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제설교 교육설교 만화설교 생활설교 특별설교

[65긍휼] 45롬11;29-36 자녀를 통해 긍휼을 알고 베풀게 하심





Loading the player...


 

4511;29-36 자녀를 통해 긍휼을 알고 베풀게 하심_1

 

 2014.5.4..주일오전.

 

*개요:    65긍휼, 1적용, 6서신서,

 

29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

30    너희가 전에 하나님께 순종치 아니하더니 이스라엘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이제 긍휼을 입었는지라

31    이와 같이 이 사람들이 순종치 아니하니 이는 너희에게 베푸시는 긍휼로 이제 저희도 긍휼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32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순종치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심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려 하심이로다

33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34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뇨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뇨

35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뇨

36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

 

 

이번 주일을 어린이 날로 지키면서 하나님과 부모, 그리고 자녀의 관계를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하나님은 부모에게 자녀를 주시면서 부모로서의 마음을 알게 하셨습니다. 자녀를 통해서 부모는 진실한 사랑이 무엇이며 지극한 사랑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또한 그런 사랑의 마음을 통해서 우리를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부모와 자녀의 관계를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부모 자녀의 관계가 더이상 무한한 사랑과 끝없는 사랑으로 이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자녀에 대해서 부모님들은 걱정과 근심이 있습니다. 미움과 절망이 있습니다. 좋을 때에는 좋지만 나쁠 때에는 한없이 나쁩니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이 듣는 말중에 미운 네살이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세살까지는 예쁘다가 네살부터는 떼를 쓰고 고집부리고 말을 안들어서 생긴 말입니다. 그러나 미운 네살은 양반입니다. 더 아이를 키우다 보면 이런 말도 있습니다. ‘죽이고 싶은 일곱살 너무 심하다 싶은 표현이지만 실제로 양육의 현장에서 부모님들은 이런 죄성의 충동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이후에는 괜찮아지는 것일까요? 물론 괜찮아지는 아이들도 있지만 여전히 자녀들의 마음은 지뢰밭과 같습니다. 어느 순간 다시 폭발하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이 되어버립니다. 그래서 사춘기를 거치고 질풍노도의 시기를 거치게 됩니다. 그런 시기를 지내다 보면 부모님과 자녀들은 지칠대로 지치고 상심할 대로 상심합니다. 예전의 그 순박하고 천진난만한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되바라지고 자기중심적이고 어떤 때에는 예의를 갖추지도 않아서 무례하기까지 한 안좋은 모습들을 보게 됩니다. 바로 그런 시기에 부모들은 절망합니다. 그리고 자녀교육에 대해서 자포자기하게 되어버립니다. 하지만 우리는 부모님들과 자녀들의 관계가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보여준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다시한번 그런 상태에서 주님께 의지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갈등속에서 주님이 주신 자녀들을 주님의 뜻하시는 대로 키울 수 있을지를 주님께 물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자녀와의 갈등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려는 목표를 갖는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게 됩니다.

 

좋은 부모가 되려는 것, 좋은 자녀를 만드려는 것, 그 이상의 것이 무엇인가를 하나님 안에서 생각하려고 할 때에 하나님은 자신의 뜻이 무엇인가를 보여주십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오늘 본 말씀입니다. 사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이방인으로서 얻는 구원의 의미를 설명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속에서 계속 반복적으로 나오는 단어가 있습니다. 그것은 긍휼이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그 긍휼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자녀를 통해 우리에게 알게 하시는 것이 무엇인가를 깨닫습니다. 바로 긍휼을 알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녀를 통해서 긍휼이 무엇인지를 알고 그것을 실천할 수 있도록 하십니다. 또한 부모가 아니라 하더라도 어린 아이를 생각하는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린이들에게 긍휼의 마음을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부모가 자녀에게 대하는 마음이 긍휼이고, 어른이 어린이에게 대하는 마음이 바로 긍휼인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서 우리는 자녀들에게 어린이들에게 긍휼의 마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부모와 자녀 사이에서 가져야 하는 하나님의 뜻이 긍휼일까요? 부모 자녀 사이에는 사랑이 아닙니까? 물론 사랑이 해당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긍휼을 생각하는 때는 부모와 자녀의 관계가 안좋을 때이거나 혹은 아주 나쁠 때입니다. 그럴 때 사랑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입니다. 그 어떤 관계보다도 가장 숭고해야할 부모 자녀의 관계가 서로 질시와 반목과 갈등과 거부로 얼룩져 있을 때, 그때 다시 사랑을 강조한다는 것은 다 쓴 나무젓가락을 다시 사용하는 것처럼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필요한 것은 그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입니다.

