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발전] 43요 1; 14-18 우리 가운데 거하시는 영광3Loading the player...
43요 1; 14-18 우리 가운데 거하시는 영광3_5
2019. 12. 27. 금. 금요철야
*개요: 성탄의 의미 [요]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1:15 요한이 그에 대하여 증언하여 외쳐 이르되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시는 이가 나보다 앞선 것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하니라 [요]1:16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 [요]1:17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 [요]1:18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성탄절을 보내면서 예수님께 대한 감사의 마음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감사는 근본적으로 믿음에 근거합니다. 그리고 그 믿음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면 그것은 이 세상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며 우리의 구세주이신 예수님을 영접하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탄이 믿는 자들에게 중요합니다. 우리는 믿음이 능동적인 것임을 깨닫습니다. 수동적으로 믿어지는 것, 믿어주는 것으로는 어림도 없습니다. 믿어지거나 믿어주면서 시험을 이길 수 있겠습니까? 세상의 시험과 유혹을 극복할 수 있겠습니다. 하나님이냐 세상이냐 할 때에 하나님을 선택할 수 있겠습니까? 불가능한 일입니다.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자유의지의 표현이기 때문에 반드시 자신의 의지로 능동적인 결정을 내릴 때에 그것이 진정한 믿음이 됩니다. 영접하는 자들이 믿는 자들이고 믿는 자들이 영접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십니다.
그런데 이렇게 능동적으로 믿는다는 것은 지정의를 모두 사용하는 중요한 마음의 결단입니다. 믿는 자들이 갖는 믿음 속에 하나님께 대한 지식, 예수님께 대한 감정, 성령님께 대한 의지가 있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하는 것이 바로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 속에 있습니다. 14절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요]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이 말씀은 지금까지 이루어진 것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요한복음이 시작해서 지금까지 한 말은 ‘1) 태초에 말씀이 계셨고 그 말씀이 그리스도로 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이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될 때에 그의 영광스러움을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태초부터 계셨던 말씀이 우리 가운데 계시는데 ‘2) 우리가 그 말씀이신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고 있다’ 는 것은 전적으로 지식과 이해에 근거하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그 영광을 통해 다음과 같은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3)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거룩하고 신실한 믿음의 고백입니다. 이러한 믿음을 통해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는 자로 나타나게 됩니다. 이것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너무나 당연하게 이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없는 사람들은 이상하게 이 믿음이 힘들게 느껴집니다. 이러한 믿음이 없으면 아무리 그의 영광을 봐도 무가치하고 무의미합니다. 그렇다면 그 믿음은 어떠한 과정을 통해서 생겨나는 것일가요?
어떤 유명인이 있을 때 그 사람이 누군지 잘 모르면 그 사람에 대해서 어떤 좋은 감정을 갖게 되기 어렵습니다. 더군다나 아주 훌륭하고 유명하고 놀라운 사람이 있어도 그 사람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다면 좋은 감정을 갖게 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사람이 누군지 잘 알고 있다 하더라도 만약 안좋은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쉽게 마음이 열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만약 유명한 연예인이 있다고 해도 내가 그를 싫어한다면 아무리 유명해도 오히려 거부하며 외면할 것입니다. 겉으로는 좋아한다고 할 지 모릅니다. 하지만 속으로 좋지 않게 생각하며 그와 방향이 같지 않고 의견이 다를 때에는 반감을 갖게 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대상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문제를 해결할 때에 비로소 좋은 마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15,16절은 왜 믿는 자들이 예수님께 대해서 좋은 마음을 갖게 되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요]1:15 요한이 그에 대하여 증언하여 외쳐 이르되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시는 이가 나보다 앞선 것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하니라 [요]1:16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 여기서 세례 요한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증언하여 외친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세례 요한은 내 뒤에 오시는 예수님이 바로 나보다 앞선 자인데 그 이유는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로서 자기보다 먼저 계신 분이심을 증거하였습니다. 그리고 사도 요한은 그의 증거를 통해서 예수님의 충만하심을 알게 되었고 그것이 커다란 은혜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신앙위인을 통해서 예수님의 충만하심과 그분의 영광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사도 요한을 따르고 세례 요한을 따르기 때문에 비로소 예수 그리스도를 보게 되는 것이고 그럴 때 우리가 알게 되는 예수님이 참으로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그리스도이심이 나타나는 것이고 그것이 바로 은혜 위에 은혜가 됩니다. 많은 증언을 통해서 우리가 그리스도에 대한 방향을 갖게 되는 것이며 그 증언의 끝에 알게 되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비로소 기쁨의 감정을 갖고 영광스러움을 알게 될 때에 비로소 믿음이 완성되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에게 좋은 감정을 갖게 하는 것은 관계입니다. 이미 누렸던 좋은 관계를 다시 누리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좋은 감정을 갖게 하고 좋은 마음을 갖게 합니다. 예수님 안에서 우리는 그러한 관계를 누리게 됩니다. 예수님이 오히려 우리에게 그러한 관계를 요구하십니다. 나와 더 연합하자, 내 안에 거하라, 나를 따르라, 내가 너 안에 너가 내 안에 있으면 우리는 하나가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한 관계를 기뻐하고 따르고 소망할 때 비로소 우리는 그분이 누리는 영광과 권세를 보게 됩니다.
그 다음에 좋은 마음을 갖는 자들이 그냥 그런 자들로 끝나지 않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다음 구절을 읽어봅시다. “[요]1:17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 [요]1:18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구약에는 모세를 통해서 율법을 주셨습니다. 신약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은혜와 진리를 주셨습니다. 하지만 신약을 통해서 얻은 것은 구약에서 주신 것에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사실 구약에서 모세를 통해 주신 율법도 엄청난 영광과 권세가 있는 것이었지만 신약에서는 이보다 비교할 수 없이 커다란 영광과 권세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신약의 예수님은 하나님의 본체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말씀을 통해서 얻은 은혜와 진리는 이미 하나님의 본체이신 예수님과 함께 누리는 놀라운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그 은혜와 진리를 깨달았다는 것은 이미 그분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서 믿음이 큰 자들은 우리 가운데 거하시는 예수님의 영광을 기뻐하는 자들 됩니다. 또한 믿음이 작은 자들은 믿음이라는 것이 하나님을 높고 귀한 분으로 이해하고 그분의 말씀에 귀를 기울일 때 자신에게 필요한 부분을 보완하여 믿음을 더 갖게 될 수 있습니다. 결국 이러한 과정이 이어지고 이어지고 이어져서 예수님에 대한 영광을 보는 것까지 이어질 때 비로소 예수님과 함께 있는 것이 은혜 위에 은혜가 되고 감사가 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성탄절에 나타났습니다. 이 성탄절은 우리 모두에게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우리 가운데 거하심을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시간입니다. 이 시간의 가치와 본질을 깨닫고 더욱 그리스도의 영광을 삶 속에서 발견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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