니다. “[고후]10:12 우리는 자기를 칭찬하는 어떤 자와 더불어 감히 짝하며 비교할 수 없노라 그러나 그들이 자기로써 자기를 헤아리고 자기로써 자기를 비교하니 지혜가 없도다” 다시 말하면 그 기준이 자기 자신일 때 자신을 낮추거나 높이거나 둘 다 지혜로운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자신을 지나치게 낮추어서 외모를 비하하고 스스로가 너무 살쪘다고 생각하고 거의 먹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반대로 자신의 체중을 적당하고 생각해서 지나치게 뚱뚱하지만 체중조절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모두 자기 자신의 관점에 기준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를 섬기는 일에 대해서 생각할 때에도 주의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 기준이 자기 자신이 된다면 스스로 지금까지 그럭저럭 잘 해오고 있다고 안주해 버립니다. 혹은 거만하게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기준은 자기 자신의 기준일 뿐이지 하나님의 기준은 아닙니다.
우리의 모든 기준은 하나님께 드려져야 합니다. 13절에서 사도바울은 하나님께서 나눠주신 그 분량의 한계를 따라 했다고 말합니다. “[고후]10:13 그러나 우리는 분수 이상의 자랑을 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이 우리에게 나누어 주신 그 범위의 한계를 따라 하노니 곧 너희에게까지 이른 것이라 [고후]10:14 우리가 너희에게 미치지 못할 자로서 스스로 지나쳐 나아간 것이 아니요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너희에게까지 이른 것이라” 우리에게 능력 주시는 하나님의 범위의 한계 안에서는 여전히 우리가 해야할 일이 있습니다. 스스로의 좌절이나 과욕으로 해야할 일을 못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주님께서 주신 도우심 내에서 최선을 다해야만 합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 기준을 두는 자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하나님께서 주신 도우심의 한계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내 능력의 한계인가요? 하나님 능력의 한계인가요?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주시는 축복의 한계인가요? 성경에서 말하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의 한계란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일의 계획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한계 속에서 우리는 가장 작은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할 수 있습니다. 또한 가장 어려운 일을 감당해야만 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한계 이상의 것에 대해서는 다른 사람에게 연결되기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바로 그렇게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그 뜻 가운데에서 우리가 이루지 못한 일을 다른 사람이 해주고 우리가 감당하지 못한 일을 다른 사람은 감당하고 우리가 다 할 수 없는 것들을 다른 사람이 맡아 주장해주기를 기대하고 부탁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15절입니다. “[고후]10:15 우리는 남의 수고를 가지고 분수 이상의 자랑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 믿음이 자랄수록 우리의 규범을 따라 너희 가운데서 더욱 풍성하여지기를 바라노라 [고후]10:16 이는 남의 규범으로 이루어 놓은 것으로 자랑하지 아니하고 너희 지역을 넘어 복음을 전하려 함이라”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더욱 풍성해질 열매를 생각할 때 겸손해질 수 있습니다. 또한 계속해서 한계에 굴하지 않으면서 최선을 다할 수 있습니다. 부끄럽지 않고 그 일에 보람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그 사명과 삶을 전해줄 수 있습니다. 주님께 다시 의지하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모세도 자신의 사명을 여호수아에게 맡겼고 다윗도 자신의 소원을 솔로몬에게 맡겼습니다. 그와 같이 우리가 주님의 뜻 가운데에서 순종하고 다른 사람에게 인계할 수 있을 때 우리는 주안에서 자랑하게 됩니다. “[고후]10:17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할지니라 [고후]10:18 옳다 인정함을 받는 자는 자기를 칭찬하는 자가 아니요 오직 주께서 칭찬하시는 자니라” 주님께 근거와 기준을 두는 자는 계속 성장할 것입니다. 그리고 다음 사람에게 혹은 다른 사람에게 그러한 기준의 삶을 전해줄 수 있습니다. 그러면 다음 사람이나 다른 사람이 그 일을 맡아서 계속 하나님을 바라보며 나아갑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성숙의 모습입니다.
바나바는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계속 성장하여서 다른 사람들을 섬기는 삶을 살면서 하나님의 특별한 은사를 잘 나타내었습니다. “[행]15:35 바울과 바나바는 안디옥에서 유하며 수다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주의 말씀을 가르치며 전파하니라” 또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도 역시 하나님 안에서 자신의 부르심을 잘 실천하면서 충성된 일군이 되었습니다. 그들에 대해서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행]18:26 그가 회당에서 담대히 말하기 시작하거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듣고 데려다가 하나님의 도를 더 정확하게 풀어 이르더라” 그들은 각각 자신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잘 이루는 귀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우리도 스스로 자만하거나 스스로 지나친 겸손에 빠지지 말고 주님을 생각하며 계속 성장해야 합니다. 그래서 그 삶을 다음 사람에게 전해주어야 하겠습니다. 이러한 특별한 하나님의 사명을 온전히 이루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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