 

오늘 말씀속에서 하나님은 하나님과 이스라엘과 이방인의 관계를 생각하게 하십니다. 그 관계를 통해서 우리는 우리가 어떻게 구원을 받았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왜 자녀들을 긍휼히 여겨야 하는지를 깨닫게 됩니다.

11:29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

11:30  너희가 전에 하나님께 순종치 아니하더니 이스라엘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이제 긍휼을 입었는지라

여기서 말하는 너희는 로마에 있는 교인들, 즉 이방인들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구약시대 내내 하나님께서 사랑하셨던 선민, 유대인들이었습니다. 하나님께 있어서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순종한 자녀들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있어서 이방인들은 하나님의 순종하지 않은 자녀들입니다. 그런데 이 관계는 이스라엘이 자기들에게 오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버림으로써 완전히 깨어졌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이었지만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땅에 오셨을 때에 그들은 더이상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하고 십자가에 못박아 죽임으로써 하나님과 원수된 자들이 되었습니다. 순종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 때 이방인들은 원래부터 순종하지 않았던 자녀들이었는데 하나님의 순종한 자녀들인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원수되었을 때에 그들은 도리어 긍휼히 여김을 받았습니다. 그 긍휼히 여기심으로 인해서 이스라엘을 대신해서 이방인들이 구원을 얻을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하나님과 이방인의 관계에서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을 구원하신 이유는 그들을 긍휼히 여기심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긍휼히 여기심은 애초에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인간이었으나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은 이방인들을 불쌍하게 여기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와같은 불순종한 자녀들과의 관계를 새롭게 하셨던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기 때문에 바로 그 이방인에 속한 우리도 역시 구원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와 같이 부모와 불순종한 자녀 사이를 이어줄 수 있는 마음은 바로 긍휼히 여김인 것입니다.

 

이스라엘과 이방인이라는 역사적인 관점으로만 이러한 긍휼을 생각한다면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잘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서 구체적으로 누가 이방인이 되었는가를 생각해 보십시오. 아브라함 시대에 이방인은 누구였습니까? 그는 롯과 그의 자녀들이었습니다. 그 자녀들이 모압과 암몬자손이 되어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대치하는 이방인이 되었습니다. 이삭의 시대에 이방인은 누구였습니까? 그는 이스마엘입니다. 그는 아브라함의 서자였지만 어머니 하갈과 함께 집에서 쫓겨났습니다. 그리고 그 후예는 아랍민족의 뿌리를 이루었습니다. 야곱에게 있어서는 이방인은 누구였을까요? 그는 에서입니다. 에서는 이삭의 장자였지만 그 장자권을 동생 야곱에게 팔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가나안 민족과 결혼하였고 그의 후손은 에돔자손이 되었습니다. 에돔자손은 후에 이스라엘과 전쟁을 벌이기도 하였습니다. 결국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으로 이어지는 이스라엘 자손에 대비되는 이방인이란 같은 형제이고 자손이었으나 하나님께 대해서 순종하지 않았던 자들이었습니다. 또한 그 이외에 다른 이방인들은 그 선조에서부터 갈라진 아담의 자손들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이방인들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긍휼하심이란 여러 자녀들 중 말 안듣고 속썩이고 불순종한 자녀들에 대한 하나님의 마음이었던 것입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에게도 그런 자녀들이 있습니다. 다섯 명의 자녀 중에 한 명이 말썽을 피우지 않습니까? 네 명 중에는 한 명, 세 명 중에 한 명, 두 명 중에서 한 명이 부모의 속을 태우게 하지 않습니까? 열 손가락 깨물어 안아픈 손가락은 없지만 반지를 끼워주는 손가락은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상대적으로 사랑을 받지 못한 자녀는 점점 더 비뚤어지며 더 좌절하게 됩니다. 그래서 순종하는 자는 더욱 순종하지만 순종하지 않는 자도 마찬가지로 더욱 순종하지 않게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하나님의 긍휼하심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긍휼하심을 받는 자의 모습에 조건지어진 것이 아니라 긍휼히 여기시는 분의 마음에 결정되어진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자녀가 긍휼히 여길 만 해서 긍휼히 여기는 것이 아니라 긍휼히 여기기로 작정하셨기 때문에 긍휼히 여기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긍휼로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31    이와 같이 이 사람들이 순종치 아니하니 이는 너희에게 베푸시는 긍휼로 이제 저희도 긍휼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32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순종치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심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려 하심이로다

