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마] 40마 2; 1-6 우리가 기다리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2Loading the player...
40마 2; 1-6 우리가 기다리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2_5
2018. 7. 13. 금. 금요철야.
*개요: 마태복음 연구 [마]2:1 헤롯 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말하되 [마]2:2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하니 [마]2:3 헤롯 왕과 온 예루살렘이 듣고 소동한지라 [마]2:4 왕이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서기관들을 모아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냐 물으니 [마]2:5 이르되 유대 베들레헴이오니 이는 선지자로 이렇게 기록된 바 [마]2:6 또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서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하였음이니이다
2000여 년전 유대 베들레헴에서 일어난 일은 현재 우리 삶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과 비슷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그저 자신의 일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새로운 왕에 대한 관심이 없었습니다. 이미 자신들에게 많은 자료와 가능성과 가까운 지리적인 위치라는 유익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왕을 찾는 일에 대한 목표가 없었기 때문에 관심을 갖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동방박사들이 찾아오면서 일대 소동이 일어났습니다. 새로운 왕을 찾아 들어온 그들이 자기 자신의 삶에만 관심을 갖고 있던 온 예루살렘을 자극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동방박사들의 등장은 어떤 반향을 일으키기는 했지만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오지는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당시 그들에게는 이미 자신들의 왕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왕을 기다릴 필요가 없었습니다. “[마]2:2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하니 [마]2:3 헤롯 왕과 온 예루살렘이 듣고 소동한지라”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새로운 왕에 대한 소식과 증거가 여러분에게 아무런 깨달음을 주시 못합니까? 잠깐 돌아보다가 다시 여러분 자신이 하던 일을 계속할 것입니까? 그러면 여러분이 하던 일은 무엇입니까? 여러분이 소망하고 바라던 일은 무엇입니까? 그것이 무엇인가가 새로운 왕에 대한 소식으로 큰 힘을 얻을 수도 있고 전혀 그렇지 못할 수도 있음을 결정합니다. 하나님께 대한 간절함으로 노력해 왔던 사람에게는 왕의 오심은 커다란 구원의 소식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절히 기대하던 자에게는 왕의 오심은 놀라운 위로와 능력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기다렸던 자에게는 큰 기쁨과 감사가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기대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께 해당하는 것입니까, 아니면 여러분 자신에게 해당하는 것입니까? “[마]2:6 또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서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하였음이니이다” 예수님은 약속대로 오셔서 목자가 되십니다. 동방박사들에게도 예수님은 목자가 되셨습니다. 우리가 바라보아야 하는 것을 동방박사들이 깨닫게 해 줍니다. 그들의 먼 여행과 지친 모습과 왕에 대한 간절한 기대를 우리를 부끄럽게 합니다. 그들이 기대하는 것은 새로운 왕이었고 마침내 그들은 그 기대가 이루어지는 것을 볼 것입니다.
하지만 그와는 정반대로 헛된 생각으로 가득 찬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얼마나 흥분하며 고양되어 있는지를 보십시오. 그들은 정말로 온 예루살렘이 떠나갈 정도로 크게 소동하고 있습니다. 헤롯과 예루살렘 사람들이 소동하는 모습을 상상해 봅니다. 그들은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삼삼오오 모여 수군거리고, 여기 저기로 분주히 돌아다니는 모습이었을 것입니다. 왁자지껄하며 들뜬 분위기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헤롯과 예루살렘 사람들이 소동하는 이유는 아기 예수님의 탄생의 본질과 너무나 거리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기쁨과 즐거움으로 소동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앞으로 아기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생길 희망과 소망으로 넘쳐서 그들이 그렇게 소동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떠들석하고 분주하고 야단법석을 떠는 이유는 지금 유대인에게는 이미 왕이 있는데, 새로 또 다시 왕이 나타났다고 하기 때문입니다. 비록 로마의 허락을 받은 봉건영주로서이긴 하지만 분명 지금 왕위엔 헤롯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또 다시 왕이 태어났다고 한다면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혼란과 공포요, 두려움과 절망인 것입니다. 그래서 헤롯과 예루살렘은 그토록 소동하였던 것입니다. 이제 그들이 유대인의 왕이 나타났다는 소식앞에서 해야 하는 일은 무엇이겠습니까? 어떻게하면 그 유대인의 왕을 제거할 수 있는가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부산해집니다.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를 찾기 위해 동분서주합니다.
“[마]2:4 왕이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서기관들을 모아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냐 물으니” 모든 기록된 말씀을 뒤지고 찾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유대 베들레헴에서 유대인의 왕이 태어날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그러나 그 발견과 깨달음은 바로 그 유대 베들레헴에서 태어난 유대인의 왕을 제거하기 위한 것입니다. 자신들의 위치와 기득권을 여전히 보호하기 위해 가능한 새로운 세력과 왕의 오심을 거부하며 저항하며 대적하였던 것입니다.
이와 동일하게 오늘날에도 유대인의 왕을 반기지 않는 이 세대는 여전히 그분을 거부하며 저항하고 대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미 태어난 유대인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어떻게 거부할 수 있을까요? 어떻게 대적할 수 있을까요? 어떻게 제거해 버릴 수 있겠습니까? 여기에 교활한 사탄의 음모가 있습니다. 그 방법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잊어버리게 만드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이 그리스도의 나심이 아니라 다른 것들이 그리스도의 나심보다 더 중요하도록 만들어 버린 것입니다. 그런 것들로 인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들의 마음속에 계시는 공간이 줄어들어 버린다면, 주인공으로서 마땅히 차지하셔야 하는 위치를 갖지 못하신다면, 이 모든 것들 조차도 우리는 경계해야 할 것입니다. 이제, 우리들 마음에서 들뜬 분위기라는 바람을 빼고 난 뒤,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해야 하는지 살펴봅니다. 특별히 동방박사들의 모습을 묵상해보기를 원합니다. 2절 말씀입니다. “[마]2:2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하니” 동방박사들은 무엇을 찾고 있습니까? 그리고 그것을 찾기 위해 어떤 일을 하고 있습니까? 그들은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를 찾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분을 찾기 위해 멀리 동방에서 그에게 경배하러 먼길을 떠나 왔습니다. 한 해의 마지막에 우리가 그토록 기다려 왔던 성탄절,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을 기뻐하고 경배하는 그 시간, 그 순간을 우리는 연초부터 기다려 왔습니다. 그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바로 한 분만을 찾는 것이었고, 다른 모든 것을 배제한 간절한 기다림이었습니다. 우리는 그분 앞에서 다시 한번 우리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고 더욱 그분 앞에서 부끄러움이 없도록 나타나기 위한 우리 자신의 노력이 이어져야 하겠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가 앞으로의 삶 속에서 더욱 넘치시기를 축원합니다. 14생활설교 관련글[더보기]16설교소감 관련글[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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