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고후] 47고후 12; 11-15 연약함 속에서 더욱 나타나는 사랑2Loading the player...
47고후 12; 11-15 연약함 속에서 더욱 나타나는 사랑2_5
2018. 6. 1. 금. 금요철야
*개요: 고린도후서 연구 [고후]12:11 내가 어리석은 자가 되었으나 너희가 억지로 시킨 것이니 나는 너희에게 칭찬을 받아야 마땅하도다 내가 아무 것도 아니나 지극히 크다는 사도들보다 조금도 부족하지 아니하니라 [고후]12:12 사도의 표가 된 것은 내가 너희 가운데서 모든 참음과 표적과 기사와 능력을 행한 것이라 [고후]12:13 내 자신이 너희에게 폐를 끼치지 아니한 일밖에 다른 교회보다 부족하게 한 것이 무엇이 있느냐 너희는 나의 이 공평하지 못한 것을 용서하라 [고후]12:14 보라 내가 이제 세 번째 너희에게 가기를 준비하였으나 너희에게 폐를 끼치지 아니하리라 내가 구하는 것은 너희의 재물이 아니요 오직 너희니라 어린 아이가 부모를 위하여 재물을 저축하는 것이 아니요 부모가 어린 아이를 위하여 하느니라 [고후]12:15 내가 너희 영혼을 위하여 크게 기뻐하므로 재물을 사용하고 또 내 자신까지도 내어 주리니 너희를 더욱 사랑할수록 나는 사랑을 덜 받겠느냐
모든 사람들은 어려움이 찾아오면 그로부터 도망가고 싶어합니다. 그 어려움을 즐기는 사람들은 없습니다. 백이면 백 전부 가능한 그것으로부터 멀리 떨어지고자 합니다. 그 모든 스트레스와 괴로움을 견디기 힘들어 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오히려 어려움에서 열정을 발견하기도 하지만 그런 자들은 극히 소수이고 대부분의 보통 사람들은 전부 그로부터 멀리 떨어지기를 원합니다. 우리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그러한 회피와 도피를 위해서 노력을 기울입니다. 어려움으로부터 멀리 떨어지려고 직접 자신이 움직이기도 합니다. 그것이 여의치 못할 때에는 하나님께 그 어려움이 떠나가게 해달라고 간구하기도 합니다. 그런 다음 그 속에서 오로지 생각하는 것은 피하는 것 뿐입니다. 오직 어려움이 끝나기만을 간절히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자신의 연약함 속에서 오히려 넘치는 사랑으로 충만해지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모든 참음과 표적과 기사와 능력을 얻었기 대문에 그로 인해서 그 사랑을 나타낼 수 있었습니다. 그 모든 것은 그가 하나님의 사도 였기 때문입니다. 또한 모든 어려움 속에서도 자신이 하나님의 사도라는 분명한 의식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고후]12:11 내가 어리석은 자가 되었으나 너희가 억지로 시킨 것이니 나는 너희에게 칭찬을 받아야 마땅하도다 내가 아무 것도 아니나 지극히 크다는 사도들보다 조금도 부족하지 아니하니라 [고후]12:12 사도의 표가 된 것은 내가 너희 가운데서 모든 참음과 표적과 기사와 능력을 행한 것이라” 그에게 하나님의 능력이 온전하게 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그를 약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오히려 넘치는 것은 그 연약함 속에서 모든 기사와 능력으로 충만하게 되었습니다. 그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사도 바울은 확신을 가지고 자신이 하나님의 뜻을 증거하는 사도임을 증거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사도 바울을 사용하셔서 고린도 교회에 하나님의 뜻을 증거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 뜻을 알게 되기 위해서도 사도 바울이 하나님의 사자인 것을 받아들여야만 했습니다. 사도로서 그가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하나님이 자기 를 통해서 온전히 그 뜻을 나타내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두려움 없이 자신의 모든 연약함 속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증거하였고 또한 고린도 교인들도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그 하나님의 뜻 가운데에서 그는 교인들에 대한 사랑을 마음 속에 품었습니다. “[고후]12:13 내 자신이 너희에게 폐를 끼치지 아니한 일밖에 다른 교회보다 부족하게 한 것이 무엇이 있느냐 너희는 나의 이 공평하지 못한 것을 용서하라” 그는 자신이 더욱 고린도 교회에 더욱 부족한 것이 있는지를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더욱 공급할 수 있는 방법과 과정에 대해서 고민했습니다. 그럴 때 이전에 스스로의 힘으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채워줄 수 있었습니다.
구약에는 이와 같이 약하지만 하나님의 뜻을 기억하면서 강해졌던 자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다윗은 혼자서 골리앗을 물리쳤습니다. 그 일이 가능했던 이유는 동일하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기 때문이었습니다. “[삼상]17:45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삼상]17:46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넘기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목을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를 오늘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고 [삼상]17:47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 그것은 단지 다윗의 혼자만의 상상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믿고 나갈 때에 정말로 이루어진 하나님의 응답하심이었습니다. 자신이 당면한 상황 속에서 무엇이 하나님의 뜻인지를 그는 올바르게 깨달았습니다.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주의 일을 두려움 없이 잘 할 수 있도록 말씀하하십니다. 그래서 우리의 부족함이 있더라도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기 때문에 그 속에 기쁨이 있습니다. 고난 속에 있더라도 함께 하시며 도우시고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기 때문에 소망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어려움과 위기 속에서 다윗이 가졌던 생각이었습니다.
우리는 연약함에 대해서 어떠한 태도를 취하고 있습니까? 아무런 고민없이 생각없이 무조건 그 연약함이 사라지기만을 원하고 있습니까? 그 속에서 하나님의 원하시는 것과 계획하는 것이 이루어지기를 원하는 마음은 조금도 없습니까? 부족함의 의미와 목적을 알지 못할 때에 그 부족함은 너무나 무의미하고 유익 없는 시간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그 의미를 알면 연약함과 부족함은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는 기회가 됩니다. 연약함에 빠지는 때는 온전케 하시는 그리스도의 능력을 온전히 의지하는 놀라운 기회가 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 모든 연약함 속에서 하나님을 의지하였고 그 의지함 속에서 놀라운 능력을 나타내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온 힘을 다해서 사랑하는 것이었습니다. “[고후]12:14 보라 내가 이제 세 번째 너희에게 가기를 준비하였으나 너희에게 폐를 끼치지 아니하리라 내가 구하는 것은 너희의 재물이 아니요 오직 너희니라 어린 아이가 부모를 위하여 재물을 저축하는 것이 아니요 부모가 어린 아이를 위하여 하느니라 [고후]12:15 내가 너희 영혼을 위하여 크게 기뻐하므로 재물을 사용하고 또 내 자신까지도 내어 주리니 너희를 더욱 사랑할수록 나는 사랑을 덜 받겠느냐” 성도들의 문제를 해결하고 그들의 영적인 부족함을 채워주려고 할 때에 그는 결코 부족한 자가 아니었고 하나님의 은혜로 풍성한 자였습니다.
여러분이 부족하다고 느끼실 때 여러분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헛되이 보내지 마십시오. 그 능력을 통해서 주님의 뜻을 더욱 행하고자 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더욱 주님의 능력으로 강하여 지고 그 큰 능력으로 더 많은 사랑을 나타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 자신이 교린도교회의 성도들과 같이 또한 사도 바울과 같이 모든 연약함 속에서 넘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가 여러분에게 충만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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