하나님은 순종치 않는 자들에게 긍휼을 베푸셨습니다. 이방인들이 순종치 않음으로 인해서 긍휼을 얻은 것처럼 이스라엘도 순종치 않음으로 인해서 오히려 긍휼을 얻게 됩니다. 하나님의 뜻에 온전하게 순종하는 자들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하나님께서 인간을 살아있게 하시고 그로 인해서 순종하지 못하는 상태에 있게 하시는 이유는 그들에게 긍휼을 베풀기 위해서입니다. 그렇지 않게 되려면 죽는 수 밖에 없었지만 그것으로는 긍휼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불순종하지만 살아있는 자들에게 주님은 긍휼을 베푸셨습니다. 그 긍휼로 인해서 주님을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얻고 구원을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믿고 구원을 받게 된 것이지 순종함으로 구원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믿음으로 구원을 받은 것이지 행위로 구원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이와 같이 우리는 이방인이나 이스라엘이나 동일하게 긍휼하심으로 구원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봅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우리가 바로 그 긍휼을 얻은 자임을 깨닫게 합니다. 우리가 그 이방인 중의 한 사람으로 긍휼히 여기심으로 구원을 얻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가지고 계시는 마음이 우리의 마음에 전달될 때에 우리가 그 하나님의 마음으로 감동될 때에 우리는 하나님의 긍휼이 나의 긍휼이 되고 그 긍휼로 바로 우리의 가족들에게 전해질 수 있음을 깨닫습니다.

 

마태복음 18장에는 일만 달란트 빚진 자가 그 빚을 탕감받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18:23    이러므로 천국은 그 종들과 회계하려 하던 어떤 임금과 같으니

24    회계할 때에 일만 달란트 빚진 자 하나를 데려오매

25    갚을 것이 없는지라 주인이 명하여 그 몸과 처와 자식들과 모든 소유를 다 팔아 갚게 하라 한대

26    그 종이 엎드리어 절하며 가로되 내게 참으소서 다 갚으리이다 하거늘

27    그 종의 주인이 불쌍히 여겨 놓아 보내며 그 빚을 탕감하여 주었더니

그는 임금의 불쌍히 여김으로 인해서 그 빚을 탕감받았습니다. 그 빚을 갚으려면 그 몸과 처와 자식들과 모든 소유를 다 팔아도 부족했지만 임금은 그 빚을 다 용서해주셨습니다. 그 이유는 불쌍하게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자신은 자기에게 빚진자에게 가혹했습니다.

“28    그 종이 나가서 제게 백 데나리온 빚진 동관 하나를 만나 붙들어 목을 잡고 가로되 빚을 갚으라 하매

29    그 동관이 엎드리어 간구하여 가로되 나를 참아 주소서 갚으리이다 하되

30    허락하지 아니하고 이에 가서 저가 빚을 갚도록 옥에 가두거늘

그 종은 자신에게 백 데나리온 빚진 자를 만나 그 빚을 다 갚도록 옥에 가두어버렸습니다. 그 자신은 일만 달란트를 사함받았어도 다른 사람에게는 백 데나리온을 갚도록 요구했으니 얼마나 어리석은 것입니까? 오늘날의 가치로 환산하면 백 데나리온은 5백만원정도에 해당합니다. 그리고 일만 달란트는 약 3조원에 해당합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바로 이 일만 달란트 탕감을 받은 자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깨달을 때에 내가 받은 일만 달란트의 탕감을 기억하면서 내가 얻을 백 데나리온의 손해를 용서할 수 있습니다. 내가 그 일만 달란트의 용서를 고마워하면 할수록 다른 사람을 긍휼히 여김이 무엇인지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단지 백 데나리온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 사소함은 오직 일만 달란트를 생각할 때만이 알게 됩니다.

