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마] 40마 27; 3-10 구원은 사모하는 자에게 주어진다3Loading the player...
40마 27; 3-10 구원은 사모하는 자에게 주어진다3_5
2019. 10. 18. 금. 금요철야.
*개요: 마태복음 연구 [마]27:3 그 때에 예수를 판 유다가 그의 정죄됨을 보고 스스로 뉘우쳐 그 은 삼십을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도로 갖다 주며 [마]27:4 이르되 내가 무죄한 피를 팔고 죄를 범하였도다 하니 그들이 이르되 그것이 우리에게 무슨 상관이냐 네가 당하라 하거늘 [마]27:5 유다가 은을 성소에 던져 넣고 물러가서 스스로 목매어 죽은지라 [마]27:6 대제사장들이 그 은을 거두며 이르되 이것은 핏값이라 성전고에 넣어 둠이 옳지 않다 하고 [마]27:7 의논한 후 이것으로 토기장이의 밭을 사서 나그네의 묘지를 삼았으니 [마]27:8 그러므로 오늘날까지 그 밭을 피밭이라 일컫느니라 [마]27:9 이에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나니 일렀으되 그들이 그 가격 매겨진 자 곧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가격 매긴 자의 가격 곧 은 삼십을 가지고 [마]27:10 토기장이의 밭 값으로 주었으니 이는 주께서 내게 명하신 바와 같으니라 하였더라
삶 속에서 어떤 목표를 가지고 살아가는가는 매우 중요합니다. 목적지에 따라서 경로가 형성되고 그 경로를 따라갈 때 비로소 목적지에 이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지옥을 가게 되기를 바라지는 않지만 세상을 따라가다 보면 지옥에 이르게 됩니다. 그래서 세상이 목적지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또한 천국은 반드시 천국이 목적지가 될 때에만 도착할 수 있습니다. 지옥은 온 세상에 펼쳐져 있지만 천국은 오직 하나님 안에만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옥에 안 갈 수 있는 방법을 아는 것보다 천국에 가는 방법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삶을 어떻게 살았다 하더라도 천국에 가는 것을 준비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또한 어떻게 해서든지 지옥에 안가는 방법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보다 하나님 나라를 사모하며 천국에 갈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이 더 유익한 방법입니다. 왜냐하면 단지 지옥을 피하려고 하다 보면 세상의 즐거움만을 생각하다가 결국에는 지옥을 가게 되지만 천국을 들어가려고 하다 보면 마침내 천국에 가는 길을 찾고 비로소 하나님을 만날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성경말씀을 통해 우리는 바로 자살이라는 끔찍한 결과에 이르지 않기 위해서는 세상에서의 고통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구원을 사모해야만 천국에 이르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먼저 3,4절을 함께 읽어봅니다. “[마]27:3 그 때에 예수를 판 유다가 그의 정죄됨을 보고 스스로 뉘우쳐 그 은 삼십을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도로 갖다 주며 [마]27:4 이르되 내가 무죄한 피를 팔고 죄를 범하였도다 하니 그들이 이르되 그것이 우리에게 무슨 상관이냐 네가 당하라 하거늘” 예수님을 대제사장들에게 넘기는 대신에 가룟 유다는 은 삼십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 후에 그는 스스로 뉘우쳤습니다. 그런데 그의 뉘우침은 회개를 했다는 말은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회개란 죄에 대한 고백과 그 죄를 벗기 위한 노력이 병행되어야 하는데 그는 죄의 고백도 하지 않았고 그 죄를 벗기 위한 노력도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3,4절은 무엇인가요? 가룟 유다는 후회는 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찾아간 사람들은 바로 그 죄악을 조장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에게서 사과나 위로나 보상을 기대했었지만 그들은 그 죄악에 대해서 오히려 더 큰 죄를 짓도록 종용하였습니다. 그는 마치 자신이 직접 살인을 저지르고 나서 그렇게 살인을 저지르도록 충동한 악한 사람들에게 찾아가 후회의 마음을 나눈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후회하는 그를 오히려 비웃으면서 그렇게 후회할 거면 그냥 스스로 감당하라고 했던 것입니다. 결국 자신들끼리의 비난과 저주 속에서 가룟 유다는 스스로 목매어 죽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이것은 결코 회개와 반성이 아니었습니다. 오직 스스로의 좌절과 절망이었을 뿐입니다. 자살에 이르게 되는 과정은 이처럼 매우 안타깝습니다. 이미 그들은 세상에서의 댓가와 도움을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세상을 따랐기 때문에 세상의 고통을 맛보게 되었고 마침내 그 지옥에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나라를 사모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하지 않습니다. 이와 유사하게 스스로 죽으려고 했던 사람이 돌이키는 사건이 사도행전에 나옵니다. “[행]16:27 간수가 자다가 깨어 옥문들이 열린 것을 보고 죄수들이 도망한 줄 생각하고 칼을 빼어 자결하려 하거늘 [행]16:28 바울이 크게 소리 질러 이르되 네 몸을 상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 있노라 하니” 이 장면에서는 전혀 다른 분위기가 나옵니다. 