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발전] 40마 27; 27-38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하신 일3Loading the player...
40마 27; 27-38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하신 일3_5
2019. 11. 8. 금. 금요철야.
*개요: 마태복음 연구 [마]27:27 이에 총독의 군병들이 예수를 데리고 관정 안으로 들어가서 온 군대를 그에게로 모으고 [마]27:28 그의 옷을 벗기고 홍포를 입히며 [마]27:29 가시관을 엮어 그 머리에 씌우고 갈대를 그 오른손에 들리고 그 앞에서 무릎을 꿇고 희롱하여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며 [마]27:30 그에게 침 뱉고 갈대를 빼앗아 그의 머리를 치더라 [마]27:31 희롱을 다 한 후 홍포를 벗기고 도로 그의 옷을 입혀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끌고 나가니라 [마]27:32 나가다가 시몬이란 구레네 사람을 만나매 그에게 예수의 십자가를 억지로 지워 가게 하였더라 [마]27:33 골고다 즉 해골의 곳이라는 곳에 이르러 [마]27:34 쓸개 탄 포도주를 예수께 주어 마시게 하려 하였더니 예수께서 맛보시고 마시고자 하지 아니하시더라 [마]27:35 그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후에 그 옷을 제비 뽑아 나누고 [마]27:36 거기 앉아 지키더라 [마]27:37 그 머리 위에 이는 유대인의 왕 예수라 쓴 죄패를 붙였더라 [마]27:38 이 때에 예수와 함께 강도 둘이 십자가에 못 박히니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
오늘 본문에서 우리가 보는 것처럼 예수님은 2천년전 이스라엘의 예루살렘에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그 죽으심으로 인해 하나의 특별한 혜택이 생겨났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자신의 죄를 위해 죽으셨다는 것을 믿을 때 자기 죄가 사함을 받는 것입니다. 또한 그 죄가 사함을 받음과 동시에 우리는 신분상 하나님의 자녀들이 됩니다. 그 모든 것이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생겨난 것입니다. 이것은 일종의 상속이자 유산인 셈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죽으심을 믿음으로 그 예수님이 마련하신 죄사함의 유산을 받을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유산이 재산일 수도 있고 빚일 수도 있지만 그 유산을 거부하지 않고 받을 때 비로소 의미가 있는 것처럼 그리스도의 유산은 겉으로 볼 때 힘들 수도 있지만 사실은 엄청난 열매가 있는 하나님의 사랑의 부르심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오늘 말씀은 그것을 깨달을 수 있는 지식을 보여줍니다. “[마]27:35 그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후에 그 옷을 제비 뽑아 나누고 [마]27:36 거기 앉아 지키더라” 예수님이 죽으심으로 마련해주신 이 놀라운 생명의 길이자 예수님을 구주로 믿기만 하면 얻게 되는 이 구원은 주님이 죽으셨기 때문에 이루어진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 인간의 모든 죄를 위해 죽으셨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더 이상 인간의 죄를 정죄하지 않으시고 그 예수님의 죽으심을 고백하는 자들은 자녀로 받아 주시기로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나라를 열어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자 하나님의 자녀로서, 우리들은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그 나라에 갈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는 필연적으로 죽을 수 밖에 없지만 죽음 이후에 우리가 한 일을 심판 받는 지옥으로 가지 않고 하나님의 백성들이 거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갈 수 있는 하나님의 나라, 천국에 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죽으시면서 우리에게 주신 신앙의 유산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단지 고백하기만 합니다. 그 고백은 단순히 입에만 있습니다. 그 고백이 거짓되거나 혹은 잘못되었다는 말이 아닙니다. 분명히 그것을 고백합니다. 그리고 그 고백을 학습예식으로, 세례예식으로, 입교예식으로 표현합니다. 그래서 누가 봐도 정말 그 사람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거기에는 조금의 거짓도 없습니다. 그런데 의심스러운 것은 그 고백 대로 살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게 살지 않으니까 예전의 고백은 점차 사라집니다. 어느 순간 그 고백을 떨쳐버립니다. 그리고 시간이 흐릅니다. 1년, 5년, 10년, 20년, 30년 동안 사라지는 것입니다. 그들은 이 신앙의 유산을 오해하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지금은 교회에 나오지 않겠다고 합니다. 나중에 늙어서 죽기 전에 교회에 나오겠다고 합니다. 그래서 아슬아슬하게 구원을 받겠다고 합니다. 그 때까지는 하고 싶은 대로 하며 살고 싶다고 합니다. 교회 다니면 하고 싶은 대로 살 수가 없으니까 당분간 교회 안 다니면서 자유롭게 살다가 때가 되면 오겠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유산의 가치를 알지 못나는 것입니다. 그 유산이 어떻게 생겨난 것인지를 모르는 자들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다시 한번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얻은 구원이 어떠한 구원인가를 알아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해서 죄사함을 받게 되었는지를 알아야 하겠습니다. 왜 예수님이 죽으신 것이 우리의 죄를 사하게 되었는가를 이해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가장 큰 고통과 괴로움을 감당하시면서 그 구원의 길을 여셨습니다. 