 

이 시대에 자녀들은 부모의 많은 요구사항을 받고 있습니다. 부모가 못한 꿈을 자녀가 이루어주기를 바랍니다. 또는 부모가 이룬 꿈을 자녀도 이루어주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부모가 원하는 것은 날로 날로 커져갑니다. 어릴 땐 밥을 잘 먹어주기를 원하고, 잠을 제때 잘 자주기를 원합니다. 놀때는 짜증 안내기를 원하고 어린이집이나 유치원도 꼬박꼬박 안빠지고 잘 다니기를 원합니다. 커서는 영어와 수학 등 공부를 잘 하기를 원하고 리더쉽이 있고 유머가 있으며 운동을 잘하고 거기에 연예인처럼 잘 생기기를 원합니다. 자녀는 부모의 모든 소원의 성취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못합니다. 부모가 기대를 가지면 가질수록 실망도 커지는 법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용서해주지 못하는 백 데나리온인 것입니다.

 

자녀에 대한 기도로 유명한 맥아더의 기도문이 있습니다. 이 기도문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주여, 내 아이가 이런 사람이 되게 하소서. 약할 때 스스로를 분별할 수 있는 힘과 두려워질 때 자신감을 잃지 않는 대담성을 가지고 정직한 패배에 당당하고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며, 승리의 때에 겸손하고 온유한 사람이 되게 하소서...”

이후로 지혜, 도전, 용감함, 불쌍히 여김, 마음의 깨끗함, 높은 이상, 절제, 추진력, 유머, 여유, 겸손, 소박함, 너그러움 등등 22개정도의 소원이 이어지는 기도문입니다. 이 기도문은 태평양 전쟁 당시에 아들에게 영적인 유산으로 남겨주기 위해서 기록되었고 그리고 대중에게 알려진 것은 맥아더장군에 사망한 이후에야 비로소 알려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기도문의 대상이었던 맥아더 장군의 아들은 오히려 아버지 사망 이후에 이름을 바꾸고 스스로 은둔의 삶을 살았다고 합니다. 피아니스트로서 음악을 하면서 살았다고만 알려져 있을 뿐이지 그 행적이 자세히 나타나지는 않습니다. 어쩌면 자신이 결코 그 22개 정도의 기도를 이룰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좌절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커다란 기대가 커다란 실망을 낳는 법이지만,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긍휼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자녀들이 가져다 주는 또 다른 실망스러움에 대해서 가혹하게 냉정하게 혹은 매몰차게 대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긍휼히 여기신 하나님을 기억하며 다시 긍휼히 여기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럴 때 주님의 마음을 알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 스스로도 주님께 결코 온전한 자가 아니었음을 깨닫게 하고 정말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은혜 뿐이었다는 것을 알게 할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놀라우시고 온전하신 계획입니다.

이 가정의 달 5월에 자녀들에 대해서 긍휼히 여기시고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깨닫게 되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럴 때 여러분의 가정에 하나님의 평안이 충만하게 거하게 될 것입니다. 진실로 자녀를 그리고 어린이를 긍휼히 여기는 마음으로 인해 하나님이 주신 평안이 우리의 삶에 넘쳐나기를 축원합니다.

 

 

 



