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능력] 12왕하 7; 16-20 여호와의 말씀을 멸시한다는 것2Loading the player...
12왕하 7; 16-20 여호와의 말씀을 멸시한다는 것2_4
2019. 11. 6. 수. 수요예배.
*개요: 열왕기하 연구 [왕하]7:16 백성들이 나가서 아람 사람의 진영을 노략한지라 이에 고운 밀가루 한 스아에 한 세겔이 되고 보리 두 스아가 한 세겔이 되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이 되었고 [왕하]7:17 왕이 그의 손에 의지하였던 그의 장관을 세워 성문을 지키게 하였더니 백성이 성문에서 그를 밟으매 하나님의 사람의 말대로 죽었으니 곧 왕이 내려왔을 때에 그가 말한 대로라 [왕하]7:18 하나님의 사람이 왕에게 말한 바와 같으니 이르기를 내일 이맘 때에 사마리아 성문에서 보리 두 스아를 한 세겔로 매매하고 고운 밀가루 한 스아를 한 세겔로 매매하리라 한즉 [왕하]7:19 그 때에 이 장관이 하나님의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하늘에 창을 내신들 어찌 이 일이 있으랴 하매 대답하기를 네가 네 눈으로 보리라 그러나 그것을 먹지는 못하리라 하였더니 [왕하]7:20 그의 장관에게 그대로 이루어졌으니 곧 백성이 성문에서 그를 밟으매 죽었더라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우리가 다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일상생활에서 일어나는 하나님의 일들을 이해하는 것은 고사하고, 심지어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일들까지도 우리는 쉽게 이해하지 못합니다. 일상생활에서는 시작과 결말조차 분명하지 않아서 이해하지 못한다고 하지만, 그 시작과 결말이 분명하게 나타나는 성경의 사건조차도 우리에게는 쉽게 이해되지 못합니다. 이것은 차라리 당연한 일입니다. 어떻게 천지를 창조하시고 우주를 운행하시는 분의 뜻을 우리가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죄가 아닙니다. 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이해하지 못해도 인정하기만 하면 되니까, 하나님께서는 왜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지 못했느냐고 정죄하지 않으십니다. 우리는 그저 이해하기 보다는 그 뜻에 순종하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다른 곳에서 일어납니다. 이해하지 못하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부정하고 부인하며 멸시하는 것입니다. 그로 인해서 죄를 짓게 되고 하나님의 정죄하심을 받게 됩니다.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죄가 아니라, 부정하고 부인하는 것이 죄가 되는 것입니다. 정말 잘 모르겠다면 솔직하게 모르겠다고 하면 되는 것을, 모른다고 하지 않고 뭔가를 아는 척 하면서 부인하고 멸시하는 것은 하나님의 진노하심을 격발시키는 행동입니다. 우리는 삶에서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도록 조심해야 할 것입니다. 특별히 성경 속에서 그런 모습으로 인해 화를 당한 사람을 살펴보면 더욱 조심해야 함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가 읽은 본문에 나오는 이 군대장관의 잘못은 무엇이었을까요? 그는 엘리사의 예언대로 자신의 눈으로 넘치는 하나님의 축복을 보기는 했지만, 그것을 누리지는 못했습니다. 그리고 비참하게 군중들의 발에 깔려 죽었습니다. 왜 그는 그런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을까요? 무엇을 잘못했기 때문입니까? 이 군대장관은 엘리사의 예언을 듣고 났을 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 일으키실 놀라운 일을 도저히 믿지 못했습니다. 어떻게 성을 완전히 둘러싸고 있는 아람 군대가 버티고 있는데, 그래서 먹을 양식을 공급받지 못해서 사마리아 성안에 음식이 넘쳐날 수 있겠는가? 어떻게 고운 가루 한 스아에 한 세겔이 되고, 보리 두 스아에 한 세겔이 될 수 있겠는가? 이 군대장관은 도저히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이해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그냥 믿지 못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냥 이해하지 못하는 하나님의 일이라고 지나치지 않았습니다. 그의 입에서는 해서는 안될 말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모욕하며 그분의 기이한 일을 부정해버리는 불신앙적이고 악의에 찬 죄악으로 가득한 말이 튀어나오고 있습니다. “[왕하]7:19 그 때에 이 장관이 하나님의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하늘에 창을 내신들 어찌 이 일이 있으랴 하매 대답하기를 네가 네 눈으로 보리라 그러나 그것을 먹지는 못하리라 하였더니” 하나님께서 하늘을 뚫으신다 하더라도 어떻게 이런 일을 하실 수 있겠는가라는 비웃음섞인 조롱은 하나님의 사람인 엘리사를 자극시키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렇지만, 단지 엘리사만을 분노하게 만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자신을 분노하시게 만들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능력을 너무나 사소한 것으로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으로 어떤 능력도 없는 것으로 한 마디의 말을 통해 만들어 버렸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획과 뜻을 이해하지 못했을 때, 이보다는 좀더 나은 반응을 보였던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사라입니다. 