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 다툼이 어디로 좇아 나느뇨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
좇아 난 것이 아니냐
2 너희가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고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나니 너희가 다투고
싸우는도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3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
4 간음하는 여자들이여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되게 하는 것이니라
지금까지 우리는 마음의 근원이 되는 여섯 가지 감정을 다 살펴보았습니다. 이러한 감정에 대한 이해는 이전에 감정에 대해서 잘 알 수 없었던 우리들에게 최소한의 이해를 갖게 합니다. 그러한 감정을
다루기 시작한다면 그것은 보이지 않는 마음에 대한 접근을 가능하게 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감정을 잘 알게 된다 하더라도 그 감정을 바꿀 수는 없습니다.
감정은 근본적으로 결과에 해당합니다. 결과 자체를 어떻게 할 수는 없습니다. 오직 그 감정을 가지게 하는 원인을 다룰 수 있을 뿐입니다. 그 원인이란
마음 속에 있는 욕구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감정을 살펴본 다음에 욕구를 살펴볼 것입니다. 이러한 욕구를 살펴볼 때에 비로소 감정에 대한 다스림과
변화를 이룰 수 있게 됩니다.
욕구란 모든 감정의 원인이 됩니다. 욕구는 모든 감정을 일으키고
문제를 만들어 내는 근원이기도 합니다. 욕구의 또다른 말은 ‘원하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무엇인가를 원하는 의지가 있었기 때문에 그 의지의
결과로 감정이 생겨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연결관계가 논리적으로 이해가 된다면 당연하게 감정을 다스리기 위해서는 왜 감정이 생겨났는가를 알아보려고
하게 될 것입니다. 그 감정의 원인이 바로 욕구이고 그 욕구를 다스릴 때 감정도 다스릴 수 있게 됩니다.
이러한 욕구에는 6가지의 욕구가 있습니다. 하나같이 좋지 않은
의지들입니다. 바라는 것들이 전부 감정을 만들어 내는 것들입니다. 인간이기 때문에 이러한 욕구가 없을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순간에
감정에 흔들리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욕구를 버려야 합니다. 그럴 때 온전한 모습을 이룰 수 있습니다. 또한 모든 문제의 근원에는 이러한 욕구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 욕구, 다시 말해서 원하는 것이 무엇이었는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나서 그것을 버려야 합니다. 욕구를 채우고자 했던
것이 지금까지의 문제였기 때문에 그 욕구를 버리려고 할 때에 비로소 문제를 해결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핵심적으로 욕구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여섯가지 욕구의 종류는 다음과 같습니다.
‘유익, 편안, 쾌락, 인정, 존경, 지배’
이러한 욕구 중에서 첫 번째 유익을 추구하고자 하는 욕구를 본문 말씀 가운데에서 살펴보려고 합니다. 유익의 욕구는 끊임없이 채우고자 하는 마음입니다. 그런데 이 욕구는 결코 채워지지 않습니다. 채워지려고 하지만 채워지지
않기 때문에 다시 채우려고 합니다. 그렇지만 채워지지 않습니다. 결국 이러한 욕구는 계속 이어지게 되고 그로 인한 악순환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성경은 이러한 유익의 욕구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2절입니다.
“2 너희가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고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나니 너희가 다투고
싸우는도다”
욕심을 내면 얻어야 하는데, 얻지 못합니다. 심지어 살인하고 시기하여도
능히 취할 수 없습니다. 그로 인해서 다투고 싸웁니다. 감정의 폭발이 일어납니다. 성경은 이렇게 욕구의 악순환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보여주는 욕구의 설명은 사실입니다. 정말 욕구는 바라면 바랄 수록 얻지 못함을 보여줍니다. 욕심을 내면 낼 수록, 취하려고 하면 할 수록 더욱
얻지 못합니다. 그로 인해서 계속 싸우고 다투게 되지만 결국은 제자리 걸음만 할 뿐입니다.