번호 분류 이미지 제목 글쓴이 날짜 추천 조회
495 75덕행
46고전 8;1-13 덕을 세우는 것과 양심의 기준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11-09 16 9760
494 75덕행
45롬14; 17-21 하나님의 나라와 덕을 세우는 일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11-02 13 11621
493 74경건
40마13; 47-52 천국의 제자들의 경건의무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10-27 16 10283
492 74경건
40마13; 24-30 가라지를 이겨내는 하나님 나라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10-20 16 10083
491 74경건
40마 13; 31-33 겨자씨 한 알의 경건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10-12 13 10458
490 74경건
40마13; 44-46 천국을 사모하는 자의 경건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10-05 17 11974
489 73절제
42눅23;33-43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우리의 절제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09-28 14 10193
488 73절제
59약3;2-6 말에 필요한 그리스도의 절제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09-21 14 10108
487 73절제
46고전 9;25-27 이기기를 원하는 자의 절제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09-14 13 11292
486 73절제
48갈 5;13-18 사랑으로 종노릇하는 자들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09-07 14 10569
485 72온유
51골 3; 12-14 그리스도의 온유로 옷입은 자들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08-31 10 10522
484 72온유
48갈6;1-2 온유한 심령으로 바로잡으라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08-24 23 11353
483 72온유
40마 11;28-30 온유하신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08-17 12 10504
482 72온유
7삿 8;1-3 분노를 사라지게 하는 온유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08-10 14 10081
481 72온유
4민 12;3-7 하나님을 대면하는 자의 온유함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08-03 13 11304
480 84교육
58히 7;26-27 그리스도께서 제사장이 되심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07-27 16 8177
479 71충성
10삼하 7;4-9 의무가 아닌 사랑으로 섬김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07-27 15 10185
478 84교육
23사54;13-14 선지자되신 예수님의 가르치심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07-20 16 8579
477 71충성
44행21;8-14 사람들 너머 하나님을 보다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07-20 12 11044
476 84교육
44행 3;20-24 그리스도는 우리의 구속자이시다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07-13 17 8365
475 21순위
11왕상 17;8-14 나의 유익보다 앞선 하나님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07-13 18 10742
474 84교육
43요 1;1-14 하나님의 선택하신 자의 구속자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07-07 16 8644
473 71충성
58히 3;1-6 하나님의 집에 충성하는 자들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07-07 20 12152
472 66양선
43요 9;4-12 나를 보내신 이의 일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06-29 21 10872
471 66양선
43요 5;2-16 몸의 문제속에서 행할 수 있는 선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06-23 18 11297
470 66양선
41막 9;20-24 감정의 괴로움에서 건지시는 주님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06-16 15 11299
469 66양선
1창4;3-7 감정을 변화시키는 양선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06-09 18 10699
468 66양선
45롬15;7-14 그리스도인의 양선의 모습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06-01 17 10901
467 65긍휼
59약2;8-13 긍휼을 행해야 하는 이유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05-25 27 10140
466 65긍휼
49엡4;21-32 가르침을 받은 대로의 긍휼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05-19 11 10110
465 65긍휼
42눅 7; 11-16 부모를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05-11 16 10090
65긍휼
45롬11;29-36 자녀를 통해 긍휼을 알고 베풀게 하심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05-04 23 11354
463 84교육
45롬 5; 6-12 인간의 타락과 하나님의 구원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04-28 20 8694
462 64인내
43요21; 7-14 다시 찾아오시는 주님의 인내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04-27 19 10160
461 84교육
1창 3;4-7 죄악의 시작, 욕구의 시작2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04-21 19 8166
460 64인내
42눅24; 1-5 그 말씀대로 이루어지다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04-21 18 10784
459 84교육
43요14;6-11 삼위일체와 예정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04-13 15 8268
458 64인내
42눅22;47-54 이것까지 참는 인내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04-13 13 10301
457 84교육
19시 90; 1-12 인생의 의미와 하나님의 은혜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04-06 20 9092
456 64인내
40마26;36-46 잔을 거부하시지 않는 인내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04-06 15 10145
455 63화평
43요16;28-33 세상을 이겨내는 평안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03-31 17 10803
454 63화평
42눅24;25-36 주님을 따라갈 때 누리는 평안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03-23 17 11156
453 63화평
43요11;38-44 평안으로 이루어지는 것들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03-16 16 11263
452 63화평
41막 4;35-41 괴로움을 이겨내는 믿음의 평안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03-09 23 11218
451 63화평
43요14;25-29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03-02 12 12128
450 62희락
35합 3;17-19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는 희락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02-23 15 11500
449 62희락
23사61; 1-3 여호와께서 알게 하시는 희락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02-16 17 11330
448 62희락
20잠7;18-27 우리가 경계해야 할 희락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02-09 16 10464
447 62희락
14대하 30;23-27 커다란 희락의 근원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02-02 19 10924
446 84교육
41막 5; 35-43 죽은 소녀를 일으키시는 주님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01-26 17 9194
