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목회자의 잘못과 어리석음에 대해서 잘 알고 있습니다. 목회자는 여러 면에서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있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든지 평가를 받게 되어 있습니다.
평생 교회를 다녔던 저도 제가 만났던 담임목사님, 부목사님, 전도사님에 대해서 나름대로의 판단을 하였습니다. 좋은 분이 있었고 나쁜 분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결코 죄악에 빠졌다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개인적인 호감과 비호감의 대상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우리 자신의 기준으로 이렇게 생각하였지만 하나님은 하나님의 기준에 따라서 목회자들을 판단하십니다. 특히 그들의 죄에 대해서는 더욱 엄격하셨습니다.
“5 내 백성을 유혹하는 선지자는 이에 물면 평강을 외치나 그 입에 무엇을 채워 주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전쟁을 준비하는도다 이런 선지자에 대하여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주님이 미워하신 것은 그들이 주님의 뜻과 다르게 자신들의 방식대로 사람들을 조절하고 통제하고 지배하였던 모습입니다. 그들은 온전히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야 했지만 하나님의 뜻과는 전혀 상관없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2. 그 악함에 대해서 주님이 행하시는 것은 죄에 대한 깨닫게 함과 심판에 대하여 경고하시는 것이다.
이제 그 목회자와 사역자들에게 주님이 행하시는 일은 그들에게 다시 하나님의 뜻을 보이시는 것이었습니다.
“오직 나는 여호와의 신으로 말미암아 권능과 공의와 재능으로 채움을 얻고 야곱의 허물과 이스라엘의 죄를 그들에게 보이리라”
하나님은 사역자에게건 목회자에게건 혹은 성도들에게건 하나님 자신의 뜻을 보이시고 경고하시며 옳고 그름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오늘날에도 우리에게 주어지고 있는 하나님의 뜻인 것입니다.
악을 행하는 목회자들에게 하나님은 회개와 변화를 촉구하십니다. 사람들이 잠잠할찌라도 하나님은 사역자들에게 더욱 엄격함을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싱가포르는 공무원들에게 더욱 엄격한 공정성을 요구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공무원이 잘못을 저지르면 4대까지 취업을 할 수 없도록 만들어 버린다고 합니다. 이러한 엄격함이 그 나라를 깨끗하고 믿을 수 있는 나라로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엄격함이 하나님 나라를 온전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3. 죄인은 자신이 어떤 악을 저지르고 있는지를 부인하며 심판을 외면하고 있다.
그렇지만 죄인은 여전히 죄를 저지르고 있습니다. 하나님도 그 죄인들에 대해서 잘 알고 계십니다. 그 죄인들의 모습을 주님은 구체적으로 언급하십니다.
“11 그 두령은 뇌물을 위하여 재판하며 그 제사장은 삯을 위하여 교훈하며 그 선지자는 돈을 위하여 점 치면서 오히려 여호와를 의뢰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시지 아니하냐 재앙이 우리에게 임하지 아니하리라 하는도다”
얼마나 우리 민족적인 정서에 잘 맞는 상황입니까? 우리는 얼마나 쉽게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 생각하시는 것은 전혀 달랐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악하여져가고 있기 때문에 그 죄악을 뿌리뽑기 위한 하나님의 방법도 더욱 엄격한 것이 되었습니다.
“12 이러므로 너희로 인하여 시온은 밭 갈이 갊을 당하고 예루살렘은 무더기가 되고 성전의 산은 수풀의 높은 곳과 같게 되리라”
싱가포르의 강력한 법이 그 국민들을 정의롭고 죄악을 버리는 자들로 만든 것처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행하시는 강력한 다스리심이 우리로 하여금 올바르게 만드는 것임을 이해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겪는 모든 어려움은 하나님의 심판 속에 이루어지는 것이며 그 어려움 속에서 우리들은 하나님의 정의와 뜻을 깨닫게 됩니다.
4. 그들의 결과는 멸망과 재앙 뿐임을 기억하며 우리는 오직 주님의 가르치심에 온전히 따르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이스라엘은 결국 멸망하였고 그로 인해서 70년간의 포로생활을 지내야 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지 않을 때 그로 인해서 일정 기간의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그런 어려움을 겪었다면 다시 한번 기억해야 하는 것은 주님의 가르치심에 온전히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만이 주님께서 우리를 온전히 행하도록 하실 때에 주님의 뜻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분명한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70년의 포로생활 이후에 다시 돌아온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따르고자 애를 썼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온전히 따르지는 못하고 400년 후에 나타나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는 자들이 되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가르치심과 기준 앞에 우리 스스로를 언제든지 돌아보면서 더욱 주님께로 나아가는 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러한 삶이 필요함을 깨닫게 해달라고 그리고 주님의 뜻대로 살아갈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