간수는 칼을 빼어 들고 스스로 죽으려고 했지만 바울은 그를 살렸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희생을 감수하면서 그를 살리는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가룟유다가 찾아간 대제사장들과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이런 차이가 생긴 이유는 바울은 천국을 사모하는 사람이었고 대제사장들은 지옥을 향하는 자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천국을 사모하는 사람들이 하는 일은 죽어가는 자를 살리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않는 일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따르는 자들의 모습입니다. 이러한 모습을 통해서 천국을 사모하는 자의 삶이 어떤 것이며 천국을 향하고자 한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간수는 그 속에서 올바른 방향을 바라보았습니다. “[행]16:30 그들을 데리고 나가 이르되 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 하거늘” 그는 구원을 원하고 바랬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 구원을 받을 수 있는가를 물어보았습니다. 가룟 유다는 단순히 죄책감과 절망감을 말했지만 간수는 구원의 열망과 소망을 말했습니다. 사도 바울과 실라가 의로운 자들임을 알았기 때문에 의로운 자들에게서 구원의 길을 얻고자 했습니다. 그때 바울은 정말 중요한 구원의 길을 알려주었습니다. [행]16:31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고” 천국에 들어가는 고비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예수를 믿고 구원을 얻을 때 그는 천국의 문턱을 들어서게 됩니다. 그러면서 그는 천국을 바라보면서 그는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천국의 문 안쪽에 있게 된 것입니다. 구원은 구원을 사모하는 자에게 주어집니다. 천국은 천국을 사모하는 자들에게 주어집니다. 여기에서 커다란 대비가 있습니다. 이와 반대로 지옥에 향하는 사람은 어떻게 할까요? 그는 스스로를 믿고 스스로의 판단을 신뢰하면서 스스로의 형벌에 빠집니다. 가룟 유다가 그랬습니다. 스스로 당하라는 말에 그는 죽음 이외에 다른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결국은 자살을 택했습니다. “[마]27:5 유다가 은을 성소에 던져 넣고 물러가서 스스로 목매어 죽은지라” 가룟 유다는 세상을 바라보았기 때문에 천국으로의 길을 알지 못했고 세상 사람들의 악영향을 받으면서 죽음으로 나아갔습니다. 그가 구원을 바라보고 천국을 사모했다면 자살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회개를 통해 구원의 길을 찾고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받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세상을 바라볼 때 천국과는 아무 상관이 없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이러한 삶의 방향성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세상을 바라보면서 살아가다가 지옥을 향하게 되고 지옥에 미처 이르기도 전에 지옥과 같은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가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모습은 계속해서 그러한 삶을 부추기며 그러한 생활 속에 빠져나오지 않습니다. 가룟 유다가 죽은 다음에 남은 악인들인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은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그들은 조금도 양심의 가책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 돈을 거두어 토기장이의 밭을 사서 그것을 나그네의 묘지로 삼았습니다. 그래서 그 땅이 피값으로 산 땅이라는 의미의 피밭, 아람어로 ‘아겔다마’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이 얼마나 정반대의 대비입니까? 자살을 하였던 가룟 유다의 피값과 그의 삶은 더 많은 사망자를 묻는 곳이 되었지만 그리스도를 믿고 천국을 향하게 된 사람들의 모습 속에는 구원과 기쁨과 감사와 그리고 그런 일들을 하는 교회가 세워지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렇게 지옥을 향하고 지옥의 고통을 경험하는 자들이 아니라 천국을 향하고 천국의 기쁨을 경험하는 자들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은 바로 그 길을 위해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예수님 자신이 천국을 사모하셨고 천국 보좌 우편으로 자랑스럽게 나아가셨습니다. 우리가 그분을 따르고 섬길 때 비로소 우리도 천국에 도착하게 됩니다. 죽음에 관한 일을 생각하지 말고 생명에 관한 일을 생각하십시오. 사망에 대해서 묵상하지 말고 생명에 대해서 생각하십시오. 하나님의 구원을 얻고자 하고 그 구원을 사모할 때에 그것이 여러분을 천국에 이르게 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길을 묵상하면서 사망이 아닌 오직 생명에 대한 소망을 안고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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