445 61사랑
46고전13; 8-13 하나님 사랑의 영원함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01-26 18 10522
444 61사랑
62요일 4; 13-17 타인의 사랑에서 하나님의 사랑으로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01-19 18 10367
443 84교육
41막12; 18-27 말씀을 오해하는 자들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01-12 21 9162
442 61사랑
62요일4; 10-17 자신의 사랑에서 하나님 사랑으로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01-12 17 10463
441 84교육
40마13; 34-43 비유를 통해 깨닫게 하심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01-05 20 9077
440 61사랑
62요일4; 7-10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다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01-05 19 10785
439 55동행
42눅 2; 25-35 성화계획으로의 동행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12-29 20 11092
438 55동행
42눅 2; 8-17 영광계획으로의 동행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12-22 15 10100
437 55동행
40마2; 16-21 피난계획으로의 동행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12-15 11 10077
436 55동행
40마 2; 1-3 경배계획에로의 동행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12-08 13 10657
435 55동행
42눅 1; 26-38 구원계획으로의 동행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12-02 13 10894
434 56충만
42눅22; 42-44 땀이 피가 되는 충만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11-25 21 13782
433 56충만
43요2;1-10 물이 포도주가 되는 충만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11-17 10 10890
432 56충만
12왕하 5; 9-15 요단강에 몸을 담그라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11-10 16 11622
431 56충만
2출15; 22-27 채움과 충만의 차이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11-03 11 10640
430 84교육
60벧전 5; 7-11 염려를 주께 맡겨야 하는 이유2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10-30 18 8788
429 84교육
60벧전 3;13-22 고난에 대한 하나님의 뜻2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10-28 18 8900
428 84교육
60벧전2; 9-12 너희가 긍휼을 얻은 이유2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10-28 18 8665
427 84교육
60벧전 1; 5-9 불로 연단하시는 믿음의 시련2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10-27 18 8997
426 54용서
11왕상11; 37-43 아들이 아버지처럼 용서를 받음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10-27 14 11516
425 54용서
10삼하18; 28-33 아버지를 울게 만든 아들 압살롬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10-20 19 10451
424 83성숙
44행28; 21-31 자기 셋집에 유하며 담대히 가르치다2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10-16 19 8444
423 54용서
42눅15; 25-32 큰아들에 대한 아버지의 속뜻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10-15 13 11484
422 54용서
42눅15; 20-24 돌아온 아들을 기뻐하시는 아버지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10-06 17 10423
421 83성숙
44행16; 30-34 너와 가족이 구원을 얻으리라2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10-02 22 9317
420 53희생
66계16; 12-21 최후의 심판과 그리스도인들의 희생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09-30 16 10809
419 53희생
32욘 4; 3-11 잃어버리면서 깨닫게 되다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09-24 14 11236
418 83성숙
44행8; 26-40 읽는 것을 깨닫느뇨3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09-17 19 7703
417 53희생
1창18;20-26 소돔의 구원을 간청하는 한 사람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09-15 21 11571
416 83성숙
44행17; 22-27 바울의 아덴설교2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09-09 19 7958
415 53희생
1창 6; 5-14 세상의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근심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09-08 22 10797
414 53희생
1창3; 17-24 하나님께서 잃어버리신 것들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09-02 9 9958
413 52능력
10삼하7; 8-17 하나님의 영원하신 축복의 능력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08-25 11 9922
412 52능력
9삼상30; 1-8 내가 쫓아가면 미치겠나이까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08-18 11 10407
411 52능력
9삼상24; 1-7 죄를 피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08-11 14 10874
410 52능력
9삼상17; 43-49 네가 모욕하는 이름으로 가노라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08-04 16 10320
409 51계획
6수 6; 1-7 여리고 성을 일곱번 돌라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07-28 18 15497
408 51계획
2출 4; 10-16 네 형 아론이 있지 아니하뇨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07-21 18 12224
407 51계획
1창42; 6-12 사브낫바네아인가 요셉인가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07-14 21 18409
406 51계획
1창34; 1-7 고통 중에 깨달은 하나님의 계획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07-07 13 11826
405 55동행
15스10; 16-22 그 아내를 보내기로 하고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06-30 11 11771
404 84교육
38갈3; 23-29 몽학선생과 상속자들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06-23 19 8644
403 55동행
15스10; 9-12 하나님의 전 앞에서 이루어진 일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06-23 19 11581
402 55동행
15스9; 1-3 누구를 따를 것인가 1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06-16 14 16930
401 84교육
38갈3; 19-22 율법은 범죄함을 인하여 주신 것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06-09 18 8850
400 55동행
15스7; 27-28 하나님의 손이 내 위에 있으므로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06-09 16 12074
399 84교육
38갈3; 15-18 미리 정하신 언약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06-04 20 8349
398 55동행
15스7; 7-10 하나님의 손의 도우심을 따라서 오다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06-02 16 10770
397 56충만
49엡2; 12-18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05-27 14 10985
396 84교육
38갈3; 10-14 저주에서 축복으로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05-21 19 8956