그녀는 도저히 아들을 낳을 희망이 없어졌을 때, 아들을 낳을 것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자신도 모르게 웃었습니다. 어떻게 아들을 낳을 수 있겠느냐고 생각하며 속으로 웃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마음을 아시고 웃지 않았다고 부인하시는 사라에게 말하십니다. ‘아니라, 네가 웃었느니라’ 여기에 무슨 차이가 있는 것일까요? 사라와 군대장관의 반응하는 모습의 차이점은 무엇이겠습니까? 비슷해 보이지만, 여기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그것은 이해하지 못함을 한 사람은 입밖으로 내뱉었고, 다른 한 사람은 내뱉지 않았습니다. 군대장관은 엘리사 앞에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그런 불가능한 일을 하실 수 있겠느냐고 불신앙을 입밖으로 내었고, 사라는 네가 웃었느니라는 천사의 추궁에 두려워서 서둘러 자신의 모습을 돌이켰습니다. 마음을 말로 나타내느냐 나타내지 않느냐는 별 큰 차이가 없는 것같이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 두 모습을 큰 차이로 여기십니다. 인간의 마음속의 모든 악함을 주님께서는 다 알고 계십니다. 그러나 그러한 악함은 하나님을 두려워함으로 입밖으로 내어뱉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은 우리의 모습을 불쌍히 여기십니다. 그래서 나중에는 사라로 하여금 정말로 기뻐서 웃게 해주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이 그 입으로 악한 마음을 말로 내뱉었을 때에는 그 말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 하는 것입니다. 군대장관은 벌을 피할 수 없었고, 사라는 은총을 입었습니다. 군대장관은 그 자신의 눈으로 넘치는 양식과 풍성한 재물을 다 놓고 도망간 아람군대의 흔적을 보았지만, 그러나 그 유익을 받을 수는 없었습니다. “[왕하]7:20 그의 장관에게 그대로 이루어졌으니 곧 백성이 성문에서 그를 밟으매 죽었더라” 바로 하나님을 멸시하여 그 악한 마음을 아무런 두려움 없이 말로써 내뱉은 죄악에 대한 댓가였던 것입니다.
성경속에서보다도 삶에서 우리는 더 많은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일들을 경험하게 됩니다. 우리의 연약함과 무지함때문에 그 모든 하나님의 일들을 다 이해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왜 내게 이런 일을 허락하시는지, 어려움을 경험케 하시는지, 도대체 어떤 계획을 가지고 계시는지, 어떻게 그 일을 이루시는지...이 모든 것은 우리에게 기이한 일일 뿐입니다. 그렇지만, 우리에게 이해될 수 없는다 하더라도,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 하더라도, 그 모든 뜻이 완전히 드러나기 전에 함부로 그 이해하지 못함을 말로 드러내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함부로 하나님의 능력에 대해 폄하해서도 안될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나타내시는 일을 잠자코 바라보는 노력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함으로 함부로 말하지 않지 않겠다는 의지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신명기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29:29 오묘한 일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속하였거니와 나타난 일은 영구히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속하였나니 이는 우리로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행하게 하심이니라” 오묘한 일을 하나님은 다 알려주시지 않습니다. 우리에겐 오직 나타난 일들만 드러나는 것입니다. 우리와 우리 자손이 알아야 하는 것들만 우리에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주님은 하시는 모든 일을 다 알려주시지 않고, 알아야 하는 모든 일들만을 우리에게 깨닫게 하십니다. 우리가 모르는 일에 대해 함부로 하나님을 말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듣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 말에 대해서 책임지게 하십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함으로 우리의 말과 행동을 조심하여 늘 하나님의 하시는 일들에 영광을 돌리며 사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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