그 이유는 자신이 더 많은 것을 얻고자 하면 할 수록 더 많이 잃어버리게 되기 때문입니다. 얻고자 하면 다른 것을 희생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죄인인 인간이 얻고자 하는 그 자체는 악에 해당한 것입니다. 자신의
욕구를 채우는 것을 얻고자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얻고자 함으로 결국 더 중요한 것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죄인인 인간은 더
중요한 것을 생각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러한 욕구에 대해서 원하시는 것은 무엇일까요? 주님은
우리가 그 욕구를 버리게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욕구로 채워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채워지기를 원하십니다. 욕구를 대치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 뿐입니다. 은혜 만이 그 채워지지 않는 욕구를, 유익을 얻고자 하는 끊임없는 시도를 중단하게 할 수 있습니다. 그 이유를 본문
말씀 속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4 간음하는 여자들이여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되게 하는 것이니라”
본문에는 ‘간음하는 여자들이여’라고 나와 있지만, ‘욕구를 추구하는
모든 사람들이여’라고 해도 무방합니다. 왜냐하면 욕구는 그렇게 추구하면 추구할 수록 뒤에 나오는 대로 하나님과 원수되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사랑하고
세상과 친하게 지내고 세상의 것을 가지고 있으면 있을 수록 그는 하나님과 원수됩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세상의 것을 중요하게 여기면서 하나님의 것은
소홀히 여기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결국에는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은혜가 욕구를 추구하는 우리의 마음을 중단하게 하는 이유는 그것이 악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기
때문입니다. 더 큰 욕구를 추구하게 해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을 추구한 것이 잘못이고 죄라는 것을 알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결국에는 은혜가 우리를 정신차리게 만듭니다.
우리는 자신의
욕구가 죄악임을 이해함으로 하나님께로 나아오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을 알지 못하면 끊임없이 세상의 유익을
사모하면서 살아가는 자들이 됩니다. 그런 자들에게는 신앙의 발전도 없습니다. 마가복음에서는 그러한 자들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마가복음 4:19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과 기타 욕심이 들어와 말씀을 막아 결실치 못하게 되는 자요”
욕심이 있을
때 말씀의 씨앗이 뿌려져도 결실하지 못합니다. 더 큰 세상의 욕심이 그의 신앙발달을 가로막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욕심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순전한 마음으로 받아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은혜가 채워집니다.
존 뉴튼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노예선의 선장으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흑인들을 노예로 파는 일을 돕는 자로 더 큰 물질을
바라면서 살아가던 그는 어느날 바다에서 폭풍우를 만났습니다. 그속에서 그는 죽음의 두려움을 깨달았고 자신의 지은 죄를 회개하면서 살려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했습니다. 결국 그는 다행히 살아났고 그 일이후에 자신의 죄를 회개하면서 그는 완전히 새로운 사람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신학을 공부하여
목사가 되었고 그가 지은 찬송시’나같은 죄인 살리신 주은혜 놀라와’ 는 많은 사람에게 은혜를 주었습니다.
우리는 주님께
나아와야 합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던 욕구를 회개함으로 나아와야 합니다. 그럴 때 그 욕구를 버릴 수 있습니다.
그 유익을 추구하던 마음이 얼마나 악한 것이었는지를 깨달을 때에 그것을 버리게 되고 온전히 씻어주시는 하나님께 의지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자신의 욕구를 버리고 주님의 은혜로 채워지는 사람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또한 그 은혜를 깨달으면서 다른 사람들도
자신의 욕구를 버리고 하나님의 은혜를 붙들수 있도록 돕는 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구성 1. 욕구는 모든 감정을 일으키고 문제를 만들어 내는 근원이다. 2. 유익을 추구하는 욕구는 채워지지 않으면서도 채우고자 한다. 3. 하나님은 욕구를 버리고 하나님의 은혜로 채워지기를 원하신다. 4. 우리는 하나님과 교제함으로써 하나님으로 채워지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