다음 구절을 보십시오. “[마]27:27 이에 총독의 군병들이 예수를 데리고 관정 안으로 들어가서 온 군대를 그에게로 모으고 [마]27:28 그의 옷을 벗기고 홍포를 입히며 [마]27:29 가시관을 엮어 그 머리에 씌우고 갈대를 그 오른손에 들리고 그 앞에서 무릎을 꿇고 희롱하여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며 [마]27:30 그에게 침 뱉고 갈대를 빼앗아 그의 머리를 치더라” 예수님은 모욕과 침뱉음과 희롱함을 당했습니다. 누구의 죄때문에 그렇게 되었을까요? 바로 우리의 죄입니다. 우리 각자의 죄때문에 주님은 이렇게 괴로움을 당하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고 나아가셨습니다. “[마]27:31 희롱을 다 한 후 홍포를 벗기고 도로 그의 옷을 입혀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끌고 나가니라 [마]27:32 나가다가 시몬이란 구레네 사람을 만나매 그에게 예수의 십자가를 억지로 지워 가게 하였더라” 예수님은 홍포를 입고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언덕까지 가야 했습니다. 다른 사람이 도와주어야 할 만큼 그 십자가는 무겁고 힘든 것이었습니다. 누구를 위해서 그 무거운 짐을 지셔야 했을까요? 바로 저와 여러분입니다. 우리 때문에 그렇게 하셨습니다. “[마]27:33 골고다 즉 해골의 곳이라는 곳에 이르러 [마]27:34 쓸개 탄 포도주를 예수께 주어 마시게 하려 하였더니 예수께서 맛보시고 마시고자 하지 아니하시더라” 사람들은 고통을 덜게 하고자 마취제요 진통제인 쓸개 탄 포도주를 마시게 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것을 드시지 않았습니다. 그것을 먹으면 고통을 잊어버릴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누구 때문에 그랬을까요? 바로 우리 때문에 고통을 자청하신 것입니다. 마침내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셨고 그 머리 위에는 죄패가 붙었습니다. 그리고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그 옷은 군병들이 제비 뽑아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머리 위에는 ‘유대인의 왕 예수’라고 쓴 죄패를 붙였습니다. “[마]27:37 그 머리 위에 이는 유대인의 왕 예수라 쓴 죄패를 붙였더라” 주님의 죄가 그 머리 위에 기록되었습니다. 바로 ‘유대인의 왕 예수’였습니다. 유대인의 왕이었기 때문에 예수님은 죽은 것입니다. 유대인의 왕이 아니었으면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유대인의 왕이었기 때문에 주님은 죽었습니다. 그것은 사실이었고 예수님은 모든 믿는 자들의 왕이십니다. 믿어 드리는 것이 아니라 믿어야만 합니다. 주님은 우리의 왕이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그리스도인의 왕이었기 때문에 죽으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의 왕이었기 때문에 죽으신 것입니다. 진실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가 그분이 ‘우리의 왕’이라고 고백하면 그분의 죽으심이 바로 우리를 위한 것이 됩니다. 그냥 주님이 우리를 위해 죽으신 것은 부족합니다. 그냥 우리를 위해 죽으신 위대한 선지자가 아닙니다. 주님은 우리의 왕으로 죽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분이 우리를 위해 죽으신 왕이심을 고백할 때 우리는 그 왕의 자녀가 되는 것이고 그 왕의 유산을 물려 받는 것이고 그 왕이 거하는 나라에 가서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구원을 하나의 옵션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도대체 예수님을 자신의 ‘무엇’으로 생각하는 것일까요? 어떤 천국으로 가게 할 수 있는 ‘해결사’나 혹은 ‘안내자’정도로 생각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무엇일까요? 또한 예수님이 나를 위해 죽으심을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이렇게는 못해요 저렇게는 못해요’ 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어떤 분’으로 생각하는 것일까요? 아마 각자 나름대로 생각하는 것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것입니다. 우리는 그분을 누구로 생각해야 하는가 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날 위해 죽으신 ‘나의 왕’으로 고백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분 앞에서 그분의 종으로 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십자가에 무엇이 기록되어 있는지를 잘 보아야 하겠습니다. 십자가에는 분명히 ‘유대인의 왕 예수’라고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여기에 여러분의 이름을 넣어보십시오. ‘나의 왕 예수’ 그분이 바로 여러분의 구원자이신 예수님입니다. 그 희생으로 여러분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왕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그 희생을 헛되이 하지 말고 단지 천국에 갈 것만 생각하지 말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님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해 보십시오. 주님은 여러분을 위해 우리를 위해 생명을 주셨는데 여러분은 주님께 무엇을 드릴 것입니까? 여러분의 시간을 드리고 여러분의 물질을 드리고 여러분의 재능을 드리십시오. 그것이 주님의 죽으심을 믿는 자들의 마땅한 모습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가족의 모습입니다. 그것이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거룩하신 예수님의 희생을 기억하면서 더욱 온전한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의 딸 되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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